겨울을 견뎌 낸 시금치

맛이 좋지라우




추위를 견디고 나야 달달한 맛이 생기는 시금치. 다행히 안골 시금치밭은 눈이 녹아 작업하기가 수월합니다.

“올 시금치는 징허게 달고 맛이 좋지라우?”

“눈이 오니께 맛은 좋은 갑네, 눈 올 때는 아무 일도 못 할 것 같더니만 햇볕이 난께 눈도 녹고 시금치도 잘 캐지고 좋구만 그랴~”

“성님 이따 점심에는 나물 쪼매 무쳐 오시오, 된장에 참기름에 조물조물해서 맛나게 먹고 싶소야”

“알었네, 내 집에 갔다 올테니 살살 캐고 있으소 잉~”

“성님~ 내 털조끼도 갖고 오쇼. 날이 풀리는가 싶더니 쌀쌀해지요야~”

시금치야, 엄동설한 긴긴날 눈 속에서도 살아남아 주어 고맙구나! 너나 된께 그 추위를 견뎌 냈겄지. 참 예쁘다!

● 글·그림 김순복 해남 참솔공동체 생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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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 소식지에서 회원조직 활동 소식을 훑어 보는데 『아티스트웨이』라는 책 제목을 보았습니다. 호기심에 서점에서 구입해보니, 단순한 실천을 통해 일상에서 창조적 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었습니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책에서 이끄는 대로 실천해 보고 싶어서 한살림 안에서 아티스트웨이 모임을 만들었고 12주 동안 창조성 워크샵을 진행했습니다.

‘새로운 어린 시절을 상상해 보기’, ‘내가 할 수 없는 일 다섯 가지 적기’, ‘좋아하는 색깔 적기’ 등 책 내용에 따라 모임 구성원 모두가 열심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한 주 한 주 실천해 나갔습니다. 자신의 소망을 몇 가지 적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동생으로 생각했던 청개구리를 보는 게 소원이라고 적었습니다.

모임에 참가한 이들은 웃으며 서로의 소망이 이뤄질 거라는 축복의 말을 나눴습니다. 간절히 소망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는 편이었지만 정말 그 소원대로 청개구리가 제게 오리라는 건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소원을 적고 며칠 지난 어느 날, 저녁을 준비하려고 평소처럼 평택매장에 들려 장을 봐 왔습니다. 포기상추를 물에 씻는데 안에 무언가 있는 듯 했습니다. 뭐지? 달팽이가 있나 싶어 포기상추 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아주 작은 청개구리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습니다.

놀랍게도 제 소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포기상추 포장지를 살펴보니, 뫼내뜰영농조합의 한 생산자 분이 기른 것이었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생산자 분께 문자를 보냈습니다. 모임 사람들과 친한 사람들에게 청개구리를 직접 보여주거나 사진으로 찍은 것을 보여주며 이 놀라운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12주가 지났고 모임을 더 이어가자는 뜨거운 열의가 있어 ‘치유와 키움’이라는 모임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재미있게 한살림 활동을 하는 건 물론이며, 다과를 즐기며 수다도 떨고,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누고, 흙과 나무로 무언가를 만드는 등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놀라운 일을 겪었고 소중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한살림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니 더욱 기쁘고 고마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모임을 함께한 분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안산으로 이사 간 혜영님, 평소 하고 싶던 일을 찾아 열심이신 미라님, 한살림경기서남부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시는 유섭님, 현주님, 희경님, 명자님, 평택에서 쌓은 내공과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듬뿍 나누어 주시러 복직하신 혜영님, 한살림천안아산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현정님, 자신에게 꼭 맞는 사업을 찾아 열심히 키워 가시는 주선님, 좋은 거다 생각하면 무조건 해보시는 선아님, 도사 급의 내공을 지니고 계신 향미님 그리고 지금은 귀농해서 농사를 짓고 계신 연용 팀장님. 모두 함께 꿈꾼 덕분에 소망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종진 한살림경기서남부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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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농부에게

