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에, 온기 한 숟가락

윤희창 권오화 괴산 칠성유기농공동체 생산자 부부

11월 11일, 또 한차례 늦가을 비가 지나갔다. 윤희창, 권오화 생산자 부부는 며칠째 검은콩 수확에 한창이다. 남편이 앞서 걸어가며 콩을 베면, 아내가 그 뒤를 따라 콩대들을 싹싹 그러모아 가지런히 쌓는다. 호흡이 척척 맞는다. 스물한 살, 스물세 살 나이에 결혼해 아들 셋을 낳아 기르면서 농사가 곧 삶이 돼버린 부부의 일상은 언제나 밭에 머물렀다. 이렇다 할 요령 없이 종일 허리 숙여 씨를 심고, 풀을 뽑고, 새를 쫓다가 알곡을 거두는 친환경 잡곡 농사는 때론 슬픔이고 때론 기쁨이었다. 부부는 어린 시절 햇찹쌀과 수수로 만든 수수부꾸미와 쌀 밑에 검은콩을 깔고 짓던 밥 한 공기의 따뜻한 기억이 생생하다. 권오화 생산자는 지난겨울에도 수확한 콩으로 메주를 띄우고 손수 된장을 담갔다. 가족 모이는 새해 아침에는 손수 끓인 두부를 아들, 손주에게 먹이는 게 낙이다. 작년 이맘때 수확한 콩을 담아 수북했던 자루는 저만치 바닥을 드러냈다. 올해도, 알뜰살뜰 야무지게 농사짓고 살림했다. 한겨울 휴식을 기다린다.

글·사진 문하나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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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것 참 옹골차다 두부버섯전골

마치 사분사분한 사람을 만난 듯합니다. 어디에서도 모나지 않게 행동하며, 자기 역할을 거뜬히 해내는 든든한 조력자 같달까요. 단아한 모양새에 다른 재료와 노련하게 조화되는 능력까지 갖춘, 두부 이야기입니다. 두부 말고 어떤 것이 이런 담박한 조화를 이뤄낼 수 있을까요. 으깬 두부에 가을 맛이 담뿍 밴 버섯을 다져 넣은 두부버섯버거는 그런 두부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음식입니다. 부드럽게 녹아내리듯 씹히면서도, 다른 재료들을 옹골차게 감싸 안아주니 찬탄할 수밖에요.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를만한 자태에 영양까지 모자람 없는 집밥을 내놓으며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자급자족하기 어려운 시대, 오늘의 식탁에 오른 건강한 먹을거리를 위해 수고한 많은 이들을 생각하며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새삼 떠올립니다. 나도 두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글 정미희 편집부


두부버섯전골, 이렇게 준비하세요

재료 두부 1모, 표고버섯 4개, 새송이버섯 2개, 양파 1/2개, 한우분쇄육 100g, 우리밀빵가루 5~6큰술, 유정란 1개, 소금·후춧가루, 현미유

사과소스 물 1컵, 양파·사과 1/2개씩, 맛간장 3큰술, 미온 2큰술, 사과농축액 2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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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얀 보물에

순수함 가득 담은 이

강용규 유애래 생산자

결이 다르다. 유애래의 강용규 생산자와 이야기하면서 한살림의 여타 생산자들과는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지구환경에 대한 감성을 키워간 점이나, 유제품이라는 2차 생산물에서 1차 생산물인 우유로 관심의 영역이 역주행한 점 등. 한살림 생산자라기보다는 벤처기업 CEO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그가 친환경 유기농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어릴 적 보낸 외국생활의 영향이 컸다. “‘지구에 발자국을 적게 남겨야 한다’라는 인식이 많은 곳이었어요. 덕분에 지구가 함께 잘 살기 위한 고민을 어려서부터 할 수 있었습니다.” 유제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축산학으로 유명한 UC데이비스에 다니면서부터. 초지에서 자란 젖소와 좋은 우유가 널려있던 그 곳에서 전공인 생화학 지식을 이용해 취미로 만들었던 요거트는 어느새 그의 인생이 되었다.

요거트를 한국에서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할 무렵 국내 시장은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었다. “대기업의 요거트는 겉모습만 흉내 낸 가공품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첨가제를 이용해 구조를 안정시키고, 감미료로 맛과 향을 첨가해 만들었지요.” 첨가물 없이 우유와 유산균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는 요거트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유산균의 종류와 배합 비율, 발효 방법 등을 조절해 우유와 유산균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기술입니다. 소비자들이 우리 요거트를 좋아한다면 최대한 이끌어낸 순수한 맛 덕분일 것입니다.”

