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들고 쓰고 버리는 모든 방식을 통틀어 생활양식이라고 말합니다. 넓은 의미에서 문화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같은 쓰임새라도 물품을 고르고 쓰고 버리는 방법에서 그 사람의 삶에 대한 생각이나 가치가 나타나니까요.

오랫동안 가난하고 검소했던 시대를 지나 지금 우리 세대는 많이 만들고 많이 쓰고 함부로 버리면서 살
고 있습니다. 최근에 정보화가 빨리 진전되면서 다양한 품목을 조금씩 생산하는 맞춤형 생산방식이 자리잡는 듯 보이지만 전체적인 틀이 변한 것은 아닙니다. 많이 생산해서 이윤을 많이 남기려는 자본의 속성이 변한 것은 아니거든요. 기술이 발전해서 다양한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게 된 것일 뿐이지요.

아시다시피 대량생산, 대량소비는 한정된 자원의 고갈을 낳고 그로 인한 환경 파괴와 더불어 인간 소

외를 가져옵니다. 물건이 필요해서 만들거나 사는 게 아니라 먼저 만들고 나서 어떻게 팔까를 고민합
다. 대중매체를 이용해 새롭거나 조금 다른 물건의 쓰임새를 널리 알려 사람들의 소비욕구를 자극해 대량소비로 이어집니다. 저만해도 당장 쓸 일이 없는 물건을 언젠가는 쓰겠지, 저 걸 쓰면 생활이 편해지겠지 하고 사는 일도 있거든요. 물건 값이 아주 싸다는 이유만으로 이웃나라의 값싼 노동력으로 대량생산한 물품을 사기도 하고요. 이처럼 대중매체는 개인의 사회적 태도 뿐 만아니라 사람들의 욕구나 기호(嗜好)도 만들어냅니다.

적어도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이 정도의 옷, 가방, 학원은 보장해야 하고 아내를 존중한다면 기념일 행

사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이런 차 한 대쯤은 필수라고 말하는 온갖 광고들이 끊임없이 쏟아지면서 우리의 의식을 지배합니다. 심지어 요즘은 나이대로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심각한 자기비하이며 몇 살로 보이기를 원하는지 말만하면 그대로 이루어 주겠다는 광고도 허다합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게 만들면서 화면 속의 모델처럼 예쁘고 날씬해야 행복하다고, 넘쳐나는 상품을 소유하고 소비하면서 행복을 느끼라고 온 세상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도 지금 당장 돈이 없어도 외상으로 누릴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지요. 그러는 사이 우리는 스스로의 생각, 느낌, 활동의 주체로서 능동적으로 존재 한다기보다 상품을 소유하고 소비하기 위해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 자신의 지식, 노동력, 몸과 영혼을 파는 소외된 존재가 되어갑니다.

우리 사회도 1980년대 이후로 대중적인 소비문화가 지배적 생활양식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온 나라

가 음식물을 비롯한 각종 생활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해결의 지름길이 그렇듯 오늘날의 자원고갈, 환경오염의 원인을 잘 따져 우리의 생산과 소비, 폐기 방식을 바꾸어야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신중하게 선택하고 오래도록 아껴 쓰는 문화를 우리 개인의삶에서부터 다시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을 쓴 윤선주 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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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와 소비자
힘 모아 함께 지키는
한살림 한우

 

2008년 광우병 우려가 있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재개되면서 촛불집회가 벌어졌을 때, 설령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시작되더라도 광우병을 걱정하면서까지 미국 소고기를 소비하는 이들이 많을까? 생각한 이들이 적잖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통계자료를 보면 미국산 소고기는 2007년 1만4616톤에서 2012년 9만9929톤으로 수입량이 크게 늘었다. 한우 사육농가는 2012년 9월 15만7천 가구에
서, 2013년 9월 13만8천 가구로 불과 1년 만에 2만 가구 가량 줄었다. 한우 평균가격이 2007~2011년 마리당 525만 원에서 2012년 466만4천 원으로 크게 떨어진데 비해 국제 곡물가와 함께 사료값이 많이 올라가 한우 사육을 포기한 농가가 늘어난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피해를 입은 한우농가에 FTA 피해 직불금을 지불하겠다고 했지만 대다수 농가들은 그 보상금액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한우’ 자체가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다행히 한살림 한우는 시장의 이런 분위기와 달리 일정한 가격을 유지하며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한살림이 애초에
시장체계를 넘어서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협력하며 책임생산 책임소비를 위해 노력해 왔고 사료 국산화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온 점도 반영된 때문일 것이다. 가격 등락에 따라 민감하게 움직이는 시장의 생리를 생각하면 시중 가격이 하락해도 한살림 한우를 꾸준히 선택하는 것은 당장 눈앞의 금전적인 이득만이 아니라 물품에 담긴 우리 농업과 지구환경, 구체적으로는 농민 생산자를 위해 이들을 신뢰하고 생산 활동이 지속되도록 응원하겠다는 생각이 반영된 결과다.