사랑 받는

추위에 강한 재래종 파



허리를 굽혀야 비로소 보이는 작은 풀꽃들이 지천이다. 어느새 와 있는 봄을 맞이하듯, 기세 좋게 올라오는 파를 들여다보면 마치 길쭉한 풍선을 불어 놓은 것 같다. 지난겨울 전만 해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파 농사는 기다림의 농사다. 씨를 뿌려 실같이 올라온 것을 옮겨 심고, 다른 농사에 신경 쓰다 보면 어느새 풀에 싸여 찾아보기 어렵게 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몇 번 풀 속에서 구해 주면 가을에 어느 정도 먹을 만큼 자란다. 겨우 김장에 쓰고 남겨 겨울을 나면, 그때는 정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씨를 뿌린 첫해만 잘 넘기면 두 해 째부터는 저절로 된다. 파 꽃을 수확해서 씨를 장만하고 그대로 두면 옆에서 다시 올라 온다. 그것도 여러 가닥으로…. 지난해 자라던 속도와도 다르게 자란다. 한 밭에 두고 몇 년을 먹게 되니 게으른 농부가 좋아할 일이다. 특히 재래종 파는 추위에 강한 것들이 많아서 쪽파와 함께 봄에 요긴하게 쓰인다. 살림 잘 하는 농부인지 텃밭을 보면 알 수 있다. 부추, 쪽파, 파밭이 일 년을 지키고 있는지 보면 된다. 오월이면 기세 좋은 파 잎 끝에 방울방울 파 꽃이 달린다. 크고 작은 꽃들이 활짝 피면 불꽃놀이를 연상케 한다. 벌들도 무척 많이 날아든다.

음식을 하는데 부재료로 쓰이지만, 감기 기운이 있거나 몸의 활력이 떨어질 때, 배, 생강 등과 파 흰 부분과 뿌리를 푹 끓여 먹으면 한결 좋아진다. 잎은 비록 말라 있지만, 길고 실한 뿌리를 보면 겨울을 나기 위해 얼마나 깊이 뿌리 박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요즘은 파를 주재료로 김치를 담가 먹기도 한다. 아직 못해 먹었는데 올해는 해 보련다.

생강나무 꽃 지며 진달래 흐드러진 봄날, 파 송송 썰어 넣은 시원한 바지락국 한 사발 먹고 기운 내야겠다.

박명의 충북 괴산 솔뫼농장 생산자 / 세밀화 박혜영 한살림서울 조합원

• 글을 쓴 박명의 생산자는 토박이씨앗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매해 농사지은 농작물의 씨앗을 손수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 세밀화를 그린 박혜영 조합원은 따뜻한 느낌이 묻어나는 그림을 좋아하고, 한 아이를 키우며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Posted by 박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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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이 뿔처럼

뾰족하게 생긴

뿔시금치



큰 산 북쪽 골짜기에 희끗희끗 눈이 남아 있고, 냇가 버드나무 가지가 시나브로 색을 더해가는 삼월이면 양지바른 돌담옆 시금치 밭이 기지개를 켠다. 겨우내 눈 속에서 추위를 이겨낸 단단한 모습으로….

내가 귀농했던 마을에도 어김없이 요맘때면 시금치 밭에 재를 뿌리고 텃밭을 돌보시는 할머니가 계셨다. 시금치는 쪽파와 같이 텃밭의 필수작물인 셈이다. 특히, 뿔시금치는 추위에 잘 견디는 작물이어서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심어 김장철에 먹고, 남긴 것은 겨울을 나고 먹는다. 봄철 입맛을 채워주는 채소로 최고다. 중앙아시아에서 재배되던 것이 우리나라에는 조선 초쯤 전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시금치는 씨앗 모양이 둥근 것과 각이 지고 뾰족한 것이 있는데 ‘뿔시금치’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씨앗이 뿔처럼 뾰족하고 잎 모양도 약간 길고 각이 진 걸 알 수 있다. 특이하게도 암수 딴 그루여서 꽃 필 시기가 되면 숫놈 시금치가 먼저 쭉 올라오면서 꽃가루를 날리고 암놈 시금치가 잎겨드랑이에 각진 씨앗 모양을 달고 있어 수정되면 이것이 여물어 뾰족한 씨앗이 된다.

봄이 무르익는 사월이 지나면 꽃대가 올라온다. 보통 그전에 먹거나 수정을 마친 숫놈 시금치만 골라 먹는다. 대궁 째로 살짝 데쳐 무치거나 국을 끓여 먹는다. 뿌리는 꽃대가 올라오면 억세지기 때문에 그전에 뽑아 먹는다. 겨울을 난 시금치 뿌리는 불그레한 게 굉장히 달다. 주로 데쳐서 이용하는데 가끔은 생으로 겉절이를 해도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시금치에 들어있는 수산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양을 장기간 먹지 않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제철에 그저 맛있게 먹으면 된다.

작년 가을에는 고라니한테 뺏기지 않으려고 시금치를 가까운 밭에 심었다. 오고갈 때 입맛을 다시며 시금치가 조금 더 크기를 기다리고 있다.