좋은 유제품의 필수조건은 원유의 상태. 인근 목장에서 원유를 받아 쓰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낀 그의 관심은 ‘더 좋은 우유’로까지 확장됐다. “일반 우유로 좋은 유제품을 만들기에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유기농우유에 눈을 돌리게 됐고, 아예 풀만 먹인 젖소로부터 나오는 ‘목초우유’도 생산하고 있습니다.”

국내 목장 중 젖소에게 곡물사료를 전혀 먹이지 않고, 목초만 주는 곳은 유애래 풀 목장이 유일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채광과 환기가 잘 되도록 조성된 우사에는 수십센티미터의 푹신한 톱밥층에 젖소들이 누워 쉴 수 있을 정도로 넓게 깔려 있다. 널따란 운동장과 소들이 원하는 시간에 젖을 짤 수 있게 해주는 로봇착유기도 마련했다. 풀 목장을 관리하고 있는 신동환 목장장은 “풀 목장은 좋은 먹이, 깨끗한 물, 넓고 안락한 공간 등 소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대부분 갖췄다”며 “행복한 소에서 건강한 우유가 나온다고 하는데, 이 곳 젖소들의 표정을 매일 보고 있자면 목초우유에 대한 믿음이 절로 생긴다”고 전했다.

아무도 하지 않았던 시도였기에 보상도 컸다. 자체 검사 결과, 목초우유에 포함된 오메가-3 지방산은 일반 우유의 2배 이상. 우유 속 필수 영양소로 주목받고 있는 CLA 함량은 5배가 넘는다. 대기업들이 정체된 유제품 시장의 타개책으로 목초우유를 주목하는 이유다.

물론 어려운 점도 있다. 외국에서 수입해오는 유기농 풀의 비용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목초사료만 먹이면 우유 생산량이 2/3 정도로 줄어든다. 원가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한살림은 그가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좋은 우유를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최고의 동반자다. “비교대상이 없는 목초우유는 차치하고, 유기농우유도 시중의 프리미엄우유보다 훨씬 품질이 좋은 데도 오히려 저렴한 가격에 공급되고 있습니다. 유통비용을 최소한으로 책정해 원가를 낮출 수 있게 해준 한살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유제품을 우리 땅에서 만들어 ‘우유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을 돌아오게(乳愛來)’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강용규 생산자. 한살림의 기존 생산자들과는 ‘결’이 다소 다르지만 생명을 생각하며 정직하게 만든 좋은 물품을 나누고 싶다는 ‘꼴’은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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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한 유자로 피어난

뱃사람의 꿈

  김광부 두란농장 생산자

두란농장으로 향하는 먼지 가득한 그의 차 안에서는 소금냄새가 났다. 뭐를 흘렸나 싶어 주위를 둘러봐도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원래는 배를 탔었어요.” 두란농장 김광부 생산자는 뜻밖의 말로 이야기는 시작됐다. 부산 수산대학을 졸업하고 해군장교를 거친 후 큰 배의 선장으로 오대양을 누비며 남들이 평생 만져보기도 어려운 재산을 모았었다는 김광부 생산자. 유자는 물론, 땅과도 평생 거리를 두며 살아왔던 그는 어떻게 한살림에 유자차를 공급하게 된 것일까.

“여기가 유자밭입니다.” 전날 내린 비 때문에 질척해진 비탈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던 그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여전히 우거진 나무들만 가득하다. “자세히 보세요. 저게 다 유자나무입니다.” 말을 듣고 보니 그제야 바닥에 떨어진 유자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유자밭이라고 하니 평지에 유자나무들이 오와 열을 맞춰 서있는 모습을 생각하시고 오시는 분이 많은데 이곳을 보면 대부분 놀라워합니다.”

