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한살림연합 소식지 창간과 더불어 ‘살리는 말’을 연재하기 시작한 지 벌써 3년이 넘었습니다. 한살림 안에서 자주 하고 듣던 익숙한 말들을 막상 조합원의 마음과 생각으로 풀어내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매번 소식지를 받아 볼 때마다 조금 더 잘 썼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미련이 남았지요.

풀어 쓴다면서 오히려 명료한 말을 제 나름의 해석과 모자란 능력으로 저녁 안개 자욱한 풍경처럼 흐려놓은 일도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마치 고쳐보겠다고 덧칠해서 처음에 무얼 그렸는지 모르게 된 그림처럼 말이지요. 평소에 제 생각과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노력이 부족했음을 후회하면서 한편으로는 자, 이제부터라도 잘 하자고 다짐 하는 일이 되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한 채로 연재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독자들이 느끼셨을 답답함과 달리 제게는 보람있고 즐거운 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오랜만에 『한살림 선언』을 다시 읽었고 언젠가 시간이 나면 읽으리라 하고 사 두었던 책들도 읽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가’ ‘무엇을 위해 이리 바쁜가’ ‘지금 여기에 온전히 있는가’ ‘우리 가는 길의 끝이 어디여야 하는가’ 같은 좀처럼 하기 힘든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하루 벌어 하루를 겨우 살아가는 사람처럼 눈앞에 닥친 급한 일만 해결하느라 바빴던(혹은 그렇게 믿은) 제게는 선물 같은 시간이기도 했지요. 그러면서 공부가 이렇게 부족한데 어쩌자고 연재 제안을 받아들여 사서 고생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기도 했고 생전의 우리 어머니가 제게 자주 해주신 “사람 몸 가운데 눈이 제일 게으르단다.”는 말씀이 생각나서 웃기도 했답니다.

사실, 그동안 『한살림 선언』은 우리에게 아주 귀하지만 자주 볼 수 없는 보물과 같은 존재였을지 모릅니다. 장롱 깊숙이 넣어 두고 내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 말이지요. 그러나 이제는 그 보물을 가까이 두고 자꾸 어루만져 손때로 윤기가 돌게 할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몸에 지녀 마치 나와 한 몸인 양 자연스러워야 한다고요. 그러다 보면 어느덧 우리 몸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대로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의 스승들이 파괴와 죽임의 세계에서 모심과 살림으로, 생명과 평화로 새로운 길을 내었고 그 길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걷고 우리 삶으로 넓혀 모두가 걷는 길로 만들어 나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저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고 믿기도 합니다. 쪽에서 나온 푸른 물감이 본래의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비유로 곧잘 쓰이지요. 지금은 선언에 나오는 말을 풀어 쓰지만 우리 모두가 살리는 말을 나의 말로 자유자재로 쓰고 듣고 새롭게 만드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두에게 희망과 빛이 될 새로운 길을 열어 나갈 것이라는 기대도 합니다.

이 작업을 통해 제가 자란 것처럼 여러분도 그러셨기를 감히 바랍니다. 그 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지면 개편으로 살리는 말 연재는 이번 호에서 마무리합니다. 3년 넘게 한살림의 말들을 꼭꼭 씹어 생기있게 해석해 준 윤선주 이사께 감사드립니다.

글을 쓴 윤선주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활동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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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생태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나온 새로운 공동 체는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이 꿈꾸던 협동촌, 즉 폐쇄적 코뮨(commune)공동체와는 분명히 성격이 다릅니다. 오히려 생명공동체 혹은 공생 체(共生體)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이 는 생산-유통-소비-폐기라는 물질순환의 흐 름, 생명이 지닌 관계성, 유기적 연관성을 중시 하는 ‘열린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대안 운동의 거점으로 시작된 공동체라 하더라도 공 동체 외부세계와의 연대, 지역사회에 대한 의무 와 책임 등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점들은 생태공동체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 이라고 봅니다. 

