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재배 생산농가들의 변화를 일구어 낸 한살림 홍삼액
/도상록 가림다농산 생산자

글·사진 박혜영 편집부

 도상록 가림다농산 생산자

 

이글거리는 햇볕과 후끈한 열기로 끊임없이 땀이 배고 몸이 추욱 늘어지며 기력을 잃기 쉬운 계절이다. 국가차원의 에너지 절약 분위기 속에 냉방온도의 하한선이 높아지면서 더 그러한데 체력이 약한 노인과 아이들에게 이 여름은 더 험난한 계절일 것이다. 기력이 떨어져 온몸의 에너지가 방전된 듯한 느낌이 들 때 우리는 불현듯 한살림 홍삼액을 떠올린다.

홍삼액과 어린이홍삼액을 한살림에 내고 있는 가림다농산의 도상록 생산자는 토종종자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함양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05년부터 한살림에 홍삼액을 내게 되면서, 맨몸으로 홍삼액 가공에 뛰어들었고 함께 할 인삼재배 농가를 찾아 이리저리 발로 뛰며 갖은 고생을 했다. 당시는 1년에 14회 이상 농약을 뿌리는 재배방식이 대부분이었던 때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다니며 땅과 사람을 살리는 생명농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한살림 저농약 기준에 맞추어 재배를 함께 하도록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손수 농약을 덜 쓰는 인삼농사를 지으며 꾸준히 설득해나가자 함께 하자는 농가가 하나둘 늘었고 마침내 10농가에 이르렀다. 내년부터는 어렵다는 무농약 재배에도 도전해볼 계획이라고 한다.

홍삼액을 만들려면 홍삼이 있어야 하고, 그 전에 홍삼을 만들 수삼이 있어야 한다. 도상록 생산자는 가장 기본적인 원료가 되는 수삼의 재배부터 정성을 들인다. 10개의 농가에서 인삼을 6년근으로 계약재배하고 있는데, 모든 인삼밭이 서해안의 바람이 잘 드나들고 황토 흙인 서산과 태안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서리 내리는 기간이 짧아 인삼이 자랄 수 있는 일수가 길고, 여름에는 서해로부터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고온으로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줄여준다. 황토는 다른 흙에 비해 사포닌 등 인삼의 유효성분을 높여주는 데 한 몫 한다. 재배방식에 있어서도 한살림 기준에 맞춘 저농약 재배로 제초제와 화학비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병충해가 많은 인삼의 특성상 이를 막기 위해 불가피하게 뿌리는 농약도 미생물 제제와 자연분해가 빠른 저독성 농약을 사용하고 있다. 이마저도 꼭 필요할 때만 연 3~5회 최소로 사용하고 있다. 건강식품을 만드는 원재료가 되는 인삼인 만큼 안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5년근일 때 한 번, 6년근으로 수확 직전에 또 한 차례 농약잔류검사를 해서 합격판정을 받은 수삼만을 홍삼 가공용으로 사용한다.

식약청 GMP(건강기능식품 품질 및 제조 관리기준)인증을 받은 생산시설

한살림 홍삼액의 원재료가 되는 홍삼은 잔뿌리나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 6년근 수삼을 통째로 가공한다. 시중의 보통 홍삼과는 차별되게 두 번 찌고 말리는 과정을 통해 수삼의 약성을 부드럽게 변화시켜 사포닌의 함량, 소화흡수율 높인다. 그리고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HACCP(위해요소중점관리)보다 더 까다롭
게 심사하는 GMP(건강기능식품 품질 및 제조 관리기준)인증을 받은 가공시설에서 깨끗하게 정성을 다해 달인다. 홍삼의 건더기는 걸러내고 다시 미생물 검사를 한 뒤 포장된다. 매번 생산이 끝나면 스테인리스 가공시설의 모든 탱크와 관을 끓는 물로 두 차례 이상 소독한다. “건강을 위해 조합원들이 찾는 물품이니 만큼 해가 될 만 한 건 최소로 줄여야죠.” 도상록 생산자는 말한다. ‘좋은 것을 가려 뽑는다’는 뜻을 가진 ‘가림다’라는 말뜻과 닮았다.

홍삼액의 원재료가 되는 수삼은 6년근이지만 ‘개갑’이라고 불리는 딱딱한 인삼열매에서 싹을 틔우는 과정과 모종을 키우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8년근이라 볼 수 있다. 오랜 기간 쌓인 생산자의 수고로움과 정성이 마침내 조합원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대지로부터 생명의 기운을 한껏 머금고 자란 인삼으로 만든 한살림 홍삼액, 세상사에 시달려 몸과 마음이 지칠 때 가장 먼저 생각날 한살림 물품이다.

* 인삼은 일반적인 통칭으로 수삼과 홍삼 모두 이에 속한다. 수삼은 밭에서 수확한 생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를 찌고 말린 것이 홍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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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한 조합원들과 함께 만든 여름생활필수품,

<지원상사> 이인웅․이숭재 생산자


글․사진 문재형 편집부


‘섭씨 34도’, 얼마 전 뉴스에서 보도된 대구의 5월 하순 기온이다. 봄이 참 더디게 온 듯 한데 가는 건 참 빠르다. 옷장 속의 여름옷을 꺼내고 시원한 바다와 계곡을 생각해보지만 일상에서 겪어야할 더위는 만만치가 않다. 특히, 더위가 시작됨에 따라 왕성해지는 식중독균과 모기 등을 떠올리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더군다나 살림을 책임지는 입장에서는 혹시 도마나 식탁에 세균이 번식할까, 아이가 모기에 물려 가려움으로 고생할까 고민도 드는데 생각보다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우리 몸에 안전하고 환경 친화적인 생활용품을 공급하는 한살림 가공생산지. 지원상사의 주방용살균수, 모기기피제 등을 이용하는 것이다.

2010년 6월에 한살림 가공생산지가 된 지원상사는 현재, 경기도 군포의 200㎡ 남짓한(약 60평) 작은 규모의 공장에서 10명이 채 되지 않는 생산자들이 섬유탈취제, 옷장용탈취제, 주방용살균수, 냉장고탈취제, 생활살균수, 키토산비누, 모기기피제, 세탁조세정제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생산하며 굵은 땀을 흘리고 있다. 대학 동기로 4년 내내 붙어 다니다 함께 지원상사를 설립했다는 이인웅, 이숭재 생산자는 “피톤치드(측백나무잎 추출물)덕분에 여기까지 왔지요.”라며 지원상사를 시작한 계기를 이야기해주었다. 졸업 후, 수요가 있다는 말을 듣고 덜컥 시작한 피톤치드 무역은 쉽지 않았고 남는 피톤치드를 어떻게 이용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아기가 있었던 이숭재 생산자는 아기에게 해롭지 않은 섬유탈취제를 떠올렸고 갑자기 신종플루가 발생해 자연스럽게 친환경 섬유탈취제와 생활살균수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30대 초반이었던 그들에게 두려움은 없었다. 생활용품을 배운 적이 없어 이 분야의 유명한 교수들을 찾아가 무작정 피톤치드를 이용해 친환경 생활용품을 만들고 싶다며 피력했고 열정에 마음이 움직인 교수들은 기본이 되는 배합비율을 알려주었다(이때 인연으로 현재 박사급 자문위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원상사의 물품은 실제 완성되기까지 적게는 20번, 많게는 100번이 넘는 실험을 거쳐 탄생된 것들이다.

