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식일완만사지(食一碗萬事知) 동학의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 선생의 말씀인데요, 밥 한 그릇을 먹으면서 만사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밥 한 그릇과 만물의 이치, 쉽게 연결이 되지 않지요? 그렇다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듯한 밥 한 그릇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어떤 도움과 협동이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한 여름의 강한 햇볕이 벼를 여물게 하는 일이지요. 늘 찰랑거리는 물도 필요하고 잎사귀와 벼 이삭을 흔드는 신선한 바람과 때를 맞춰 내리는 비도 꼭 있어야겠지요.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햇빛과 함께 밤하늘의 달빛, 별빛도 벼가 튼튼하게 자라도록 도울 거고요. 그런가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흙속의 미생물과 벌레들이 부지런한 몸놀림으로 제 힘껏 벼를 키웁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벼, 그래서 여든 여덟 번의 손길로 키우는 농부의 정성어린 협동이 있지요. 탈곡과 도정을 한 후 집으로 옮겨 진 다음에도, 깨끗한 물로 쌀을 씻고 적당한 불로 익힌 뒤 뜸을 들여 짓는 살림의 손길을 거쳐야 비로소 한 그릇의 밥이 밥상에 오릅니다. 그야말로 우주만물의 도움과 땀, 정성이 담긴 손길의 협동으로 만든 이 귀한 밥 한 그릇을 제대로 안다면 그 안에 깃든 만물의 이치를 당연히 깨닫게 되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밥상을 앞에 놓고는 언짢은 말이나 수선스러운 몸놀림을 하지 않도록 배웠습니다. 밥풀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고 혹시 흘리면 주저 없이 주워 먹었지요. 꼭꼭 씹어 천천히 먹도록 가르쳤고 숭늉을 밥그릇에 담아 그릇에 붙은 밥풀도 말끔하게 함께 먹었습니다. 그 숭늉도 쌀을 씻은 쌀뜨물로 구수하게 끓여 정말 하나도 버리지 않고 내 몸 안으로 모셔 들였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단지 아까워서가 아니라 쌀을 만든 천지만물에 대한 경건한 고마움의 표현이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깨달음을 판화가 이철수 선생은 초창기 한살림의 상징으로 쓰였던 밥그릇으로 표현했습니다. 그 작품 속의 밥그릇 안에는 해, 달, 별과 구름을 품은 하늘이 있고 비와 강물도 보입니다. 벼와 어깨 걸고 함께 자라는 풀도 보이고 나뭇잎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도 있습니다. 거기에 농부의 피땀 어린 노동과 밥 짓는 이의 정성이 더하여 밥 한 그릇이 내게로 옵니다. 이처럼 한 그릇의 밥은 자연과 온 우주의 도움, 사람의 노력이 서로 힘을 합한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밥을 통해 천지만물을 함께 먹는 셈입니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내 안으로 천지만물을 모셔오는 것이며 나를 살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 또한 우주의 일원이기도 하면서 우주 전체가 함께 힘을 모아 만든 존재이기도 합니다. 밥 한 그릇을 통해 우리의 낱 생명이 우주만물의 온 생명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의미로 해월 선생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글을 쓴 윤선주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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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살림연합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