두란농장 유자밭의 넓이는 약 1만5,000평. 유자나무의 수도 3,000그루에 육박한다. “매년 나오는 유자량은 35~40톤 정도입니다. 밭 넓이에 비해 턱없이 적은 양이죠.” 그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치며 재배했다면 80톤 이상 생산했을 것”이라며 웃는다. 가파른 돌산 비탈 곳곳에 대중없이 자라고 있는 유자나무를 보니 적은 생산량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이런 곳에 유자밭을 만든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유자에 맞춰 땅을 고른 것이 아니라, 땅이 먼저 다가왔습니다.” 오랫동안 배를 탔지만 땅을 그리워하던 그에게 “좋은 곳이 있다”며 지인이 권한 곳이 지금의 두란농장터다. 석양이 가까워질 무렵 이곳에서 땅과 바다를 함께 내려다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한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이 땅을 산 뒤, 고민 끝에 유자농사를 결정했다. 이유는 하나. 하얗게 핀 유자꽃과 노란빛 열매를 유달리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든 유자농사가 수월할 리 없었다. 자연 그대로를 좋아하는 까닭에 생명농업으로 방향을 정하기는 했지만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그였다. 준비기간을 5년 정도 거친 뒤 1988년 고흥과 거제에서 1,500그루씩 총 3,000그루의 유자나무를 가져다 심었지만 유자농사의 벽은 높았다. “관행농법으로 유자를 키우면 7~8년이면 수확할 수 있었는데 저는 15년 이상 걸렸습니다. 얼추 수익이 나기까지는 더 오래 걸렸고요.”

그래도 지금은 몸으로 부딪혀 자기에게 맞는 농법을 찾았다며 웃는다. “닭똥과 톱밥을 섞어 발효퇴비도 만들고, 잡초를 막기 위해 헤어리베치도 심어놓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나무들이 힘도 세지고, 병충해에도 강해지는 것을 느낍니다.”그 중에서도 김광부 생산자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작업은 가지치기다. “가지치기를 제때 해주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고 나무만 커집니다. 다른 일은 몰라도 수형을 잡아주는 것은 꼭 제가 하려고 합니다.”

한살림은 그가 무턱대고 뛰어든 생명농업의 길에서 만난 좋은 벗이다. 그가 유기농법으로 유자를 재배한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한살림 실무자가 찾아와 가을걷이 때 판매할 유자를 달라고 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는 유자농사를 지은 지 얼마 되지 않던 때라 유자가 볼품이 없었어요. 새까맣고 누리끼리한 유자를 대여섯 바구니 정도 따서 보냈는데, 한살림 조합원들이 다 사갔다고 해서 신기했었죠. 그것이 유자로 낸 제 첫 수익입니다.” 이때 느낀 감사함과 신뢰는 지금까지도 그와 한살림을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다.

두란농장의 유자는 100% 유자차 형태로 한살림에 공급된다. 조합원들에게 향긋한 유자향을 1년 내내 전달하고 싶었던 그의 마음이 반영됐다. 선별부터 세척, 절단, 씨분리, 채썰기, 배합으로 이어지는 과정 대부분이 아직 자동화되지 않아 품이 많이 들지만 유자차를 맛있게 드실 조합원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고 한다. “맛있게 드셔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차로도 마시고 빵에 발라서도 먹다보면 질리지 않고 오래도록 먹을 수 있습니다.”

두란농장의 유자는 크기가 작고 표면이 매끄럽지 않으며 군데군데 거뭇하니 볼품이 없다. 그러나 향과 맛은 관행농법으로 재배한 유자와 비교할 수 없이 달콤하다. 이런 유자로 만들었기에 한살림 유자차의 향 또한 남다르다. “알이 단단하고 향이 좋은 이유요? 돌산 비탈면에서 바닷바람을 많이 쐬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땅을 딛고 있지만 바다를 바라보고 있기에 더욱 향기로운 유자. 땅을 파며 생활하지만 여전히 뱃사람의 씩씩함, 소탈함을 품은 김광부 생산자와 많이 닮았다. 땅에 떨어져 있는 유자를 기념 삼아 두어 개 챙겨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는 짭조름한 바다 냄새와 향긋한 유자향이 뒤섞여 기분 좋은 향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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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두부 한 모의 힘

윤태수 한살림안성마춤식품 생산자

한살림안성마춤식품이 문을 열었다. 이름에 ‘한살림’이 붙지만 한살림안성마춤식품의 주체는 한살림 하나가 아니다. 한살림안성마춤식품이 위치한 안성시와 주변 6개 농협(고삼, 금광, 대덕, 미양, 삼죽일죽), 그리고 한살림까지 ‘생산-소비-행정’의 세 축으로 구성됐다. 한살림은 물론이고 생협 전체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업구성이다.

한살림안성마춤식품의 윤태수 생산자는 “한살림안성마춤식품이 한살림 생산지들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줄 것”이라 강조했다. “이제 한살림의 가공산지 중에서도 산지재배치를 통해 제2, 제3의 산지를 개발해야 하는 곳들이 늘어날텐데 지역농협과의 연대를 통해 설립된 한살림안성마춤식품이 좋은 사례가 될 것입니다. 공공성 측면에서도 의의가 적지 않구요.”