대안 경제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자립은 공동체 내부에 국한된 문제로 인식되기도 합니 다. 그러나 새로운 공동체에서 말하는 경제자립 은 물질순환의 흐름과 연관된 지역의 경제자립 을 뜻합니다. 이는 서구사회의 생태론에서 생물 지역주의(bio-regionalism, 동식물의 분포와 이동, 물, 토양, 양분, 폐기물의 순환을 포함하 는 생태계의 통합성을 갖고 있는 지역이라는 생 명공동체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이론)를 중요하 게 여기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즉, 경제자립 은 공동체 내부의 자급자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 라 시장으로부터의 자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먹을거리, 건축자재, 옷감 등 생활에 필요한 모 든 것을 지역에서 만들고 순환시킨다면 경제자립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한살림의 가까운 먹을 거리 운동도 그런 일 중의 하나입니다. 

생명운동이 지향하는 공동체는 더더욱 지역과 접합니다. 이는 예전에 지역마다 있던 마을 공동체, 더 분명하게는 생산적 노동을 담당하 던 두레공동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과 100년 전, 충남 홍성에만 197개의 두레가 있 었다고 합니다. 출산, 육아, 농사를 비롯해서 노동, 혼례, 의술과 교육, 돌봄과 장례까지 우 리 삶의 거의 모든 일이 품앗이와 증여, 공동작 업을 통해 마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공동 체 내의 의사결정도 풀뿌리 지역공동체답게 모 두가 함께 참여해 의논하면서 진행했습니다. 이 점은 생명운동이, 소통도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물론 정보의 소통은 물질의 순환과는 달리 더 넓게,  전 세계로 확장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단위는 역시 지역이어야 합니다. 지역 안에서 충분한 소통, 논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더 큰 단위 에서는 그러한 것들을 기대하기가 어렵기때문입니다.


글을 쓴 윤선주 이사는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활동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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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1980년대 초반 사회변혁을 꿈꾸던 사회운동 진영을 중심으로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가 사회적인 화두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특히, 문화운동 진영에서 집중적으로 거론되었는데 과거 민중문화가 지향하던 대동(大同)의 공동체가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충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야기되던 공동체는 사실 사회주의의 다른 표현일 뿐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사회주의라는 단어 자체가 금기시되던 군사정권시절의 웃지 못 할 풍경이었지요.

 앞에서 이야기 한 대로 1970년대 에너지 파동과 환경생태 위기를 겪으면서 문명의 발달이 오히려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할 것이라는 예견과 자각이 서구에서 일어났습니다. 자본주의와 산업문명이 가져온 자연환경 파괴, 인간소외, 공동체 해체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이 퍼지면서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공동체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이와 비슷한 움직임이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 무렵 환경생태 문제가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논의되면서 유기농업운동, 귀농운동, 대안교육운동, 공동체운동, 생태마을, 생태공동체, 협동조합운동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새로운 공동체운동이 사회적 대안으로 부각된 것입니다.

 새로운 공동체운동은 1980년대 초반 사회주의의 다른 이름으로 쓰이던 공동체와는 그 성격과 내용이 전혀 다릅니다. 사회주의적 문제의식이 자본과 노동의 모순(자본에 의한 노동의 예속 등)을 중심에 놓고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만든 대동의 공동체를 말한 데에 반해 이 새로운 공동체는 생태계의 순환원리인 생산-유통-소비-폐기의 과정을 중심에 놓고 유기적인 순환을 완성하려는 과정으로서 운동을 설정하고 그 일이 완성된 모습을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새롭게 떠오르기 시작한 대안으로서의 공동체는 생명공동체 혹은 공생체(共生體)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이 새로운 공동체는 농업이 사회의 근간이 되고 거대자본이 일방적으로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적정 규모와 기술로 소비자와 소통하는 협의적 경제체계,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소비와 폐기물의 재활용을 통한 순환적인 물질 이동 체계를 완결시키는 것을 공동체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생각합니다.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소비자와 생산자가 서로 분리,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생산한 만큼 책임지고 소비하는 관계를 말하는 거지요. 가격도 서로 협의하고 서로의 형편을 헤아려 정하고 만드는 방식도 함께 결정해 생산과 소비 모든 부분에서 서로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합니다. 밭의 부산물이 가축의 사료가 되고 가축의 부산물이 흙으로 돌아가 채소를 키우는 쓰레기 없는 사회, 깨끗이 씻어 다시 쓰고 나누어 쓰는 자원 순환 사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소비가 미덕인 사회가 아니라 자발적인 가난을 통해 온 생명이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것입니다. 