이야기를 나누며 시중에선 왜 이런 생활용품을 만들지 않을까란 궁금증이 들어 시중 물품과의 차이점을 물었다. “시중 생활용품은 원가 절감을 위해 화학약품을 사용하지만 저희는 좋은 물품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 천연재료로만 만들지요.” 이인웅 생산자의 대답에는 자부심이 넘친다. 실제 지원상사의 생활용품은 식물추출물·1차가공품만을 이용하며 인공향·인공방부제·인공화학물을 넣지 않고 생산한다. 제조과정은 일정한 배합비율에 따라 재료들을 섞는 어떻게 보면 단순한 과정이지만 화학약품이 들어가지 않고 천연재료로만 만들기에 날씨의 영향에 민감하고 배합비율의 정확함과 섬세함이 필요한 작업이다. 사실, 지원상사의 물품은 천연재료를 사용하기에 시중에 공급한다면 높은 가격을 형성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한살림은 시중의 복잡한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를 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다.


“조합원 분들의 의견을 통해 물품은 완결성을 띄게 됩니다.” 최근 공급하기 시작한 세탁조세정제를 설명하며 이숭재 생산자가 말한다. 지원상사의 물품은 한살림연합 가공품위원회의 까다로운 심의를 거쳐 공급하게 되는데, 심의 과정에서 나오는 다양한 의견들을 통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채워져 물품의 효과가 더 확실해지는 것을 경험한다고 한다. 실제 처음 준비했던 세탁조세정제는 위원회에서 확인했을 때 세탁기가 녹스는 현상이 발생하여 이 부분을 보완하였고, ‘세정 후 찌꺼기의 깔끔한 배출’이란 의견도 반영하여 완성되었다.

인터뷰 내내 열의를 보인 두 생산자는 6월 10일부터 공급되는 ‘긁지말고 모물린’ 설명에도 열심이었다. 의약품은 아니지만 모기 물린 데를 비롯하여 가려운 곳에 바르면 피부를 진정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물품이다. 작년 여름부터 공급되어 군대 간 아들을 둔 조합원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모기기피제’와 같이 사용하면 모기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며 두 사람은 시원스럽게 웃는다. 올 여름, 지원상사 물품과 함께라면 건강하고 시원한 여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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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일하도록 돕는 것이 나의 일

전남 고흥 채진희 생산자

 

 정미희·사진 문재형 편집부

 

빡빡한 도시 생활에 봄이 주는 활력은 놀랍다. 경작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더라도 돋아나는 새싹과 만개한 봄꽃 앞에서 설레는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한 뼘 땅을 딛기도 여의치 않은 콘크리트 숲에 살아도 여전히 우리가 자연과 이어져있다는 것을 이 계절이 일깨워준다. 봄이 되면 농사꾼이 되길 갈망하다 한살림 소비자에서 생산자가 된 사람이 있다. 전남 고흥에서 고사리 농사를 짓는 채진희 생산자를 만났다.

 

전남 고흥군 남양면 망주산 자락에는 마치 아기가 주먹 쥔 손을 높이 들어 올린 것처럼 돋아난 햇고사리들이 지천이다. 고사리를 꺾느라 분주한 손길들이 갓 돋아난 어린 순을 밟을까 새색시 걸음으로 걷는다. 고사리 꺾는 재미에 신명이 나지만 허리를 한 번씩 굽혔다 펼 때마다 절로 신음소리가 나는 고된 작업이다. 봄철에 채취한 고사리는 잎이 부드럽고, 대가 순하며, 고유의 향이 있어 먹기에 가장 좋다. 이렇게 4월 초순부터 시작된 고사리 수확은 6월 중순까지 이어진다. “예쁘게들 돋았지요.” 채진희 생산자가 바쁘게 손을 놀리며 하는 말이다. 얼굴에는 장성한 자식을 대견스레 바라보듯 뿌듯한 미소가 어려 있다.

그가 한살림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5년 일이다. “동네에서 한살림 공급차량을 봤어요. 이런 것도 있었구나, 왜 몰랐을까 하며 그 길로 조합원이 됐지요.” 장을 보러 갈 때마다 ‘살 것이 없다, 먹일 것이 없다’ 생각하며 먹을거리를 고민하던 터에 한살림을 만났다. 그 후로 집 근처 쌍문매장을 매일 왔다갔다하며 열심히 한살림을 했다. 두 아들을 데리고 생산지도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다녔다. “생산지에 갈 때마다 늘 ‘나도 한살림 생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때 생산자들 만나며 보고 들은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는 물품위원회, 환경위원회, 매장책임자 등의 활동을 하다 한살림성남용인이 창립되기 이전, 한살림서울 분당지부에서 지부장을 지냈다. “저처럼 다양하게 한살림 활동을 해본 사람도 없을 거예요”하며 소리내 웃었다.

농사짓는 삶을 꿈꿨지만, 하루아침에 가족 모두가 삶의 터전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주말농장에서 농사를 짓고, 농사 관련된 일을 하며 때를 기다리다 아이들을 모두 대학에 보내고, 2007년 그가 먼저 이곳에 내려왔다. 수도권과 거리가 멀지만 내가 서 있는 곳이 고향이고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가꿔놓은 논과 밭이 아니라 망주산 자락에 터를 잡은 것은 농사만이 아니라 자연속의 뭇 생명들과 더불어 사는 농장을 그렸기 때문이었다.

내려온 첫 해부터 쉬지 않고 움직이는 그를 보며 마을 분들은 제초제와 농약의 필요성을 설득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마을 분들이 여자 혼자서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실 때마다 여자니까 된다고 했죠.” 유기 퇴비로 부지런히 땅심 기르고, 땡볕에서 풀을 매며 점점 농부가 되어갔다. 고사리는 산에서 친환경 재배를 짓기에 적합하겠다 싶어 시작한 작물이다.

