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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지에서 온 소식/살리는 이

살 만한 쿠키, 살 만한 세상 [그 사람 이 물품] 살 만한 쿠키 살 만한 세상 김영렬 위캔쿠키 생산자 생산자를 만나러 간 그곳에서 나를 맞이한 이는 위생모 대신 베일을 쓴 수녀였다. “안녕하세요? 사회복지법인 위캔의 시설장, 김영렬 아가타 릿타 수녀입니다.” 노란콩쌀쿠키, 녹차쿠키, 단호박쿠키, 호두쿠키, 흑미쌀쿠키, 꼬마쿠키모음 등 한살림 쿠키 6종을 공급하는 위캔쿠키는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서울관구에서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위해 설립한 사회복지법인 위캔(이하 ‘위캔’)에서 운영하는 사업체다. 설립 당시부터 수녀원에서 파견된 수녀가 시설장을 맡고 있다.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이자 사회적기업으로서의 특이성을 감안하더라도 일반 기업으로 치면 전문경영인 격인 시설장을 명리에 초탈한 성직자가 맡고 있다는 점이 의외다. “이윤을 남기기 위해 사.. 더보기
쉬이 버려지지 않았기에, 새로이 피어난 순백의 꽃 [그 사람 이 물품] 쉬이 버려지지 않았기에, 새로이 피어난 순백의 꽃 윤명식 부림제지 생산자 초등학교가 국민학교라 불리던 시절, 반마다 한 명씩 우유당번이 있었다. 우유를 마신 아이들이 납작하게 접은 우유갑을 녹색 플라스틱 상자에 대충 던져놓으면 우유당번은 그것을 일일이 물에 헹궈 학교 뒤편 소각장 옆에 쌓아두곤 했다. 부림제지의 윤명식 생산자는 누구에게나 하나씩은 남아있을 법한 색바랜 추억 속 장면을 있게 한 당사자다. “우유갑은 비닐 코팅되어 있어 소각할 때 매연이 심하고 재활용이 쉽지 않아 파지업자들도 꺼렸어요. 우유갑으로 화장지를 만든다고 언론에 소개되자 모인 우유갑을 가져가라는 전화가 사방팔방에서 왔었죠.” 재생화장지를 만들기 전에도 그의 인생은 오래도록 종이와 맞닿아 있었다. 1970년에 설.. 더보기
투명한 한 잔 술이 빚어낸 배움과 만남, 그리고 신뢰 [그 사람 이 물품] 투명한 한 잔 술이 빚어낸 배움과 만남, 그리고 신뢰 신인건 술샘 생산자 3,125만 병. 지난해 한살림 식구들이 마셨을 것으로 예상되는 소주의 양이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1년에 소주 62.5병을 마신다. 술을 즐기는 사람이 한 가구당 한 명씩만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범위를 50만 한살림 가구로 넓히면 소비되는 소주의 양이 이처럼 많다. 한살림에서는 최근까지 소주를 취급하지 않았다. 일 년에 네 차례, 선물용으로 나오는 정도였다. 예상되는 수요가 많음에도 공급되지 않는 이유, 포도주와 막걸리, 국화주가 나오고 있음에도 유독 소주만은 찾아볼 수 없었던 이유, 쌀이 적체되고 있음에도 대표적 쌀 가공품인 소주가 나오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하다. ‘한살림답게’ 소주.. 더보기
한 장의 김, 삼백서른 번의 수고 [그 사람 이 물품] 한 장의 김, 삼백서른 번의 수고 김형호 신흥수산 생산자 “언제까지 자고 있는겨. 넘들은 벌써 김 한 번 치고 왔는디.” 아침 해가 어스름하게 바다에 걸리기 시작할 무렵, 김형호 생산자가 밝은 표정으로 창문을 두드린다. 칼바람에 벌써 며칠째 바다에 나가지 못한 것이 가슴에 남아서였을까. 바람이 거짓말처럼 잦아든 이 날, 신흥수산 인부들은 새벽 4시부터 김을 치고 돌아왔다. 엉킨 머리를 대충 쓸어 빗으며 찾아간 선착장. 배 한가득 물김을 싣고 돌아온 인부들이 한 귀퉁이에 대충 피운 모닥불 앞에 모여 손을 비비고 있었다. 채취한 물김을 자루에 옮겨 담는 일은 함께 온 아낙들의 몫. 플라스틱 대야로 김을 퍼 나를 때마다 허옇게 뿜어져 나오는 입김이 일의 고됨을 짐작하게 하지만, 도란도란 .. 더보기
하이얀 보물에 순수함 가득 담은 이 하이얀 보물에 순수함 가득 담은 이 강용규 유애래 생산자 결이 다르다. 유애래의 강용규 생산자와 이야기하면서 한살림의 여타 생산자들과는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지구환경에 대한 감성을 키워간 점이나, 유제품이라는 2차 생산물에서 1차 생산물인 우유로 관심의 영역이 역주행한 점 등. 한살림 생산자라기보다는 벤처기업 CEO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그가 친환경 유기농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어릴 적 보낸 외국생활의 영향이 컸다. “‘지구에 발자국을 적게 남겨야 한다’라는 인식이 많은 곳이었어요. 덕분에 지구가 함께 잘 살기 위한 고민을 어려서부터 할 수 있었습니다.” 유제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축산학으로 유명한 UC데이비스에 다니면서부터. 초지에서 자란 젖소와 좋은 우유가.. 더보기