글을 쓴 윤선주 이사는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활동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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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전통사회의 마을 공동체가 발달하였던 우리나라도 해방이후 산업화,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이전부터 공동체의 실험이 꾸준히 진행되었습니다. 1950년대 후반에 시작한 함석헌 선생의 씨알농장을 비롯해서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동광원, 예수원, 풀무원 등이 꾸준히 실험되고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들 공동체의 사회적 반향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농협처럼 정부의 주도하에 설립된 조합과 달리 신용협동조합, 생활협동조합, 한살림 등 생활인들이 민주적이고 자발적으로 조직한 공동체의 실험도 계속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1960년대 초 천주교에서 시작한 신용협동조합은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 도시나 농촌의 사회적 약자들이 고리대금의 피해를 벗어나 자신들의 힘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연 대단히 중요한 사회운동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군사독재에 맞선 정치민주화운동과 함께 경제민주화를 실현한 신용협동조합에 대해 새로운 평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기능적 협동조합운동으로서 대단한 규모로 성장한 신용협동조합도 80년대 후반,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시대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운동성은 상실한 채 사업만 남은 자본주의적 금융회사처럼 변합니다. 공동체운동이 삶 전체에 대한 전망을 세우지 못할 때 나타날 수 있는 기능적 협동조합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협동조합은 1970년대부터 회사나 단체의 공동구매를 통해 가격을 낮춘 구판장의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1980년대 들어서면서 지역사회의 요구와 맞물려 새로운 양상이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소비재의 공동구입를 통해 보다 싼 값으로 물건을 공급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자리잡아가던 시절, 소규모의 협동조합들은 가격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개 구판장 형태로 운영되던 협동조합이 실패로 끝나고 대신 농업 회생을 목표로 등장한 한살림의 영향과 일본의 생활클럽 생협 등의 공동구입 시스템을 참고한 유기농산물 공동구입형 협동조합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1985년 안양소비자협동조합(현재의 바른생협)과 원주소비자협동조합(현재의 한살림원주), 1986년 한살림농산이 문을 열면서 본격적인 유기농산물 공동구입형 협동조합이 시작 되었습니다.

 이 무렵에 등장한 협동조합은 기능적 협동조합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환경문제 등 현대사회의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삶을 개선할 방안을 고민하고 찾아내어 실천에 옮겼다는 점에서 이전의 협동조합들과는 사뭇 다른 형태를 가졌습니다. 수질오염이나 생태환경 파괴 등 시대상황에 늘 마음을 열고 나의 일로 받아들여 대안적 삶을 창조하기 위한 활동을 모색하였고 사업적인 면에서도 안정적인 성장을 준비했습니다. 재고부담과 매장에 들어가는 고정투자비가 필요 없으며 도시에서 공동체가 가능한 공동구입형 조합은 우리 사회에 든든히 자리 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글을 쓴 윤선주 이사는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활동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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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앞에서 살펴본 대로 협동촌 운동의 고립된 체계에 협동조합의 경영시스템을 보완한 새로운 공동체 운동은 1970년대 들어서면서 활발해집니다. 그러나 그 뿌리는 1920년대 러시아, 독일, 헝가리,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던 노동자 자주관리, 노동자생산공동체 운동, 길드 사회주의 운동 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이 개인들의 간접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경제조직이라면 이들 공동체는 개인들의 직접 참여와 연대, 지역적 관점 및 적정기술을 바탕으로 시도되었지만 사회주의 혁명과 세계대전 등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붕괴해 버립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스페인 몬드라곤 생산자 협동조합이나 이스라엘 키부츠 등은 살아남아 지금도 현대사회의 모순을 극복할 대안으로 제시되고는 합니다.

 1970년대, 에너지 파동과 환경생태 위기를 겪으면서 인류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퍼지게 됩니다. 에너지를 비롯해 자연이 갖고 있는 자원이 무궁무진하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자 지금 같은 삶 또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자본주의 산업문명이 가져온 풍요로운 삶을 위해 내어 준 것들-자연환경, 인간다움,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달으면서 지금까지의 방식과는 다르게 살아가려는 공동체 운동이 대안사회운동으로 널리 퍼지게 됩니다.

