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말'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3.12.25 <살리는 말> 생활협동운동1
  2. 2013.12.25 <살리는 말> 생활습관
  3. 2013.12.25 <살리는 말>생활
  4. 2013.12.24 <살리는 말> 풍류
  5. 2013.12.24 <살리는 말> 경물
  6. 2011.09.01 <살리는 말> 기룸
  7. 2011.07.27 <살리는 말> 모심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서구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의 기반 위에 자본주의 사회가 등장하면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열악한 환경, 보장되지 않는 일자리 등으로 도시 노동자들의 삶은 말할 수 없이 비참했습니다. 이런 처지에서 이들은 두 방향에서 희망을 찾는데 하나는 노동자들의 단결을 통한 노동조합의 결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공산주의 혁명이었고 다른 하나는 생활의 협동을 통한 협동조합의 결성과 운영이었습니다.

초창기 협동조합의 목표는 전체 생활의 협동을 통한 생산과 소비 모두를 아우르는 공동체 형성이었습니다. 맑스가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불렀던 오웬, 푸리에, 생시몽 등은 모든 생활을 함께하는 공동체를 건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와미 다카시라는 일본 학자는 그런 공동체를 제1세대 협동조합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이들이 기획한 고립적인 공동체는 전부 와해되고 맙니다. 거대 자본의 생산력을 따라 갈 수 없었고 그들의 결속력이 부족했던 것도 이유가 되었습니다. 일부 종교적인 공동체는 아직도 건재하지만 사회적 대세를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그 다음에 전개된 것이 기능적 협동조합운동인데요, 현재 보편화 된 농협, 소비자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등을 말합니다. 영국 로치데일의 공정개척자 협동조합이 모태인 이 제2세대 협동조합은 생활의 한 부분을 기능적으로 조직합니다. 소비생활이나 신용부문, 혹은 유통의 한 부분을 조직하여 협동화하는 것이지요. 그 대표적인 것이 소비자협동조합으로 생활이 어려웠던 도시 노동자, 사회적 약자들이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협동의 힘으로 공동구매를 통해 생필품을 값싸게 사면서 삶의 질을 향상시켰습니다. 이런 기능적 협동조합운동은 전 세계 2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여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은 생산에 의한 소비의 조직화라 할 수 있는데 생산한 물품의 소비를 통해 자본의 이윤이 창출되므로 소비 조장을 위한 광고나 대중조작 등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소비자협동조합에서 사회적 약자인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소비자 주권”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협동조합운동 초창기에 영국에서는 노동자생산협동조합과 소비자협동조합의 주도권 문제가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노동자생산협동조합 중심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다시 짜야한다는 주장과 소비자협동조합이 사회적 주류가 되어 생산을 조직해야 한다는 주장의 충돌이었지요.

하지만 우리가 깊이 생각할 것은 소비자협동조합 중심주의나 “소비자 주권”이라는 생각은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공업사회라는 기형적인 틀 속에서 등장한 것이며 생산, 유통, 소비, 폐기라는 생태적 순환과정의 한 부분만을 대변한다는 것입니다. 즉, 생산, 유통, 소비, 폐기의 전 과정에 주권이 있어야하고 어느 한 부분의 주장을 확장시켜 전체화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생활협동운동②’는 다음 소식지에 이어서 실릴 예정입니다.

-------------------------------------------------------------------------------------글을 쓴 윤선주 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Posted by 한살림연합소식

댓글을 달아 주세요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들고 쓰고 버리는 모든 방식을 통틀어 생활양식이라고 말합니다. 넓은 의미에서 문화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같은 쓰임새라도 물품을 고르고 쓰고 버리는 방법에서 그 사람의 삶에 대한 생각이나 가치가 나타나니까요.

오랫동안 가난하고 검소했던 시대를 지나 지금 우리 세대는 많이 만들고 많이 쓰고 함부로 버리면서 살
고 있습니다. 최근에 정보화가 빨리 진전되면서 다양한 품목을 조금씩 생산하는 맞춤형 생산방식이 자리잡는 듯 보이지만 전체적인 틀이 변한 것은 아닙니다. 많이 생산해서 이윤을 많이 남기려는 자본의 속성이 변한 것은 아니거든요. 기술이 발전해서 다양한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게 된 것일 뿐이지요.

