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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지에서 온 소식/살리는 이

생명이 살아 있는 숨 쉬는 그릇, 옹기 <전통예산옹기> 황충길 명장


글·사진 문재형                 

                                               

어느 순간 우리 살림에서 옹기는 멀어졌고 또 어느 순간엔가 다시 돌아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주거형태가 변하면서 장독대가 사라지고 값싼 플라스틱이나 양은, 스테인리스 그릇보다 무겁기도 하고 쉽게 깨지기까지 한 게 옹기가 사라진 이유였다면 참살이 바람이 불면서  조상때부터 오래도록 써 온 이 우직한 그릇은 건강에 좋다거나 숨쉬며 발효에 적합한 그릇이라는 이유 등 지니고 있는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물론 여기에는 아파트 같은 주거 환경에도 적합하게 작고 쓸모 있게 거듭난 옹기의 변신도 한몫 했을 것이다. 전통적인 미덕을 고수하면서도 냉장고 김칫독, 항아리 머그잔 등 다양한 모습으로 거듭난 옹기에 새 생명을 불어 넣은, 전통예산옹기 황충길 명장을 만나고 왔다.

고용노동부 선정 대한민국 옹기공예부분 명장, 대통령 표창, 충청남도 인증 전통문화의 가정 등 그의 수훈 이력은 화려하지만 여기까지 도달할 때까지 험난한 과정을 겪어왔다. 되돌아보면 결코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고난의 길이었다고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집안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이 마을로 숨어들어 1850년부터 옹기를 굽기 시작했다. 생계를 잇기에도 필요했지만 옹기를 팔러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선교를 위해서도 좋았기에 박해받던 천주교인들은 전국에 숨어들어 옹기를 구운 곳이 많았다고 한다. 그의 할아버지도 천주교 신자인 게 들통 나 대대로 살아오던 고향인 충북 영동을 떠나 이곳 충남 예산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도 젊은 날에는 고되기만 할 뿐 알아주지도 않는 옹기장이 일이 서러워 포기하고 다른 길을 가려고 여러번 마음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심할 때마다 어머님이 병에 걸리는 등 집안에 일이 생겨 그만두곤 했다. 1996년 냉장고용 김칫독을 만들고 국무총리 대상을 받은 후에야 그는 이 길이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옹기장이 스스로 옹기가 되는 일

전통방식으로 옹기를 제작하는 과정은 옹기장이 스스로가 옹기가 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옹기의 가장 중요한 재료가 되는 흙을 구하고 그릇을 빚는 한편, 잿물(참나무를 태운 재와 부엽토나 황토를 섞어 숙성시킨 재로 만든 물)을 만들어 놓는다. 그릇을 빚는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흙을 고르게 반죽해 가래떡 모양의 질가래와 네모난 질판으로 만들어두고 바닥부터 시작해 몸체를 거치며 모양을 빚는다. 성형이 끝나면 무늬를 새긴 후 자연 상태에서 천천히 말리고 완전히 마른 후, 골고루 잿물을 치고 그늘진 곳에서 다시 말리게 된다. 마지막으로 1,225도에서 1,250도 사이 온도의 가마에서, 천천히 옹기 크기에 따라 시간을 달리해 굽는 과정을 거치면 옹기가 완성된다. “옹기를 만들 때는 다른 것은 일체 생각하지 않고 옹기에만 집중을 합니다. 혼을 박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좋은 옹기가 될 수 없다고 그는 또렷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이렇게 전통방식으로 만든 옹기는 일단 100% 흙으로 만들고 천연 잿물로 만들기 때문에 인체에 해로운 것은 일체 섞이지 않았다. 시중에 나도는, 광명단 같은 인체에 해로운 중금속 유약을 섞어 광택 있는 항아리와 예산옹기의 항아리가 다른 점은 이 부분이다. 깨끗한 흙과 잿물, 그리고 장인의 혼이 담긴 그릇은 불길을 만나 하나의 오롯한 옹기가 된다. 옹기는 당연히 스테인리스나 유리, 플라스틱 등에 비해 원적외선 방출량이 월등히 높고 그릇에 나 있는 미세한 구멍은 공기와 수분을 조절하면서 발효에 관여하는 자가소화효소와 미생물의 운동을 활성화시키고 미생물이 머무는 공간을 제공하기에 음식물의 발효에 도움을 주고 통기성, 보온성이 뛰어나다는 점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기도 했다. 옹기는 이렇게 숨 쉬는 그릇이었던 까닭에 냉장고가 없던 옛날에도 음식을 보관하는 기능을 해냈다는 것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게 되었다.
1990년대 초반 한살림은 자연스럽게 숨 쉬는 그릇인 옹기에 관심을 가졌고, 황충길 명장은 전통방식을 고집하며 그 그릇을 만들고 있었기에 만남은 필연적이었다. 아직 옹기가 지금처럼 주목을 받고 있던 때도 아니었는데 ‘한살림이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그는 그 때를 회상했다. 전통예산옹기에는 한 해 1,000명이상의 사람들이 방문을 하는데, 한살림 조합원들처럼 적극적이고 열성적인 사람들은 없다고 한다. 모든 과정을 꼼꼼히 살펴보는 한살림 조합원들의 모습을 보면 함께 하고 있다는 일에 자부심마저 느껴진다고 그는 말했다. 조합원들이 제시하는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기술 개선을 한 예도 적지 않다고 했다. 생산되는 수십 종의 옹기 중에서 조합원들에게 추천하고픈 옹기를 물으니 장독들은 기본이고 쌀독과 냉장고용 김칫독을 추천했다. 쌀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우리의 생명이고 복을 상징하는 것이니 숨을 쉬는 옹기에 담아 보관해야 하고 냉장고용 김칫독은 어떤 음식물을 담아도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주니 유용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떡시루는 사용하기 하루 전 물에 푹 담가 놓았다가 떡을 쪄야 촉촉해진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일반 옹기는 직화용 그릇이 아니니 전자레지에는 몰라도 센 불에 직접 올려놓고 가열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정보도 전해주었다.

 


흙으로 만들어진 옹기는 시간이 지나면 고스란히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자연이 잠시 모습을 바꾸었다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황충길 명장은 옹기는 자연으로 만든 것이기에 어떤 인위적인 소재도 이보다 좋을 수 없으며, 앞으로 집집마다 더 많은 옹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흙과 불이 빚은 자연의 그릇, 황충길 명장의 자부심은 여기서 나오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