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림 사상'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3.12.25 <살리는 말> 생활협동운동1
  2. 2013.12.25 <살리는 말>생활
  3. 2013.12.24 <살리는 말> 경물
  4. 2013.12.19 <살리는 말> 경인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서구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의 기반 위에 자본주의 사회가 등장하면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열악한 환경, 보장되지 않는 일자리 등으로 도시 노동자들의 삶은 말할 수 없이 비참했습니다. 이런 처지에서 이들은 두 방향에서 희망을 찾는데 하나는 노동자들의 단결을 통한 노동조합의 결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공산주의 혁명이었고 다른 하나는 생활의 협동을 통한 협동조합의 결성과 운영이었습니다.

초창기 협동조합의 목표는 전체 생활의 협동을 통한 생산과 소비 모두를 아우르는 공동체 형성이었습니다. 맑스가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불렀던 오웬, 푸리에, 생시몽 등은 모든 생활을 함께하는 공동체를 건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와미 다카시라는 일본 학자는 그런 공동체를 제1세대 협동조합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이들이 기획한 고립적인 공동체는 전부 와해되고 맙니다. 거대 자본의 생산력을 따라 갈 수 없었고 그들의 결속력이 부족했던 것도 이유가 되었습니다. 일부 종교적인 공동체는 아직도 건재하지만 사회적 대세를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그 다음에 전개된 것이 기능적 협동조합운동인데요, 현재 보편화 된 농협, 소비자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등을 말합니다. 영국 로치데일의 공정개척자 협동조합이 모태인 이 제2세대 협동조합은 생활의 한 부분을 기능적으로 조직합니다. 소비생활이나 신용부문, 혹은 유통의 한 부분을 조직하여 협동화하는 것이지요. 그 대표적인 것이 소비자협동조합으로 생활이 어려웠던 도시 노동자, 사회적 약자들이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협동의 힘으로 공동구매를 통해 생필품을 값싸게 사면서 삶의 질을 향상시켰습니다. 이런 기능적 협동조합운동은 전 세계 2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여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은 생산에 의한 소비의 조직화라 할 수 있는데 생산한 물품의 소비를 통해 자본의 이윤이 창출되므로 소비 조장을 위한 광고나 대중조작 등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소비자협동조합에서 사회적 약자인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소비자 주권”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협동조합운동 초창기에 영국에서는 노동자생산협동조합과 소비자협동조합의 주도권 문제가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노동자생산협동조합 중심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다시 짜야한다는 주장과 소비자협동조합이 사회적 주류가 되어 생산을 조직해야 한다는 주장의 충돌이었지요.

하지만 우리가 깊이 생각할 것은 소비자협동조합 중심주의나 “소비자 주권”이라는 생각은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공업사회라는 기형적인 틀 속에서 등장한 것이며 생산, 유통, 소비, 폐기라는 생태적 순환과정의 한 부분만을 대변한다는 것입니다. 즉, 생산, 유통, 소비, 폐기의 전 과정에 주권이 있어야하고 어느 한 부분의 주장을 확장시켜 전체화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생활협동운동②’는 다음 소식지에 이어서 실릴 예정입니다.

-------------------------------------------------------------------------------------글을 쓴 윤선주 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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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생활’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람이 일정한 환경에서 어떤 활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일’이나 ‘물질적 측면에서 사람이 먹고 입고 쓰면서 사는 일’이라고 나옵니다. 즉, 사람의 ‘생명활동’을 줄인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하고 쉬고 먹고 싸고 잠자는 모든 삶의 과정을 말하는 거지요.

그런데 현대에 들어서면서 이런 모든 생명활동이 왜곡되어 왔습니다. 먹고 사는 일은 본래 음식을 먹
고 이를 소화시켜 삶의 활력을 얻고 남는 것은 똥, 오줌으로 나오는 순환과정입니다. 그런데 이 순환이
막혀 퇴비로 활용되던 똥, 오줌은 버려지고 생명의 순환질서는 파괴되었습니다. 단절된 상태에서, 모자라는 영양분은 화학비료 같은 것들을 기계적으로 만들어 메우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생명활동의 하나이던 일이 돈을 받고 파는 노동으로 전락합니다. 동남아시아 섬 지역 사람들의 예에서 보듯, 수렵과 채취, 얼마간의 농사를 통해 자립하며 살던 사람들이 자본에 의해 조성된 대규모 사탕수수나 바나나 농장의 노동자로 전락해 노동력을 팔아야만 겨우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일이 왜곡되고 있습니다.