아시다시피 대량생산, 대량소비는 한정된 자원의 고갈을 낳고 그로 인한 환경 파괴와 더불어 인간 소

외를 가져옵니다. 물건이 필요해서 만들거나 사는 게 아니라 먼저 만들고 나서 어떻게 팔까를 고민합
다. 대중매체를 이용해 새롭거나 조금 다른 물건의 쓰임새를 널리 알려 사람들의 소비욕구를 자극해 대량소비로 이어집니다. 저만해도 당장 쓸 일이 없는 물건을 언젠가는 쓰겠지, 저 걸 쓰면 생활이 편해지겠지 하고 사는 일도 있거든요. 물건 값이 아주 싸다는 이유만으로 이웃나라의 값싼 노동력으로 대량생산한 물품을 사기도 하고요. 이처럼 대중매체는 개인의 사회적 태도 뿐 만아니라 사람들의 욕구나 기호(嗜好)도 만들어냅니다.

적어도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이 정도의 옷, 가방, 학원은 보장해야 하고 아내를 존중한다면 기념일 행

사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이런 차 한 대쯤은 필수라고 말하는 온갖 광고들이 끊임없이 쏟아지면서 우리의 의식을 지배합니다. 심지어 요즘은 나이대로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심각한 자기비하이며 몇 살로 보이기를 원하는지 말만하면 그대로 이루어 주겠다는 광고도 허다합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게 만들면서 화면 속의 모델처럼 예쁘고 날씬해야 행복하다고, 넘쳐나는 상품을 소유하고 소비하면서 행복을 느끼라고 온 세상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도 지금 당장 돈이 없어도 외상으로 누릴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지요. 그러는 사이 우리는 스스로의 생각, 느낌, 활동의 주체로서 능동적으로 존재 한다기보다 상품을 소유하고 소비하기 위해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 자신의 지식, 노동력, 몸과 영혼을 파는 소외된 존재가 되어갑니다.

우리 사회도 1980년대 이후로 대중적인 소비문화가 지배적 생활양식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온 나라

가 음식물을 비롯한 각종 생활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해결의 지름길이 그렇듯 오늘날의 자원고갈, 환경오염의 원인을 잘 따져 우리의 생산과 소비, 폐기 방식을 바꾸어야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신중하게 선택하고 오래도록 아껴 쓰는 문화를 우리 개인의삶에서부터 다시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을 쓴 윤선주 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소식지 발자취 > 살리는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리는 말> 생활협동운동2  (0) 2014.02.11
<살리는 말> 생활협동운동1  (0) 2013.12.25
<살리는 말> 생활습관  (0) 2013.12.25
<살리는 말>생활  (0) 2013.12.25
<살리는 말> 풍류  (0) 2013.12.24
<살리는 말> 경물  (0) 2013.12.24
Posted by 한살림연합소식

댓글을 달아 주세요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생활’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람이 일정한 환경에서 어떤 활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일’이나 ‘물질적 측면에서 사람이 먹고 입고 쓰면서 사는 일’이라고 나옵니다. 즉, 사람의 ‘생명활동’을 줄인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하고 쉬고 먹고 싸고 잠자는 모든 삶의 과정을 말하는 거지요.

그런데 현대에 들어서면서 이런 모든 생명활동이 왜곡되어 왔습니다. 먹고 사는 일은 본래 음식을 먹
고 이를 소화시켜 삶의 활력을 얻고 남는 것은 똥, 오줌으로 나오는 순환과정입니다. 그런데 이 순환이
막혀 퇴비로 활용되던 똥, 오줌은 버려지고 생명의 순환질서는 파괴되었습니다. 단절된 상태에서, 모자라는 영양분은 화학비료 같은 것들을 기계적으로 만들어 메우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생명활동의 하나이던 일이 돈을 받고 파는 노동으로 전락합니다. 동남아시아 섬 지역 사람들의 예에서 보듯, 수렵과 채취, 얼마간의 농사를 통해 자립하며 살던 사람들이 자본에 의해 조성된 대규모 사탕수수나 바나나 농장의 노동자로 전락해 노동력을 팔아야만 겨우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일이 왜곡되고 있습니다.

