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015.03.3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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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로 보기 2015.02.10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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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태 한살림연합 사업지원부문 상무

 

요즘 유기농업(친환경농업) 진영은 학교급식 문제와 모 방송국에서 제작하고 있다는 프로그램 때문에 신경이 날카롭다. 서울교육청에서는 학교급식과 관련하여 학부모를 대상으로 농약 좀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요지의 강연을 자주 연다고 한다. 값비싼 유기농산물을 대신해서 적절하게 관리된 농산물을 먹는 것이 낫다는 논리도 내세운다.

 모 방송국에서는 한국에는 진정한 유기농업은 없다는 취지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유기농업 생산현장을 이 잡듯이 뒤지면서 꼬투리 잡기에 나섰다는 제보가 줄을 잇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유기농업 육성정책을 포기하고 오히려 폄하하기까지 하면서 GAP(Good Agricultural Practices 농산물우수관리)를 내세우기 위해 꼼수를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GAP는 말 그대로 농산물 생산을 적절하게 관리하는 제도를 말한다. 유기농산물과 GAP농산물은 결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유기농산물과 GAP농산물은 종자 사용에서부터 제초제와 화학비료, 농약, 수확 후 관리방식에 이르기까지 관리체계가 다르다.

 첫째, 유기농산물 인증체계는 농사짓는 사람과 작물이 자라는 땅에 대한 관리를 전제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고 살펴본다. 예방적 조처를 우선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GAP농산물은 철저하게 결과를 중심에 둔다는 점이 다르다. 국가가 정해놓은 위해요소, 대표적으로 잔류농약 등에 대해 기준치를 통과한 것인지 사후에 점검하는 방식이다.

 둘째, 유기농산물은 GMO종자를 사용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제초제와 화학합성농약, 화학비료의 사용을 철저하게 금지한다. 하지만 GAP농산물은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은 물론이고 제초제 사용마저 허용하고 있다. GMO종자 사용은 말할 나위가 없다. 어차피 적절한 사용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유기농산물은 외부자원의 투입을 최소화한, 생태순환적이고 환경친환경적인 농사방식인데 반해 GAP농산물은 이런 가치를 우선하지 않는다. 가족농, 소농의 가치를 우선하는 유기농산물과는 달리 GAP농산물은 위생이라는 미명하에 대규모시설에 대한 의존성이 있다. 한마디로 기업농에 적합한 관리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혹자는 GAP가 가공식품에 적용하는 해썹(유해요소중점관리기준 HACCP Hazard Analysis and Critical Control Points ) 과 유사한 농산물관리기준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렇듯 유기농업과 GAP는 농산물의 안전성에 대해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지만 태생부터 다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혹 안전성 기준을 동일하게 통과했다 해도 땅과 작물을 대하는 태도와 농사방식부터가 차이가 크다. GAP농산물은 유기농산물과 비교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관행농산물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관행농산물도 잔류농약 기준치 이하일 때만 시중에 유통될 수 있다. 문제는 이에 대한 국가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굳이 우열을 가리자면 유기농산물, 무농약농산물, 저농약농산물, GAP농산물이라고 줄을 세워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량의 제초제와 농약,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관행농업의 폐해를 적절하게 관리하고 극복하자는 점에서 GAP제도는 진일보한 제도일 수 있으나 유기농업을 대체할 수는 없다. 유기농업의 정착과 활성화를 위해 저변을 넓히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정도가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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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말|모심과 살림 연구소에서 출간한 모심살림총서 3 <<살림의 말들>>에 수록된 말들을 되새기며 음미합니다.


글|윤선주 · 한살림연합 이사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은 아주 작은 씨앗에서 시작합니다. 종에 따라 크기가 다르기는 하지만 큰 씨앗이 반드시 크게 자라거나 작은 씨앗이라고 작게만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기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변수가 될 수도 있고 누가 기르느냐가 중요해지기도 합니다. 88번 농부의 손길로 기르는 벼가 있는가 하면 우주만물이 함께 기르는 들풀, 작은 벌레, 하늘의 새도 있습니다. 물론 벼도 순전히 농부의 손으로만 기르지는 않지요.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흙 속의 미생물조차 어머니 대지의 자식들을 함께 기릅니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의 아이를 자기 몸속에서부터 기르기 시작합니다. 어떤 아이로 기를 것인지 부모가 함께 생각하고 아직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이를 위해 바른 생각, 고운 마음으로 스스로를 기르기 시작합니다. 아이로 인해 세상이 달라 보이고 내 아이가 귀하고 소중하므로 세상의 모든 아이를 사랑하게 됩니다. 열 달을 기다려 세상과 마주한 아이가 자기 힘으로 먹고 걸으며 크는 동안 부모도 아이로 인해 많은 것을 배우고 변합니다. 이렇게 보면 아이와 부모는 서로를 잘 기르는 관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과 농부가 함께 기른 이 땅의 모든 먹을거리로 우리는 밥상을 차립니다. 그 밥상에 식구가 둘러앉아 먹고 마시면서 아이들은 자라고 어른들은 단단해집니다. 사람과 자연이 협력해서 기른 먹을거리가 이제는 사람을 기르는 셈이지요. 아마도 일방적으로 기르기만 하거나 키워지기 만하는 사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변화시키고 기르는 일이 모든 생명체가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이고 살아가는 방법이겠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기르는 것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기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명이 깃든 먹을거리로 나를 잘 먹이고 올바르고 밝은 생각으로 자신을 지키고 생각한 대로 움직인다면,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나와 내 이웃의 행복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쩌면 온 세상의 아이들을 잘 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자신을 기르는 일은 아마도 자기 안의 여린 새싹을 정성껏 돌봐 큰 나무로 키우는 일과 같지 않을까요?