- 기사는 2·3면에 이어집니다.

사진 문재형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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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삭바삭한 김 한장에 깃든 땀방울과 정성어린 손길

정지영


 


 

마치 얇은 낱장형태의 종이같지만, 소금을 치고 참기름을 발라 바삭하게 구워 먹거나 더러는 그냥 구워도 좋고, 아예 그냥 날것 그대로 먹으면 또 그 나름대로 바다 내음이 물씬 풍겨오는 김. 김밥으로 말아 먹으면 간편식으로 그만이고, 잘게 썰어 국이나 탕 위에 고명으로 뿌려 먹으면 훌륭한 조미료가 된다.
그런데 뉴스에서는 종종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김을 양식하는 과정에서 복합 영양제와 심지어는 황산과 염산이 쓰이기도 한다는 내용이 등장하곤 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만약 이런 식으로 김을 양식을 하게 되면, 설령 채취한 김에는 염산이 잔류하지 않아 인체에 해롭지 않다는 주장을 그대로 믿는다고 해도 도무지 꺼림칙하지 않을 수 없고, 바다 속 생태계가 급속히 황폐화 될 것은 보지 않아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 여간 걱정이 아니다. 염산은 지니고 있는 독성으로 김에 붙어있던 규조류 등을 떨어뜨리는데, 이것을 보고 물고기들이 달려들어 이를 삼키고는 기형어가 생겨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인근 바닷가의 생태계가 교란되어 바닷가 돌미역, 개불, 낙지, 조개, 굴 등 예전부터 살아오던 생명체들이 사라져가면서 일대 바다생태계는 황무지처럼 변하게 된다. 그럼 대체 김을 양식할 때 염산이나 황산 처리는 왜 하는 것일까?

김 양식에는 지주식과 부류식(부레식)이 있는데, 시중 김의 90%이상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부류식을 선택하고 있다. 흔히 바닷가에서 하얀색의 스티로폼이 줄줄이 떠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부류식은 바로 이 부유물질을 바다에 띄운 후 그 밑으로 그물을 걸고 김이 자라게 하는 방법이다. 이 방식은 김이 항상 바닷물에 잠겨 있어 햇볕에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파래가 많이 끼고 김도 영양상태가 부실해 김맛이 떨어지고 심지어는 김이 썩기도 한다. 이 때문에 양식업자들은 황산이나 염산을 바다에 뿌려 산도를 올린다고 한다.

 

반면, 지주식 양식은 수심이 얕은 바다에 대나무나 소나무로 지주를 세워놓고 지주에 김발을 설치해 여기에서 김을 양식하는 방식이다. 조수간만의 차이를 이용하므로 김은 썰물 때는 공기중에 노출 돼 자연스럽게 햇볕을 쬐며 광합성을 하고 밀물 때는 다시 바다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지주식 양식 김은 기후와 물때에 맞춰가며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쓴다. 모진 풍파를 이겨낸 생명들은 건강하고 미네랄도 풍부하며, 스스로 병도 치료하고, 이물질도 떨어내면서 갖가지 장애요인들을 제 힘으로 극복해나간다. 그러니 부류식에서 공공연하게 쓰는 염산 및 황산을 쓸 일이 없다. 지주식으로 채취되는 김은 부류식 김보다
윤기가 덜하고 다소 거친 편이지만 씹을수록 고소하고 향도 강하며 소화도 잘 된다.
한살림 김 생산자들은 전라남도 해남 앞바다에서 전통지주식으로 김을 길러낸다. 지주식 김이 완전히 자라는 데는 30여 일 정도가 걸리지만, 늘 바닷물에 잠긴 채 자라는 부류식 김은 15~20일이면 모두 자란다고 하니 지주식은 부류식에 비해 생산량이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살림 생산자들은 염산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부류식 김양식에 눈길을 준 적이 없다. 당장 몇 푼을 더 버는 일보다는 생명이 살아있는 바다를 지키고 이를 먹는 도시 소비자들의 건강도 지키는 일이 훨씬 더 값진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해의, 자채, 해태라고도 불리며, 이미 삼국시대부터 우리 민족의 밥상에 올라왔다는 김.  그 김은 우리나라 수산양식업 중에서 제일 오래되었다. 조선 중기인 인조 때 김여익이라는 사람이 해변에 표류되어온 참나무 가지에 김이 붙은 것을 보고 양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더 많은 김을 편하게 생산하겠다는 사람들의 욕망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전통 양식을 버리고 바다를 오염시키는 오늘날의 부류식 양식을 널리 퍼트리게 했다. 김 한 장의 사연을 자세히 들여다보자니 느리고 고된 방식으로 작은 배 한척을 바다에 띄우고 지주 사이를 오가며 그물에 매달린 김들에 정성의 손길을 더하고 있을 생산자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다. 바다도 살고 우리 밥상도 살리는 일이 이렇게 조금 고되지만 느리게 가는 길에 희망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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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문재형                 