 인간소외와 생태환경 파괴라는 시대의 거대한 물살에 맞서는 운동들이 일어납니다. 인간소외의 사회체계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68혁명, 대안문화(counter-culture)운동, 뉴에이지 운동, 히피공동체 운동 등이 갖는 문제의식과 자연환경 파괴의 사회체제를 비판하는 생태주의 운동, 공동체 운동, 영성운동이 함께 하면서 각 지역에 공동체를 이루고 사회적 대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지요. 영국의 핀드혼 등의 영성공동체, 호주의 크리스탈워터스, 인도의 오로빌 등의 계획적인 생태공동체 뿐만 아니라 생태마을 운동, 공동주거 운동, 지역화폐 운동 등도 이 시기에 등장하여 본격적인 조명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 모든 운동의 성격이나 내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 공동체 운동은 자본주의 시장이 추구하는 대량생산과 소비가 가져오는 물질의 풍요를 넘어 지속가능한 미래를 내다봅니다. 자연과 함께 살면서 천지만물이 나처럼 신령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아는 영적인 삶, 가난하고 소박하며 평화로운 삶, 얼굴을 마주보고 어떤 형태로든 만나는 것이 가능한 지역적 삶을 핵심 가치로 삼는 이유입니다.

 이 무렵이 되면 분야별, 기능별 협동조합(소비, 신용, 생산, 교육, 의료 등)도 점차 조합원들의 직접적인 참여, 유기농업 등의 공생의 가치, 협동조합 지역사회형성을 모색함으로써 열린 공동체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인간 삶 전체의 협동을 지향하게 됩니다.

*‘공동체운동 약사5회로 나뉘어서 실릴 예정입니다

 


글을 쓴 윤선주 이사는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활동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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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앞에서 '생활협동운동'을 설명할 때 다룬 공동체 운동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했는지 대략 다시 한 번 짚을까 합니다. 공동체의 시원을 찾아보면 자족적인 원시 공동체, 중세의 수도원 공동체를 떠올릴 수 있으나 현대사회의 모순과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출발한 공동체 운동은 17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아메리카 대륙에 이주한 청교도들이 건설한 종교적인 협동촌을 들 수 있습니다.

 이는 프랑스의 푸리에, 영국의 로버트 오웬 등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이론이 정립되어 산업혁명시대의 기업자본에 대항하는 노동자, 수공업자의 협동촌 건설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기계의 등장으로 직업을 잃고 자본에 대항할 힘이 없어 비참한 삶을 살던 노동자, 수공업자들이 이러한 유토피아 사회주의를 자신들의 운동원리로 삼았던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자립과 자조를 바탕으로 누군가의 호의나 도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자금을 모으고 필요한 물품의 생산과 소비를 책임지는 협동촌이야말로 핍박받는 이들의 이상향(理想鄕)이었겠지요. 협동촌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대신할 공동체 경제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생산과 소비, 분배와 교환에 평등과 상호부조의 원리를 적용했습니다. 또한, 가난한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이 자립하고 연대하며 스스로 관리하는 사회에 대한 전망을 열어주며 19세기 전반기에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이 운동은 현실사회에서 고립되어 자기들만의 소우주를 지향하는 성격 때문에 점차 쇠퇴하고 19세기 중반 소멸하게 됩니다. 최소한의 자급자족 경제에 필요한 생산 노동력과 조직, 설비에 관한 기술 등의 기본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데다 산업혁명이 가져 온 대량생산과 소비의 거대한 파도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세례파인 아미쉬 공동체처럼 그 모든 어려움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한 종교공동체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일부는 현재까지도 살아남아 요즈음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생태공동체 운동의 본보기가 되고 있지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거센 물결 속에서 생활 전체를 자주관리와 상호부조를 통해 결합하려했던 협촌 건설이 좌절되면서 공동체 운동은 분야별, 기능별로 생활을 조직하는 양상을 띠게 됩니다. 로치데일 소비자협동조합을 시작으로 하는 이 흐름은 소비, 신용, 생산에 이어 요즈음에는 의료, 교육 등 고립된 개인들이 자신들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경제생활 일부를 협동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농업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등 '협동조합'의 명칭을 갖고 있는 것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흐름은 시장경제 체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경영시스템을 정착시키고 협동촌이 갖고 있던 일부 사람들만의 고립된 체계를 사회적 약자 일반에게 개방하면서 사회적으로 급속하게 확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공동사회의 전망을 잃어버리고 공동체를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을 보완하는 한 부분으로 전락시킨 한계를 드러냅니다. 그러면서 공동체가 지닌 사회비판적 기능과 대안사회의 가능성을 함께 잃어버리게 됩니다