이렇게 기른다는 일은 그 대상이 내가 됐든, 아이를 포함해서 남이 됐든 각 사람이 품고 있는 작은 씨앗을 알아보는 일부터 시작하겠네요. 그 씨앗이 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찾아 내 매일, 매일 관심을 갖고 필요한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해서 한 그루의 나무로 우뚝 서도록 보살피는 일일 거예요. 그러면 자기 크기만큼 이 세상의 시원한 그늘도 되고 예쁜 꽃도 피우고 간혹 먹음직한 열매도 맺을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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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 윤선주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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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은 가보家寶 단감
전남 담양군 시목마을 최덕순 생산자 이야기



글|최은희․한살림정읍전주 조합원



전남 담양군 금산면 시목마을.

이름 그대로 감나무가 많은 마을은 산속에 새집처럼 동그랗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전국 최초 유기농 생태마을로 지정된 이 산골마을 꼭대기 1만 2천평의 밭에서 최덕순 생산자는 단감과 매실 농사를 짓고 있지요.



년이 넘은 소나무가 몇 그루 운치 있게 자라는 마당과 자그마한 집을 제외하면 빙 둘러 사방이 감나무 밭 천지입니다. 8월의 감나무에는 싱싱한 초록의 감잎 아래 도리납작한 단감들이 풋풋하게 매달려 있습니다. 이곳의 감나무는 햇님 달님에서 나오는 호랑이가 도끼로 찍어가며 오르던 까마득한 꼭대기가 없어요. 나주 배나무처럼 가지가 밑으로 낭창히 휘어져 팔을 뻗으면 감이 쉽게 손에 닿아 신기합니다. 감나무들은 야트막한 언덕의 굴곡을 따라 끝없이 이어져있는데 이 감밭을 올해 예순 여섯의 최순덕 생산자는 밤낮으로 스쿠터를 타고 누빈답니다.

남편과 사별한지 17년. 남에게 보증을 서 주었다가 부도를 맞고 도청 공무원도 그만둔 남편은 홧병으로 눈까지 어두워져 1년 밖에 더 살지 못할거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마지막으로 시아버지 묫자리로 샀던 이 골짜기로 들어왔습니다. 시어머니와 졸망졸망 어린 아이 넷을 데리고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온 것이 삼십년 전. 여기로 들어와서 대추나무를 심었다가 비 피해로 죽어 다 뽑아내고 사과나무, 배나무를 심었다가 파내고 감나무를 심으며 남편은 몇 년을 땅과 함께 살다 곁을 떠났습니다.


남편이 저 세상 사람 되었을 적에 동네 사람들은 나보고 저 부지런한 사람이 여그서 감나무나 붙들고 살 수 없을 거라고 했거든. 젊었을 적에 남편 번듯하게 공무원 할 때도 일이 하고 싶어 땅장사, 집장사, 식당일, 청소부일... 오만가지 안해본 일이 없었으니 뭘 해도 못하랴 싶었지만 근디 농사짓고 살다 보니 밖으로 나가 장사하며 허덕거리며 살고 싶지가 않더만.


그때 우리 동네 감나무 작목반이 13명이었는디 나만 혼자 여자로 들어간거지. 어느 날 그러대. 우리가 감나무를 친환경으로 재배하자. 농약 안치고, 비료 안치고 그러면 땅도 살고, 감도 좋은 값을 받을 수 있다. 그 말 듣고 밤새 생각했지. 그러고 해도 감이 남아날랑가 걱정이제. 그러다가 아~ 내가 언젠가는 이 땅을 자식에게 물려줘야 하는디 땅을 살려서 물려줘야지 싶어서 바로 다음날 가서 그랬제. 나도 한번 따라가 볼라요. 열셋이 시작을 했는디 지금 유기농으로만 하는 집은 나까지 세집이 남았어. 동네사람들이 나보고 그러대. 참말로 기어니 따라가네!


