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기쁨,
요모조모 쓸모 많은 매실
요즈음 한참 매실 주문을 받고 있다. 매실에 설탕을 넣어 매실청을 만들면 쓰임새가 많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미리 챙겨 주문한다. 이렇게 미리 주문하고 약정량만큼 공급하는 물품은 1년 내내 요긴하게 쓰는데 당장 급한 품목이 아니라서 차일피일 미루거나 이미 주문한 줄 알고 느긋하게 있다가 때를 놓치고 남들 다 공급받은 다음에 알게 되는 때도 있다. 나도 어느 해인가 때를 놓친 매실을 어머니 덕분에 공급받았던 적이 있다. 내가 기뻐하며 “엄마 덕분에 해결됐다.”했더니 어머니는 먹을 때마다 “내 덕이니라.” 하시며 어깨를 펴곤 하셨다.
한살림은 매실이 맺히기 시작할 무렵부터 계획량이 다 소진될 때까지 주문을 받아 열매가 통통하게 부푼 5월 말에서 6월 초에 공급한다. 한창 풋풋한 청매실과 남고 품종의 황매실, 두 종류로 공급하는데 황매실의 과육이 좀 더 단단하고 향도 짙다. 청매실은 크기에 따라 가격 차등을 두고 공급하는데 매실청, 매실주, 매실 진액을 만들려면 작은 것을, 매실 장아찌를 만들려면 큰 것이 편하다.
매실을 주문하고 나면 매실과 나의 관계는 특별해진다. 봉오리를 겨우 맺을 무렵 기온이 뚝 떨어지면 동해를 입어 수확량이 적을까 걱정되고 수확 전에 비바람이 세차면 낙과가 많을까 걱정이다. 물론 내게 오는 매실에 대한 걱정보다는 일 년 내내 힘든 일을 견뎌낸 생산자들 생각 때문이다. 기다리던 매실을 받으면 내가 키운 듯 대견하고 고마운데 시중의 매실과 비교할 수 없는 향기가 온 집안을 감싸 들어오는 식구마다 “매실 왔네!” 감탄을 한다. 그렇게 받은 매실로 매원을 만들어 급한 상황을 여러 번 넘겼고 여든이 넘은 나이에 대장암 수술을 받은 어머니는 아예 매실 홍보에 나서 넉넉히 담은 매원이 예상 외로 일찍 떨어지기도 했다. 매실청은 더운 여름, 물에 희석해서 갈증을 없애거나 여러 음식에 감칠맛을 더하는 양념으로 쓰기도 하고 장아찌는 입맛 없을 때 귀한 반찬으로 쓰인다. 매실 원액은 소화가 잘 안 되거나 과식으로 속이 더부룩할 때 상당한 도움이 되고 갑자기 체해 토하고 배가 몹시 아플 때 응급약으로 도 쓸 만하다. 큰아들이 어렸을 때, 밤중에 갑자기 토사곽란이 일어 병원에는 갈 수 없어 계속 매원을 먹여 효과를 본 적도 있다.
어느 때인가 미처 매원을 담그지 못한 친구가 남편이 동남아로 출장을 간다면서 물을 갈아 마시면 탈이 자주 나는 사람이라 걱정이라고 했다. 마침 그때가 매원에서 매실을 건졌는데 먹어보니 제법 맛이 있어 식탁 위에 두고 오가며 먹을 때였다. 액체는 갖고 가기 불편하니 매실을 넉넉히 싸 주었는데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한 번도 배탈을 앓지 않았다고 고마워한 적도 있었다. 그 후로는 우리도 집을 며칠간 떠날 때 밀폐용기에 매실을 담아서 다니는데 갈증을 없애거나 지루한 운전에 졸음을 쫓기 위한 군것질용으로 아주 쓸모가 있다. 또 알뜰한 사람들은 먹고 뱉은 매실 씨앗을 여러 번 삶고 잘 말려 베게 속으로 넣는데잠이 잘 오고 쾌적하다고 한다.
이른 봄 제일 먼저 피어 세상을 깨우는 향기도 좋지만 이렇게 유익한 물품도 흔치 않다. 아직 매실이 남아있다니 무척이나 더울 것이라는 올 여름 가족 건강을 위해 서둘러 주문해야겠다.
글 윤선주 한살림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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