바닥을 깊게 파고 고사리 종근을 심은 뒤 다다음해부터 수확을 시작했다. 퇴비는 봄철 수확 전과 수확 후 6월 말에서 7월 초에 한 번, 이렇게 두 번 준다. 풀은 1년에 다섯 차례 정도 매주어야 한다. 수확 철에는 3일에 한 번씩 고사리를 꺾어 찜통에 5분 정도 찐 뒤 햇볕에 하루 정도 말려 70g씩 소포장해 한살림에 내고 있다. 혼자서는 이 일을 다 감당하기 어려워 때마다 동네에서 일손을 찾지만, 다들 연세 많은 노인들뿐이라 쉽지가 않다. “저는 제가 농사지은 걸 맛있게 먹었다는 소리를 들을 때 제일 행복해요. 작년에 수없이 들었지만, 그 때마다 기분이 좋았어요. 사실 제가 한 일이라고 해봐야 원칙을 지키면서 자연이 하는 일을 거든 것뿐이지만요.”

그는 소비자일 때도 농산물의 소중함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농사를 짓고 난 뒤 생산자들에 대한 고마움이 다시 깊어졌다고 했다. 소비자조합원들이 자신의 지은 농산물의 가치를 알고 먹어줬으면 하는 욕심도 생겼다고 했다. “한살림에서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책임지면서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이루어 나간다는 말을 하잖아요. 농사를 지으며 그 말의 의미가 더 절실하게 이해됩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로 묶여있는 존재예요. 하나지요.”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건 행운인데 자신이 그렇다고 했다. 채진희 생산자. 행복한 기운을 가득 품고 그의 손끝을 통해 자라는 고사리가 있어 참 고맙다. 도시와 농촌이 마음과 마음으로 닿을 수 있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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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담은

한살림 꿀초

몸에 해롭지 않은 천연 밀랍초 만드는

담양 대숲공동체 빈도림·이영희 생산자 부부


글‧사진 문재형 편집부

 

1970년대 후반, 농촌의 깊숙한 마을까지 전기가 보급되면서 초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본래 어둠을 밝히는 게 초였다면 이제는 특별한 분위기와 고요함을 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실제 많은 현대인들이 촛불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하지만 시중에서 흔히 사용하는 초들은 대개 석유 정제 물질인 파라핀으로 만들어 몸에 해로울 수 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 연구에 따르면 파라핀 초는 타면서 독성이 강한 톨루엔과 벤젠을 내뿜는다고 한다. 다행히 한살림에서 취급하는 초는 천연 밀랍으로 만든 꿀초이기에 독성 화학물질로부터 자유롭다. 밀랍에는 벌이 채집한 꽃가루인 화분과 천연 항생제 프로폴리스가 함유되어 있다. 자연에서 온 꿀초. 봄기운 가득한 춘분 날, 꿀초를 만드는 담양 대숲공동체 빈도림ㆍ이영희 생산자 부부를 만나고 왔다.

 

손때 가 묻어나는 5평 남짓한 공방을 방문했을 때, 이영희 생산자는 초에 들어갈 심지를 알맞은 크기로 자르고 있다가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이내 빈도림 생산자가 공방으로 들어와 악수를 청했다. 사실 빈도림ㆍ이영희 생산자는 조금 특별한 이력을 가진 분들이다. 본래 독일 출신인 빈도림 생산자의 독일 이름은 디르크 휜들링, 2005년 귀화한 푸른눈의 한국인이다. 대학시절 한국학을 공부하다 한국에 푹 빠져 한국으로 유학을 오기까지 했다는 그는, 담양에 정착하기 전 대구에 있는 한 대학의 강단에 서는가 하면 독일 대사관에서도 근무했었다. 이영희 생산자는 반대로 독문학을 공부했고 독일로 유학을 갔다 와 전문 번역가의 길을 걸었다. 둘은 독일 대사관에서 우연히 마주쳤고 자연스럽게 부부의 연을 맺었다. 결혼 후, 서울에서 생활을 하다 담양으로 귀촌을 하게 됐는데 토종벌 밀랍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꿀초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꿀초를 만들면서 틈틈이 두 나라의 책을 번역하고 있다. 빈도림 생산자가 한국어로 된 책을 독일어로, 이영희 생산자는 독일어로 된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다.

 “꿀초는 자연에서 온 밀랍을 모습만 바꾸는 것이라 해롭지 않아요. 다만 만들자면 손이 많이 가죠.” 꿀초 만드는 과정에 대해 질문을 하자 이영희 생산자는 직접 보여주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꿀초를 만들자면 먼저 밀랍을 녹이는 일부터 시작한다. 밀랍은 벌집을 만들기 위해 벌이 꿀을 먹고 신진대사를 통해 체내에서 생산하는 물질로 벌이 꿀 6kg을 먹어야 밀랍 1kg이 나온다. 원래는 토종벌의 밀랍을 사용했는데, 토종벌이 귀해져 지금은 양봉의 밀랍을 쓰고 있다. 밀랍을 섭씨 70~80도가량 되는 따뜻한 물에 중탕으로 녹여 밀랍물로 만든 뒤 필터로 두세 번 불순물을 거른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나중에 초가 잘 타지 않는다고 한다. 밀랍물이 준비되면 꿀초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방법으로 성형 한다.

 굵은 소망초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특별히 주문 제작한 기계틀들에 가지런히 심지를 매단다. 기계를 작동시키면 기계틀이 움직여 밀랍물이 담긴 통에 심지를 넣었다 빼고 이어서 다음 기계틀들도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처음 심지를 담갔던 기계틀이 한 바퀴 돌아 다시 밀랍물에 닿는 시간이면 밀랍물이 굳어 성형이 되는데 기온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략 이 작업을 30~40번 반복 하면 소망초가 완성된다. 완성된 소망초 밑 부분에는 흘러내린 밀랍물이 굳어 고드름 모양의 밀랍이 달린다. 이 부분을 칼로 잘라내는 게 아니라 뜨거운 물에 담가 녹여서 매끈하게 하는데 보통 정성이 아니다. 작고 납작한 티라이트초는 심지를 성형틀 가운데 고정시킨 뒤 밀랍물을 붓는다. 시간이 지나 딱딱하게 굳은 초를 성형틀에서 분리하면 완성이다.


공방에서 사용되는 도구들은 주문 제작하거나 직접 만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원래우리나라에서 꿀초는 신라시대부터 사용됐다고 전해지지만 이들이 꿀초 만들기를 작정하고 시작할 무렵, 한국에는 그 방법을 아는 이가 없었다. 다양한 실험을 해 보았지만 여의치 않아 독일에까지 가서 기술을 배워 와야 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초를 만드는데 필요한 도구도 마땅한 게 변변히 없었다. 이렇게 꿀초 만들기를 시작한 뒤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금의 공방을 이루게 됐다고 한다. “초를 끌 때, 핀셋으로 심지를 기울여 촛농에 담가서 끄면 연기도 안 나고 심지도 코팅이 되어 좋아요.” 빈도림 생산자는 꿀초를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방법이니 이것을 조합원들께 꼭 전해달라고 했다. 또, 티라이트초는 여러 번 불을 붙였다 끄면서 사용하는 게 아니라 1~2회에 걸쳐 모두 태우는 것을 감안해 만들었다고 하니 이용할 때 참고하면 좋겠다 싶었다.

