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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주

당신이 있어 가슴이 뛴다 당신이 있어 가슴이 뛴다 가족이 는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그러기에 먹고살기가 만만치 않았던 옛날에도 궁핍한 집에 아기가 태어나면 모두 입을 모아 “제 먹을 것은 자기가 갖고 태어난다.”라는 말로 축하했다. 가족은 힘이 되기 때문이다. 울타리가 되기도 하고 힘을 모아 어려운 일도 척척 해낸다. 때로는 멀리 떨어져 자주 볼 수 없는 가족도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가슴을 펴게 된다. 생각이 다르고 마음이 맞지 않을 때에도 가족은 외롭고 쓸쓸할 때 제일 먼저 생각이 난다.한살림도 마찬가지로 혼자 힘으로는 풀기 어렵거나 함께하면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커다란 가족이다. 70명의 발기인으로 출발할 때 지켜보던 이들이 될 리가 없다고 했던 한살림이 조합원이 조합원을 늘이며 28년 .. 더보기
<살리는 말> 공동체 운동 약사5-열린두레 공동체 글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생태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나온 새로운 공동 체는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이 꿈꾸던 협동촌, 즉 폐쇄적 코뮨(commune)공동체와는 분명히 성격이 다릅니다. 오히려 생명공동체 혹은 공생 체(共生體)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이 는 생산-유통-소비-폐기라는 물질순환의 흐 름, 생명이 지닌 관계성, 유기적 연관성을 중시 하는 ‘열린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대안 운동의 거점으로 시작된 공동체라 하더라도 공 동체 외부세계와의 연대, 지역사회에 대한 의무 와 책임 등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점들은 생태공동체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 이라고 봅니다. 대안 경제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자립은 공동체 내부에 국한된 문제로 인식되기도 합니 다. 그러나 새로운 공동.. 더보기
<살리는 말> 공동체운동 약사3 - 농업살림의 생활협동운동 글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전통사회의 마을 공동체가 발달하였던 우리나라도 해방이후 산업화,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이전부터 공동체의 실험이 꾸준히 진행되었습니다. 1950년대 후반에 시작한 함석헌 선생의 씨알농장을 비롯해서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동광원, 예수원, 풀무원 등이 꾸준히 실험되고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들 공동체의 사회적 반향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농협처럼 정부의 주도하에 설립된 조합과 달리 신용협동조합, 생활협동조합, 한살림 등 생활인들이 민주적이고 자발적으로 조직한 공동체의 실험도 계속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1960년대 초 천주교에서 시작한 신용협동조합은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 도시나 농촌의 사회적 약자들이 고리대금의 피해를 벗어나 자신들.. 더보기
<살리는 말> 공동체운동 약사2 - 대안사회운동 글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앞에서 살펴본 대로 협동촌 운동의 고립된 체계에 협동조합의 경영시스템을 보완한 새로운 공동체 운동은 1970년대 들어서면서 활발해집니다. 그러나 그 뿌리는 1920년대 러시아, 독일, 헝가리,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던 노동자 자주관리, 노동자생산공동체 운동, 길드 사회주의 운동 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이 개인들의 간접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경제조직이라면 이들 공동체는 개인들의 직접 참여와 연대, 지역적 관점 및 적정기술을 바탕으로 시도되었지만 사회주의 혁명과 세계대전 등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붕괴해 버립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스페인 몬드라곤 생산자 협동조합이나 이스라엘 키부츠 등은 살아남아 지금도 현대사회의 모순을 극복할 대안으로 제시되고는 합니다. 1970년대, 에너지.. 더보기
<살리는 말> 생활협동운동1 글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서구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의 기반 위에 자본주의 사회가 등장하면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열악한 환경, 보장되지 않는 일자리 등으로 도시 노동자들의 삶은 말할 수 없이 비참했습니다. 이런 처지에서 이들은 두 방향에서 희망을 찾는데 하나는 노동자들의 단결을 통한 노동조합의 결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공산주의 혁명이었고 다른 하나는 생활의 협동을 통한 협동조합의 결성과 운영이었습니다. 초창기 협동조합의 목표는 전체 생활의 협동을 통한 생산과 소비 모두를 아우르는 공동체 형성이었습니다. 맑스가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불렀던 오웬, 푸리에, 생시몽 등은 모든 생활을 함께하는 공동체를 건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와미 다카시라는 일본 학자는 그런 공동체를 제1세대 협동조합이라고 부릅니다. 하지.. 더보기