                                               

어느 순간 우리 살림에서 옹기는 멀어졌고 또 어느 순간엔가 다시 돌아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주거형태가 변하면서 장독대가 사라지고 값싼 플라스틱이나 양은, 스테인리스 그릇보다 무겁기도 하고 쉽게 깨지기까지 한 게 옹기가 사라진 이유였다면 참살이 바람이 불면서  조상때부터 오래도록 써 온 이 우직한 그릇은 건강에 좋다거나 숨쉬며 발효에 적합한 그릇이라는 이유 등 지니고 있는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물론 여기에는 아파트 같은 주거 환경에도 적합하게 작고 쓸모 있게 거듭난 옹기의 변신도 한몫 했을 것이다. 전통적인 미덕을 고수하면서도 냉장고 김칫독, 항아리 머그잔 등 다양한 모습으로 거듭난 옹기에 새 생명을 불어 넣은, 전통예산옹기 황충길 명장을 만나고 왔다.

고용노동부 선정 대한민국 옹기공예부분 명장, 대통령 표창, 충청남도 인증 전통문화의 가정 등 그의 수훈 이력은 화려하지만 여기까지 도달할 때까지 험난한 과정을 겪어왔다. 되돌아보면 결코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고난의 길이었다고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집안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이 마을로 숨어들어 1850년부터 옹기를 굽기 시작했다. 생계를 잇기에도 필요했지만 옹기를 팔러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선교를 위해서도 좋았기에 박해받던 천주교인들은 전국에 숨어들어 옹기를 구운 곳이 많았다고 한다. 그의 할아버지도 천주교 신자인 게 들통 나 대대로 살아오던 고향인 충북 영동을 떠나 이곳 충남 예산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도 젊은 날에는 고되기만 할 뿐 알아주지도 않는 옹기장이 일이 서러워 포기하고 다른 길을 가려고 여러번 마음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심할 때마다 어머님이 병에 걸리는 등 집안에 일이 생겨 그만두곤 했다. 1996년 냉장고용 김칫독을 만들고 국무총리 대상을 받은 후에야 그는 이 길이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옹기장이 스스로 옹기가 되는 일