한살림안성마춤식품 설립을 계기로 한살림은 세상을 향한 또 하나의 도전 앞에 섰다. 안성지역 콩 생산자들은 한살림안성마춤식품이라는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할 수 있게 됐고, 이는 자연히 그 지역의 콩 재배 면적 확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콩을 비롯한 식량자급률이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참으로 한살림다운 공공성 실현이다. 또한, 한살림안성마춤식품은 안성지역 하나로마트와 학교급식으로도 공급, 물품을 통한 말걸기도 꾸준히 할 계획이다.

한살림 두부는 맛과 영양, 가격과 의의까지 모두 잡았다는 극찬을 받는 물품이다. 2,000여 종에 달하는 한살림 물품 중에서도 공급량 1, 2위를 다투는 효자물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살림안성마춤식품에서 나오는 두부도 기존 산지인 푸른들영농조합 두부와 같을까?

한살림안성마춤식품 두부는 푸른들영농조합에서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고소하고 담백한 맛을 지녔다. 한살림 두부 고유의 맛을 지키기 위해 푸른들영농조합에서 두부 생산을 담당하였던 김필태 생산자가 생산 전반을 맡고 있어서 한살림 두부 특유의 맛과 품질을 완전히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한살림 두부의 장점인 생태순환농업은 어떨까. 푸른들영농조합의 경우 두부를 만들고 남은 콩깍지·콩비지는 아산지역 축산농가의 사료로 사용되고, 이를 먹고 자란 소의 분뇨는 농업퇴비로 쓰인다. 그리고 이 농업퇴비로 영양을 얻은 콩은 다시 두부로 재탄생한다. 버릴 것 하나 없이 돌고 도는 생태순환농업이라는 점에서는 한살림안성마춤식품도 동일하다. 그러나 범위는 조금 다르다. 한살림안성마춤식품에서 나온 콩 부산물은 한살림축산영농조합법인(이하 한축회)에서 사료로 이용할 계획이다. 지역의 범위를 넘어선, 한살림 차원에서의 생태순환농업이다. “계획 당시부터 한축회와 연결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구상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안성지역의 축산농가와 콩 재배농가로 이어지는 지역생태농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두부의 품질을 좌우하는 콩 생산농가도 꼼꼼히 챙기고 있다. 윤태수 생산자는 “11월 말부터 안성지역의 콩 생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잡혀있다”며 “한살림다운 농법과 생산철학, 그리고 가격결정구조 등이 교육내용에 포함되어 있다”고 전했다. 두부의 품질, 생태순환농업의 가치에 이어 수급 생산자의 교육까지 기존 한살림 두부와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설명이다.

밥상 위의 단골손님 두부. 꼼꼼히 따져볼수록 그 속 깊음에 반하게 되는 한살림 두부 한 모가 전국 가정의 식탁 위에 오를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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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평화,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한살림하는 기쁨 I 한살림운동의 가치-사회운동 ④

 

한살림선언을 좀 더 쉽게 정리한 ‘한살림운동의 지향’은 “우리는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나부터 시작합니다”라고 끝을 맺습니다. 정책과 제도를 바꾸는 일이 요원하고 힘들다고 손 놓고 있는 게 아니라, 먼저 온 우주가 하나로 연결되었음을 깨달은 ‘나’부터 시작하자는 말이지요. 나부터 시작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이 바뀌고 그 일이 동심원을 이루며 점점 멀리 퍼져 나가게 하자는 겁니다.

요즘 유행하는 건배사가 “스마일!”이라지요. ‘스쳐도 웃도, 마주쳐도 웃고, 일부러 웃자’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한다면 모두가 미소 짓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한살림의 사회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대신 누군가가 밥상, 농업, 생명, 지역을 살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사실, 한살림은 그 시작부터 사회를 변화시켜 왔습니다. ‘한살림을 시작하면서’라는 첫 발신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의 형편을 살피고 책임지자고 했으니까요. 그 당시에는 너무나 낯선 가치관이었지만 우리는 꾸준히 호혜의 정신으로 한살림을 해왔습니다. 호혜는 ‘주고받기’, 되돌아올 도덕적인 의무가 전제된 교환을 말합니다.