쉬고 잠자는 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주식시장을 보면 서울 증시가 폐장되는 시간에는 런던과 뉴욕 증
시가 시작됩니다.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 24시간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 없습니다. 자본의 질서 아래서는 경쟁에서 이기려면 원칙적으로 휴식을 취할 수 없는 셈이지요. 심지어 휴가를 가면서도 휴대용 컴퓨터를 갖고 갈 정도입니다. 또, 학교라는 제도적 교육 기관에서 꼬박 성실하게 교육을 받았는데도 막상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방법이나 지혜에는 무지해 자신이 먹을 음식을 만들 줄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율적인 사람은 학교 교육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온 동네의 잔치이던 결혼, 출산은 물론 어른을 모시거나 장례를 치루는 일도 시장이나 자본에 잠식당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생명운동은 삶의 영역에서 자율성을 회복하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장이나 국가에 의해 일방적
으로 조정되던 생활영역을 스스로 만들고 창조하는 일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시장경제에 맡기던 식생활 영역을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대하고 협동하며 재창조하는 생활협동운동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일용행사(日用行事) 막비도야(莫非道也) 혹은 일용행사 막비시천주야(莫非侍天主也)라는 말이 있습
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 도(道)아닌 것이 없다, 한울님을 모시지 않은 것이 없다”는 해월 선생의 말씀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이 바로 도를 실천하는 장이며 한울님과 만나는 자리라는 말입니다. 예전에 김지하 시인은 ‘일상과 혁명의 통일’, ‘밥과 명상의 통일’이라고도 불렀는데요, 혁명은 먼 미래의 결정적 시기에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내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구현되어야한다는 말이지요. 생명운동이 이루어지는 실천의 장이 바로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자본주의 시장 시스템에 의해 왜곡된 생명활동, 생활을 회복하는 것이 생명운동의 기반입니다. 따라서 생명운동에서 ‘생활’에 대한 강조는 필연적인 것이지요. 한살림이 태동부터 생활, 삶의 모든 영역을 살리는 일을 운동의 가치로 삼고 그 운동의 주체를 생활자, 주부로 세운 것도 그 때문입니다.

-------------------------------------------------------------------------------------글을 쓴 윤선주 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소식지 발자취 > 살리는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리는 말> 생활협동운동1  (0) 2013.12.25
<살리는 말> 생활습관  (0) 2013.12.25
<살리는 말>생활  (0) 2013.12.25
<살리는 말> 풍류  (0) 2013.12.24
<살리는 말> 경물  (0) 2013.12.24
<살리는 말> 경인  (0) 2013.12.19
Posted by 한살림연합소식

댓글을 달아 주세요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풍류를 아는 민족이라고 전해져옵니다. 우리 춤을 생명운동 차원으로 끌어 올린채희완 선생은 한국고대사상의 한 상징인 풍류도는 천부경(天符經), 화랑도(花郞道)에서 그 시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풍류도를 가장 정확하게 전해주는 것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의 난랑비서(鸞郞碑序)의 글인데요,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접화군생이란 사람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동식물과 우주만물, 흙, 바람, 공기, 티끌까지도 마음 깊이 사귀어 경계를 없애고 서로 완성되고 해방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흔히 아주 가까운 사이를 말할 때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 합니다. 겉에서 보기에는 두 사람, 혹은 여럿으로 보이지만 그들 사이에 생각하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아무런 경계가 없어 한 마음, 한 몸이라는 거지요. 다정한 연인이나, 부부 혹은 절친한 친구사이를 이렇게 말합니다. 보기에도 한 몸 같은 뱃속의 아기와 엄마는 말 할 것도 없겠지요. 좀 더 의식을 확장해보면 우리 아이가 잘 자라려면 우리 아이에게만 관심과 애정을 쏟아서는 안 되겠지요. 그 아이가 자라면서 만날 무수한 다른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자라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보이지 않는 그물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옆에서 헐벗고 굶주리는데 나 혼자만 잘 산다면 행복해지기 어려운 일 아니겠어요? 나와 나 이외의 사람들이 우리가 되어 함께 생각과 생활을 나누며 사회 전체를 좋은 방향으로 진전시키는 것을 사람사이의 접화군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사람들끼리만 잘 산다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요? 인디언 문화에서 현대문명의 대안을 찾는 서정록 선생은 우주 만물이 순환하는 존재이므로 모든 존재는 하나의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 생명세계의 그물망을 샤머니즘에서는 모든 사물이 영혼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그 영혼의 울림과 떨림이 현상으로 드러난 것을 바람, 흐름, 결이라 하는데 바로 그것이 최치원 선생이 말한 풍류이며 그 근본원리가 접화군생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우리를 둘러 싼 모든 자연과 서로 만나고 변화하고 존재를 섞으면서 살아갑니다. 모든 존재가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이 그렇고 모든 존재에 나뉘어 들어가 있다가 언젠가는 바다에서 다시 만나고 다시 무수한 생명으로 그 모습을 바꾸며 돌고 도는 물이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 들이마시는 공기는 아프리카의 영양이 내쉰 숨일 수 있고 마시는 물에 오래전 황새가 마셨던 물이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늘 한다면 이 세상이 나와 같이 소중하고 신성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느끼게 되고 우주만물과 하나 되는 접화군생의 풍류도를 일상적으로 살게 되는 것이겠지요.

