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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발자취/이야기가 있는 소식

키워보니 키우는 이의 마음을 알겠습니다.


키워보니 키우는 이의 마음을 알겠습니다

공명진 한살림고양파주 조합원/
웃음소리 소모임원

* ‘웃음소리’는 한살림고양파주 파주지역 조합원들이 아이가 자연과 더불어 밝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며 조직한 육아 소모임입니다.

4월 한살림고양파주 소식지에서 파주 천지보은공동체 김상기 생산자께서 배나무를 분양한다는 소식을 보고 육아모임인 ‘웃음소리’에서는 5가구가 모여 배나무 한 그루를 분양 받았습니다. 사실 우리들은 배가 많이 열리는 것보다는 아이들과 우리들만의 배나무가 생긴다는 것과 민통선 안으로 함께 소풍을 갈 수 있는 즐거움이 생긴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첫 번째 모임날. 임진강역에 모여 인원을 점검하고 민통선 안에 있는 배나무밭을 향해 갔습니다. 아이들에게 ‘웃음소리’ 배나무가 생긴다고 하자, 모두들 수다쟁이가 되어 차 안에서 들썩들썩 거리며 벌써 신이 났습니다. 배나무를 한 그루 정하고 나서 아이들은 준비해간 크레파스로 ‘웃음소리’라고 팻말도 달고, 생산자께서 준비해주신 맛있는 떡도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두 번째 모임날. 배봉지를 씌우러 다시 찾았을 때 배나무에는 참으로 신기하게도 귀엽고 예쁘게 생긴 배가 올망졸망 달려있었습니다. 잦은 비로 일정이 연기가 된데다 작년에는 거의 열리지 않았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봉지를 씌우면 벌레도 안 먹고 새들의 공격도 막을 뿐 아니라, 껍질이 부드러워지고 배 색깔까지 좋아진다고 하니 아빠들이 나서서 열심히 씌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도 아빠들에게 봉지를 열심히 건네며 한몫 했습니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힘 조절이 잘 안 되어 떨어지는 배가 생길 때는 아까운 마음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 잘 씌울 수 있었습니다. 배밭 입구 쪽에는 마침 오디 열매가 많이 열려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손과 입이 시커멓게 되도록 열심히 따먹었는데 아이들은 집에 돌아올 때도 언제 또 오디열매를 먹을 수 있냐며 내년에도 맛보게 되기를 잔뜩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추석이 지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배를 수확하러 간 날. 어느 새 배는 무럭무럭 자라 홀쭉했던 배봉지가 터질듯이 부풀어 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정해놓은 배나무로 가보니 팻말이 땅에 떨어져 있었고, 올 여름 잦은 비와 태풍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팻말을 다시 세우고 잘 익은 배를 따자마자 껍질을 깎을 새
도 없이 아이들이 달려들어 껍질째 먹어 보고 너무 맛있다며 한 개씩 들고 베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올 여름에는 비는 많이 내렸지만 수확하기 몇 주 전부터 날씨가 계속 좋아서 배가 맛있을 거라던 생산자님 말씀을 아마 그날 배를 함께 수확했던 사람들은 모두 공감했을 겁니다. 정말 물기 많고 달고 빛깔도 고왔습니다. 모두 모여 생산자께서 준비해주신 막걸리와 따끈한 감자, 김치를 먹으면서 뒷풀이를 했습니다. 김상기 생산자님이 올해 유기농 인증도 받아 그것도 함께 축하했습니다. 사실 올해도 날씨가 좋지 않아 배 수확량이 예년의 20% 정도밖에 안돼 많이 힘들었을 텐데 맛난 배를 맛보게 해주셔서 더욱 고마웠습니다.
내년에도 ‘웃음소리’ 아이들과 함께 배나무 키우며 고운 추억 만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