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마늘농사 지을 수 있으려나

 

연이는 비와 안개 때문에 한숨 깊은

전남 해남 참솔공동체 정재열. 남순옥 생산자

 

 

“봄 안개는 죽안개”라고 한다. 가을 안개를 ”쌀안개”나 “천 석을 올리는 안개”라 부르는 것에 비해 너무 박한가 싶다가도 봄 안개가 얼마나 농사를 ‘죽 쑤게’ 하는지 들으면 마땅하다 싶다. 벼가 여무는 가을날의 안개는 따스한 온도를 유지하게 해 풍년이 들게 돕지만, 봄 안개는 볕이 식물에게 가는 길을 막고 숨구멍을 틀어막아 생장을 방해하고 병해를 입히고 그 습한 기운으로 병을 키운다. 마늘은 특히나 거의 다 키웠을 때쯤인 생장후기에 습한 기후에 노출되면 갈색 잎마름병에 걸리기 십상이라는데 전남 해남에는 지난 4월 한달동안 열여섯 날이나 비가 내렸다. 안개 낀 날도 계속되었다. 한참 푸르고 생기로워야 할 마늘잎이 빨간 점박이로 뒤덮이면서, 전남 해남 참솔공동체의 정재열·남순옥 생산자의 마음도 빨갰다가 까맸다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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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기사, 씨기사, 물기사 함께
볍씨 뿌려요

강원 홍천 명동리공동체 공동파종

 

(사진 왼쪽부터 이영옥, 최원국, 이재헌, 김양순, 이기숙, 김기섭, 이재관, 반종명, 류재한 생산자)

볍씨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살살 만지면서 요리조리, 그게 그거 같은데 강원 홍천 명동리공동체 생산자들 눈엔 그렇지 않은가 보다. 며칠 전에 좋은 놈으로 골라 소독하고 발아시킨 볍씨를 드디어 틀못자리에 뿌리는 날. 볍씨가 적당히 촉촉한지, 눈은 잘 틔웠는지 연신 살핀다. “못자리는 농사의 반”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니, 20년 넘게 친환경 벼농사를 함께 지으면서 2001년 전국 최초로 ‘농약 없는 마을’까지 선포한 명동리공동체 생산자들이 이런 일을 따로 한다면 서운하다. 공동 작업장에 모인 생산자들에게 물으니 볍씨를 깨워 소독하고 못자리 낼 준비를 하는 시기는 보통 4월 10일경부터이지만 정확히 며칠이라고 하기 어렵단다. 지역마다, 기후에 따라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는 “자두꽃이 필 때”라고 하고 누구는 “개구리와 도룡뇽이 알을 낳고, 개나리가 활짝 필 때”라고 한다. 이맘쯤, 볍씨를 물에 담그고 내리는 단비로 못자리를 했는데 ‘곡우’라는 절기 이름에는 농사에 필요한 비가 꼭 내리기를 바라는 소망이 들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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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뿌리 나고 구불구불한,
딱 한살림 콩나물 같은 삶
윤용진 아산제터먹이 사회적협동조합 생산자

여느 생산자들처럼 외길인생은 아니었다. 윤용진 생산자가 콩나물과 함께한 나날은 길게 잡아야 3년 남짓. 수십 년 농사인생이 즐비한 한살림에선 명함조차 내밀기 쑥스럽다. 굴곡도 많았다. 여러 일터를 거치는 동안 구풀대며 걸어온 그가 이제야 잔뿌리 하나 내디딜 곳을 찾았다. 아산제터먹이라는, 작지만 맑은 시루.
구불구불하고 잔뿌리가 많은 한살림 콩나물. 줄기를 곧게 밀어낼 만하면 뒤집어주고, 상대적으로 물을 적게 뿌려주기에 얻은 볼품없는 생김새이리라.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맞춰 몸을 뒤틀어도 보고, 스스로 물을 더 끌어들이기 위해 잔뿌리도 어영차 뻗어 보았기에. 지난한 과정을 몸으로 겪어낸 그 맛은 실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만날 지겹도록 들여다본다니까. 여자들 거울 보는 것 만치로.” 함께 일하는 생산자가 온기 반쯤 섞인 농담을 건넨다. 잔뿌리 하나 없이 곧게 살아오지만은 않았던 그이기에. 그가 내는, 그와 꼭 닮은 콩나물은 아삭하고 참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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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참, 딸기딸기하죠?
이근혁·김은심·정효진·서짐미 부여연합회 참벗공동체 생산자 부부

 