이 말은 대갚음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주는 것과는 차이가 있고, 받아야 주는 것과도 차이가 있습니다. 공동체의 우애가 바탕이 되어 서로 형편을 살피는 따스한 마음이 깔린 교환입니다. ‘받고 주기’가 아니라는 거지요. 서양의 말도 ‘take and give’ 가 아니라 ‘give and take’인 것을 보면 서로 돕고 살아야만 생존이 가능했던 공동체에서는 자연스럽게 호혜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 우리가 두레와 품앗이, 계를 통해 공동체 전체가 함께 살았듯이 오늘날도 그런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지역 화폐를 발행해서 지역 차원의 물품과 서비스를 교환하기도 하고 중고품을 교환하는 온·오프라인의 시장, 벼룩시장과 바자회, 재래시장 등을 통해서 말이지요.

호혜란 쌍방의 관계를 넘어 순환을 통해 완성됩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생명과 생활을 주고받는 것에서 그친다면 닫혀있는, 한살림만의 호혜는 잘 되겠지만,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못하겠지요. 옆으로, 뒤로, 교차하면서 주고받기를 해야 공동체 전체로 퍼져나가 점점 온 세상이 우애와 우정의 그물망으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한살림이 자연재해나 사고로 인한 생산지 지원에 나서고 네팔의 지진 피해, 후쿠시마의 원전 피해에 힘을 모으고, 인도의 불가촉천민 지원에 나서는 것처럼 말이지요. 지역의 방과 후 교실을 지원하거나 운영하고 돌봄에 대해 꾸준히 준비해서 하나둘 이루어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얼마 전 시리아의 난민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이 세계인 가슴을 울렸지요. 시리아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천사 같은 아이의 주검 앞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애도와 한탄, 참회의 마음이 유럽의 난민 정책에 영향을 미쳐 제도를 바꿨고, 우리에게도 곁에 있는 이주노동자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이 우리의 생각과 삶을 바꾸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을 보면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그물망이라는 것이 새삼 절실히 느껴집니다. 그 그물망 어디에선가 떨림이 있으면 나도 가슴으로 느끼는 것을 생태적 감수성이라 하지요. 나로부터 시작된 떨림, 곧 행동의 변화가 조금씩 퍼져 나가면 사회적인 확산이 되겠지요. 내가 먼저 평화가 되는 것이 어쩌면 세상의 평화를 이룰 가장 분명한 방법인 것처럼 말이지요.

공동체 회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살림이 조합원이 늘어나는 것을 반기는 이유는 함께하면 즐겁고 쉽게 사회를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모시고 잘 살리자는 마음이 후손에게 덜 부끄러운 어른이 가져야 할 바탕이라는 생각, 처음부터지금까지 변함없습니다.

그 동안 먼저 살림의 기쁨을 누린 사람으로서 그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나누려고 했는데 잘 되었는지요? 이웃과 세상, 후손을 향한 따듯한 실천이 세상을 조금씩 밝히는 것을 보며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윤선주 한살림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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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를 위해

자발적 불편함을 선택하다

한살림하는 기쁨 I 한살림운동의 가치-생활운동 ③

 

휴대하기 편리한 휴지, 물휴지, 물에 적셔 쓰는 휴지, 빨아 쓰는 종이 행주…. 요즘은 생활 이곳저곳에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휴지 종류도 참 다양합니다. 그럴수록 톡 뽑아 쉽게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을 마다하고 여전히 손수건이나 행주를 쓰는 사람을 보면 반갑지요. 물건을 아끼는 마음도 크겠지만, 휴지가 무엇으로부터, 어떤 공정을 거쳐 내 앞에 놓였는지 알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물론, 저희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는 누구나 윗옷 가슴께에 손수건을 꽂고 다녔지요. 초등학교를 떠올리면 으레 흰 손수건을 이름표와 나란히 달고 줄 맞춰 섰던 풍경이 그려집니다. 누군가와 헤어질 때도 쉽게 떠오르는 선물이 손수건이어서 아끼는 이가 손수건을 건네면 가슴이 서늘해지기도 했지요. 이를테면 아주 우아한 이별 선언이라고 할까요