 *‘공동체 운동 약사5회로 나뉘어서 실릴 예정입니다

 

글을 쓴 윤선주 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활동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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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앞에서 소비자 주권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어떤 가치를 갖는 소비자 주권인가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공업이나 서비스업과는 달리 소비자가 수혜자가 되는 분야가 있기 때문인데요, 농업, 특히 생명농업이 그렇습니다. 요즘은 대형 축산업을 비롯해서 농업도 사료나 씨앗, 비료를 투입하면 고기와 농작물이 상품으로 나오는 공장산업처럼 변질되고는 있지만 생명활동을 지탱해주는 농업의 특성상 소비자 주권은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런 바탕에서 생태적 순환과정, 생명과정 전체를 아우르는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대, "생활협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활협동 안에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협동뿐만 아니라 생산자와 생산자, 소비자와 소비자의 연대와 협동이 함께 들어가야 합니다. 원칙적으로 보자면 폐기과정의 주된 역할을 하고 있는 자연도 당연히 생활협동의 한 주체가 되어야하는데요, 직접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자연을 대변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협동조합은 투자한 자본의 크기에 따라 의사결정의 크기가 결정되는 자본주의 시장 시스템과 달리 출자금의 크기와 상관없이 구성원들의 11표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조직입니다. 협의를 통해 모든 의사가 결정되는 시스템이며 민주주의 훈련의 장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조합이 갖는 한계도 많습니다. 시장이나 주식회사에 비해 더딘 의사결정과 낮은 효율성도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참여한 구성원들이 자족적인 부분에 매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사회주의 이론가들이 노동조합, 협동조합운동을 '조합주의'라고 비판했습니다.

'조합주의'를 극복하기위해 생산-유통-소비-폐기 전 과정을 포함하는 시스템이 중요하고 조직운영에서도 생산자와 소비자, 실무자가 함께 참여하는 방법이 궁리되고 실현되어야 합니다.

생명운동에서 농업을 강조하는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 기대어 있는 협동조합의 물량주의에 대한 대안이 되기 때문입니다. 땅을 살리는 생명의 농업이 자본주의가 불러 온 대량생산과 그에 따른 대량소비를 극복할 대안사회의 굳건한 토대가 된다는 것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소비자협동조합운동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생명운동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비자가 갖는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이름을 생활협동조합(생협)으로 바꾸고 농업을 보다 깊게 이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책임생산과 소비를 통해 얼굴을 맞대고 삶을 나누려는 노력이 일상적인 일손 돕기나 생산지 방문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단오나 가을걷이 잔치에서 함께 만나 서로가 한 몸인 것을 확인하기도 하고 물품을 보내고 받을 때마다 그 뒤에 있는 서로의 마음과 얼굴을 떠올리며 귀하게 대합니다. 이런 생각을 놓치지 않는 것이 우리 삶 전체를 아우르는 진정한 생활협동운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글을 쓴 윤선주 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활동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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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서구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의 기반 위에 자본주의 사회가 등장하면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열악한 환경, 보장되지 않는 일자리 등으로 도시 노동자들의 삶은 말할 수 없이 비참했습니다. 이런 처지에서 이들은 두 방향에서 희망을 찾는데 하나는 노동자들의 단결을 통한 노동조합의 결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공산주의 혁명이었고 다른 하나는 생활의 협동을 통한 협동조합의 결성과 운영이었습니다.