“사진 한 장 찍읍시다!” 이근혁 생산자의 전화 한 통에 한달음에 달려온 정효진, 서짐미 부부. 딸기밭에 나란히 선 두 부부는 온통 딸기 얘기뿐이다. 카메라 앞이 쑥스러워 자세가 영 어색한 두 남편과 잘 좀 해보라며 핀잔주는 두 아내, 부부끼리도 서로 닮았다. 농사와 삶의 뜻이 같은 다섯 농가가 모여 참벗공동체(작목반)를 만든 이래 말 그대로 참벗처럼 속살까지 다 아는 가까운 벗이 된 지 18년째다. 이근혁 생산자에게 정효진 생산자는 딸기 농사를 가르쳐준 선배고, 정효진 생산자에게 이근혁 생산자는 믿음직스러운 동지다. 10년 나이차는 무색하기만 하다. 서짐미, 김은심 생산자는 겨울이면 함께 김장을 담그고, 토박이씨앗살림운동을 하며, 봄엔 같이 씨를 뿌린다. “매일같이 얼굴 보니 서로 의지가 많이 돼요.” 친환경 딸기가 시간 지나며 제 본성을 찾아간다는 정효진 생산자 말처럼 참벗공동체도 이곳에서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람 본성을 되찾아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사람들 사는 모습이, 참다 디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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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영나영 맛 좋게 먹게

강경옥 김성훈 제주 생드르 구좌공동체 생산자 부부

부부는 사이가 좋았다. 티격태격 싸우다가도 즐거운 일을 함께 나누는 오누이처럼 하하호호 웃고 몸을 기댔다. 제주시 구좌읍은 아내 강경옥 생산자의 고향이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 당근밭 일을 도왔다. 파종할 때 씨 뿌리는 어른들 뒤를 따라 흙으로 씨 덮는 일을 했는데, 주로 동네 아이들 담당이었단다. 부산 남자 김성훈 생산자는 농산물 중개 일을 하다 제주 당근밭에서 스무살 아내를 처음 만났다. 무뚝뚝해 보여도 어린 아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도록 늘 배려하고 챙기는 자상한 남편이다. 천 평 넘는 겨울 당근밭에 섰을 때 ‘넓어서 황량하다’는 생각보다 ‘포근하고 따뜻하다’는 느낌을 먼저 받은 건 밭 주인들의 훤히 들여다 보이는 마음 때문이었을 게다. 당근 맛이 잘 들었는지 확인하려는 남편과 아깝다며 그만 뽑으라 말리는 아내. 그러면서도 “오해 맙서. 나 아침마다 당근쥬스 갈아주는 여자우다.” 사랑스럽게 농을 던진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부딪쳐 얻을 수 있는 귀한 친환경 당근의 수확을 앞둔 부부의 마음은 어느새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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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에, 온기 한 숟가락

윤희창 권오화 괴산 칠성유기농공동체 생산자 부부

11월 11일, 또 한차례 늦가을 비가 지나갔다. 윤희창, 권오화 생산자 부부는 며칠째 검은콩 수확에 한창이다. 남편이 앞서 걸어가며 콩을 베면, 아내가 그 뒤를 따라 콩대들을 싹싹 그러모아 가지런히 쌓는다. 호흡이 척척 맞는다. 스물한 살, 스물세 살 나이에 결혼해 아들 셋을 낳아 기르면서 농사가 곧 삶이 돼버린 부부의 일상은 언제나 밭에 머물렀다. 이렇다 할 요령 없이 종일 허리 숙여 씨를 심고, 풀을 뽑고, 새를 쫓다가 알곡을 거두는 친환경 잡곡 농사는 때론 슬픔이고 때론 기쁨이었다. 부부는 어린 시절 햇찹쌀과 수수로 만든 수수부꾸미와 쌀 밑에 검은콩을 깔고 짓던 밥 한 공기의 따뜻한 기억이 생생하다. 권오화 생산자는 지난겨울에도 수확한 콩으로 메주를 띄우고 손수 된장을 담갔다. 가족 모이는 새해 아침에는 손수 끓인 두부를 아들, 손주에게 먹이는 게 낙이다. 작년 이맘때 수확한 콩을 담아 수북했던 자루는 저만치 바닥을 드러냈다. 올해도, 알뜰살뜰 야무지게 농사짓고 살림했다. 한겨울 휴식을 기다린다.

글·사진 문하나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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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 농사, 알수록 더 행복해져요

강장원·조한순 홍천 유치리공동체 생산자

강원도 홍천군 유치 2리 작은 야산 밑에 펼쳐진 가을 배추밭은 온통 초록, 초록바다다. “이제 수확해도 되겠어요.” 손바닥을 펴 결구가 잘 된 배추의 윗부분을 꾹꾹 눌러본 강장원 생산자가 말한다. 배추가 꽃처럼 예쁘다. “농사 짓기 쉬우면서도 어려운 게 배추예요. 배추의 생리를 잘 알아야 해요.” 친환경농사를 지어온 18년 남짓한 시간 동안 그는 어느 학생들보다도 학구열이 높았다. 토양의 성질에 대해, 작물의 생리와 밭을 둘러싼 생태계에 대해 알면 알수록 농사엔 점점 더 자신이 붙고 마음은 즐거워졌다. 4년 동안 밤낮 공부하며 친환경 채소 농업 마이스터와 신지식 농업인장을 받았고, 유기농업 기능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이는 그가 밭과 학교를 오가며 던진 수많은 질문에 대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 강장원 생산자는 역으로 그의 밭을 찾는 학생들에게 농사를 가르친다. 그중 몇몇 젊은이들은 벌써 농촌에 터를 잡고 농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더 이상 떠나가는 농촌은 아니었음 좋겠어요. 모두가 돌아올 수 있는 농촌이어야죠” 