원래 유기농 안하고 일반으로 지을 때 만 이 천평 밭에서 감 900톤을 따요. 농약 안치고 농사지으니 벌레가 너무 먹어 40톤도 안나오드만. 4년간 울면서 인건비, 자제비가 다 빚으로 쌓여 가는디 동네에서는 미쳤다 미쳤다 해쌓고. 아이고~ 내가 내년에는 꼭 약 쳐분다. 결심을 허지만 봄이 오면 안되지. 내가 이 땅을 살려서 자식한테 물려줘야지 죽은 땅을 물려줘서는 안된다. 그러고 그 미친 짓을 계속 했지요. 벌레가 끓으면 감 한 개, 두 개가 아니라 근방을 다 망쳐버리니 하도 폭폭해서 밤에 이불 보따리 싸들고 애들 아버지 무덤으로 가서 벌레 잡는 법 좀 갈쳐주시오! 하며 울었제. 암만 그래도 안 갈쳐 주드만. 풀약 못하니 감나무 밭의 풀을 예취기로 다 비어야 하는디 땅은 넓제, 일은 많제 몸에 손전등 달고 밤에도 풀을 비었당게. 밤 2~3까지 터파 (땅을 파는 일)하고 그러고 사니 하루에 세, 네 시간 자고, 새벽 네 시에는 일어나야 아침밥 먹기 전에 한나절 일을 하니까.


그란디 내가 바쁘게 살아온 것이 꼭 농사일 때문만은 아니고. 전남 담양군 여성협의회 회장으로 봉사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대통령상을 받았거든. 뭔 일이든 일하는 걸 좋아해서 재미있게 했을 뿐인데. 시어머니가 97세에 돌아가셨는디 마지막 3~4년은 치매에 걸려 내가 고생 좀 했는디 도지사가 효부상도 주고. 지금도 동네 어르신들이 저한테 수제비 끓였으니 내려와 묵어라! 된장 지졌응께 혼자 밥 묵지 말고 싸게 내려오라. 오늘도 말복이라 동네 사람들 모여 어르신들 식사대접하기도 했고. 우리 마을이 그런 것이 참 좋아. 그래서 노인 요양사 자격증도 땄어. 공부 별로 안 어렵드만. 사람들이랑 일하고 먹고 노는 것이 사는 거지. 마음 맞춰주면 다 좋아하지. 나는 사는 것이 그래서 재밌어요.

아들 필훈씨와 함께이기에 더욱 행복한 최덕순 생산자



광주서 은행 다니고 있는 아들한테 “니가 아무리 벌어봤자 쓰기 바쁘고 돈도 못 모으는디 여기 감농사는 열심히만 하면 몇 배로 났다. 한살림에서는 감도 대접받고 농사짓는 사람도 대접받는다. 좋은 농사지어 사람들 먹여 살리니 얼마나 좋냐. 그러니 들어와서 동네 사람들이랑 재미지게 농사를 지어라, 내가 니 물려줄라고 이렇게 땅을 가꿔놨는디 인자 나는 늙어 힘이 없다. 니 아니면 누가 허것냐” 해서 지금은 들어와서 소도 40마리 키우고, 그 소 거름으로 감나무를 키우니 감도 좋고. 나도 아무 걱정 없지라.



시목마을은 무항생제 축산마을로 지정되어 친환경 방법으로 소를 기릅니다. 소는 농약 안친 감나무 그늘에서 자라는 풀을 먹습니다. 그 소의 똥은 거름이 되어 감나무를 살리고 그 나무에서 열린 감을 사람들은 맛있게 먹고……. 이 아름답고 놀라운 순환의 한가운데 예순이 넘어서도 호랑이 등에 올라탄 장수와 같은 최덕순 생산자가 있습니다.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자식 농사짓는 꼴 못 본다고 논 팔고 소 팔아 공부 가르쳐 자식들 도시에서 사는 걸 출세라고 생각하는 시절에 자식에게 살아있는 땅을 물려주겠다는 꿈을 품은 어머니. 햇볕에 탄 가무잡잡한 얼굴. 이 놀라운 농부의 얼굴에는 신기하게도 혼자서 농사짓는 여인네로 살아온 삶의 그늘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농사를 자식에게 물려줄 자랑스러운 가업으로 바꾼 강단진 품위가 서려있습니다. 부모가 살려놓은 땅에서 다음 세대는 더 멋지게 농사짓고 살 것이라는 짱짱한 낙관 속에 농장의 감들은 8월의 햇빛을 흠뻑 삼키며 단물이 고여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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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마실 모임 한 달에 한 번 저녁 밤 마실 모임에는 저마다 먹을거리 한 가지씩 싸 들고 한 집에 삼삼오오 모여듭니다. 아이들은 흥부네 자식마냥 어울려 놀고, 어른들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한 가지 주제로 생각을 나누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한살림, 자연 건강, 산나물, 다문화가정의 이해 등 좋은 강좌가 있으면 울산 시내 문화공간이나 한살림부산에도 찾아 갑니다. 송년회를 할 때는 아빠들도 같이 모여서 술 한 잔 나누고 한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마을극장 학교 가는 토요일 오후에는 아이들이 학교 버스를 타고 마을회관에서 내립니다. 회관 1층에서 집집마다 한 가지씩 넉넉히 들고 온 반찬으로 갓 지은 한솥밥을 나누어 먹습니다. 그리고 마을회관 이층에서 좋은 영화를 함께 보지요. 이때는 함께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 특히 한부모, 다문화 가정 아이들도 꼭 부릅니다. 최근에는 인도 인권영화<내 이름은 칸>, 빛그림 동화, 반핵영화로 <미래소년 코난>, <나무 심는 사람> 등을 봤답니다.