사실, 저에게는 한살림 휴지가 특별합니다. 갓난아기 때부터 울면 달래고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고 때가 되면 한 상에서 같이 먹기도 했던, 지금은 잘 자란 청년을 보는 듯한 자랑스러움이 있습니다. 처음에 제가 만난 한살림 휴지는 와이셔츠 상자로 만든 것이었어요. “부엌에서 세상을 본다”라고 쓰여 있는 거무스레하고 한 겹인 불편한 휴지를 선택한 것은 휴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 공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뽀얗고 부드러운 휴지의 원료가 열대우림의 아름드리나무라는 것, 그들 덕분에 지구의 대기가 유지된다는 것, 공정에 어마어마한 물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 화학약품이 섞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온 우주의 모든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온전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는 터에 지구의 허파를 희생시키며 만든 휴지보다 재생 휴지라도 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휴지 없는 시대로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온 마당에 대안이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다 최고급의 펄프를 사용해 만든 우유갑을 재활용한 뽀얗고 힘 있는 휴지가 공급되었지요. 조합원들은 우유갑을 모으려고 자기 집을 반상회 장소로 내어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답니다. 그렇게 모은 우유갑을 깨끗이 헹군 뒤 그 물은 다시 화분에 주어 수질오염도 줄이고 식물도 튼튼하게 키우는 두 가지 효과를 보기도 했어요. 헹군 우유갑을 가위로 잘라 펴서 햇빛에 바짝 말린 뒤 공급 실무자에게 건넬 때는 그 무게만큼 보람이 있었답니다. 한동안 모든 마을 모임에서 형광표백제가 들어간 시중의 휴지와 한살림 휴지를 비교하곤 했답니다. 수요가 늘어 조합원들이 모아 주는 우유갑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대다수의 필요량을 수입 우유갑으로 대체했지만, 여전히 한살림 휴지는 특별합니다. 그래서 아껴 쓰고, 될 수 있으면 덜 쓰려고 손수건을 식탁에 올렸답니다.

우리는 자칫 스스로 필요한 것을 만든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인지 삶은 소비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기 쉽지요. 소비하기 전에 어떻게 생산하고 다 쓴 후에는 어떤 방식으로 버리느냐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무척 큰 데도요. 한 번만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이고 다시 쓸 수 있다면 한정된 지구 자원을 후손과 함께 오래도록 나누어 쓸 수 있겠지요? 폐식용유를 모아 비누를 만들거나 불편해도 꾸준히 병을 재사용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우리에게 지금 당장 편하다고 쉽게 만들어 쓰고 버리는 일은 현재 우리의 이웃인 자연에는 물론 다가올 미래 세대에게도 미안한 일이니까요.

글 윤선주 한살림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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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혼자인 사람은 없다

한살림하는 기쁨 I 한살림운동의 가치-정신운동 ②

 

내가 온전히 나 혼자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나 하나 살리려고 온 우주가 힘을 보탠다는 것을 깨닫는 때가 있습니다. 거창한 말 같지만 잠깐만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데 평소엔 잘 떠오르지 않지요. 감질나게 내리는 비 덕분에 어느 정도 해갈은 되었다지만 이번 가뭄은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도 속이 타들어 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비 올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먹구름이 끼기만 해도 비가 오시려나 손 내밀어 보기도 했지요. 여전히 수도만 틀면 시원스레 물줄기가 쏟아져도 삼가는 마음으로 아껴 썼습니다. 메마른 논과 밭, 그 옆의 근심 가득한 농부가 남의 일 같지가 않았기에 화초에 물 주기도 어려웠습니다. 사실은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는 말이 더 맞지요. 작물이 자기를 잘 키워 우리에게 내주지 않으면, 해와 달과 별이, 바람과 비가 제때 골고루 자신을 나누어 주지 않으면 우리는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사람이 만든 적 없는 흙과 그 흙 속의 미생물이 각자 자기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벌과 나비, 온갖 곤충이나 벌레가 우리가 뿌린 제초제나 농약으로 갑자기 사라져도 우리는 건재할까요? 아인슈타인은 이 세상에서 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3년 안에 멸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 쌀 한 톨을 키우기 위해 땀 7근을 흘리는 농부의 지극 한 정성이 없어도 여전히 우리가 밥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저는 한살림에서 휴지가 나오기 시작할 때 우리가 숨 쉬는 깨끗한 공기와 휴지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배웠습니다. 워낙 아껴 쓰는 습관이 몸에 뱄던 때라 와이셔츠 상자로 만든 질 낮은 휴지도 소중하게 썼지만 마을 모임에서 공부 자료를 함께 읽은 후 왜 그래야 하는지가 더 분명해졌지요. 톡톡, 아낌없이 뽑아 쓰는 뽀얀 휴지를 위해 지구의 허파인 열대우림이 하루에도 수십 헥타르씩 사라진다지요? 그러니 식구들에게 칸을 세어서 아껴 쓰고 손수건을 챙기라는 말을 달고 살 수밖에요.