외국의 유명한 연주자들이 한국에서 공연을 할 때 늘 감탄하며 "이렇게 열렬한 반응은 처음이다"라고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팔짱끼고 앉아 냉정하게 듣는 게 아니라 교감하며 마치 연주자와 한 몸처럼 감흥을 나눈다는 말이지요. 월드컵 경기 때의 거리응원은 세계를 놀라게 했는데 이런 일들이 우리 민족이 놀라운 교감, 감동, 감화, 진화시킬 줄 아는 뛰어난 풍류를 체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합니다.
자연을 축소시켜 분재로 만들고 정원을 만든 일본과 달리 울 밖의 자연을 내 것인 양 만끽하며 살았던 조상의 후예답게 소유와 상관없이 넉넉한 마음으로 사는 것도 멋있게 놀다가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글을 쓴 윤선주 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소식지 발자취 > 살리는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리는 말> 생활습관  (0) 2013.12.25
<살리는 말>생활  (0) 2013.12.25
<살리는 말> 풍류  (0) 2013.12.24
<살리는 말> 경물  (0) 2013.12.24
<살리는 말> 경인  (0) 2013.12.19
<살리는 말> 경천  (0) 2013.07.17
Posted by 한살림연합소식

댓글을 달아 주세요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우리 집에서는 35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이 쓰시던 손톱깎이를 지금도 씁니다. 손에 익어 편하고 멀쩡하다고 어머님이 항상 챙기셨거든요. 해 잘 드는 마루 끝에 앉아 손톱정리를 하시던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아마 어느 집이나 물려받거나 오래 전에 장만해서 잘 쓰고 있는 물건들이 있을 거예요. 결혼 때 혼수로 마련한 책장이나 첫 월급으로 산 좋아하는 작가의 책, 혹은 부모님이 쓰시던 물건들은 우리를 훌쩍 그 때로 데려가 늘 기운을 북돋아줍니다.

비닐봉지나 종이행주는 한 번 쓰고 버리는 1회용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씻거나 말려서 몇 번이고 다시 씁니다. 점점 그 숫자가 줄어드는 것 같지만 여전히 편한 1회용 대신 손수건, 장바구니, 걸레 등을 쓰는 사람들도 많이 보입니다. 우리 부모님을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낡은 러닝셔츠는 일단 엄마의 속옷이 되었다가 뽀얗게 삶아 부엌의 행주로 또 몇 달 지낸 후 걸레로 끝을 맺었지요. 어린 마음에 저리 얇은 천이 참 오래도 버틴다 싶습니다. 또, 이렇게 더운 여름이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즐겨 덮으시던 삼베이불로 수월하게 잠이 들기도 합니다. 수 백 년 전 고분에서 수의가 완벽한 모습으로 출토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오래 사는 물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요즈음엔 고치거나 기워서 다시 쓰는 것 보다는 새로 사는 일이 더 많아 보입니다. 심지어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를 완전하게 바꾸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여든을 넘긴 연세에도 간단한 옷을 만들어 입으셨던 어머니는 바느질 하실 때면 피난길에 보리 두 말과 바꾼 싱거미싱을 꼭 헤어진 단짝이라도 되는 듯 그리워하셨지요. 시집 올 때 꽃을 담아 갖고 오셨다는 작은 단지를 바라보시던 눈길에는 19살 어린 신부의 꿈이 담겨있었고 혼수로 짜온 비단을 손으로 쓸어보실 때면 마치 그 시절의 당신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노라면 자식이나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들을 고스란히 함께 나누는 친구를 대하는 것이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오래도록 함께 한 물건은 쓰는 이의 염원이나 생각, 걱정과 근심이 그대로 투영되어 분신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옆에서 보기에도 저들은 보통사이가 아니구나 싶은 경우도 많습니다.