전통방식으로 옹기를 제작하는 과정은 옹기장이 스스로가 옹기가 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옹기의 가장 중요한 재료가 되는 흙을 구하고 그릇을 빚는 한편, 잿물(참나무를 태운 재와 부엽토나 황토를 섞어 숙성시킨 재로 만든 물)을 만들어 놓는다. 그릇을 빚는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흙을 고르게 반죽해 가래떡 모양의 질가래와 네모난 질판으로 만들어두고 바닥부터 시작해 몸체를 거치며 모양을 빚는다. 성형이 끝나면 무늬를 새긴 후 자연 상태에서 천천히 말리고 완전히 마른 후, 골고루 잿물을 치고 그늘진 곳에서 다시 말리게 된다. 마지막으로 1,225도에서 1,250도 사이 온도의 가마에서, 천천히 옹기 크기에 따라 시간을 달리해 굽는 과정을 거치면 옹기가 완성된다. “옹기를 만들 때는 다른 것은 일체 생각하지 않고 옹기에만 집중을 합니다. 혼을 박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좋은 옹기가 될 수 없다고 그는 또렷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이렇게 전통방식으로 만든 옹기는 일단 100% 흙으로 만들고 천연 잿물로 만들기 때문에 인체에 해로운 것은 일체 섞이지 않았다. 시중에 나도는, 광명단 같은 인체에 해로운 중금속 유약을 섞어 광택 있는 항아리와 예산옹기의 항아리가 다른 점은 이 부분이다. 깨끗한 흙과 잿물, 그리고 장인의 혼이 담긴 그릇은 불길을 만나 하나의 오롯한 옹기가 된다. 옹기는 당연히 스테인리스나 유리, 플라스틱 등에 비해 원적외선 방출량이 월등히 높고 그릇에 나 있는 미세한 구멍은 공기와 수분을 조절하면서 발효에 관여하는 자가소화효소와 미생물의 운동을 활성화시키고 미생물이 머무는 공간을 제공하기에 음식물의 발효에 도움을 주고 통기성, 보온성이 뛰어나다는 점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기도 했다. 옹기는 이렇게 숨 쉬는 그릇이었던 까닭에 냉장고가 없던 옛날에도 음식을 보관하는 기능을 해냈다는 것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게 되었다.
1990년대 초반 한살림은 자연스럽게 숨 쉬는 그릇인 옹기에 관심을 가졌고, 황충길 명장은 전통방식을 고집하며 그 그릇을 만들고 있었기에 만남은 필연적이었다. 아직 옹기가 지금처럼 주목을 받고 있던 때도 아니었는데 ‘한살림이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그는 그 때를 회상했다. 전통예산옹기에는 한 해 1,000명이상의 사람들이 방문을 하는데, 한살림 조합원들처럼 적극적이고 열성적인 사람들은 없다고 한다. 모든 과정을 꼼꼼히 살펴보는 한살림 조합원들의 모습을 보면 함께 하고 있다는 일에 자부심마저 느껴진다고 그는 말했다. 조합원들이 제시하는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기술 개선을 한 예도 적지 않다고 했다. 생산되는 수십 종의 옹기 중에서 조합원들에게 추천하고픈 옹기를 물으니 장독들은 기본이고 쌀독과 냉장고용 김칫독을 추천했다. 쌀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우리의 생명이고 복을 상징하는 것이니 숨을 쉬는 옹기에 담아 보관해야 하고 냉장고용 김칫독은 어떤 음식물을 담아도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주니 유용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떡시루는 사용하기 하루 전 물에 푹 담가 놓았다가 떡을 쪄야 촉촉해진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일반 옹기는 직화용 그릇이 아니니 전자레지에는 몰라도 센 불에 직접 올려놓고 가열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정보도 전해주었다.

 


흙으로 만들어진 옹기는 시간이 지나면 고스란히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자연이 잠시 모습을 바꾸었다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황충길 명장은 옹기는 자연으로 만든 것이기에 어떤 인위적인 소재도 이보다 좋을 수 없으며, 앞으로 집집마다 더 많은 옹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흙과 불이 빚은 자연의 그릇, 황충길 명장의 자부심은 여기서 나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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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 하나, 하나에서 얻은 값진 경험

-제주도 귤따기 일손돕기를 마치고-

정종경 한살림경남


 직장이 천안이라 늦은 시각에 일을 마치고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평소 혼자서 차분히 이런저런 생각을 할 짬이 없으나 그나마 고속도로에서 장시간 운전을 하며 이동할 때 생각을 하곤 한다. 가족여행을 자주 가지 못해서인지 생산지 일손 돕기 체험보다는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간다는 생각이 앞서 며칠 동안 사무실을 비운다는 부담도 뒤로 한 채 기대감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새벽녘에 집에 도착해 짐을 챙기는 집사람을 도운 뒤 잠시 눈을 붙이고 아이들을 깨웠다. 12시경에 제주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생산지를 방문하면서 체험일정이 시작되었다. 나도 세월이 조금 더 지나면 귀향을 할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어서인지 보이는 모든 것이 남달랐다. 그리고 영농조합이라는 곳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생드르'를 방문하면서 많은 것을 다시 느끼고 배웠다. 기술과 과학이 구체적으로 적용이 된다면 유기농 재배가 한층 더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해가 진 뒤 저녁 늦어서야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시에 있는 체험목적지에 도착 했다. 성인남자는 참가자중 혼자라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지만 같은목적으로 왔고 가족들도 함께 참여해 금세 어색함은 사라지고 편안하게 어울릴 수 있었다. 이튿날 동트기 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침밥을 먹고 십여 분가량 트럭을 타고 농장으로 이동했다. 시골에서 자라 벼농사와 밭농사는 경험해봤지만 귤 농장은 처음이라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생산자분께 귤 따는 요령을 간단히 설명 듣고 나는 귤 박스를 창고까지 나르는 일을 했다. 일 년 농사일 중 귤을 따는 수확기에만 가봤으니 재배과정은 잘 모르지만 수확 때까지 생산자님이 얼마나 고생하며 자식 키우는 심정으로 재배하셨는지 느낄 수 있었다. 몇 해 전 식구들과 주남저수지 부근에서 주말농장을 빌려 채소를 재배한 적이 있는데 이들은 정성을 쏟는 것만큼 자라더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기농 과일을 생산하여 공급한다는 일이정말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된 일임을 이번에 확연히 느꼈다. 좋은 경험이었다. 가족과 함께해서 그렇고, 다른 한살림가족들, 생산자 분들과 함께 한 것도 좋았다. 단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미흡했던 점이다. 내년에는 더 잘 준비해 더 많은 소비자들이 참여했으면 한다. 기회가 되면 생산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배일도형님 좋은 경험 많이 하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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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식품은 우리 농업의 또 다른 이름
-유럽슬로푸드 연수 후기

