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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지에서 온 소식/살리는 이

덕유산 맑은 바람과 정직한 땀의 결실 한살림 양파, 조성우 생산자


덕유산 맑은 바람과 정직한 땀의 결실 한살림 양파

조성우 생산자


글․사진 문재형 편집부


덕유산 자락이 뻗어 내려 산세가 구성지게 좋고 산 아래 탁 트인 모습이 꽤나 보기 좋다. 산골짜기이기에 자연스럽게 계단식 농지가 자리를 잡고 있다. 농사짓는 품은 평지보다 더 들고 소출은 적을 수밖에 없다. 경남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에 있는 우전(牛田)마을. 이곳에 우직한 농부가 있다. 마을 이름마냥 소처럼 농사를 짓는 귀농 14년차 조성우생산자를 만나고 왔다. 


강원도 삼척이 고향인 조성우생산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자리를 찾아 내려간 경남 창원에서 10년 동안 자동차 부품 만드는 일을 했다. 노동운동을 하며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위해 활동하던 중 IMF구제금융사태가 터졌다. 구조조정의 여파 속에서 하루하루 위태로운 나날이 이어졌다. 몸과 마음이 괴롭던 그 무렵, 누군가가 딸기 하우스 농사를 지으면 먹고 살만하다는 말을 했다. 농부의 아들로 자라나 농사가 두렵지 않은데다, 때마침 가톨릭사회교육회관에서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서정홍 씨의 강의를 들은 것이 계기가 돼 그는 귀농을 결행했다. 첫 농사일을 시작한 곳은 다름아닌 강기갑 전 국회의원의 농장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1998년 9월의 일이다.

하루하루 의욕에 차 열심히 일을 했지만 젖소 5,000두와 단감 5,000주를 돌보는 일이 신출내기 귀농자에게는 보통 고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낸 뒤, 지금 농사짓고 있는 경남 함양 서하면 봉전리로 이주했다. 처음 이 마을로 올 때는 귀농 상담을 해준 서정홍 씨를비롯해 마음 맞는 5명이 함께 내려왔지만 1년이 지나자 제 각기 사정으로 떠나고 조성우 생산자 혼자만 남게 되었다. 산골에서 농사를 짓자니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지대가 높아 논에 물 대기도 힘들었고 둑이 터지기 쉬워 비가 오면 항상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는 농사가 좋았고 혼자서도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그렇게 홀로 농사를 짓던 중 운 좋게 평생의 인연인 아내를 만났다. 지인의 소개로 무주에 귀농해 있던 지금의 아내 김근희 생산자를 만난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귀농운동본부 출신인 아내의 소개로 2002년 한살림과 인연을 맺고 한살림 생산자가 되었다. 처음부터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어왔기에 한살림의 지향이나 농업정책과도 잘 맞았다.


처음에는 쌀, 고추, 감자를 한살림에 공급했지만 감자 농사가 잘 되지 않아 지금은 양파를 대신 재배해 공급하고 있다. 논 약 6,600㎡, 고추 약 2,650㎡, 양파(자색양파 포함) 약 5,280㎡ 규모의 농사를 짓고 있다. 산골짜기 다랑이논이라 논두렁 면적이 크기 때문에 이걸 제하면 실상 가장 많이 재배하는 작물은 양파라고 한다. 샐러드용으로 좋은 자색양파는 전량 한살림경남에 지역물품으로 공급하고 있다.

양파는 연작 피해가 크고 지력을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벼와 이어짓기를 하고 있다. 10월 말경 추수가 끝난 논에 모종을 옮겨 심는 것으로 양파농사는 시작되고 겨울을 보낸 이듬해 6월 중순 수확을 한다. 겨울동안 제초 걱정은 없지만 봄이 되면 따스한 기운을 받아 잡초들이 고개를 든다. 당연히 제초제를 일절 쓰지 않고 수고스럽더라도 일일이 손으로 잡초를 뽑는다. 노균병, 잿빛곰팡이 등의 병해를 막기 위해 산화칼슘에 황산구리 용액을 섞어서 만든 자연 살균제인 석회보르도액을 사용하고 있다.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산골짜기여서 냉해피해도 있고 수확시기가 늦춰지면 모내기도 늦어져 이어짓기가 어렵네요.” 지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 그는 담담하게 말을 했다.



단오나 가을걷이 같은 행사 외에 산지에서 소비자 조합원과 직접 만나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라고 한다. 작년에 한살림경남 소비자 조합원들이 일손돕기를 하러 찾아왔고 올해도 며칠 뒤에 일손돕기를 위해 찾아올 예정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먹하기도 했지만 만남이 이어지고 교류가 이어지다 보니 관계가 좀 더 밀접해졌다고 한다. “생산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생산지를 알리고 소비자 조합원들께 다가가야 합니다.” 멋쩍게 말하는 그 표정 속에 믿어주는 소비자 조합원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깃들어 있다.


2007년부터 아내 김근희 생산자는 산촌유학도 하고 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그야말로 산촌인 그의 집에 머물면서 시골학교에서 유학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하교시간이 다 돼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초등학교로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한다고 했다. 농사지으랴 아이들 챙기느라 바쁜 그에게 마지막으로 본인의 양파 맛을 자랑해달라고 했다. “양파 맛은 제가 말할 수 없지요. 저는 그냥 약속한대로 농사짓고 조합원들이 판단해주는 거지요. 조합원들이 먹고 맛있다 느끼면 그제야 맛있는 게 되는 거잖아요” 우직한 농부에게 하는 질문이 너무 얄팍했다. 귀농 14년차지만 스스로는 아직도 멀었다고 이야기하는 조성우생산자. 본인은 알 수 없다고 하지만 그가 기른 양파에서는 아삭하고 시원한 맛과 깊은 향이 느껴졌다. 그가 기대어 사는 덕유산 자락 산골의 햇살과 바람, 그들 부부의 정직한 땀이 빚어낸 또 하나의 자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