박명의 충북 괴산 솔뫼농장 생산자 / 세밀화 박혜영 한살림서울 조합원

• 글을 쓴 박명의 생산자는 토박이씨앗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매해 농사지은 농작물의 씨앗을 손수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 세밀화를 그린 박혜영 조합원은 따뜻한 느낌이 묻어나는 그림을 좋아하고, 한 아이를 키우며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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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로 보기2015. 4. 15. 13:59


한살림 소식지(525호) 보기 / E-book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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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있어 가슴이 뛴다


가족이 는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그러기에 먹고살기가 만만치 않았던 옛날에도 궁핍한 집에 아기가 태어나면 모두 입을 모아 “제 먹을 것은 자기가 갖고 태어난다.”라는 말로 축하했다. 가족은 힘이 되기 때문이다. 울타리가 되기도 하고 힘을 모아 어려운 일도 척척 해낸다. 때로는 멀리 떨어져 자주 볼 수 없는 가족도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가슴을 펴게 된다. 생각이 다르고 마음이 맞지 않을 때에도 가족은 외롭고 쓸쓸할 때 제일 먼저 생각이 난다.

한살림도 마찬가지로 혼자 힘으로는 풀기 어렵거나 함께하면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커다란 가족이다. 70명의 발기인으로 출발할 때 지켜보던 이들이 될 리가 없다고 했던 한살림이 조합원이 조합원을 늘이며 28년 만에 50만 번째 세대를 가족으로 맞이했다. 유정란 30판을 한 번에 주문해 만나는 사람마다 나누고 반상회를 자기 집에서 하면서 물품 홍보의 기회로 삼았던 조합원이 이룬 성과이다. 모든 식구가 가는 곳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살림 가입을 권한 탓에 다단계회사의 직원이냐는 물음을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우리 모두의 덕분이다. 아는 사람은 물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서슴없이 다가가 소식지를 나누고 물품 시식을 권한 우리 모두의 결과물이다. 우연히 홍보 장터에서 만난 학교동창에게서 왜 이렇게 됐느냐며 가입해주면 너한테 얼마가 떨어지느냐는 물음쯤 가볍게 웃으며 넘겼던 우리 모두의 열렬한 사랑 덕분이다. 그래서 한살림 가족이 느는 것은 마치 내 혈육이 느는 것처럼 기쁘고 뿌듯하다.

십수년 전 일본 생협을 방문했을 때 그들이 많은 조합원과 함께 지역을 바꾸는 일을 활기차게 하는 모습을 보고 몹시 부러웠다. 매장 안에 노인 주간 보호시설을 갖추고 도시락 배달 사업도 하며 노인용품을 개발해서 제공한다는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그런 일이 가능하도록 오랜 세월 복지기금을 100엔 씩 모았다는 말과 함께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의 합의과정을 들으며 우리도 언젠가는 많은 가족과 함께할 일을 꿈꾸며 밤새워 이야기하던 일도 생각난다. 우리가 부러웠던 일은 규모가 커서라기보다는 그 많은 조합원의 결집한 힘으로 사는 지역을 바꾸는 힘이었다. 힘든 일정을 마치고도 숙소에 다시 모여 우리와 꿈을 함께 꿀 사람들을 어떻게 많이 만들까 고민하던 시간이 조합원 50만 세대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조합원 1만 세대, 2만 세대를 기념하고 잔치를 벌인 이유는 같은 꿈을 꾸는 조합원과 함께 우리 사는 곳을 아이들이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일이 조금 더 쉬워지기 때문이다. 장바구니 들고 다니기 운동을 할 때도, 폐건전지 모으기를 할 때도, 우유갑을 모아 휴지를 만드는 일을 할 때도 함께 하는 이들이 많아 힘이 났다. 그렇게 함께 힘을 모아 학교급식을 바꾸고 수요시위를 주관했으며 치약과 세제, 휴지를 만들었다. 우리 쌀과 농업을 살리자고 거리 행진을 하고 전쟁을 멈추고 아이들을 돌보자고 호소할 때도, 탈핵과 대안에너지를 이야기하면서 햇빛발전소를 만들 때도 어깨 걸고 함께하는 많은 이들로 쉽게 할 수 있었다.

앞으로 다가올 30주년을 기다리며 얼마나 많은 옳은 일을 함께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벌써 가슴이 뛴다. 글 윤선주 한살림대전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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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순리대로 얻은 달콤함 

한살림 배

한살림광주 농산물위원회/전남 순천 박성주·보성 선종옥 생산자



살랑살랑 봄바람과 햇살 따스했던 3월 말, 한살림광주 농산위원회에서는 전라남도의 배 생산지에 다녀왔다. 박성주, 선종옥 생산자의 배밭에는 이제 꽃망울을 열기 시작한 배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두 분은 현재 한살림에 자주인증 배를 공급하고 있다. 자주인증은 한살림에서 스스로 정한 엄격한 기준으로 물품을 관리하고, 점검하는 제도이다. 고독성, 발암성, 침투이행성 농약은 사용을 일절 금하고 있으며, 출하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지베렐린 같은 성장조절제도 사용할 수 없다.

