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식지 발자취/살리는 말

<살리는 말> 인중천지일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 “사람 안에 하늘과 땅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는 의미로 우리 민족의 가장 오랜 경전이라는 천부경(天符經)에 나오는 말입니다. 천부경은 환웅이 백두산에 내려와 천하만민을 직접 가르치다 교화를 끝내고 승천하면서 인간들을 위해 하사했다는 내용으로 대종교에서 경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학계에서는 이것이 발견된 1910년대에 쓰인 위서(僞書)라고 해서 천대를 하는데요, 그 진위 여부를 떠나 천부경이 담고 있는 철학과 의미를 되새기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본 천지인 삼재론이 하늘과 땅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한다면 이 인중천지일은 거기에 더하여 우주자연 속에서 인간의 역할을 강조하기 때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1990년대 초 까지만 해도 인간에 대한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던 서구 생태주의와 달리 우리의 생명사상, 생명론에서는 자연과 사람의 관계뿐 아니라 자기 내면과의 영적인 관계, 사람 사이의 사회적 공동체적 관계를 모두 아우르고 있습니다. 즉, 생명운동에서는 천지합일(天地合一), 천지인합일(天地人合一)의 '신인간'을 새로운 문명의 주체로 생각합니다. 우리 조상들께서는 서양 사람들과 달리 천하만물과 사람을 따로 떼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과 관점이 달랐던 것이겠지요.

인중천지일의 신인간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걸까요?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며 모든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이 아니라 천지와 함께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 천지의 마음을 같이 느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강물에 물고기가 죽어 떠오르면 무심한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죽은 물고기는 물론, 품안의 물고기가 죽어갈 때 강물이 느꼈을 아픔도 헤아릴 줄 아는 사람. 그래서 버리는 물도 아끼고 조심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을 보며 대견해서, 고맙고 기특해서 잠시 눈인사를 건네고 잘 자라도록 돕는 사람. 날씨가 풀려 천지가 꽃으로 환해지면 함께 기뻐하며 봄날의 호사를 누릴 줄 아는 사람. 천둥과 번개가 번쩍이고 폭우가 내리면 귀청을 찢는 소리에 놀라는 것도 잠깐, 하늘이 왜 저러실까 느껴보기도 하고 날개 젖은 새들과 떨어지는 꽃잎을 떠 올리는 사람.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엔 풍성한 결실을 맺도록 협력해준 천지와 우주만물에 감사하며 땀 흘려 거둔 농작물을 이웃과 함께 나눌 줄 아는 사람. 이렇게 하루하루를 나와 연결된 모든 관계를 느끼면서 내가 소중한 만큼 그들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야말로 생명운동, 살림운동의 주체라고 하겠습니다.

이성과 물질세계를 중시하는 서구화와 근대화가 가져온 인간소외(天, 스스로 영성을 갖고 온 우주와 연결되어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개인), 자연파괴(地), 공동체 해체(人, 이웃과 단단히 연결된 관계가 아니라 떠도는 섬처럼 개별화 된 개인)에 대하여 영성과 생태와 사회를 통합하는 인중천지일의 신인간이 온 생명을 살리고 모시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안에 천지를 모시고 살아 이웃과 자연 생태, 그리고 자기 자신과 늘 교감하며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신음하는 온 생명을 살려 낼 새 사람, 인중천지일의 신인간이랄 수 있겠지요.

 

 

글을 쓴 윤선주 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소식지 발자취 > 살리는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리는 말> 경천  (0) 2013.07.17
<살리는 말> 이천식천  (0) 2013.06.13
<살리는 말> 삼재론  (0) 2013.03.18
<살리는 말> 식일완만사지  (0) 2013.02.15
<살리는 말> 반포지리  (0) 2013.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