여행 동아리 지역주민과 다양한 소통꺼리를 나누는 문화공간 회원들과 함께 울산지역 특히 울주군의 유적지를 걸어서 답사합니다. 이때에도 한부모. 다문화 가정 친구들과 함께 하지요. 그동안 언양읍성, 언양성당. 성모 동굴, 언양 지석묘, 반구대 암각화, 천전리 각석 일대를 걸었습니다. 이런 여행을 통해 그 옛날부터 왜 오일장이 서는지를 언양읍성을 답사하고 최근에야 알았어요. 성곽을 둘러싸고 동, 서, 남, 북 그리고 성안에 한 번씩 열리는 장이라 오일장!!


화목학교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산과 들에서 자연과 벗하며 행복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만들기를 바라며 시작했어요. 형제자매처럼 사이좋게 서로 돕고 살아라고 ‘화목학교’.풀잎 따서 풀피리 불고, 가시밭길 헤쳐서 산딸기도 따먹고, 나무 그림자 아름다운 저수지에서 물수제비 뜨고, 비오는 날에는 마을회관에서 도레미송 배우기도 하지요. 아이들이 자라서 밤하늘의 별 보며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이름 하나, 둘 불러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빠르고 편리한 도시 문명을 비껴서 느림의 행복을 찾아온 사람들이 사는 삼동마을에는 아름다운 한살림 이웃들이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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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황규태 조합원

한살림연합 소식지의 ‘잊히지 않는 밥 한 그릇’이라는 사연을 읽다가 문득 제 어린 시절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어렸을 때 우리집은 어찌나 가난했던지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난’, ‘배고픔’이란 단어 밖에 생각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여섯 식구는 무작정 완도에서 서울로 상경하였고, 아버지께서는 완도에서 수산업을 하셨었기에 서울에서 조그만 생선가게를 내어 4남매를 어렵게 키우셨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저에게 한 친구가 다가왔습니다. 정말 친하게 지냈고 짝꿍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점심시간만 되면 꼭 학교 밖으로  나가버려 도시락은 늘 다른 친구와 먹게 되었습니다. 내일부터는 꼭 나랑 같이 밥을 먹자고 다짐을 받아도 여전히 점심시간만 되면 밖으로 나가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아침부터 오늘은 꼭 점심을 같이 먹자고 말하더군요. 정말 반가웠고, 한편으로는 그 친구의 도시락 반찬이 잔뜩 기대하되면서 매일 김치만 싸오는 제 자신이 조금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기다리던 점심시간. 저는 책상 위에 도시락을 놓고 먹고 있는데, 이상하게 그 친구는 책상 밑에 도시락을 숨겨놓고 숟가락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너 왜 그래? 왜 밥을 숨겨놓고 먹니?”했더니, 그 말을 들은 다른 친구 녀석들이 그 친구의 책상 밑을 뒤지고서는 마구 놀려댔습니다. 놀랍게도 밥을 주발에 담아서 비닐로 덮어 싸온 것이었습니다. 너무 창피해하며 그 자리에서 엉엉 울던 그 친구가 저는 어찌나 불쌍하던지. 도시락통 하나 살 형편이 못되어 밥을 주발에 싸왔다는 그 친구의 말에 동병상련의 감정이 느껴져 눈물이 났습니다.

그 일이 있고나서 그 친구와는 더욱 친하게 지냈지만, 중학교를 가면서 헤어져 30년이 지난 지금은 이렇게 추억으로만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네 아이의 아빠입니다. 어릴 적 가난했던 집안형편 때문에 배불리 먹어보지도 못했고, 따뜻한 보살핌도 받아보지 못한 저는 제 아이들만큼은 좋은 음식, 좋은 생각을 심어주고 싶어 한살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공동체를 느끼게 하는 다양한 체험 활동과 건강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전해주는 한살림에 깊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한살림 안에서 쑥쑥 커가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 문득 저의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오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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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1.06.0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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