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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발자취/자연에서 온 귀한 것

아식 씹는 소리에 물러가는 더위 한살림 오이

아삭

씹는 소리에

물러가는 더위


정미희 편집부·사진 류관희

 



오이처럼 친화력 있는 채소도 드물다. 함께 어울린 재료가 무엇이든 그 맛을 침범하지 않고, 고유의 청량한 식감으로 먹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김치, 냉국, 무침, 볶음, 찌개 등 조리법도 다양하고, 쌈장 하나만 곁들여도 요긴한 밥반찬이 된다. 비단 요리뿐인가. 95% 이상이 수분으로 이루어져 마라톤이나 등산을 할 때 갈증 해소를 위한 필수품이며, 열을 식히는 성질이 있어 여름철 피부 관리에도 이만한 것이 없다. 늦봄부터 늦가을까지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하디흔한 채소지만, 이 오이를 무농약 유기재배하기란 쉽지 않다.

한살림 오이는 충남 아산, 충북 청주·청원, 강원도 양구, 홍천 등에서 재배하며, 4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공급된다. 오이를 유기재배한 지 16년, 오이 농사는 28년 째 해오고 있는 충남 아산 송악지회 김명래 생산자는 오이를 유기재배한다는 것은 욕심 부리지 않고, 자연의 흐름을 따라가는 일이라고 말한다.

모든 농사가 그렇듯 오이 농사도 땅심을 기르는 것이 첫 번째다. 농사를 짓기 전에 흙살림 균배양체와 소똥 등의 거친 거름으로 흙에 산소와 영양를 공급하며 기초를 다진다. 1월에 파종한 오이는 4월, 3월에 파종한 오이는 5월, 7월에 파종한 오이는 9월부터 출하를 하는데, 파종 후 한 달여간 키운 모종을 정식해 수확하기까지 잔일이 많다.

오이는 자가수정을 한다. 벌이 수정을 하면, 오이가 곤봉모양이 된다. 열매가 맺히면 솎아내는 작업을 하는데, 한 개의 좋은 오이를 위해 2~3개의 오이를 솎아낸다. 오이를 수확하면서 솎아내는 작업도 함께 해준다. 3~4일에 한 번씩은 줄기를 내려주는 줄내림 작업을 한다. 오이가 땅에 닿으면 모양이 구부러지고 잘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기재배 오이는 수확을 시작한 지 60일 후에는 더 이상 수확이 어렵다. 진딧물과 천적을 넣어서 방제를 하지만 보통 생육 중기 이후부터 생기는 노균병이 시작되면, 뚜렷하게 잡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노균병은 잎의 앞면에 엷은 황색을 띤 반점이 생기는 증상을 시작으로 아랫부분부터 시작해 위쪽으로 번져 병든 부위가 점차 커지고 잎은 말라죽는다. 농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노균병이 늦게 오기를 바라며, 오이 밭을 자주 들여다보는 일뿐이다. 농사를 짓기 전, 땅을 건강하게 다져놓으면 노균병도 늦게 찾아온다고 한다. 남들이 따는 만큼 따야한다는 마음을 먹으면, 오이는 유기재배를 할 수가 없다. 그저 자연의 순리에 맡길 뿐이다.

오이도 기후변화로 농사 짓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해마다 ‘올해가 최고 힘든 해’가 된다. 올해는 이상기온으로 추위가 늦게까지 이어져 오이의 수확량이 많이 줄었다. 날씨 탓에 구부러진 오이도 더 많이 나온다고 한다. “농산물은 공장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날씨의 역할이 80~90% 예요.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지요.” 김명래 생산자가 덤덤히 말한다. 오이는 특별히 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비가 하루 오면, 2~3일은 오이가 나지 않고 병이 많이 온다. 맛도 떨어진다. 햇볕을 많이 봐야 하는 작물인데, 볕이 센 것은 차단막을 치면 되지만 햇볕은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수분이 부족하거나 저온일 경우에는 오이에 쓴 맛이 많이 난다. 오이가 자라기 불리한 외부 환경에 저항하기 위해 스스로 에라테린이란 물질을 발현하며 이겨내는 탓이다. 하늘과 함께 농사 짓는다는 말이 사무친다.


-김명래·장미영 충남 아산 송악지회 생산자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