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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지에서 온 소식/살리는 이

호미로 긁어 풀을 맬 수 있는 마지막 시간 '나의 5월'



5월은? 아슬아슬한 계절이다. 풀이 자라는 계절이다. 호미로 긁어 풀을 맬 수 있는 최후의 계절이다. 봄 감자 고랑을 호미로 쓰윽 긁던 4월과 달리 5월은 손으로 잡초를 쥐어 뜯어야 한다. 당연히 풀 매는 시간은 4월과 견줄 수 없이 느리기만 하다. 손목 인대가 늘어나고 손가락이 저려온다. 햇살은 따가워지고 내 몸을 숨길 넓고 푸른 잎들은 충분히 자라지 않았다. ‘에잇 이깟 감자 밭쯤이야!’ 그냥 놔두고 싶다. 풀도 생명인데 지들도 살아야지 위안하고만 싶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다. 포기하면 끝이다. 지금 뽑아내지 않으면, 전력을 다해 살아내지 않으면 모든 것이 아스라이 사라질지도 모를 5월.


나는 한때 1980년에 태어난 것이 슬펐다

열여덟 살이 되어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을 만났을 때,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를 만났을 때, 그것은 격정이 아니라 젊음이 공유될 수 없는 시대에 태어난 나 개인의 역사에 대한 슬픔이었다. 이 세계는 다가올 나의 5월을 불사르기에는 변할 것이 없는 밋밋한 계절로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나의 5월은 축복받은 계절임을 알게 되었다. ‘사람’과 ‘가축’과 ‘자동차’가 먹을거리를 두고 서로 경쟁하는 신나는 계절. 끊임없이 재포장되는 상품들과 거짓 돈들이 세상 모든 것을 사고 팔 수 있는 화려한 계절. 나의 5월은 홍보도 없이 아주 비밀스럽게 518 확장팩을 출시하였던 것이다.


이 축복의 5월에 비밀의 확장팩을 함께 거머쥔 한살림을 만난 것은 어쩌면 행운이었다. 몇몇 고수들의 절대적인 희생과 회합을 알았던 것이 행운의 단초가 되긴 하였지만, 그것보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 비밀을 스스로 선물 받은 24만명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 시작과 죽음은 결국 흙에서부터 시작 된다

멀지 않은 곳에서 지진 해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간 것이 채 잊혀 지지도 않은 계절. 우리는 밭을 갈고 씨앗을 뿌렸다. 비밀을 풀어낼 마지막 열쇠가 이 흙 속에 숨어 있다고 추정했다. 수많은 이들의 죽음이 인재인지 아닌지 분간할 겨를도 없이 흙은 싹을 틔우고 수많은 생명을 길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아직 윤곽을 알 수 없는 희망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방사능 비가 내린다고 했다. 양파 밭에 거적이라도 덮어둘까 한참을 고민해 보지만 이는 나의 5월에게 주어진 필연의 고난이라는 생각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불완전한 희망의 계절.

 

몸 축나는 생각하느라 늦잠이나 자지 말라

지금은 5월. 여전히 강은 파헤쳐지고 있고 비밀을 감추려는 이들은 원자력을 예쁘게 포장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직업은 농부. 피켓을 들고 강으로 달려 나갈 수 없다. 몸 축나는 생각하느라 늦잠이나 자지 말라는 핀잔을 들으며 밭으로 달려 나가 풀을 매야 한다.

이 계절의 나는 1980년에 태어난 것에 무척이나 감사한다. 지금 당장, 죽을 힘을 다해 풀을 매지 않으면 건강한 먹을거리는 커녕 더불어 사는 생명살림 세상은 오지 않는 계절. 온 몸을 던져 전력으로 살아내지 않으면 그 무엇도 변하지 않는 계절. 나의 5월.

게다가 한살림 24만 소비자는 ‘나의 5월’ 비밀의 확장팩을 함께 플레이하는 또 다른 내가 아닌가. 내가 해내지 못하는 5월의 몫을 그들이 함께 풀어 나갈 것이라는 걸 알기에 2011년 나의 5월은 여전히 계속된다.
 

 

글/김단 해남 참솔공동체 생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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