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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발자취/이야기가 있는 소식

진짜 된장 맛 좀 보이소~




글 전영화 한살림경남 조합원


시어머니도 친정엄마도 “어머니, 이거 참 맛있어요. 어떻게 해요?” 하면 “그거, 그냥 하면 된다. 싱거우면 소금치고, 짜면 물 부면 된다.”, “나 들면 다 한다.”……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으로 저를 격려해준다. 지난 9월 1일부터 22일까지 한살림경남에서 진행한 ‘김애자 생산자와 함께 하는 1기 전통발효음식교실’에 참여한 나는 나만의 장독을 만들 수 있을까?

 

“내는 성질이 뭐 같아서 미신도 안 믿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하지 말라는 것은 장에 다해봤어요. 근데, 어른들 말대로 안 되더라니까.” 하셨다. 지리산 한방골 오덕원 대표이자 전통음식연구가인 김애자 생산자는 전통발효음식교실을 위해 장독 속 메주자루를 그대로 들고 왔다. 광목자루 속에서는 메주가 된장이 되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손으로 막 문대지 말고, 요래 요래 살살 쪼개야 합니다.” 된장을 쪼개다 보니, 웬 처녀머리카락같은 실들이 기다랗다 나왔다. “여~보세요, 이게 바로 균입니다. 이거 냄새 맡아보세요. 여기서 된장의 좋은 냄새가 납니다.” 미생물 발효 효소의 이해가 없는 우리는 신기하기만 했다. 어느 참가자의 친정엄마는 “정말, 그게 좋은 거라고? 나는 상했다고 더러버졌다고 다 내삐는데... 그게 맞는 기라. 아이고~!” 하셨단다.

 

얼마 전 전국적으로 정전사태가 있었다. 제일 먼저 냉장고가 걱정이었다. 발효를 모르고 살기 때문에 전기가 없으면 당장에 먹을 게 없다. 그런데 미생물과 발효는 사계절 우리의 밥상을 오르내려야 되는 살아있는 음식이란 것을 새삼 깨달았다.

 

장류는 일 년에 딱 한번, 6월~8월에 발효가 된단다. 그래서 예부터 어머니들은 일 년 내내 식구들 먹거리 챙기느라 그토록 바쁘셨나 보다. 햇콩으로 메주를 만들어 장을 담그고, 조선간장으로 젓갈 만들고, 고추장 만들고, 김치 담고, 조청, 장아찌로 만들고 있는 우리의 모든 먹거리는 발효의 산물이었다.

 

오늘아침 우리집 밥상을 본다. 발효미생물이 있는 반찬을 찾아볼라치면 손발이 오그라든다. “이래갖고 무슨 애미라고... 얼굴에 십만 원 짜리 선크림 바르지 말고, 보이지 않는 오장육부에 내장에 돈을 써야 합니다. 제발 스스로 만들어 먹으라고 내가 이렇게 강의하는 거예요. 해보고 안되면, 전화해도 되고 찾아와도 되요. 밤에도, 낮에도 물어보면 다 가르쳐줄테니 꼭 만들어 먹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마음이 바빠요.”라는 말에 더욱 가슴이 저렸다. 돈이 암만 많아도 살 수 없는 날이 올 것만 같다. 겉포장만, 냄새만 된장이지 죽어있는 된장은 음식이 아닌 것이다. 살아있는 장들을 만들며, 내게도 용기가 생긴다. 내년에는 균들이 사는 장독풍경을 상상한다.

 

김애자 생산자의 매실·오미자·수세미·복분자 엑기스에는 잼도 같이 있었다. 발효가 잘 되면 설탕꽃이 피어난단다. 우리는 그 발효의 달콤함을 빵에 발라먹었다. 재료 각자의 수분상태에 따라 설탕의 필요량이 다른 것도 처음 알았고 법제과정도 배웠다. 모두들 그 건강한 맛을 경험하면서 이번부터는 진짜 엑기스를 담아 설탕꽃을 피우기로 했다. 만들며 맛보며, 내 입맛은 어린 날의 엄마를 찾는 듯 했다. 선생님의 짠맛은 엄마의 젖가슴같이 푸근했다. 선생님의 단맛은 엄마의 웃음처럼 부드러웠다. 선생님의 매운맛은 엄마의 따뜻한 손이었다. 이 모든 게 발효의 생명력일 것이다. ‘이 세상 모든 맛의 가짓수는 어머니 수와 같다.’라고 했던가. 김애자 생산자의 이야기와 손끝의 분주함은 세상 모든 엄마들이 자신들만의 장맛을 찾아가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손짓이었고, 이에 따르는 발효강의 수강자들이 실천을 하고 있었다.

 

강의를 듣는 우리들을 위해 정성스런 점심밥상이 고스란히 차려졌다. 더운 여름날의 김치는 보송보송했고, 물김치는 갈증을 씻어주었다. 쌈장만으로도 진수성찬을 먹은 듯 즐거웠다. 물 한 방울, 소금 한 톨 들어가지 않은 고추장으로 만든 떡볶이가 우리를 여고시절 수다쟁이로 변신시켜 주었다. 식혜는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단맛으로 그 진짜 맛을 보여 주었다. 음식으로 병을 다스려야 한다는 옛 말 그대로 보약 같은 밥상을 마주하였다. “남편들 사랑하고 좋은 음식으로 아침밥 잘 챙겨주고,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 만들어 가라”는 김애자 생산자의 말 속에서 친정엄마의 숨결을 느꼈다. “김애자 생산자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