 한살림에서는 지난 2008년부터 매월 마지막 금요일 ‘전등을 끄고 생명의 불을 켜요’라는 이름으로 한 시간가량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캔들나이트 행사를 권유해왔다. 빈도림·이영희 생산자는 한살림에 꿀초를 공급하기 전부터 여성환경연대 등과 캔들나이트 행사를 함께 해왔다. “기왕이면 꿀초를 사용하는 게 몸에도 좋고 환경에도 좋겠지요?” 두 사람은 밝게 웃으며 말한다. 다가오는 금요일, 꿀초를 켜고 온가족이 둘러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환한 얼굴로 꿀초를 만들던 두 생산자처럼 우리 일상도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짤막한 초 이야기 최초의 초는 밀랍으로 만든 초로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에서 만들어 썼다는 기록이 있다. 밀랍 이외에도 소기름, 유채기름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초를 만들었으나 19세기 값싼 파라핀이 발견됨에 따라 오늘날 대부분의 초는 파라핀을 원료로 만들고 있다. *위키백과(ko.wikipedia.org)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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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잡곡 농사 함께 이끌어요

국내산 옥수수, 친환경 곡물의 맛과 영양 그대로

한살림 후레이크

도울바이오푸드 영농조합법인 정진옥 대표


글‧사진 박은진 편집부

 

지리산 자락 노고단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우리 농산물과 천연 재료들로 ‘옥수수후레이크’ 등을 생산하는 도울바이오푸드영농조합법인(이하 도울)이 있는 마을이다. 도울은 얇게 눌러 편 옥수수를 바삭한 식감을 위해 사용하는 기름과 팽창제를 사용하지 않고 구워서 만든 ‘옥수수후레이크’뿐만 아니라 무농약 이상의 현미와 흑미 등 국내산 친환경 곡물을 주원료로 만드는 ‘곡물후레이크’와 ‘딸기아침’, ‘옥수수아침’, ‘오곡아침’ 등을 한살림에 내고 있다. 후레이크는 얇은 조각을 뜻하는 영어단어 플레이크(flake)에서 온 말로 곡물을 가리키는 시리얼(cereal)이라는 단어와 혼용되고 있다. 우유 등에 말아서 식사대용으로 먹는 플레이크류는 1980년에 국내에 소개되었고 그 편의성 때문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도울에서 내는 먹을거리들은 우리나라 최초로 유전자조작의 우려가 없는 국내산 옥수수와 친환경곡물 등을 원료로 할 뿐만 아니라 칼슘, 비타민 등을 인위적으로 첨가하지 않았다. 시중에 팔리고 있는 플레이크들은 어디서 어떻게 길러졌는지 확인할 길 없고 유전자조작의 우려가 있는 수입산 곡물들에 수많은 첨가제들을 넣어 만든 게 대부분이다. 도울에서 만드는 한살림 먹을거리들은 시중제품들과 외양은 비슷할지 몰라도 가치와 의미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크다. 특히 옥수수는 국산 자급률이 1% 안팎에 불과한 귀한 먹을거리라는 점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1997년에 설립된 도울은 처음에는 현미 쌀눈 등으로 만든 생식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그런데 2000년대 말부터는 밀려든 수입 유기농 식품들 때문에 경영난을 겪게 된다. 그 무렵인 2010년, 남편의 건강 때문에 구례군으로 귀농한 정진옥 대표(45)가 도울을 인수해 시설투자 등을 단행한 끝에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관리하는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을 충족시킨 위생적인 첨단 설비를 갖추게 되었다. 현재는 함께 일하는 직원 35명, 부지면적 약 4950㎡(1500평)에 2640㎡(800평) 공장건물을 갖추고 있다.

“우리 농사를 지속할 수 있게 하려면 기초농산물의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고 여기에는 무엇보다 ‘가공’의 역할이 크죠.” 정진옥 대표는 도울에서 친환경 곡물 등을 원료로 가공식품을 만드는 일을 유기농농사 만큼이나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살림의 경우도 2012년 기준으로 가공식품의 원재료로 소비된 곡물이 전체 소비량의 39%에 달한다. 도울은 신선한 원료로 안전하고 맛있게 만드는 것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도정한 지 1주일 이내, 늦어도 최대 2주를 넘기지 않고 가공을 마친다. 필요한 만큼 원료를 구매하고 그 양만큼 생산하는 식으로 생산을 치밀하게 관리하는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현재 국내 시리얼의 시장규모는 2100억 원(2010년)에 달한다. 이 가운데 대기업인 1,2위 업체들이 각각 57.4%, 39.1%씩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제품은 거의 모두 수입산 곡물로 만들고 있다. 예컨대 옥수수플레이크의 경우 K제품은 호주산 옥수수 88%, P제품은 브라질산 옥수수 89%다. 한살림 옥수수후레이크는 국내산 옥수수 83.7%다. 시중 제품에는 보존료를 비롯해 인공합성 첨가물과 비타민 등을 넣지만 한살림옥수수후레이크에는 유기농설탕과 화성한과에서 만든 쌀조청, 마하탑에서 만든 볶은소금이 전부다. 비타민 등 영양제조차도 인공으로 첨가하지 않았다. 한살림의 물품정책과 도울의 경영철학이 모두 반영된 결과이다. 이런 원칙은 한살림 곡물후레이크와 오곡아침 등 한살림 물품들에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다.

도울에서 내고 있는 식사대용품들의 제조공정은 이렇다. 원료인 곡물 등을 깨끗이 세척하고 건조시켜 분쇄한 뒤 압출성형기로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든 후 냉각시킨다. 그리고 플레이크류는 곡물을 납작한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압착한다. 압착설비가 고가라 대기업 외에는 플레이크류 생산에 뛰어들기 어려웠는데 2013년부터는 도울에서도 설비를 갖춰 물품을 내고 있다. 곡물을 압착한 뒤에는 식감을 조절하기 위해 적당히 건조시킨다. 그리고 맛과 향을 위해 조청과 유기농 설탕 등을 분사해 곡물을 코팅하고 건조·냉각을 거친 뒤 포장을 하면 제조 공정은 끝난다. 그 뒤 만에 하나라도 섞여 있을지 모를 이물질을 걸러내기 위해 금속검출용 엑스레이를 통과시켜 점검을 마친다.

