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식지 발자취/살리는 말

<살리는 말> 반포지리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반포지리(反哺之理). “도로 먹이는 이치”, “되갚는 이치”라는 말입니다. 까마귀는 새끼가 부화하고 60일 동안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어미가 늙어 사냥할 힘이 없어지면 이번엔 새끼가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합니다. 이 일을 빌려 자식이 자라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는 효성을 말하는 반포지효(反哺之孝)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도움을 받아 자랍니다. 부모의 은혜는 물론이고 가족과 이웃, 친구와 스승, 온갖 생명을 품고 키우는 어머니 대지와 자연에 기대어 농사를 짓는 농부 등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어쩌면 온 세상으로부터 너무 많은 은혜를 입으면서 살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먹을거리가 가게의 진열장에서 온다고 생각하는 철없는 아이들처럼.

  생각해보면 사람 사는 일이란 부모와 자식이 그렇듯이 끊임없이 되먹이는 일의 연속입니다. 눈길 마주쳤을 때 상대가 웃으면 나도 웃게 되고 도움을 받으면 지금 당장은 도울 힘이 없더라도 나중에라도 잊지 않고 갚으려합니다. 꼭 도움을 준 사람에게가 아니라도 자신도 여유가 있으면 누군가를 도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선배가 어려운 후배를 돕기도 하고 성공한 기업이 사회에 이익의 일부를 환원하기도 합니다. 성숙한 사람이라면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되갚는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 반포지리, 반포지효야 말로 생명운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를 낳고 기른 부모님과 함께 하늘과 땅도 내가 먹고 숨 쉬고 마시면서 영글게 자라도록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이 모든 은혜를 기억하며 도로 갚으려는 일이야말로 나 이외의 다른 생명도 함께 모시고 살고자하는 마음입니다. 농사를 짓되 더 많은 소출을 위해 농약과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대지를 잘 보살펴 땅과 그 안에 깃든 뭍 생명도 함께 살립니다. 그렇게 만든 농산물로 밥상을 차려, 받는 이의 생명도 살리는 거지요. 오직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생명의 근원인 대지를 마구 오염시키는 공업사회에 대한 대안으로 농업이 굳게 뿌리 내린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도 생명운동의 일환입니다.

  이렇게 여럿이 함께 힘을 모아 이루어 나가는 생명운동이 있는가 하면 혼자서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습니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있기까지 받은 천지만물의 은혜를 갚는 일은 물 한 방울도 소중하게 아껴 쓰고 실내온도를 적당하게 유지하거나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니고 먼 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처럼 아주 작은 일로도 가능합니다.

 

글을 쓴 윤선주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소식지 발자취 > 살리는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리는 말> 삼재론  (0) 2013.03.18
<살리는 말> 식일완만사지  (0) 2013.02.15
<살리는 말> 천지부모  (0) 2013.02.08
<살리는 말> 각비  (0) 2013.02.04
<살리는 말> 허구의 성장경제  (0) 2012.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