배 농사는 배 수확이 끝나는 10월에 퇴비를 주며 시작한다. 300평당 3kg정도로 적은 양의 계분을 뿌려주고, 4월에서 5월 개화시기에 방제를 한다. 6월 중순 방제를 한 번 더 하고 이후에는 자연이 주는 순리 그대로 키운다고 한다. 작업하기 불편할 정도로 풀이 자라면 제초기로 1년에 4~5회 잡초 관리를 하고 있다. 배 농사에 사용하는 물은 엄격하게 수질관리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전남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 개화 시기가 빨라 거의 자연수정으로 이루어지며 꽃봉오리 따기를 거쳐 열매가 자라면 봉지 씌우는 작업을 한다.

충분한 일조량을 받으며 자란 부드럽고 당도 높은 배는 수확 후 창고에서 일주일 정도 수분 증발과 숙성 기간을 거쳐 저온 창고에 저장된다. 간혹 그 해에 습도가 많았을 때는 수확 후 저온창고에서 보관 중에 껍질 부분에 까만 반점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맛에는 아무런 지장 없다고 한다.

지난해 배가 풍년이 들어 시중 배 가격이 하락했던 여파로 한살림 배가 수확량에 비해 소비가 많이 부족했었다고 한다. 배꽃이 피고 있건만 저장창고에는 아직도 작년에 수확한 배가 남아 있었다. 두 개를 깎아서 그 자리에서 맛을 보니 작년에 수확한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입에서 살살 녹는 수분과 당도를 가지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났다. 그래도 한살림 소비자 조합원들이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고맙다는 말이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저장 끝 시기에 가슴 쓸어내리며 상한 배를 날마다 골라내고 있는 생산자님들의 아린 마음을 조합원들이 한봉지씩 구매해 조금씩 덜어주었으면 좋겠다. 

이미원 한살림광주 농산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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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섭


“아이의 휴대전화 번호를 없애지 못했습니다. 아이한테 가끔가다 카카오톡 이런데다 편지를 씁니다. ‘잘 지내고 있지’ 이렇게… 휴대전화는 항상 충전기에 꽂힌 채 24시간 켜있습니다. 그러면 중학교 때 친구들이 딸에게 카카오톡을 보내요. 어떨 때는 밤에도 계속 울려요. 카톡,카톡 그러면서… 보니까 중학교 때 단짝인 아이가 ‘보고 싶다’, ‘사랑한다’고 계속 쓰고 있더군요.”

휴대전화 소리에 잠을 깨는 세월호 아빠의 이야기가 가슴을 때립니다. 유족들 대부분은 아직 아이들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 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한스럽고, 안타깝고, 또 너무도 사랑하여 아직 아이의 자취를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닙니다. 보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련이 남아서가 아닙니다. 하늘을 거스른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살릴 수 있는 영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혼을 향해 정치논리로 찬반을 논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잊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알아차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공포와 절망에 떨던 아이들이 바로 나였다는 것을.

아프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발가락 끝에 가시가 박혔을 때, 우리는 비로소 발가락의 존재를 알아차립니다. 복통으로 내장이 뒤틀릴 때, 우리는 비로소 위장과 하나였음을 자각합니다. 나의 몸이지만, 아프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참혹한 고통이 있을 때에만 ‘숨겨진 하나 됨’이라는 잊힌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한국사회가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라면, 우리 사회 어느 구석에서 누군가 비명을 지르며 죽어갈 때 우리는 비로소 사회적 몸의 존재를 알아차립니다. 세월호 참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단원고 아이들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세월호라는 배의 존재도, 선장과 선원도, 해양수산부와 해경의 실체도 인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세월호의 아픔과 죽음이 우리가 하나였음을 일깨웠습니다.

유럽의 어느 공동체 이론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타자가 혼자 죽어가지 않도록 타자를 위로한다.” 그렇습니다. 돈도 권력도 언론도 외면하는 이른 새벽 노숙자의 죽음과 깊은 산 속 요양병원의 죽음에 연민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진정한 공동체입니다. 죽음의 공동체야말로 진정한 공동체인지도 모릅니다. 타자라고 생각되었던 그는 타자가 아니었습니다.

무위당 장일순의 깨달음이 생각납니다.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곧 나였다는 것을.” 세월호의 공포, 세월호의 눈물, 세월호의 죽음 앞에서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생명은 하나라는 것을.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의 몸과 마음엔 각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으로 떠올리지 않아도 이미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아픔 때문에 되살아난 것뿐입니다. 오늘 아침 내 안의 휴대전화 울림이 보이지 않는 하나됨을 일깨웁니다.

글을 쓴 주요섭님은 한살림전북과 모심과살림연구소에서 생명사상과 협동운동에 대한 연구와 교류 활동을 펴왔습니다. 현재는 한살림연수원에서 ‘한살림사람’을 기르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

Posted by 박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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