글  김도준 옥잠화영농조합


지난 11월 14일부터 7박 9일간 유럽으로 ‘슬로푸드연수’를 다녀왔다. 연수 중 3일은 이탈리아의 소도시 브라에서, 4일은 프랑스의 뚜르라는 조그만 도시에서 묵었다. 슬로푸드문화원에서 주관하는 연수에 한살림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한살림에서 진행한 기획연수 공모사업에 협업형 가공사업 사례를 견학하고 가공정책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추진된 연수였다. 개인적으로는 이러저러한 어수선한 분위기를 뒤로 하고 도망치듯 길을 떠났다.
우리 연수팀은 지난 여름 한살림을 방문했던 미식과학 대학의 모리니 교수님의 배려로 매우 많은 요리를 경험할 수 있었다. 국제슬로푸드의 생물종 다양성에 대한 내용을 담은 "보호하고자 하는 품종이 있다면 먹어라."는 강의를 들으며 우리 한살림도 토종종자를 살리기 위해 우선 많이 먹는 운동을 벌여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첫 번째 방문지는 사과농장과 가공공장, 소축사와 퇴비사, 그리고 밀밭과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다. 이곳은 국제슬로푸드 재단에서 추천하는 모범적인 프레지디아(맛지킴이)라고 하였다. 들어갈 때는 지저분하고 산만한 느낌이었지만 나오면서는 유기농의 정신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과의 조화를 소홀히 한 채 방역과 소독 일변도인 미국과 일본의 식품위생 정책만을 추종해왔다는 생각이 들어 반성을 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 중 하나가 유로구스토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유럽 유기농 소생산자들의 식품박람회와 유사한 행사였다. 행사에 참여하며, '한살림 장터'도 조금만 가다듬으면 매우 훌륭한 자산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포도주 농장을 방문할 때마다(아마 3~4곳은 구경한 듯) 느낀 바는 프랑스에서 주식이나 마찬가지인 포도주가 매우 다양하게 개발되어 해당 산업을 발전시키듯이, 우리도 주식인 쌀로 하는 가공식품을 다양하게 개발하여 농업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번 슬로푸드 연수에서 깨달은 것은 1차생산자와 가공생산자가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과농장을 방문하면 사과주스를 만들고 포도주공장을 방문하면 포도농사를 짓고, 산양농장을 방문하면 치즈를 만들고, 심지어 버섯농가를 방문해도 가공품을 전시하고 판매하였다. 1차농산물과 가공식품은 뗄 수 없
는 하나라는 것이다. “가공식품은 우리 농업의 또 다른 이름이다.”라는 이들의 말이 귓가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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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입맛을 돋게하는 '달래'