도울의 직원들은 대부분 출퇴근을 하면서 자기 농사를 유지하는 인근의 여성 농민들이다. 이들 모두가 100% 정규직이다. 일정한 소비처를 마련해 친환경농업을 살리는 일 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일자리로 지역경제에도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친환경 농산물을 가공한 건강한 먹을거리로만 생각해도 그 의미가 작지 않지만 식량자급, 농업살림, 지역살림 어느 것 하나 빠질 게 없는 자랑스러운 한살림 먹을거리. 지리산 아래 도울바이오푸드 영농조합법인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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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짓는 마음으로 빚은 메주

충북 괴산 솔뫼영농조합


글‧사진 정미희 편집부

 

우리 음식에서 장(醬)이 빠지면 이야기를 시작하기 어렵다. 조물조물 나물무침부터 보글보글 찌개까지 장맛이 음식 맛을 좌우하는 우리나라 식문화에서 음력 정월에 장 담그는 일은 한 해 집안 농사로 비견될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이 농사는 전 해 동짓달 좋은 콩을 골라 메주를 쑤는 일부터 시작된다. 한살림은 매년 음력 정월 솔뫼영농조합과 오덕원, 또바기콩사랑에서 유기농 콩으로 만든 메주를 조합원들에게 공급한다. 이제 곧 조합원들 댁에서 깊은 맛을 내는 간장과 된장으로 변신할 메주를 만나러 충북 괴산 솔뫼영농조합에 갔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이평리. 한살림대전 겨울생명학교에 참석한 아이들의 소리로 북적대는 솔뫼 어울림터에 도착하니 아직 채 녹지 않은 눈과 함께 흙바닥이 꽁꽁 얼어있다. “올해 메주를 띄울 때는 어찌나 춥던지…. 영하 25도였어요.” 지금 추위는 별 것 아니라며 유정호 솔뫼영농조합 간사가 메주 숙성실로 이끈다. 추운 날씨에 생산자들이 종종 걸음을 치며 옮겼을 메주들은 온기 가득한 발효실에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건조되고 있었다. 하얗게 곰팡이 꽃을 피운 채 가지런히 놓여있는 메주를 보니 시골집에 온 듯 훈훈하고, 반갑다.

솔뫼영농조합은 경북 상주시와 충북 괴산군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유기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모임이다. 1994년에 더 이상 농약 치며 농사 지을 수 없다고 결심한 사람들과 농사에 대한 꿈을 품고 귀농한 사람들, 모두 5가구가 모여 유기농사를 짓자고 마음을 모아 시작하였다. 그리고 1996년 1차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자는 생각으로 가공공장을 세우고 영농법인을 만들었다. 현재 17가구, 24명의 회원이 함께 농장을 꾸리며 집집마다 다양한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한다. 친환경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찹쌀, 토마토, 고추, 옥수수 등 10여 가지를 농사지어 한살림에 내고, 가공품으로는 고추장과 메주를 만들고 있다.

솔뫼영농조합에서 가공공장을 설립하고 먼저 낸 것은 엿기름과 고추장이었다. 농사만 짓던 농부들이 집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던 엿기름과 고추장을 계량화하고 규격화된 맛을 내는 일은 녹록치 않았다. 김철규 가공위원장은 그때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맨땅에 헤딩’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어려운 형편에도 대출을 받아 가공공장을 세운 건 솔뫼영농조합 생산자들의 복지와 노후대책 등 미래에 대해 꿈꾸었기 때문이었어요. 야심차게 시작했는데,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솔뫼영농조합 생산자들은 소비자 조합원들의 입맛에 맞는 장맛을 내기 위해 아침, 저녁으로 회의를 하며 함께 장맛을 연구했다. “농장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장을 만드는 과정을 매일 체크하고, 기록하고…. 생각처럼 되지 않는 부분은 회의를 통해 토론하면서 고쳐나갔어요.” 당시 가공부장을 맡고 있었던 김용옥 생산자(현 솔뫼영농조합 영농부장)는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처럼 누가 와도 과정만 충실히 지키면 솔뫼의 장맛을 낼 수 있을 정도로 공정이 표준화 되었다고 했다. 인고의 과정을 거쳐 엿기름과 고추장의 맛을 인정받았고, 4년 전부터는 메주를 빚어 한살림에 내기 시작했다.


고추장, 엿기름, 그리고 메주까지 그 과정을 늘 함께 한 김철규 생산자는 새로운 가공품을 생산하는 것을 모험에 비유했다. “솔뫼영농조합에도 <정글의 법칙> 병만족의 김병만 씨처럼 타고난 사람들이 있어요. 문제에 부딪치면 처음인데도 능숙하게 해요. 메주를 쑤는 게 밥을 잘 짓는 것과 똑같더라고요. 밥을 고슬고슬하게 잘 짓는 사람이 메주도 잘 쒀요.” 콩을 삶을 때 넣는 물의 양, 불 조절, 삶는 시간…. 어느 것 하나 처음부터 알았던 것은 없었다. 그저 몸으로 부딪쳐 알아낸 소중한 지혜들이 지금의 메주를 만들어 냈다. 한살림 메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렇다. 한살림에서 수매한 유기농 콩을 잘 씻어 솥단지에 담가놓고 콩 삶기를 반나절, 뜸들이는 과정까지 거쳐 콩이 다 삶아지면 분쇄기로 부순 뒤, 메주틀에 넣고 모양을 만든다. 모양을 굳히기 위해 공장 안 건조기에서 하루 정도 건조시킨 뒤 볏짚이 깔린 발효실에서 5일 동안 메주를 띄운다. 이 때 메주는 볏짚이 깔린 따뜻한 방바닥의 훈훈한 온기 속에서 볏짚이나 공기로부터 여러 가지 미생물을 받아들이며 발효 과정을 거친다. 발효실에는 계속 선풍기와 환풍기를 돌려 신선한 공기를 공급한다. 이런 환경에서 메주 안에 착생된 미생물이 콩의 성분을 분해하며 고유한 맛과 향을 내게 된다. 이후 소비자 조합원 댁에 가기 전까지 약 한 달 반가량 건조실에서 건조 과정을 거친다. 메주 건조실은 지난 가을 황토벽돌로 내장을 하고 솔뫼영농조합 생산자들이 원목 등을 이용해 건조용 선반을 만들었다. 속리산과 대아산 등이 둘러선 청정지역 솔뫼에 생각이 올 곧은 이들이 정성을 다해 빚고 띄워 황토방에서 건조 숙성시킨 메주가 어떤 맛을 빚어낼지 충분히 상상이 되는 대목이다. 올해는 이렇게 1,500말의 메주를 쑤었다.