초창기 협동조합의 목표는 전체 생활의 협동을 통한 생산과 소비 모두를 아우르는 공동체 형성이었습니다. 맑스가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불렀던 오웬, 푸리에, 생시몽 등은 모든 생활을 함께하는 공동체를 건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와미 다카시라는 일본 학자는 그런 공동체를 제1세대 협동조합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이들이 기획한 고립적인 공동체는 전부 와해되고 맙니다. 거대 자본의 생산력을 따라 갈 수 없었고 그들의 결속력이 부족했던 것도 이유가 되었습니다. 일부 종교적인 공동체는 아직도 건재하지만 사회적 대세를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그 다음에 전개된 것이 기능적 협동조합운동인데요, 현재 보편화 된 농협, 소비자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등을 말합니다. 영국 로치데일의 공정개척자 협동조합이 모태인 이 제2세대 협동조합은 생활의 한 부분을 기능적으로 조직합니다. 소비생활이나 신용부문, 혹은 유통의 한 부분을 조직하여 협동화하는 것이지요. 그 대표적인 것이 소비자협동조합으로 생활이 어려웠던 도시 노동자, 사회적 약자들이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협동의 힘으로 공동구매를 통해 생필품을 값싸게 사면서 삶의 질을 향상시켰습니다. 이런 기능적 협동조합운동은 전 세계 2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여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은 생산에 의한 소비의 조직화라 할 수 있는데 생산한 물품의 소비를 통해 자본의 이윤이 창출되므로 소비 조장을 위한 광고나 대중조작 등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소비자협동조합에서 사회적 약자인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소비자 주권”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협동조합운동 초창기에 영국에서는 노동자생산협동조합과 소비자협동조합의 주도권 문제가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노동자생산협동조합 중심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다시 짜야한다는 주장과 소비자협동조합이 사회적 주류가 되어 생산을 조직해야 한다는 주장의 충돌이었지요.

하지만 우리가 깊이 생각할 것은 소비자협동조합 중심주의나 “소비자 주권”이라는 생각은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공업사회라는 기형적인 틀 속에서 등장한 것이며 생산, 유통, 소비, 폐기라는 생태적 순환과정의 한 부분만을 대변한다는 것입니다. 즉, 생산, 유통, 소비, 폐기의 전 과정에 주권이 있어야하고 어느 한 부분의 주장을 확장시켜 전체화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생활협동운동②’는 다음 소식지에 이어서 실릴 예정입니다.

-------------------------------------------------------------------------------------글을 쓴 윤선주 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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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들고 쓰고 버리는 모든 방식을 통틀어 생활양식이라고 말합니다. 넓은 의미에서 문화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같은 쓰임새라도 물품을 고르고 쓰고 버리는 방법에서 그 사람의 삶에 대한 생각이나 가치가 나타나니까요.

오랫동안 가난하고 검소했던 시대를 지나 지금 우리 세대는 많이 만들고 많이 쓰고 함부로 버리면서 살
고 있습니다. 최근에 정보화가 빨리 진전되면서 다양한 품목을 조금씩 생산하는 맞춤형 생산방식이 자리잡는 듯 보이지만 전체적인 틀이 변한 것은 아닙니다. 많이 생산해서 이윤을 많이 남기려는 자본의 속성이 변한 것은 아니거든요. 기술이 발전해서 다양한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게 된 것일 뿐이지요.

아시다시피 대량생산, 대량소비는 한정된 자원의 고갈을 낳고 그로 인한 환경 파괴와 더불어 인간 소

외를 가져옵니다. 물건이 필요해서 만들거나 사는 게 아니라 먼저 만들고 나서 어떻게 팔까를 고민합
다. 대중매체를 이용해 새롭거나 조금 다른 물건의 쓰임새를 널리 알려 사람들의 소비욕구를 자극해 대량소비로 이어집니다. 저만해도 당장 쓸 일이 없는 물건을 언젠가는 쓰겠지, 저 걸 쓰면 생활이 편해지겠지 하고 사는 일도 있거든요. 물건 값이 아주 싸다는 이유만으로 이웃나라의 값싼 노동력으로 대량생산한 물품을 사기도 하고요. 이처럼 대중매체는 개인의 사회적 태도 뿐 만아니라 사람들의 욕구나 기호(嗜好)도 만들어냅니다.

적어도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이 정도의 옷, 가방, 학원은 보장해야 하고 아내를 존중한다면 기념일 행

사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이런 차 한 대쯤은 필수라고 말하는 온갖 광고들이 끊임없이 쏟아지면서 우리의 의식을 지배합니다. 심지어 요즘은 나이대로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심각한 자기비하이며 몇 살로 보이기를 원하는지 말만하면 그대로 이루어 주겠다는 광고도 허다합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게 만들면서 화면 속의 모델처럼 예쁘고 날씬해야 행복하다고, 넘쳐나는 상품을 소유하고 소비하면서 행복을 느끼라고 온 세상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도 지금 당장 돈이 없어도 외상으로 누릴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지요. 그러는 사이 우리는 스스로의 생각, 느낌, 활동의 주체로서 능동적으로 존재 한다기보다 상품을 소유하고 소비하기 위해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 자신의 지식, 노동력, 몸과 영혼을 파는 소외된 존재가 되어갑니다.