글·사진 문하나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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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톨, 이 귀한

 

정재국 이연화 횡성 공근공동체 생산자

귀농 4년차. 올 한해 정재국 생산자는 기꺼이 논에서 살았다. 논에 엎드려 종일 풀만 뽑았더니, 어느새 ‘오리농부’란 별명도 얻었다. 땅에 자리를 잡고 쑥쑥 크는 벼들과도 부쩍 정이 들어 이제 쌀 한 톨 한 톨 허투루 다루는 법이 없다. “귀한 낟알 하나하나가 막상 밥상에 오르면, 그만큼 귀한 줄 몰라요. 인간의 오만함이죠. 진짜 농부가 되려면 아직 멀었어요.” 20년 넘게 한살림 농사를 지어오신 어머니 이연화 생산자는 몸이 편찮으신 아버지 대신 논과 밭으로 매일 아들을 데리고 다녔다. 몸담은 공근공동체 어르신들은 만날 때마다 “논에 물이 부족하다.”, “풀이 많다.” 헤매는 그를 아들처럼 챙겼다. 그는 이제 키 작은 모들이 땅을 딛고 일제히 일어나 자라는 생명의 경이를 느끼고, 논에 오면 소리내 벼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공근공동체가 시작한 한살림운동을 계속 해나가고 싶은 꿈도 점점 커진다. 요즘은 소 돌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내년부턴 논과 밭에 소의 분뇨로 만든 퇴비를 넣어 순환농법을 시작해보려고요. 할 게 참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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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자란 포도가 더 단 법이죠

이홍재·구자희 상주 햇살아래공동체 생산자 부부


대학시절부터 바라 왔던 귀농의 꿈을, 18년 만에야 이뤘다. 경북 상주 화동, 포도밭 4,960여 제곱미터(1,500평)와 집 지을 동안 지낼 컨테이너 하나로 단출한 귀농생활을 시작했다. 한살림 포도 생산지인 상주 햇살아래공동체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고 첫해부터 감행한 친환경 포도농사. 쉬울 리 없었다. 무엇보다 베어도 베어도 되살아나는 풀의 무서운 기세 앞에 몇 번이고 주저앉고 싶었다. 거름을 얼마나 줘야 할지 몰랐고, 여느 농부들처럼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나무와 풀, 땅과 계절을 알기까지 몇 해가 흘렀다. 귀농 11년차. 부부는 이제 포도밭에서 뭇 생명들의 치열한 삶을 본다. 매년 흥하고 또 쇠하기를 반복하는 풀과 벌레들, 그 틈바구니에서 포도가 더 알차게 영글어 간다는 것을 안다. “너무 편해도 포도가 맛이 없어요.” 해마다 속을 갉고 들어오는 애벌레들, 땅의 양분을 나누는 풀들. 생산자에게도 포도나무에도 만만찮은 환경이지만, 부부는 묵묵히 때를 기다린다. 오늘보다 내일, 포도는 더 달고 맛있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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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살림하는사람들

바다 먹을거리를 책임져 달라는데 

그만둘 수 없잖아요?

이광술 대구상회 생산자

그의 삶은 멸치에 이어져 있었다. 멸치중개인이었던 부친의 뒤를 이은 지 50년. 헤아릴 수 없는 멸치를 만지고 보았다. ‘좋은 멸치가 아니면 공급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한마디는 오랜 세월 지켜온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다. 한살림과의 인연은 1991년부터. 멸치중개인으로 이름 있던 그에게 제안이 왔다. 소량이라 이문은 없지만 멀리서 찾아온 손님이기에 멸치를 보냈다. 안타깝게도 당시 한살림에는 보관설비가 없어 좋은 멸치를 보내도 쉽게 변질이 됐다. 속이 상해 공급 중단 의사를 밝히던 날, 만류하던 실무자의 말이 생생하다. “바다 먹을거리를 책임져 달라는데 그만둘 수 없잖아요?” 그날부터 한살림 생산자로서의 자긍심이 생겼고 대구상회의 우선순위는 한살림이 되었다. 멸치가 귀한 해에는 수소문을 해서라도 좋은 멸치를 보냈다. 한살림도 보관설비를 갖춰 품질을 유지했다. 올해 일흔 이광술 생산자, 그 뒤를 잇는 아들 이정훈 생산자 역시 한살림이 우선이다. 또다시 멸치와 함께 깊어진 인연 속으로 멸치가 들어오기 시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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