그러나 그 동안 어려운 일도 많이 겪었다. 메주로 장 담그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일부 조합원들로부터 더러 메주에는 당연히 들어있는 곰팡이 등을 불평하는 항의를 듣는 경우가 있다. “농사만 짓던 사람이 소비자 조합원들에게 안 좋은 반응을 들었을 때는 마음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것도 다 메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건강한 제조방식으로 전통의 맛을 내는 것이 솔뫼영농조합의 목표지요. 소비자 조합원들이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저희 메주를 즐겁게 드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장의 재료는 사람이 준비하지만 장맛을 완성하는 것은 햇빛, 공기, 물, 미생물이라고 한다. 농사처럼, 결과는 자연이 맡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장 담그는 것이 한 해 집안 농사라는 옛말은 틀린 것이 없다. 잘 띄운 한살림 메주로 그 농사는 이미 절반은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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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합없음의 가치를 이어가는 건강살림이

한결웰빙 황인숙 생산자


글‧사진 정미희 편집부

 

새해 소원이나 결심을 물으면 대개들 “건강”을 말한다. 다이어트와 운동, 금연 등을 결심하는 것도 신년벽두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그러나 건강이 사전에 정의된 대로 “육체적으로 아무 탈 없고 튼튼한 상태”라기보다는 유행에 따르는 몸매의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참된 건강은 몸과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매일의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시류를 좇아 무리하게 자신의 몸을 맞춰가는 게 아니라 몸의 주인으로서 균형 잡힌 생활을 유지하는 일, 그것은 일상에서 한살림을 실천하는 일과 다름없을 것이다.

  1989년 10월, 대치동에 새로 둥지를 튼 한살림과 인연을 맺고 조합원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몸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강의한 이가 있었다. 대치동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의사 황인태 씨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조합원으로 시작했다가 자신의 생각과 한살림이 추구하는 바가 잘 맞는다 싶어 뒤에 자문위원이 되었고, 유기농을 왜 먹어야 하는지,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에는 어떤 약효가 있는지, 밥에 대한 철학과 농산물이 가진 특성 등을 알려주며 조합원들이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지키도록 도왔다. “초창기에 회원 가운데 한의사는 저밖에 없어서 그 일을 하게 된 거죠.” 겸손하게 말하지만, 그는 한살림 자문위원뿐 아니라 전국농민회총연맹 진료부장, 귀농운동본부 건강수련회 등에서 활동하며 건강강좌를 열어 자신의 한의학 지식을 이웃들과 나누려고 애써왔다. “자기 몸을 스스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가벼운 질병은 스스로 고칠 수 있는 지식을 배우는 것은 한의사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일반인이 당연한 누려야하는 건강권리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살림에 쌍화차, 총명차, 십전차, 경옥고 등을 내고 있는 한결웰빙의 황인숙 생산자는 1992년부터 오빠 황인태 씨와 함께 일하며 이런 생각들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서른 살 때 고향인 여수에서 서울로 올라온 황인숙 대표는 산지와 경동시장 등으로 약재를 구하러 다니는 일부터 시작했다. “먹는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어야 한다는 게 오빠의 지침이었어요.” 하물며 약재는 어땠을까. “약재가 좋지 않으면 지은 약에 약효가 없다고, 약재의 가짓수가 적게 들어가더라도 좋은 약재를 쓰는 것이 낫다고 배웠죠.” 1995년 10월부터 그녀는 오빠가 운영하는 한의원과 함께 마로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십전대보탕, 경옥고, 쌍화탕, 총명탕을 한방처방대로 만들어 한살림에 냈다. 일상적으로 한의원에 가기에는 문턱이 높은 소비자 조합원들이 스스로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물품을 내자고 오빠와 뜻을 모은 것이다. 약재를 고르는 일부터 납품기한을 맞추는 것까지 가족이라고 봐주는 것 없이 엄하게 일을 가르치는 오빠 때문에 어려웠지만 그 때 힘겹게 익힌 조제법과 귀하게 인연 맺은 약재 구입 경로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20년 동안 신뢰로 이어져온 관계예요. 구입처를 늘 세심하게 점검하면서 약재의 질을 지켜가고 있어요. 약재 하나만큼은 자신 있어요.” 황인숙 대표는 약재를 납품하는 사람의 성품을 보면 약재의 질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오랫동안 다져온 약재와 약재를 대는 이들에 대한 자부심이 한결웰빙이 내는 모든 물품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2001년 여러 가지 사정으로 마로마을의 문을 닫고 그는 다시 고향 여수로 돌아와 한동안 휴지기를 가졌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한결 같은 마음으로 차를 달인다는 마음을 담아 ‘한결웰빙’이라고 이름을 짓고, 식품제조허가를 받았다. 준비를 마친 뒤 2006년 4월부터 예전과 같은 사양으로 한살림에 쌍화차, 십전차, 총명차와 홍옥고, 경옥고를 내고 있다. 특히 쌍화차는 한살림 조합원들의 겨울 건강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덕분에 긴 감기가 낫고, 몸이 개운해졌다며 직접 전화를 한 조합원도 있을 정도다.

  “한살림을 하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유해졌어요. 항상 잘 웃고, 남에게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 됐죠.”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변화한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는 그는 일상에서 한살림을 사는 바로 그런 이다. 그런 사람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내는 물품들. 더욱 믿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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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선 나무 아름드리 그늘을 만들다


다자연식품 윤은숙 생산자


글‧사진 정미희 편집부

 

홀로서기를 강조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다. 제 손으로 심거나 거두지 않았는데도 매일 마주하는 밥상과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옷, 교통수단 등 우리가 누리는 수많은 것들을 돌이켜봐도 그렇다. 누군가의 노동이 반영된 수많은 사용가치들에 의존해 우리는 살아간다. 시장에서 교환되는 돈과 물품만으로는 서로 얽히고 의존해 있는 생명의 그물코를 설명하기 어렵다. 우리가 한살림을 하는 이유, 협동조합을 말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함께 모여 서로를, 지역을, 생명을 살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 동해바다가 넘실대는 강릉 주문진에 있는 다자연식품을 다녀왔다.

한살림강릉(현 한살림강원영동생협)은 1988년 강릉소비자협동조합으로 출발해 1991년 한살림의 회원조직이 되었다.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거의 없던 그 시기부터 지역에서 한살림을 꾸리면서 이들은 지역살림에도 관심을 두었다. 먼저 지역사회의 자원을 발굴하면서 건강한 물품을 생산하는 생산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1991년 무첨가제 젓갈을 ‘아침바다’에 위탁 생산한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새로운 생산지 개발에 힘썼다. 하지만 여러 가지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2004년 한살림에 가공식품을 내던 한 생산업체가 원산지 기준을 어긴 물품을 납품하는 사고가 생기면서 한살림에 면, 어묵, 만두 등의 공급이 중단되는 사태가 생겼다. 당시 한살림강릉의 임원들과 현재 한살림강원영동의 상무이사이기도 한 다자연식품의 김대진 대표는 강릉지역에 대체 생산지를 개발하겠노라 계획을 세웠다. 사회적기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한 때였지만, 생산자조직을 자활공동체로 하기로 하고 함께 일할 사람들은 강릉의 자활후견기관을 통해 모집했다. 그렇게 추천을 받은 세 명의 직원과 함께 한살림강릉, 한살림 생산자연합회, 강릉시 등의 지원을 받아 다자연식품을 세우고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윤은숙 생산자는 당시 창업 구성원 중 한 명이다. 그는 38살의 나이에 다자연식품에 입사해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집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데 전념하던 그녀는 남편이 근무 중 화상을 입어 당분간 일을 할 수 없게 된 형편이었다. 다자연이 그랬듯이 그녀도 아무런 기술이나 경험이 없었다. 일이 곧 배움이었고,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입사하자마자 발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일이 많고, 바빴다. 새로운 물품을 생산하기 위해, 더 맛있는 재료의 배합을 찾아내기 위해 누구의 일이랄 것 없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팔을 걷어붙였다. “그래도 그때가 제일 기억에 남고, 즐거웠던 것 같아요. 뭔가를 함께 성취해 나가는 과정이 정말 보람 있었죠.” 개발에 성공해 함께 손뼉 치며 기뻐했던 그 짜릿한 순간들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생산자들이 공급일을 맞추기 위해 새벽까지 일할 때면 한살림강릉의 실무자들이 공장에 나와 함께 일손을 보탠 적도 많았다. “그게 한살림 식구들의 좋은 점인 것 같아요. 그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어요.”

