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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발자취/자연에서 온 귀한 것

<자연에서 온 이 귀한 것>바삭바삭한 김 한장에 깃든 땀방울과 정성어린 손길


바삭바삭한 김 한장에 깃든 땀방울과 정성어린 손길

정지영


 


 

마치 얇은 낱장형태의 종이같지만, 소금을 치고 참기름을 발라 바삭하게 구워 먹거나 더러는 그냥 구워도 좋고, 아예 그냥 날것 그대로 먹으면 또 그 나름대로 바다 내음이 물씬 풍겨오는 김. 김밥으로 말아 먹으면 간편식으로 그만이고, 잘게 썰어 국이나 탕 위에 고명으로 뿌려 먹으면 훌륭한 조미료가 된다.
그런데 뉴스에서는 종종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김을 양식하는 과정에서 복합 영양제와 심지어는 황산과 염산이 쓰이기도 한다는 내용이 등장하곤 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만약 이런 식으로 김을 양식을 하게 되면, 설령 채취한 김에는 염산이 잔류하지 않아 인체에 해롭지 않다는 주장을 그대로 믿는다고 해도 도무지 꺼림칙하지 않을 수 없고, 바다 속 생태계가 급속히 황폐화 될 것은 보지 않아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 여간 걱정이 아니다. 염산은 지니고 있는 독성으로 김에 붙어있던 규조류 등을 떨어뜨리는데, 이것을 보고 물고기들이 달려들어 이를 삼키고는 기형어가 생겨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인근 바닷가의 생태계가 교란되어 바닷가 돌미역, 개불, 낙지, 조개, 굴 등 예전부터 살아오던 생명체들이 사라져가면서 일대 바다생태계는 황무지처럼 변하게 된다. 그럼 대체 김을 양식할 때 염산이나 황산 처리는 왜 하는 것일까?

김 양식에는 지주식과 부류식(부레식)이 있는데, 시중 김의 90%이상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부류식을 선택하고 있다. 흔히 바닷가에서 하얀색의 스티로폼이 줄줄이 떠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부류식은 바로 이 부유물질을 바다에 띄운 후 그 밑으로 그물을 걸고 김이 자라게 하는 방법이다. 이 방식은 김이 항상 바닷물에 잠겨 있어 햇볕에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파래가 많이 끼고 김도 영양상태가 부실해 김맛이 떨어지고 심지어는 김이 썩기도 한다. 이 때문에 양식업자들은 황산이나 염산을 바다에 뿌려 산도를 올린다고 한다.

 

반면, 지주식 양식은 수심이 얕은 바다에 대나무나 소나무로 지주를 세워놓고 지주에 김발을 설치해 여기에서 김을 양식하는 방식이다. 조수간만의 차이를 이용하므로 김은 썰물 때는 공기중에 노출 돼 자연스럽게 햇볕을 쬐며 광합성을 하고 밀물 때는 다시 바다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지주식 양식 김은 기후와 물때에 맞춰가며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쓴다. 모진 풍파를 이겨낸 생명들은 건강하고 미네랄도 풍부하며, 스스로 병도 치료하고, 이물질도 떨어내면서 갖가지 장애요인들을 제 힘으로 극복해나간다. 그러니 부류식에서 공공연하게 쓰는 염산 및 황산을 쓸 일이 없다. 지주식으로 채취되는 김은 부류식 김보다
윤기가 덜하고 다소 거친 편이지만 씹을수록 고소하고 향도 강하며 소화도 잘 된다.
한살림 김 생산자들은 전라남도 해남 앞바다에서 전통지주식으로 김을 길러낸다. 지주식 김이 완전히 자라는 데는 30여 일 정도가 걸리지만, 늘 바닷물에 잠긴 채 자라는 부류식 김은 15~20일이면 모두 자란다고 하니 지주식은 부류식에 비해 생산량이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살림 생산자들은 염산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부류식 김양식에 눈길을 준 적이 없다. 당장 몇 푼을 더 버는 일보다는 생명이 살아있는 바다를 지키고 이를 먹는 도시 소비자들의 건강도 지키는 일이 훨씬 더 값진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해의, 자채, 해태라고도 불리며, 이미 삼국시대부터 우리 민족의 밥상에 올라왔다는 김.  그 김은 우리나라 수산양식업 중에서 제일 오래되었다. 조선 중기인 인조 때 김여익이라는 사람이 해변에 표류되어온 참나무 가지에 김이 붙은 것을 보고 양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더 많은 김을 편하게 생산하겠다는 사람들의 욕망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전통 양식을 버리고 바다를 오염시키는 오늘날의 부류식 양식을 널리 퍼트리게 했다. 김 한 장의 사연을 자세히 들여다보자니 느리고 고된 방식으로 작은 배 한척을 바다에 띄우고 지주 사이를 오가며 그물에 매달린 김들에 정성의 손길을 더하고 있을 생산자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다. 바다도 살고 우리 밥상도 살리는 일이 이렇게 조금 고되지만 느리게 가는 길에 희망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