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대 말 이후 우리 사회는 본격적인 산업화, 공업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그 결과 우리의 생활과 경제는 물량적으로 풍성해졌습니다. 그러나 소유하고 있는 물건의 양이나 크기만큼 우리의 삶이 질적으로도 향상이 되었는지는 의문입니다. 또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경제가 계속 성장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올해도 전 세계가 성장률 둔화에 온 신경을 쓰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조금 깊게 생각해보면 한정된 자원으로 언제까지나 경제 성장이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 아닐까요?

 경제성장의 양적 지표로 널리 사용하는 용어로는 국민총생산을 말하는 GNP와 국내총생산을 말하는 GDP가 있는데요, 그 차이는 생산 활동이 이루어진 장소를 중시하느냐, 국적을 중시하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화 추세가 거세게 일기 시작하면서 1995년부터는 GNP대신 GDP로 쓰기 시작합니다. GDP는 국적에 상관없이 한 해 동안 국내에서 생산된 재화와 용역의 시장가치를 합한 것으로 그 나라의 경제규모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허점이 보입니다. 시장을 통하지 않고 거래되는 재화와 용역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병든 부모를 병원이나 요양소에 모시면 총생산에 포함되지만 집에서 간호하고 돌보는 것은 제외되는 거지요. 마찬가지로 아이를 양육하거나 가정을 돌보고 어른을 모시는 등의 가사노동도 그렇고요. 더 나아가 가족과 공동체내에서 이루어지는 협동, 봉사, 물물교환, 호혜 등 생명과 노동력의 재생산 과정에 필요한 많은 활동이 무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산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환경파괴나 재해 등을 고려하지 못해 산업이 발달할수록 각종 공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현실은 경제성장을 이야기하는 어떤 지표에도 표시되지 않습니다. 공해로 인한 삶의 질 저하로, 오히려 그 생산과정에 참여하지도 않은 노약자가 더욱 심하게 피해를 보고 있는 데도 말이지요. 

 또, 총량개념이라서 소득과 분배의 상황을 알려주지는 못합니다. 빈부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소외계층이 얼마나 많은지, 평균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비율은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는 거지요. 끝으로 수요와 상관없는 과잉, 초과 생산 등으로 수치가 부풀려질 수 있다는 점도 한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GDP의 증대는 경제지표와 함께 우리 삶의 질을 높여주기보다는 자연환경과 공동체적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그 틈을 온갖 재화와 서비스로 메워가는 과정입니다. 발전을 양적으로만 바라보고 그 가치에 대한 판단 없이 오직 앞을 향해 바쁘게 달려온 안이한 생각이 어쩌면 우리 스스로를 이런 상황으로 몰고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쓴 윤선주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Posted by 한살림연합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