그리고 서로의 형편을 보듬는 쌀값결정회의를 보면서 왜 한살림이 생산과 소비를 하나라고 하는지 단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날 때마다 왜 남 같지 않은지, 가을걷이나 단오 때 만나면 왜 왈칵 반가운 마음에 가슴이 저린지 알 수 있었습니다.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한살림 차량만 봐도 반갑고 생전 처음 봐도 한살림 안에서라면 십년지기가 부럽지 않습니다. 그렇게 만난 인연들이 또 다른 인연을 만들어 살아 있는 생명을 잘 모시는 한살림 세상을 만듭니다. 내가 소중하면 남이 소중한 것을 알게 되고 내 아이를 낳고 키우면 저마다의 아이들이 다 귀한 것을 느낍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덕분에 사는’ 관계라면 우리가 먹고 마시고 숨 쉴 수 있는 자연과의 관계는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우리는 순전히 우주 만물과 이웃에 기대어 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자연보호’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마치 우리가 나약한 자연을 돌봐 그들이 잘 살게 돕자는 말 같아서요. 진실은 우리가 살려면 어쩔 수 없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절체절명의 일인 거지요. 많은 사람이 말하듯 생태계는 인류가 사라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니까요. 어쩌면 보호라는 말보다는 같이 잘 살자고 하는 것이 맞지요. 이런 우주, 생태에 대한 바른 인식과 각성을 놓치지 않아야 우리 사는 유일한 터전을 스스로 파괴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까요? 사람은 물론 존재하는 모든 것이 서로에게 살아갈 힘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산다면 서로 하늘 같은 존재로 모실 테니까요.

글 윤선주 한살림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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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의 꿈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한살림하는 기쁨 I 한살림운동의 가치 ①

 

가치는 흔히 우리가 귀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내주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밥상을 차리려고 부엌에서 몇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아이를 위해 나의 삶 전체를 아이를 중심으로 다시 짜는 것처럼 말이지요. 지구 반대편 아이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네팔 지진 복구를 위해 지갑을 여는 것도 내게 가까운 이는 물론 보이지 않는 이도 소중하다고 여기는 가치지향의 한 표현입니다.

한살림이 추구하는 가치는 밥상살림, 농업살림, 생명살림입니다. 그런 가치를 위해 밥상을 우리 농산물로 차리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의 생명과 생활을 책임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우리가 가진 전일적인 생명가치가 더 많은 동의를 얻기 위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한살림을 전합니다. 한살림의 가치에 대해 더 많은 사람이 동의할수록 그만큼 더 빨리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살림세상이 올 테니까요.

한살림 세상의 구체적인 모습은 자아실현과 생태적 균형, 사회정의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아실현이란 자신과 자기 내면의 합일, 통일된 자신을 말하지요. 생각이나 말과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자신의 믿음, 생각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공동체나 우주의 질서에 맞게, 하나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모두 우주와 자연, 공동체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고 그들이 조화롭고 건강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도 그럴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태적 균형은 순환을 통해 이루어진 자연적인 균형을 말합니다. 본디의 농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동물이나 채소의 부산물로 식물이 자라고 그 식물이 동물을 키워 남는 것도 부족한 것도 없이 스스로 충만하고 완전한 순환을 이룹니다. 사람의 욕심으로 그 질서가 무너져 생태계가 파괴된 것이지요.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말하면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는 극단적인 양극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산층의 급격한 몰락이나 몇 년 새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는 것도 양극화와 함께 중심에서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의 증가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한 해결책은 서로 중심이 되기 위해 남을 딛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중심으로 만들어 많은 주변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지금은 모든 학생이 공부를 잘하려 애를 쓰느라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 무엇을 할 때 제일 신나고 잘하는지를 살필 여유가 없지요. 전 사회가 오직 등수를 매기고 1등만을 기억하니까요. 그러나 각자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고르고 그 선택을 존중하면 수많은 주변을 중심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서로서로 감싸고 보듬어 더불어 행복한 호혜의 그물망을 자아가는 게 한살림운동의 사회적 목표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좀 더 풀어서 말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내면과 평화를 이루고 따듯한 마음으로 이웃, 자연과 함께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한살림의 꿈입니다. 그 꿈은 깨달은 몇 명이, 언젠가는 이룰 꿈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차근차근 삶으로 만들어 갈 때 이루어집니다. 미래세대가 받을 밥상을 위해 우리 농산물로 밥상을 차리고, 맑은 하천을 위해 세제를 바꾸고 탈핵을 위해 에너지를 아껴 쓰는 것도 이를 위한 한 걸음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한살림이 꿈꾸는 생명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글 윤선주 한살림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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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의 기쁨,