나이가 드니까 마음을 나누고 위로를 받는 대상이 꼭 사람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는데 자기 주변에 그런 사물들이 많다면 참 좋겠지요? 아마 그래서 우리 선조들이 문방사우(文房四友)라는 말을 쓰고 내 벗의 명단에 바람, 물 등을 꼽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연과 사물에 혼이 있다고 믿고 그 본성을 잘 살려 오래도록 아껴 쓰던 시절에는 어느 것도 함부로 버려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쓰레기라는 말도 없었고 멀지않은 미래에 온 나라가 각종 쓰레기로 몸살을 겪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겠지요. 대량 생산과 소비, 폐기의 결과로 ‘쓰고 버리는 시대’가 된 지금의 생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전통적인 삶의 지혜인 경물(敬物)의 윤리를 다시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글을 쓴 윤선주 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소식지 발자취 > 살리는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리는 말>생활  (0) 2013.12.25
<살리는 말> 풍류  (0) 2013.12.24
<살리는 말> 경물  (0) 2013.12.24
<살리는 말> 경인  (0) 2013.12.19
<살리는 말> 경천  (0) 2013.07.17
<살리는 말> 이천식천  (0) 2013.06.13
Posted by 한살림연합소식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살리는 말|모심과 살림 연구소에서 출간한 모심살림총서 3 <<살림의 말들>>에 수록된 말들을 되새기며 음미합니다.


글|윤선주 · 한살림연합 이사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은 아주 작은 씨앗에서 시작합니다. 종에 따라 크기가 다르기는 하지만 큰 씨앗이 반드시 크게 자라거나 작은 씨앗이라고 작게만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기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변수가 될 수도 있고 누가 기르느냐가 중요해지기도 합니다. 88번 농부의 손길로 기르는 벼가 있는가 하면 우주만물이 함께 기르는 들풀, 작은 벌레, 하늘의 새도 있습니다. 물론 벼도 순전히 농부의 손으로만 기르지는 않지요.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흙 속의 미생물조차 어머니 대지의 자식들을 함께 기릅니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의 아이를 자기 몸속에서부터 기르기 시작합니다. 어떤 아이로 기를 것인지 부모가 함께 생각하고 아직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이를 위해 바른 생각, 고운 마음으로 스스로를 기르기 시작합니다. 아이로 인해 세상이 달라 보이고 내 아이가 귀하고 소중하므로 세상의 모든 아이를 사랑하게 됩니다. 열 달을 기다려 세상과 마주한 아이가 자기 힘으로 먹고 걸으며 크는 동안 부모도 아이로 인해 많은 것을 배우고 변합니다. 이렇게 보면 아이와 부모는 서로를 잘 기르는 관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과 농부가 함께 기른 이 땅의 모든 먹을거리로 우리는 밥상을 차립니다. 그 밥상에 식구가 둘러앉아 먹고 마시면서 아이들은 자라고 어른들은 단단해집니다. 사람과 자연이 협력해서 기른 먹을거리가 이제는 사람을 기르는 셈이지요. 아마도 일방적으로 기르기만 하거나 키워지기 만하는 사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변화시키고 기르는 일이 모든 생명체가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이고 살아가는 방법이겠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기르는 것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기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명이 깃든 먹을거리로 나를 잘 먹이고 올바르고 밝은 생각으로 자신을 지키고 생각한 대로 움직인다면,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나와 내 이웃의 행복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쩌면 온 세상의 아이들을 잘 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자신을 기르는 일은 아마도 자기 안의 여린 새싹을 정성껏 돌봐 큰 나무로 키우는 일과 같지 않을까요?


