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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발자취/살리는 말

<살리는 말> 경천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앞에서 살펴 본대로(연합소식지 22호, 6면) 삼재론(三才論)에서 해월선생님의 삼경론(三敬論)이 나왔습니다. 삼경론은 삼재 즉, 천지인(天地人)을 잘 모시고 공경하자는 생명운동의 윤리적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天)은 예로부터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 만물의 근원으로 공경과 감사의 대상이었지만 이성(理性)과 물질, 경제 중심의 사회가 정착하면서 철저하게 무시되었습니다. 신(神)의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하늘은 현대에 접어들어 종교적인 숭배의 대상으로만 축소되었고 그마저도 세속화되고 있습니다. 영적 세계의 파괴는 인간성의 파괴와 소외로 나타나며 정신적인 규제나 규범의 파괴와도 맞물립니다. 물질이 풍요로운 사회일수록 정신 질환이 만연하는 현상도 그 때문이 아닐까요? 가난하지만 늘 신을 의식하고 경건하게 사는 나라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것도 같은 이유라 생각합니다.

흔히 우리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을 규모나 숫자로 나타내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소중한 인간관계나 나보다 더 큰 존재인 하늘, 영적인 세계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소홀히 여긴 것이 아닌가 합니다.

《녹색평론》 창간호에서 김종철 교수는 오늘의 생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들 각자가 자기 개인보다 더 큰 존재를 습관적으로 의식할 수 있게 하는” 생명의 문화를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 한 더 큰 존재를 하늘(天)이라고 이해해도 무리가 없겠지요.

그런데 전통적으로 하늘을 의식하고 공경하는 일은 민중들의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이루어져 왔습니다. 파종 때 풍년을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고기잡이를 나가기 전 만선을 위한 풍어제를 올리거나 수확의 기쁨을 하늘에 고했던 추수감사제 같은 일들 말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집 떠난 식구가 있으면 그의 안전한 귀가를 위해 매일 새벽, 정안수를 떠 놓고 천지신명께 비는 어머니들도 있었지요. 지금처럼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일을 이룬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하지만 하늘의 도움이 꼭 있어야한다는 겸손함이 누구에게나 있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을 참 흔히들 쓰고는 했습니다. 무슨 끔찍한 사건이 나면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일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고 밥알이라도 버릴라치면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는 호통이 들리곤 했지요. 누군가 비밀이라고 말하면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나와 네가 아는데~” 라고도 했고요. 이렇듯 우리 의식 속에 사람으로서 올바르게 살 길을 안내해주는 큰 어르신을 모시듯 하늘을 의식하고 공경하는 것이 삶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생각 안에서 나보다 큰 존재를 밀어내고 그 중심에 물질과 경제 등을 놓기 시작하며 생명의 위기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따라서 지금 각성한 사람들이 생명문화회복을 위해 할 일은 전에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보다 큰 존재를 습관적으로 의식하고 공경하는 일일 것입니다.



글을 쓴 윤선주 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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