냉면에 이어 2005년 9월에는 만두 생산이 시작됐고, 2006년에는 초고추장과 양념고추장, 피자류 등을 만들어 공급했다. 좁은 공장 안에서 한살림에 필요한 물품을 계절과 물량에따라 번갈아가며 생산한 것이다. 이렇게 정신없이 달려오던 2007년, 자활공동체로 전환할 수 있는 요건이 충족되어 강릉시로부터 자립을 하게 되었다. 다자연식품은 자활공동체의 성공사례로는 강릉에서 유일하고, 나라 안에서도 모범사례로 꼽힌다. 다자연식품을 만들고 지켜봐 온 김대진 대표는 이것을 ‘생활자의 힘’ 덕분이라고 말한다. 총 직원 20명 중 여성생산자가 18명, 이들이 생활을 꾸려가기 위해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자활공동체의 성공률은 7% 정도라고 합니다. 근로의욕이 떨어지고, 조직의 자립이 어렵다는 것이 한 이유이지요. 하지만 우리에겐 윤은숙 생산자 같은 사람들이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그녀는 2010년 10월 다자연식품의 공장장이 되었다. 어려운 상황들을 꿋꿋이 견디고, 지혜롭게 헤쳐 나가며 일궈온 성과였다. “작년에 5년만에 부득이하게 만두 가격 인상을 실현시키면서 앞서서 나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느꼈어요. 이것이 책임자의 일이구나, 생각했죠. 어려움도 있지만 배우면서 일하는 즐거움도 있어요.” 그녀는 일을 할 때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소중한 그 일을 엄마의 마음으로 한 것이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한 힘일 것이다. 그는 얼마 전 생산자들과 함께 직접 매장을 찾아가 소비자 조합원들을 만났다. 다자연식품을 소개하고, 물품을 알리는 자리에서 그녀는 생산자들의 다른 이면을 보았다. “다자연식품에서 일하는 엄마들이 처음에는 그냥 돈을 벌기 위해 이곳에 왔어요.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어요. 소비자 조합원들께 설명하는 것을 들으니 일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커요. 내 아이가 먹을 것을 만드는 엄마의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 아주 자랑스러웠어요.” 그녀의 표정에 보람과 자부심이 가득하다.

현재 다자연식품은 한살림에 내는 만두류와 초고추장, 양념고추장, 불고기갈비양념 등을 생산하고 있다. 얼마전까지 생산하던 피자는 사회적기업인 행복한빵가게를 설립해 모두 양도하였다. “지역에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데 동참해 기쁘고, 자랑스러워요.” 고난을 뚫고 어렵게 뿌리를 내렸지만 어느덧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다른 이웃들에게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다자연식품 생산자들의 환한 미소가 눈부시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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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로 살림의 꿈을 키워내다

더불어세상영농조합 김영학·박숙 생산자 부부

 

글·사진 정미희 편집부

 

약과 음식은 그 근원이 같다는 말이 있다. 좋은 음식은 약과 같은 효능을 낸다는 뜻이다. 소화가 안 될 때 매실차를 마시고, 감기에 걸렸을 때 배를 달여 먹는 것처럼 적절한 음식은 약이 된다. 한살림에 도라지액을 내는 ‘더불어세상영농조합’의 김영학, 박숙 생산자에게 도라지는 몸과 마음을 살린 치유의 음식이다.

서울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365일 쉬는 날 없이 잠도 줄여가며 일을 하던 김영학 씨의 몸에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성인 아토피가 생기고, 알레르기성 비염은 날로 심해졌다.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상해가던 차에 그는 어릴 적 할머니가 재배하시던 도라지를 떠올렸다. 입버릇처럼 도시 생활은 10년만 하고, 시골로 내려가겠노라고 말하던 그는 귀농해 도라지를 키우며 몸과 마음을 살리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정리했다.

귀농할 곳을 찾던 이들은 아무런 연고가 없던 충북 청원에 운명처럼 자리를 잡고, 도라지 농사를 시작했다. “도라지 농사는 풀만 잘 뽑으면 된다고 해서 초보 농사꾼에게는 쉽게 들렸죠.” 두 사람 모두 농사 경험이 없었기에 풀이라면 한 해 한두 번 뽑아주면 되리라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16,528㎡의 도라지밭에는 사계절 각기 다른 풀이 났다. 비가 오면 우비를 입고, 한여름에는 쏟아지는 땡볕을 짊어지고, 추우면 옷을 여미며 잡초를 뽑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보며 남자가 제초제를 뿌릴 일이지 잡초를 뽑고 있다고 비웃으며 3년도 못 견디고 나갈 거라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부부는 처음 귀농할 때 마음먹은 그대로 친환경 농사를 포기하지 않았다. 내 몸도 살리고, 땅도 살리는 건강한 농사를 짓겠다는 결심대로 묵묵히 잡초와 싸웠다. 그러다 고안해낸 방법이 가위 제초다. 참깨씨보다 작은 도라지씨를 뿌리고 싹이 틀 때까지 땅이 들썩이면 안 되니 풀의 생장점을 가위로 잘라내는 것이다. 가위는 이듬해 도라지의 꽃대가 올라오면 꽃대를 자르는데도 쓰인다. 뿌리로 영양이 가 튼실한 도라지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한 해 농사에 20개 정도의 가위를 쓴다. 눈물과 땀으로 정성 들여 키워 3년 만에 도라지를 수확했지만, 판로가 문제였다.