향긋한 유자로 피어난 뱃사람의 꿈 향긋한 유자로 피어난 뱃사람의 꿈 김광부 두란농장 생산자 두란농장으로 향하는 먼지 가득한 그의 차 안에서는 소금냄새가 났다. 뭐를 흘렸나 싶어 주위를 둘러봐도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원래는 배를 탔었어요.” 두란농장 김광부 생산자는 뜻밖의 말로 이야기는 시작됐다. 부산 수산대학을 졸업하고 해군장교를 거친 후 큰 배의 선장으로 오대양을 누비며 남들이 평생 만져보기도 어려운 재산을 모았었다는 김광부 생산자. 유자는 물론, 땅과도 평생 거리를 두며 살아왔던 그는 어떻게 한살림에 유자차를 공급하게 된 것일까. “여기가 유자밭입니다.” 전날 내린 비 때문에 질척해진 비탈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던 그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여전히 우거진 나무들만 가득하다. “자세히 보세요. 저게 다 .. 더보기
세상을 바꾸는 두부 한 모의 힘 세상을 바꾸는 두부 한 모의 힘 윤태수 한살림안성마춤식품 생산자 한살림안성마춤식품이 문을 열었다. 이름에 ‘한살림’이 붙지만 한살림안성마춤식품의 주체는 한살림 하나가 아니다. 한살림안성마춤식품이 위치한 안성시와 주변 6개 농협(고삼, 금광, 대덕, 미양, 삼죽일죽), 그리고 한살림까지 ‘생산-소비-행정’의 세 축으로 구성됐다. 한살림은 물론이고 생협 전체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업구성이다. 한살림안성마춤식품의 윤태수 생산자는 “한살림안성마춤식품이 한살림 생산지들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줄 것”이라 강조했다. “이제 한살림의 가공산지 중에서도 산지재배치를 통해 제2, 제3의 산지를 개발해야 하는 곳들이 늘어날텐데 지역농협과의 연대를 통해 설립된 한살림안성마춤식품이 좋은 사례가 될 것입니다. 공공성 측면에서도.. 더보기
25년 허브 외길, 진하게 우려낸 맛 보시렵니까 25년 허브 외길, 진하게 우려낸 맛 보시렵니까 조대회 향나눔 허브원 생산자 온화한 캐모마일, 달콤한 로즈마리, 청량한 페퍼민트…. 저마다의 빛과 향을 품고 있는 허브차를 한살림에 내는 조대회 생산자를 만나기 위해 전남 함평의 향나눔 허브원을 찾았다. “지금 서 계신 곳부터 저~기까지가 다 페퍼민트밭입니다. (아차하며 발을 떼자) 밟아도 상관없어요, 남은 것만 수확해도 충분합니다.” 호방하게 말을 던지는 모습이 그를 만나기 전 떠올린 허브 생산자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그가 허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벌써 25년 전. “농사를 결심하며 저에게 맞는 작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일본, 영국 등 외국 잡지들을 통해 허브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허브는 일반 사람들에게 생소한 존재였다. 특히.. 더보기
한 모금에 들이키는 풍성한 땅의 기운. 농업회사법인 생기찬 한 모금에 들이키는 풍성한 땅의 기운 농업회사법인 생기찬 최인수, 조현숙, 최영 농업회사법인 생기찬 생산자 상큼하게 시작해 개운하게 끝맺음한다. 입안에 텁텁한 기운도 전혀 남지 않는다. 좋은 맛에 건강함까지 더해지니 더 바랄 게 무엇이랴. 조현숙, 최인수 생산자 부부가 올가을 새롭게 공급하는 가시복분자즙 음료를 마시며 ‘한 번 맛을 본 사람이라면 계속 찾을 수밖에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미과에 속하는 가시복분자는 성장이 빨라 3월에 묘목을 심으면 6월 하순부터 수확할 수 있다. 연작이 어려운 것은 단점이다. 5~6년이 지나면 수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품질도 떨어져 다른 작물로 바꿔 심어줘야 한다. 가시가 많은 데다 유기재배를 할 경우 알맹이까지 작아 수확도 쉽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병충.. 더보기
하늘이 내린 곤충, 땅이 살린 나무 한살림 누에가루, 뽕잎가루 하늘이 내린 곤충, 땅이 살린 나무 한살림 누에가루, 뽕잎가루 조영준, 홍석녀 고니골농장 생산자 1984년 어느 겨울날이었다. 4대째 이어 온 양잠업이 값싼 중국 제품이 물밀듯 들어오면서 사양산업으로 분류되고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만 가던 때, 조영준 생산자는 이를 악물고 2만여 주나 되는 뽕나무에 제초제를 네다섯 번 연이어 뿌렸다. 다른 이들처럼 잡곡농사에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뿐이었다. 하지만 다음 해 8월, 그는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썩어 말라버렸을 줄만 알았던 뽕나무가 멀쩡히 살아 고고한 생명력을 주위에 흩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그의 삶이 변했다. 뽕나무와 누에와의 평생 인연이 시작됐다. 조영준 생산자는 걸음을 떼기 시작한 때부터 누에똥을 거르는 잠망을 들고 다니며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