이렇게 기른다는 일은 그 대상이 내가 됐든, 아이를 포함해서 남이 됐든 각 사람이 품고 있는 작은 씨앗을 알아보는 일부터 시작하겠네요. 그 씨앗이 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찾아 내 매일, 매일 관심을 갖고 필요한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해서 한 그루의 나무로 우뚝 서도록 보살피는 일일 거예요. 그러면 자기 크기만큼 이 세상의 시원한 그늘도 되고 예쁜 꽃도 피우고 간혹 먹음직한 열매도 맺을 수 있을 테니까요.


----------------------------------------------------------------------------------------


글을 쓴 윤선주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소식지 발자취 > 살리는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리는 말> 한살림  (0) 2011.11.01
<살리는 말> 님  (0) 2011.09.27
<살리는 말> 기룸  (0) 2011.09.01
<살리는 말> 모심  (0) 2011.07.27
<살리는 말> 살림  (0) 2011.07.08
<살리는 말> 한  (0) 2011.06.10
Posted by 한살림연합소식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살리는 말|모심과 살림 연구소에서 출간한 모심살림총서 3 <<살림의 말들>>에 수록된 말들을 되새기며 음미합니다.


글|윤선주 · 한살림연합 이사

우리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과 함께 할 때 모신다고 합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거나 선생님을 모시러 가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그런 예이지요.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딱히 상대가 나보다 더 나은 면이 없는데도 모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늘 그를 내 마음에 모시고 무엇을 하든지 그를 중심에 두고 삽니다. 맛난 음식을 먹을 때 옆에 없는 그가 생각나고 아름다운 풍경을 대할 때도 그가 옆에 없어 안타깝습니다. 문득 비 갠 뒤 하늘에 떠오른 무지개를 보면서도 그가 함께 있다면 더 기쁠 거라 생각합니다. 그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내 안에 너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아직 보지도 않고 만나지도 못한 누군가를 모시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아기를 가진 엄마들입니다. 이제 막 아기가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안 그 순간부터 아기 엄마들은 태어날 아기를 모십니다. 좋고 바른 생각을 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예쁜 사진으로 도배를 하면서 뱃속의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주기를 바랍니다. 아기를 위해 즐기던 커피도 끊고 아무리 추워도 전자파가 아기에게 나쁘다고 전열기도 켜지 않은 채 겨울을 지내기도 합니다. 물론 앉는 자리, 먹는 음식도 바르고 정갈하게 고릅니다.


아이를 키울 때도 어떻게 하면 잘 키울 수 있을지 늘 생각하고 어쩌다 혼자 집을 나서면 아이가 눈에 밟혀 마음이 바빠지기 일쑤입니다. 아이가 아프면 밤새 옆을 지키고 차라리 내가 아프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이 아이가 자라서 키워 준 은혜를 갚고 내가 한 것처럼 이렇게 모시리라고 믿어서 그럴까요? 아마 대부분의 엄마들은 그 순간 오로지 아이가 건강하기만을 바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자신 안에 품고, 낳고 키우는 모든 부모처럼 누군가를 모신다는 것은 그 근본은 사랑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가를 바라거나 우열을 가리지 않는, 그냥 있는 것 자체를 귀하게 여기고 그 타고난 본성을 탓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면서 잘 지켜나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모심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내 아이 뿐 만 아니라 남의 아이, 세상의 모든 아이를 그렇게 바라보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각자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사람을 모시는 일인 것 같습니다. 내 아이, 내 가족을 뛰어넘듯이 사람을 넘어 우리와 함께 지구별에 깃든 모든 생명과 바위, 모래, 시냇물, 솔바람과 그늘까지도 그들이 제 자리에 잘 있도록 마음을 쓰는 일은 아마도 온 우주를 향한 극진한 모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을 쓴 윤선주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소식지 발자취 > 살리는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리는 말> 한살림  (0) 2011.11.01
<살리는 말> 님  (0) 2011.09.27
<살리는 말> 기룸  (0) 2011.09.01
<살리는 말> 모심  (0) 2011.07.27
<살리는 말> 살림  (0) 2011.07.08
<살리는 말> 한  (0) 2011.06.10
Posted by 한살림연합소식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