유지원 영동지역 생산자 자녀

1월  나물이야기


세밀화 박혜영 편집부


드디어 우리 집에 닭이 들어왔습니다. 며칠 전부터 어머니, 아버지께서 바쁘게 움직이시는 듯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닭이 들어왔습니다. 아직은 작고 작은 병아리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도와 병아리를 나르는데 노랗고 작은 병아리들이 뭉쳐서 소리를 내는 것이 정말 귀여웠습니다. 꼭 솜뭉치가 왔다갔다 하는 것 같아 귀엽고 촉감 또한 보드라워 한참 만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마리가 뭉쳐있는 건 볼만 한데 수십 마리가 뭉쳐있으니까 눈도 까만 게 우글우글 있어서 그런지 좀 징그럽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병아리들은 작고 귀여우면서도 굉장히 민감합니다. 얼마나 민감하던지 아빠의 핸드폰 소리나 커다란 목소리가 나면 모든 병아리들의 시선을 받게 됩니다. 병아리를 돌보거나 근처에서 일을 할 때는 조용조용 소리를 낮춰 스트레스를덜 받게 해야 합니다. 병아리를 받기 전에는 병아리가 편히 있을 수 있도록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고초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병아리 들어오기 전날에는 아버지가 안계서서 어머니 혼자 양계장을 준비 했습니다. 제가 많이 도와드리지 못해서 어머니께서 많이 고생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날 점심으로 힘들 때 입맛을 돋게 하는 달래무침에 밥을 비벼서 달래비빔밥을 해먹었습니다. 비빔밥은 준비하는 시간이 적기 때문에 바쁠 때 빨리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무침에다 비비기만하면 되니까요. 달래에 간단한 참기름, 진간장, 조선간장을 섞어 넣고 고춧가루를 뿌려 무친 다음 밥과 비벼서 김장 김치를 쭉쭉 찢어 얹어 먹으니 정말 힘들 때 입맛을 돋아주어 어머니와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지만 봄나물인 달래를 지금 먹어서 그런지 봄 달래 먹을 때보다 질기고 톡 쏘는 맛이 강했습니다. 날씨가 더웠다 추웠다 하니 그런 것이 아닐까요? 그래도 맛이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어머니와 한 그릇에 신나게 비벼서 먹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도 저녁에 가족이 다 같이 큰 그릇에 비벼 먹는다면 정말 맛있지 않을까요?


글쓴이는 속 깊은 눈으로 식물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을 가진 18살 소녀입니다. 유양우,
차재숙 영동지역 생산자의 자녀이고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뜸을
뜨며, 농사를 짓는 것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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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 밥상 위에 신선한 수산물이 한가득...
<해농수산> 최광운 대표

글 정지영  사진 문재형

당시에는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얹어 놓는 셈이었죠” 이게 무슨 말인가. 현재 한살림 수산물품의 상당부분을 공급하면서 소비자조합원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해농수산 최광운 대표가 한살림과 손을 잡게 된 때를 떠올리며 한 말이다. 해농수산은 1999년부터 한살림 조합원들께 수산물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주로 농산물을 취급하던 한살림에서 수산물도 보다 안전한 것을 구해달라는 조합원들의 요구에 따라 최대표에게 수산물 유통에 대한 제안을 해온 것이다. 이 일을 두고 최대표는 ‘한살림과 함께 일하게 된 것을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한살림과 함께한 10여년 사이에 해농수산의 공급액은 500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해농수산이 공급하는 수산물이 시중의 어떠한 유통업체의 것보다 맛도 좋고 가격경쟁력도 있다는 자부심이 괜한 소리는 아닌 모양이다.

농산물에 있어서 유기농, 친환경, 제철음식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한살림 소비자조합원들의 입맛을 수산물로는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었을까? 한살림의 물품기준을 맞추기 위해 해농수산에서는 인공 양식한 수산물은 취급하지 않고 연근해산을 기본으로 하며, 연근해서 잡을 수 없는 명태나 꽁치류만 북태평양에서 국내 원양어선이 잡은 원양산을 공급한다. 또 신선도를 유지하며 맛을 보장하기 위해 전국의 여러 어항에 중매인을 두고 수시로 연락하여 싱싱한 제철 생선을 확보한다. “생물은 아니나 생물과 같은 맛이 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한살림에서는 아직 생선은 냉동유통만 하고 있다. 그렇지만 최대한 맛 좋은 물품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시중에서 냉동생선의 유통기한을 반년으로 정하는 반면 해농수산은 60일로 정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생선을 사서 바로 먹지 않고 냉동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온도 때문에 생선이 맛을 잃기 쉬운데, 유통기한을 길게 잡으면 이것만 믿고 오래 방치하기 쉽고 그것이 생선의 맛을 앗아가므로 아예유통기한을 짧게 잡는 것이다.
그는 대형마트나 백화점의 유통구조가 너무 복잡해 생산자들과 동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대개 위탁상인들이 물량을 조절해