쉬고 잠자는 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주식시장을 보면 서울 증시가 폐장되는 시간에는 런던과 뉴욕 증
시가 시작됩니다.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 24시간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 없습니다. 자본의 질서 아래서는 경쟁에서 이기려면 원칙적으로 휴식을 취할 수 없는 셈이지요. 심지어 휴가를 가면서도 휴대용 컴퓨터를 갖고 갈 정도입니다. 또, 학교라는 제도적 교육 기관에서 꼬박 성실하게 교육을 받았는데도 막상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방법이나 지혜에는 무지해 자신이 먹을 음식을 만들 줄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율적인 사람은 학교 교육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온 동네의 잔치이던 결혼, 출산은 물론 어른을 모시거나 장례를 치루는 일도 시장이나 자본에 잠식당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생명운동은 삶의 영역에서 자율성을 회복하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장이나 국가에 의해 일방적
으로 조정되던 생활영역을 스스로 만들고 창조하는 일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시장경제에 맡기던 식생활 영역을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대하고 협동하며 재창조하는 생활협동운동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일용행사(日用行事) 막비도야(莫非道也) 혹은 일용행사 막비시천주야(莫非侍天主也)라는 말이 있습
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 도(道)아닌 것이 없다, 한울님을 모시지 않은 것이 없다”는 해월 선생의 말씀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이 바로 도를 실천하는 장이며 한울님과 만나는 자리라는 말입니다. 예전에 김지하 시인은 ‘일상과 혁명의 통일’, ‘밥과 명상의 통일’이라고도 불렀는데요, 혁명은 먼 미래의 결정적 시기에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내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구현되어야한다는 말이지요. 생명운동이 이루어지는 실천의 장이 바로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자본주의 시장 시스템에 의해 왜곡된 생명활동, 생활을 회복하는 것이 생명운동의 기반입니다. 따라서 생명운동에서 ‘생활’에 대한 강조는 필연적인 것이지요. 한살림이 태동부터 생활, 삶의 모든 영역을 살리는 일을 운동의 가치로 삼고 그 운동의 주체를 생활자, 주부로 세운 것도 그 때문입니다.

-------------------------------------------------------------------------------------글을 쓴 윤선주 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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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우리 집에서는 35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이 쓰시던 손톱깎이를 지금도 씁니다. 손에 익어 편하고 멀쩡하다고 어머님이 항상 챙기셨거든요. 해 잘 드는 마루 끝에 앉아 손톱정리를 하시던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아마 어느 집이나 물려받거나 오래 전에 장만해서 잘 쓰고 있는 물건들이 있을 거예요. 결혼 때 혼수로 마련한 책장이나 첫 월급으로 산 좋아하는 작가의 책, 혹은 부모님이 쓰시던 물건들은 우리를 훌쩍 그 때로 데려가 늘 기운을 북돋아줍니다.

비닐봉지나 종이행주는 한 번 쓰고 버리는 1회용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씻거나 말려서 몇 번이고 다시 씁니다. 점점 그 숫자가 줄어드는 것 같지만 여전히 편한 1회용 대신 손수건, 장바구니, 걸레 등을 쓰는 사람들도 많이 보입니다. 우리 부모님을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낡은 러닝셔츠는 일단 엄마의 속옷이 되었다가 뽀얗게 삶아 부엌의 행주로 또 몇 달 지낸 후 걸레로 끝을 맺었지요. 어린 마음에 저리 얇은 천이 참 오래도 버틴다 싶습니다. 또, 이렇게 더운 여름이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즐겨 덮으시던 삼베이불로 수월하게 잠이 들기도 합니다. 수 백 년 전 고분에서 수의가 완벽한 모습으로 출토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오래 사는 물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요즈음엔 고치거나 기워서 다시 쓰는 것 보다는 새로 사는 일이 더 많아 보입니다. 심지어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를 완전하게 바꾸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여든을 넘긴 연세에도 간단한 옷을 만들어 입으셨던 어머니는 바느질 하실 때면 피난길에 보리 두 말과 바꾼 싱거미싱을 꼭 헤어진 단짝이라도 되는 듯 그리워하셨지요. 시집 올 때 꽃을 담아 갖고 오셨다는 작은 단지를 바라보시던 눈길에는 19살 어린 신부의 꿈이 담겨있었고 혼수로 짜온 비단을 손으로 쓸어보실 때면 마치 그 시절의 당신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노라면 자식이나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들을 고스란히 함께 나누는 친구를 대하는 것이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오래도록 함께 한 물건은 쓰는 이의 염원이나 생각, 걱정과 근심이 그대로 투영되어 분신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옆에서 보기에도 저들은 보통사이가 아니구나 싶은 경우도 많습니다.