우리 사회도 1980년대 이후로 대중적인 소비문화가 지배적 생활양식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온 나라

가 음식물을 비롯한 각종 생활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해결의 지름길이 그렇듯 오늘날의 자원고갈, 환경오염의 원인을 잘 따져 우리의 생산과 소비, 폐기 방식을 바꾸어야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신중하게 선택하고 오래도록 아껴 쓰는 문화를 우리 개인의삶에서부터 다시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을 쓴 윤선주 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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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생활’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람이 일정한 환경에서 어떤 활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일’이나 ‘물질적 측면에서 사람이 먹고 입고 쓰면서 사는 일’이라고 나옵니다. 즉, 사람의 ‘생명활동’을 줄인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하고 쉬고 먹고 싸고 잠자는 모든 삶의 과정을 말하는 거지요.

그런데 현대에 들어서면서 이런 모든 생명활동이 왜곡되어 왔습니다. 먹고 사는 일은 본래 음식을 먹
고 이를 소화시켜 삶의 활력을 얻고 남는 것은 똥, 오줌으로 나오는 순환과정입니다. 그런데 이 순환이
막혀 퇴비로 활용되던 똥, 오줌은 버려지고 생명의 순환질서는 파괴되었습니다. 단절된 상태에서, 모자라는 영양분은 화학비료 같은 것들을 기계적으로 만들어 메우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생명활동의 하나이던 일이 돈을 받고 파는 노동으로 전락합니다. 동남아시아 섬 지역 사람들의 예에서 보듯, 수렵과 채취, 얼마간의 농사를 통해 자립하며 살던 사람들이 자본에 의해 조성된 대규모 사탕수수나 바나나 농장의 노동자로 전락해 노동력을 팔아야만 겨우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일이 왜곡되고 있습니다.

쉬고 잠자는 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주식시장을 보면 서울 증시가 폐장되는 시간에는 런던과 뉴욕 증
시가 시작됩니다.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 24시간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 없습니다. 자본의 질서 아래서는 경쟁에서 이기려면 원칙적으로 휴식을 취할 수 없는 셈이지요. 심지어 휴가를 가면서도 휴대용 컴퓨터를 갖고 갈 정도입니다. 또, 학교라는 제도적 교육 기관에서 꼬박 성실하게 교육을 받았는데도 막상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방법이나 지혜에는 무지해 자신이 먹을 음식을 만들 줄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율적인 사람은 학교 교육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온 동네의 잔치이던 결혼, 출산은 물론 어른을 모시거나 장례를 치루는 일도 시장이나 자본에 잠식당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생명운동은 삶의 영역에서 자율성을 회복하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장이나 국가에 의해 일방적
으로 조정되던 생활영역을 스스로 만들고 창조하는 일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시장경제에 맡기던 식생활 영역을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대하고 협동하며 재창조하는 생활협동운동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일용행사(日用行事) 막비도야(莫非道也) 혹은 일용행사 막비시천주야(莫非侍天主也)라는 말이 있습
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 도(道)아닌 것이 없다, 한울님을 모시지 않은 것이 없다”는 해월 선생의 말씀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이 바로 도를 실천하는 장이며 한울님과 만나는 자리라는 말입니다. 예전에 김지하 시인은 ‘일상과 혁명의 통일’, ‘밥과 명상의 통일’이라고도 불렀는데요, 혁명은 먼 미래의 결정적 시기에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내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구현되어야한다는 말이지요. 생명운동이 이루어지는 실천의 장이 바로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자본주의 시장 시스템에 의해 왜곡된 생명활동, 생활을 회복하는 것이 생명운동의 기반입니다. 따라서 생명운동에서 ‘생활’에 대한 강조는 필연적인 것이지요. 한살림이 태동부터 생활, 삶의 모든 영역을 살리는 일을 운동의 가치로 삼고 그 운동의 주체를 생활자, 주부로 세운 것도 그 때문입니다.

-------------------------------------------------------------------------------------글을 쓴 윤선주 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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