가격을 조정하는데, 생산자들은 그 상황을 제대로 이해도 못하고 이 과정에서 주도권도 갖지 못해요.” 해농수산이 진행하는 유통과정은 이에 비해 단순하고 투명하다. 경매를 통해 좋은 물품을 사고 선별작업을 거친 뒤 바로 한살림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산에서 판매까지의 단계가 적기 때문에 복잡한 유통에 소모되는 비용이 줄어들어 양질의 수산물을 비교적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다. 또 이렇게 형성된 적정한 가격은 생산자를 보호하고 동시에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해농수산이 지난 10여 년 동안 크게 성장한 원동력이 여기에 있다.
 “수산물 공급을 시작할 때 원칙이 있었어요. 시중에 원산지 표기 위반이 비일비재한데 한살림을 통해 국내산임을 믿고 먹게 하자는 것이죠. 국내산을 취급하는 것은 우리 어민을 보호하는 측면이 있기에 단순히 연근해산 생선을 먹는 것 이상의 의미가있습니다.” 최광운 대표는 한살림과 함께 갈 수 있는 이유를 한살림 운동의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윤만을 추구하고 맛과 가격의 우수성만을 내세웠다면 과연 이만큼 성장할 동안 한살림조합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을까. 그는 “먹어보면 답이 나온다.”며 자신이 공급하는 생선류의 맛에 대해 자신있어 했지만, 한살림과 함께 했기 때문에 생명살림, 바다살림에 동참하고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겸손하고도 소신 있는 그의 모습이 해농수산에 대한 신뢰를 더욱 깊어지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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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에 대한 달콤한 대답

추위 속에 자라지만 달고 시원한 맛 월동무

문재형  사진 박하선 작가
































   

십자화과의  한해살이풀  또는  두해살이풀로  줄기가 60~100cm까지 자라며 잎은 깃 모양으로 뿌리에서 뭉쳐나고 뿌리는 둥글고 길다. 중앙아시아가 원산지이고 삼국시대 불교의 전래와 함께 우리나라로 들어왔다고 한다. 고려시대부터 중요한 채소로 여겨졌으며 현재 우리나라 채소 중 3번째로 넓은 재배면적(약 2만3천ha)을 자랑하는 게 바로 무이다. 김치부터 무국까지 다양한 요리에 쓰이며 사시사철 우리 밥상에 오르내리지만 아쉽게 겨울에는 무가 자라지 않기에, 가을에 수확한 무를 땅에 파묻는식으로 어렵게 저장하며 먹어왔다. 그러나 겨울에도 자라는 무가 있다. “월동무”. 그 이름을 아는 이들이 많지는 않다.

 

지금 한살림에는 월동무가 공급되고 있다. 아쉬운 대로 저장무에 만족하던 입맛에 영하의 추위와 칼바람을 맞으며 당분을 축적하고 흙 냄새를 간직한 월동무는 여간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겨울에 자라는 무는 비닐하우스나, 비닐멀칭 때문이 아니다.1984년부터 땅의 힘을 믿고 유기재배를 하며 월동무 재배 실험을 한 전남 진도의 김종북 한살림 생산자가 있었기에 가능한일이다. 진도는 비교적 따뜻한 섬이기에 월동배추와 대파 등의 겨울 채소류 재배가 가능한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도 가능할것이라는 믿음으로 종자를 바꿔가며 재배 실험을 계속한 끝에 우리나라 최초의 월동무가 나오게 되었다. 

진도에서 월동무 재배가 성공한 뒤로, 지금은 따뜻한 남쪽 지역에서 월동무 재배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진도에서 자라는 한살림 월동무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재배된 월동무이기도 하지만 일체의 화학비료와 농약을 치지 않은 생명의 땅에서 자라난 건강한 먹을거리라는 점에서도 각별하다.  9월경에 파종한 무는 따스한 가을볕과 비를 먹고 자라다가, 추위가 시작되면 월동무 특유의 달고 시원한 맛을 만들게 된다. 눈이 내리고 차디찬 바닷바람이 불어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도 월동무는 꿋꿋하게 자라며 몸 안에 당분을 축적한다. 가을에 수확한 저장 무에 비해 제철에 수확한 월동무가 신선한 것은 당연하고 주문에따라 무청이 그대로 달린 무를 매일 매일 밭에서 뽑아 공급하기에, 이 겨울무의 단맛과 아삭거리는 식감이 별미인 것은 두말 할나위가 없다. 이 때문에 겨울철 별미로 과일처럼 깎아 먹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월동무를 재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아니다. 한겨울에 때로는 눈보라를 맞으며 노지에서 수확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크고 매년 되풀이되다시피 하는 한파나 냉해 때문에 생산차질이 빚어질 위험도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눈비가 오거나 기온이 많이 내려가는 날에는 힘든 일을 하겠다고나서는 사람이 적어 일손을 구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세상 만물 중에 고맙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냐마는 추운겨울에 푸른무청을 달고 집으로 공급되는 월동무가 이 고된 과정을 통과한 것임을 알고 나면 그 고마운 마음이 더욱 사무친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한겨울, 뭐니 뭐니 해도 모진 바닷바람과 추운 겨울 날씨를 고스란히 견뎌낸 진도 월동무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월동무를 탄생시킨 아버지 김종북 생산자와 함께 월동무를 재배하는 아들 김주헌 생산자의 이야기가 춤추듯 휘날리는 눈보라의 리듬과 푸른 무청의 생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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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양이랑파주랑