나이가 드니까 마음을 나누고 위로를 받는 대상이 꼭 사람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는데 자기 주변에 그런 사물들이 많다면 참 좋겠지요? 아마 그래서 우리 선조들이 문방사우(文房四友)라는 말을 쓰고 내 벗의 명단에 바람, 물 등을 꼽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연과 사물에 혼이 있다고 믿고 그 본성을 잘 살려 오래도록 아껴 쓰던 시절에는 어느 것도 함부로 버려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쓰레기라는 말도 없었고 멀지않은 미래에 온 나라가 각종 쓰레기로 몸살을 겪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겠지요. 대량 생산과 소비, 폐기의 결과로 ‘쓰고 버리는 시대’가 된 지금의 생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전통적인 삶의 지혜인 경물(敬物)의 윤리를 다시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글을 쓴 윤선주 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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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삼경론(三敬論)의 두 번째는 경인(敬人)인데요, 생태주의나 녹색운동에서는 지나치게 인간 중심인 세상에 대해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대의 자본주의나 산업문명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는 인간이 철저하게 도구화되어 있습니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단지 생산이나 소비의 도구나 수단일 뿐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사람을 바라보는 모든 가치 척도가 오로지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정해진다는 거지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이주노동자 등 사람에 대한 차별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추구하는 생명문화운동을 달리 말한다면 아름다움의 가치를 우리 삶의 선택 기준으로 만들어가
는 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동양학자 박현 선생은 아름다움은 ‘알움’답다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알’은 타고난 본래 모습을 말하고 '움'은 싹이 튼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타고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제대로 싹트고 피어나는 것이 가장 보기 좋다는 말이지요. 사람으로 말하면 돈이나 권력 등의 가치에 지배받지 않고 그 사람의 타고난 본성이 아무 거리낌 없이 실현되어야 비로소 아름답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아이들에 대한 교육이나 생각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들 각자의 개성이나 능력이 존중
되지 않는 공교육의 대안으로 대안학교나 공동육아, 홈스쿨링 등이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는데,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부분은 아이들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부터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정하고 저마다의 타고난 개성과 재능을 잘 실현시킬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시작된다는 거지요. 남들과 비교하거나 순위를 매겨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람으로 스스로 갖고 태어난 본성이 잘 발현되어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존재로 인정하고 돕는 교육방식이야말로 생명운동의 교육적 대안이 되겠지요.

해월 선생의 “어린아이도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니” 때리지 말라는 것도 이런 생각에서 나온 것이고,
소파 방정환 선생의 어린이 운동도 해월 선생의 이 말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 눈에 어떻게 보이든 저마다 자기 안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니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슴에 담고 산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워질까요.

생명운동이 바라는 삶의 모습은 다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저마다 타고난 개성을 꽃피우는 것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타고난 모습 그대로 서로 공경하고 모시면서, 각자 주체적이고 능동적이고 자립적이며 자치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이상으로 삼습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힘으로 열어나가는 사람과 사람이 모여 서로의 의견, 취향, 개성, 능력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세상. 이것이 생명문화운동이 가고자 하는 이상향입니다. 저마다 다른 색깔과 질감을 가진 사람들이 그물코로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아름답고 조화로운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지요. 그 바탕에 경인(敬人)이라는 생명윤리가 넓고 깊게 깔려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고 존중한다는 것은 곧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너머에 있는 무수한 존재를 사랑하는 일의 근본이 되니까요.

 

-------------------------------------------------------------------------------------글을 쓴 윤선주 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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