요모조모 쓸모 많은 매실

 

요즈음 한참 매실 주문을 받고 있다. 매실에 설탕을 넣어 매실청을 만들면 쓰임새가 많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미리 챙겨 주문한다. 이렇게 미리 주문하고 약정량만큼 공급하는 물품은 1년 내내 요긴하게 쓰는데 당장 급한 품목이 아니라서 차일피일 미루거나 이미 주문한 줄 알고 느긋하게 있다가 때를 놓치고 남들 다 공급받은 다음에 알게 되는 때도 있다. 나도 어느 해인가 때를 놓친 매실을 어머니 덕분에 공급받았던 적이 있다. 내가 기뻐하며 “엄마 덕분에 해결됐다.”했더니 어머니는 먹을 때마다 “내 덕이니라.” 하시며 어깨를 펴곤 하셨다.

한살림은 매실이 맺히기 시작할 무렵부터 계획량이 다 소진될 때까지 주문을 받아 열매가 통통하게 부푼 5월 말에서 6월 초에 공급한다. 한창 풋풋한 청매실과 남고 품종의 황매실, 두 종류로 공급하는데 황매실의 과육이 좀 더 단단하고 향도 짙다. 청매실은 크기에 따라 가격 차등을 두고 공급하는데 매실청, 매실주, 매실 진액을 만들려면 작은 것을, 매실 장아찌를 만들려면 큰 것이 편하다.

매실을 주문하고 나면 매실과 나의 관계는 특별해진다. 봉오리를 겨우 맺을 무렵 기온이 뚝 떨어지면 동해를 입어 수확량이 적을까 걱정되고 수확 전에 비바람이 세차면 낙과가 많을까 걱정이다. 물론 내게 오는 매실에 대한 걱정보다는 일 년 내내 힘든 일을 견뎌낸 생산자들 생각 때문이다. 기다리던 매실을 받으면 내가 키운 듯 대견하고 고마운데 시중의 매실과 비교할 수 없는 향기가 온 집안을 감싸 들어오는 식구마다 “매실 왔네!” 감탄을 한다. 그렇게 받은 매실로 매원을 만들어 급한 상황을 여러 번 넘겼고 여든이 넘은 나이에 대장암 수술을 받은 어머니는 아예 매실 홍보에 나서 넉넉히 담은 매원이 예상 외로 일찍 떨어지기도 했다. 매실청은 더운 여름, 물에 희석해서 갈증을 없애거나 여러 음식에 감칠맛을 더하는 양념으로 쓰기도 하고 장아찌는 입맛 없을 때 귀한 반찬으로 쓰인다. 매실 원액은 소화가 잘 안 되거나 과식으로 속이 더부룩할 때 상당한 도움이 되고 갑자기 체해 토하고 배가 몹시 아플 때 응급약으로 도 쓸 만하다. 큰아들이 어렸을 때, 밤중에 갑자기 토사곽란이 일어 병원에는 갈 수 없어 계속 매원을 먹여 효과를 본 적도 있다.

어느 때인가 미처 매원을 담그지 못한 친구가 남편이 동남아로 출장을 간다면서 물을 갈아 마시면 탈이 자주 나는 사람이라 걱정이라고 했다. 마침 그때가 매원에서 매실을 건졌는데 먹어보니 제법 맛이 있어 식탁 위에 두고 오가며 먹을 때였다. 액체는 갖고 가기 불편하니 매실을 넉넉히 싸 주었는데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한 번도 배탈을 앓지 않았다고 고마워한 적도 있었다. 그 후로는 우리도 집을 며칠간 떠날 때 밀폐용기에 매실을 담아서 다니는데 갈증을 없애거나 지루한 운전에 졸음을 쫓기 위한 군것질용으로 아주 쓸모가 있다. 또 알뜰한 사람들은 먹고 뱉은 매실 씨앗을 여러 번 삶고 잘 말려 베게 속으로 넣는데잠이 잘 오고 쾌적하다고 한다.

이른 봄 제일 먼저 피어 세상을 깨우는 향기도 좋지만 이렇게 유익한 물품도 흔치 않다. 아직 매실이 남아있다니 무척이나 더울 것이라는 올 여름 가족 건강을 위해 서둘러 주문해야겠다.

글 윤선주 한살림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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