    찬바람 모두 이겨낸 소중한 생명이네요. 고양파주공급팀은 무청이 얼지않게 옆자리에 태워 공급하고 있습니다.^^

    2011.12.27 21:25 [ ADDR : EDIT/ DEL : REPLY ]
  2. 문재형

    귀한 월동무 답게 귀한 대접을 받고 있네요.
    고양파주공급팀 파이팅 입니다!!!

    2012.01.02 11:38 [ ADDR : EDIT/ DEL : REPLY ]
  3. 시흥동 새댁

    하하 지난 11월 갓 결혼한 서울 시흥동 새댁도 월동무를 주문하였답니다.. 내일 공급예정인데 아삭아삭 월동무 기대되네용

    2012.01.10 22:02 [ ADDR : EDIT/ DEL : REPLY ]
  4. 문재형

    월동무가 달콤한 대답을 줄거라 믿습니다! ㅎㅎ
    맛있게 드세요~~

    2012.01.11 11:08 [ ADDR : EDIT/ DEL : REPLY ]


쌉쌀한 맛이 입맛을 돋우는 고들빼기
유지원 영동지역 생산자 자녀


세밀화 박혜영 편집부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되었지만 요즘 날씨가 추웠다가 더웠다가 갈팡질팡 하지 않나요? 저도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에 당황스럽고 적응이 잘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아버지깨서 기운이 없으십니다. 갑작스러운 날씨 탓인가?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께서 할머니의 고들빼기김치가 먹고 싶다고 하더군요. 마침 잘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을철이라 입맛도 잃으신데다가 속도 많이 안좋다고 하시는 요즘, 위장과 소화기능을 높이는 고들빼기야 말로 제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께 전화해 요리법을 알아보았습니다. 제가 할머니께 먼저 전화를 드리고 통화를 한 것은 태어나서 처음입니다. 보통 아버지나 어머니께서 할머니와 먼저 통화하실 때 옆에 있다가 바꿔서 통화한 기억 밖에 없으니까요. 약간 긴장하며 통화했는데 할머니께서는 정말 반갑게 받아주셔서 좋았고 또 할머니의 노하우가 담긴 고들빼기김치의 요리법을 배우는 것이 참 즐거웠습니다. 고들빼기김치로 인하여 할머니와 소통하게 되어 기뻤습니다. 할머니의 요리법을 듣고 옆집 할머니네 포도밭에 가서 고들빼기를 캐왔습니다.
캐온 고들빼기를 삼일 동안 물에 담가 쓴맛을 뺐습니다. 처음에 하루 정도만 빼고 얼마나 쓴지 먹어 봤다가 다음날 새벽부터 배가 아파 화장실을 들락날락 했습니다. 위장이 놀란 것이지요.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담가 두면 잎이 무르게 돼서 먹을 수 없게 됩니다. 물을 갈아주면서 사흘 동안 쓴맛을 빼내고 액젓, 고춧가루, 마늘, 생강, 쌀풀, 쪽파를 넣고 버무렸는데 쓴맛이 강해 홍시를 넣었습니다. 쓴맛이 좀 덜 빠졌지만 아버지께서 맛이 괜찮다고 맛있게 드셔서 뿌듯하고 즐거웠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맘 때 직접 담근 고들빼기김치로 부모님께 식사 한 끼 대접해보세요.


글쓴이는 속 깊은 눈으로 식물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을 가진 18살 소녀입니다. 유양우,
차재숙 영동지역 생산자의 자녀이고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뜸을
뜨며, 농사를 짓는 것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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