이들 부부가 무엇보다 보람되게 생각하는 것은 마을이 변화한 점이다. 마을사람들도 도라지에 관심을 갖고 함께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도라지로 인해 마을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어서 보람을 느껴요. 혼자만 잘 살려고 시작한 농사가 아니니까요. 도라지 작목반을 시작해 12명이 함께 도라지 농사를 짓고 있어요.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30대 후반, 아무런 연고 없이 이곳 청원에 들어와 도라지를 키워낸 이 부부의 무모한 도전은 이웃과 더불어 아름답게 꽃을 피워가고 있다. 막상 생도라지를 출하하려고 하니 대개들 잔뿌리가 거의 없고, 모양이 예쁜 것들만 원했다. 판매할 수 있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았다. 판로를 찾아 직접 서울 아파트 장터에도 나가봤지만 녹록치 않았다. 생각 끝에 작은 중탕기와 포장기를 들여놓고 도라지액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비단 도라지즙을 짜는 데서만 그치지 않고 예로부터 기침이나 천식 등에 도움을 주는 음식으로 알려진 도라지로 목 건강을 돕는 건강음료를 만들어 보기로 하고 책을 찾아가며 배합 재료들을 고민했다. 부부는 도라지액을 가공할 때도 모든 재료를 국내산 친환경농산물로 사용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직접 재배한 생도라지 2년근 외에 배, 대추, 생강, 은행, 진피, 모과, 유근피, 감초 등을 모두 국내산으로 구해 사용했다. 아이들도 먹기 좋은 도라지액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재료의 배합비율, 달이는 시간, 넣는 재료 등을 고민하며 한의사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기도 하면서 연구를 거듭한 지 1년여 만에 지금 한살림에 내고 있는 것과 사양이 같은 도라지액이 탄생했다.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기도 하고, 목을 많이 쓰는 보험설계사나 학교 선생님들께 찾아다니면서 판로를 개척하다 2008년 가을부터 ‘도라지세상’이라는 이름으로 한살림청주에서부터 시작해 한살림대전, 그리고 한살림충주제천에도 도라지액을 내기 시작했다. 2009년에는 농진청의 여성창업자금을 지원받게 되어 공장 시설 등을 개선하고, 한살림생산자회원들과 소비자회원 53명이 모여 더불어세상영농조합을 결성할 수 있었다. 작년 7월부터는 도라지액이 한살림연합 물품으로 공급되면서 생산량이 많이 늘어나 연간 2.3톤의 도라지액을 생산해 공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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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농사로 쫀득한 손맛 나는 찹쌀을 내다

홍천 명동리공동체 찹쌀 생산자 최원국 씨


글‧사진 김세진《살림이야기》편집부


농민 최원국. 그가 내민 명함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수식어가 간결하다. 올해 쉰아홉인 그가 농사를 지은 햇수만 마흔 해니 다른 말이 필요 없을 법도 하다. 그중 주관대로 농사한 햇수, 스스로 농사꾼이라 여기며 땅을 일군 해가 서른다섯 해다. 군대 간 3년, 중장비 운전기사 3년을 뺀 햇수다.

 그는 난 지 100일 만에 이곳, 홍천군 남면 명동리에 왔고 한곳에서 자라 뿌리내렸다. 어릴 적 그의 아버지는 500~600평 쌀농사를 지었지만 집에는 늘 쌀이 귀했다. 내다팔기도 빠듯했던 사정을 알기에 스스로 농사를 지을 생각이 없었다. 젊은 패기에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다. 도시에서 중장비운전을 배웠고 그를 필요로 하는 현장에서 일한 지 몇 해, 그는 자기 업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진짜 농부가 되기로 했다.

 농민 최원국은 33,057.851㎡ 논에서 찹쌀을, 밭 6,611.57㎡에서 고추·찰옥수수·들깨·콩을 내고 있다. 지금은 내외가 거뜬히 감당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1970년대 식량증산을 강조하는 정부 방침에 따라 그도 농약을 쳤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구토와 두통에 시달렸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던 때, 이웃에 살던 농부가 무농약농사를 제안했다. 20년 전인 1994년, 여섯 가구가 건강한 농사를 짓기로 마음을 합쳤다. 지금은 서른다섯 농가가 된, 홍천생산자연합회 명동리공동체는 이렇게 시작됐다.

 뜻은 좋았지만, 높이 자라는 풀과 늘어가는 벌레를 어쩔 도리가 없었다. 틈만 나면 유기농을 먼저 시작한 곳을 견학했다. 목초액, 현미식초, 청초 발효액 등 제초에 좋다는 것도 실험했다. 하지만 결과는 탐탁찮았다. 실패를 거듭한 지 네댓 해 되던 1998년 오리농법을 알게 되었다. 오리는 풀이 자라지 않게 했고 벼물바구미 같은 해충도 먹어 없앴다. 예상 외로 대풍년을 맞았다. 이듬해인 1999년, 유기농가가 열다섯으로 늘어났다. 정부에서 친환경농업특성화시범마을로 지정했고, 성남 지역의 소비자와 연결해 주어 판로도 확보했다. 걱정이 없다고 생각했다. 가을을 맞았고 잘 영근 쌀을 들고 성남으로 갔다. 그런데 소비자들이 시골에서 쌀을 보내오고 있다, 식구들이 얼마 없다는 말을 하며 쌀을 사 주지 않았다. 막막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한살림의 박재일 전 회장이 이 마을을 방문해 어렵게 농사지은 벼를 한살림에서 소비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초상집이 잔칫집이 된 날이다. 그렇게 해서 2000년부터 한살림과 인연이 닿았다. 살 길을 찾은 최원국 생산자와 유기농부들은 주민을 설득했고,


 2001년 명동리는 전국 최초로 ‘농약 없는 마을’을 선포했다. 힘든 유기농사를 짓자고 말로만 할 수 없어, 먼저 나서 이웃의 둑에 김을 매주기도 했다. 그리고 연구를 거듭했다. 2003년 조류독감이 돌면서, 우렁이농법을 시작했다. 우렁이는 풀만 먹고 해충을 먹지 않아 염려가 되었지만 다행히 피해가 크지 않았다. 독성이 강한 풀에서 채취한 성분으로 만든 유기 해충퇴치제를 쓰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작물 자체가 튼튼해져 병충해를 거뜬히 견뎌낸 것이다. 화학비료를 쓸 때는 도열병이나 이화병나방 폐해가 심했는데 그런 일도 사라졌다.

 제 생명을 스스로 지키는 작물들이 기특하다. 어느덧 올해도 찰벼가 노랗게 영글었다. 농사 다 지었다고 생각해도 될 텐데 그는 오늘도 두둑 어딘가로 논물이 흐르지는 않는지 발품을 팔고, 듬성듬성 자란 피를 손으로 죽 뽑는다. “유기농은 손끝농사”라는 그의 손이 억세고 야물다. 손끝농사라 농부의 손맛을 탄 것일까. 햅쌀로 지은 밥 한 수저 뜨니 윤기가 자르르. 고것 참 찰지다.  

Posted by 한살림연합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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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할아버지다!!!!!!

    2014.12.14 17:44 [ ADDR : EDIT/ DEL : REPLY ]
  2. 반갑습니다!! 훌륭한 농부 할아버지를 두셨네요 ^^ 정말 기분 좋으시겠어요~!

    2014.12.29 10: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