<살리는 말> 생활습관 글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들고 쓰고 버리는 모든 방식을 통틀어 생활양식이라고 말합니다. 넓은 의미에서 문화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같은 쓰임새라도 물품을 고르고 쓰고 버리는 방법에서 그 사람의 삶에 대한 생각이나 가치가 나타나니까요. 오랫동안 가난하고 검소했던 시대를 지나 지금 우리 세대는 많이 만들고 많이 쓰고 함부로 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최근에 정보화가 빨리 진전되면서 다양한 품목을 조금씩 생산하는 맞춤형 생산방식이 자리잡는 듯 보이지만 전체적인 틀이 변한 것은 아닙니다. 많이 생산해서 이윤을 많이 남기려는 자본의 속성이 변한 것은 아니거든요. 기술이 발전해서 다양한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게 된 것일 뿐이지요. 아시다시피 대량생산, 대량소비는 한정된 자원의 고갈을 낳.. 더보기
<살리는 말>생활 글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생활’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람이 일정한 환경에서 어떤 활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일’이나 ‘물질적 측면에서 사람이 먹고 입고 쓰면서 사는 일’이라고 나옵니다. 즉, 사람의 ‘생명활동’을 줄인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하고 쉬고 먹고 싸고 잠자는 모든 삶의 과정을 말하는 거지요. 그런데 현대에 들어서면서 이런 모든 생명활동이 왜곡되어 왔습니다. 먹고 사는 일은 본래 음식을 먹 고 이를 소화시켜 삶의 활력을 얻고 남는 것은 똥, 오줌으로 나오는 순환과정입니다. 그런데 이 순환이 막혀 퇴비로 활용되던 똥, 오줌은 버려지고 생명의 순환질서는 파괴되었습니다. 단절된 상태에서, 모자라는 영양분은 화학비료 같은 것들을 기계적으로 만들어 메우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생.. 더보기
<살리는 말> 풍류 글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풍류를 아는 민족이라고 전해져옵니다. 우리 춤을 생명운동 차원으로 끌어 올린채희완 선생은 한국고대사상의 한 상징인 풍류도는 천부경(天符經), 화랑도(花郞道)에서 그 시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풍류도를 가장 정확하게 전해주는 것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의 난랑비서(鸞郞碑序)의 글인데요,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접화군생이란 사람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동식물과 우주만물, 흙, 바람, 공기, 티끌까지도 마음 깊이 사귀어 경계를 없애고 서로 완성되고 해방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흔히 아주 가까운 사이를 말할 때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 합니다. 겉에서 보기에는 두 사람, 혹은 여럿으로 보이지만 그들 사이에 생각하는 것도.. 더보기
<살리는 말> 경물 글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우리 집에서는 35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이 쓰시던 손톱깎이를 지금도 씁니다. 손에 익어 편하고 멀쩡하다고 어머님이 항상 챙기셨거든요. 해 잘 드는 마루 끝에 앉아 손톱정리를 하시던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아마 어느 집이나 물려받거나 오래 전에 장만해서 잘 쓰고 있는 물건들이 있을 거예요. 결혼 때 혼수로 마련한 책장이나 첫 월급으로 산 좋아하는 작가의 책, 혹은 부모님이 쓰시던 물건들은 우리를 훌쩍 그 때로 데려가 늘 기운을 북돋아줍니다. 비닐봉지나 종이행주는 한 번 쓰고 버리는 1회용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씻거나 말려서 몇 번이고 다시 씁니다. 점점 그 숫자가 줄어드는 것 같지만 여전히 편한 1회용 대신 손수건, 장바구니, 걸레 등을 쓰는 사람들도 많이 보입니다. 우리 .. 더보기
<살리는 말> 경인 글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삼경론(三敬論)의 두 번째는 경인(敬人)인데요, 생태주의나 녹색운동에서는 지나치게 인간 중심인 세상에 대해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대의 자본주의나 산업문명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는 인간이 철저하게 도구화되어 있습니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단지 생산이나 소비의 도구나 수단일 뿐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사람을 바라보는 모든 가치 척도가 오로지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정해진다는 거지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이주노동자 등 사람에 대한 차별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추구하는 생명문화운동을 달리 말한다면 아름다움의 가치를 우리 삶의 선택 기준으로 만들어가는 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동양학자 박현 선생은 아름다움은 ‘알움’답다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