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천지부모란 말은 하늘과 땅을 우리의 부모님에 비유한 말인데요, 모든 자연 현상을 물질로 보고 분석하는 서양과 달리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쭉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 어찌 보면 어울리지 않는 말 같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과 철학이 녹아있는 심오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냥 “해가 뜬다”, “비가 온다”고 말하는 일이 많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가 오신다”라고 하거나 “햇님, 달님”이라며 존칭을 붙이는 일이 더 많았습니다. 서양식 사고방식에 익숙한 저도 한동안 사물에 대해 마치 웃어른 대하듯 존댓말을 하는 어른들이 이상했는데요. 하늘과 땅, 우주 만물과 농부의 협동으로 농사를 짓는 우리 한살림 생산자들을 만난 후, 그 까닭을 비로소 깨우쳤답니다.

  베란다에 화분 몇 개를 키우면서 저는 참 많은 것을 배웁니다. 일 년 내내 하는 일이라고는 가끔 바람이 통하게 창을 열거나, 햇볕이 좋은 쪽으로 화분을 옮겨주고 하루쯤 받아두었던 물을 주는 일이 전부입니다. 일 년에 한 번 분갈이를 해주고 한살림 퇴비를 조금씩 웃거름으로 주기도 하지요. 그런데 얼마나 시절에 맞게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지 그 성실하고 정확한 모습에 놀랄 때가 참 많습니다. 심지어 꽃이 화려하고 먹을 수도 있어 제가 아끼는 한련화는 7월에 맺은 씨를 화분에 꾹 눌러두면 11월부터 다시금 꽃을 피우기도 한답니다. 같은 날 심은 씨들이지만 자기 힘껏, 자신이 잘 살 수 있는 시간을 스스로 택해 달리 나오는데요, 직경이 한 뼘 내외인 작은 화분에서도 감나무가 싹을 틔워 단풍이 들기도 하고 토마토가 맛있게 익기도 합니다. 흙과 햇빛, 바람이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씨앗을 길러내고 꽃과 열매를 자라게 하는 것을 보면서 자연의 위대함을 느낍니다.

  자연과 부대끼고 의지하며 살았던 우리 조상들이 흙, 대지를 어머니라 여기고 해와 비바람을 내는 하늘을 아버지라 생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어머니가 몸 안에 자식을 품고 키우다가 때가 되면 세상에 내어 놓고 젖을 먹여 키우듯이 대지도 온갖 생명을 그 안에 품고 키워 그 열매를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니까요. 또, 부드러운 흙 속에 파묻힌 씨앗을 적당한 비와 햇빛으로 깨워 일으키고 싹이 나면 실바람으로 건강하게 자라 열매를 맺도록 돕는 하늘의 힘이 아니면 아무리 농부가 부지런히 일한다 해도 좋은 결실을 맺기 어려울 테니까요. 요 근래 이상기후가 가져온 농작물의 피해를 보면 “농사는 하늘과 동업하는 숭고한 일”이라는 말이 쉽게 이해가 됩니다. 그런 마음으로 천지를 부모라 여기며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았기에 “어머니인 대지에 어떻게 농약을 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가능했고 그 물음 위에서 생명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글을 쓴 윤선주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소식지 발자취 > 살리는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리는 말> 식일완만사지  (0) 2013.02.15
<살리는 말> 반포지리  (0) 2013.02.13
<살리는 말> 천지부모  (0) 2013.02.08
<살리는 말> 각비  (0) 2013.02.04
<살리는 말> 허구의 성장경제  (0) 2012.10.02
<살리는 말> 위기의 산업문명  (0) 2012.08.02
Posted by 한살림연합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