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10여 년 전 서울시 수돗물에 불소를 넣겠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한살림을 비롯한 여러 단체가 ‘수돗물 불소화 반대 국민연대’를 결성하고 불소화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공청회에서 만났을 때, 참석자 가운데 치과의사 한 분이 우리를 전문가가 아니라며 무시하려 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말하는 그이도 불소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라 충치 등을 치료하는 치과 전문의일 뿐인데 말이지요. 충치 예방을 위해 수돗물에 불소를 넣자는 전문가들에 비해, 우리는 충치는 단것을 줄이고 식사 후 이 닦기를 충실하게 하는 등의 생활습관을 익혀서 예방하는 생활의 문제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설혹 불소의 독성보다 이익이 더 많다고 해도 전문가들은 불소와 같은 화학물질에 더 취약한 노약자, 유아, 특정 환자 등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전문지식을 내세워 모든 사람을 평균화 시키고 누구나 마시는 수돗물에 일괄적으로 불소를 집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당시 우리가 힘들었던 일은 운동의 고단함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들의 완고함 때문이었습니다.

현대사회의 특징은 우리 생활의 대부분을 전문가, 혹은 테크노크라트들이 지배하는 시장과 전문기관에 맡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식주, 전기와 에너지, 상하수도, 보건의료, 교육과 문화생활 등 생활의 대부분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오로지 이윤추구가 목적인 시장과 사람들의 삶을 평준화 시키고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효율성에 익숙한 행정기관은 섬세한 삶의 문제나 일상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정보를 독점하고 있으며 사회의 모든 자원과 에너지, 노동을 관리하면서 합리성, 능률, 성장을 내세워 더욱더 권력을 집중하고 강화해 나갑니다. 전문가 중심주의는 필연적으로 중앙 집중, 중앙 집권으로 이어지고 이 전문가들이 기술관료, 즉 테크노크라트를 형성합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우리를 둘러싼 모순과 부조리를 전체로 보지 못하게 되며 수많은 문제들을 세분화해서 각각의 전문가에게 맡겨 해결하고 있다고 여기게 됩니다. 지역과 개인의 특성을 무시하고 작지만 소중한 삶의 문제를 간과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고방식이 1986년의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나 작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불러왔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 사회는 핵 기술을 수출하고, 동해안에 핵발전소를 더 늘리고 여전히 골프장을 건설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기술관료체제에 삶을 의탁 할수록 우리는 우리 삶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으로 밀려납니다. 생명운동에서 "자치"를 강조하는 것은 주변에서의 자각을 통해 주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전문가가 아닌 생활인을 중시하고, 중앙이 아닌 지역을 생명운동 실현의 장으로 삼는 것도 거대한 권력구조인 테크노크라트에 맞서 스스로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쓴 윤선주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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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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