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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지에서 온 소식/살리는 이

농사 짓는 마음으로 빚은 메주 충북 괴산 <솔뫼영농조합>

농사 짓는 마음으로 빚은 메주

충북 괴산 솔뫼영농조합


글‧사진 정미희 편집부

 

우리 음식에서 장(醬)이 빠지면 이야기를 시작하기 어렵다. 조물조물 나물무침부터 보글보글 찌개까지 장맛이 음식 맛을 좌우하는 우리나라 식문화에서 음력 정월에 장 담그는 일은 한 해 집안 농사로 비견될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이 농사는 전 해 동짓달 좋은 콩을 골라 메주를 쑤는 일부터 시작된다. 한살림은 매년 음력 정월 솔뫼영농조합과 오덕원, 또바기콩사랑에서 유기농 콩으로 만든 메주를 조합원들에게 공급한다. 이제 곧 조합원들 댁에서 깊은 맛을 내는 간장과 된장으로 변신할 메주를 만나러 충북 괴산 솔뫼영농조합에 갔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이평리. 한살림대전 겨울생명학교에 참석한 아이들의 소리로 북적대는 솔뫼 어울림터에 도착하니 아직 채 녹지 않은 눈과 함께 흙바닥이 꽁꽁 얼어있다. “올해 메주를 띄울 때는 어찌나 춥던지…. 영하 25도였어요.” 지금 추위는 별 것 아니라며 유정호 솔뫼영농조합 간사가 메주 숙성실로 이끈다. 추운 날씨에 생산자들이 종종 걸음을 치며 옮겼을 메주들은 온기 가득한 발효실에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건조되고 있었다. 하얗게 곰팡이 꽃을 피운 채 가지런히 놓여있는 메주를 보니 시골집에 온 듯 훈훈하고, 반갑다.

솔뫼영농조합은 경북 상주시와 충북 괴산군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유기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모임이다. 1994년에 더 이상 농약 치며 농사 지을 수 없다고 결심한 사람들과 농사에 대한 꿈을 품고 귀농한 사람들, 모두 5가구가 모여 유기농사를 짓자고 마음을 모아 시작하였다. 그리고 1996년 1차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자는 생각으로 가공공장을 세우고 영농법인을 만들었다. 현재 17가구, 24명의 회원이 함께 농장을 꾸리며 집집마다 다양한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한다. 친환경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찹쌀, 토마토, 고추, 옥수수 등 10여 가지를 농사지어 한살림에 내고, 가공품으로는 고추장과 메주를 만들고 있다.

솔뫼영농조합에서 가공공장을 설립하고 먼저 낸 것은 엿기름과 고추장이었다. 농사만 짓던 농부들이 집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던 엿기름과 고추장을 계량화하고 규격화된 맛을 내는 일은 녹록치 않았다. 김철규 가공위원장은 그때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맨땅에 헤딩’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어려운 형편에도 대출을 받아 가공공장을 세운 건 솔뫼영농조합 생산자들의 복지와 노후대책 등 미래에 대해 꿈꾸었기 때문이었어요. 야심차게 시작했는데,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솔뫼영농조합 생산자들은 소비자 조합원들의 입맛에 맞는 장맛을 내기 위해 아침, 저녁으로 회의를 하며 함께 장맛을 연구했다. “농장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장을 만드는 과정을 매일 체크하고, 기록하고…. 생각처럼 되지 않는 부분은 회의를 통해 토론하면서 고쳐나갔어요.” 당시 가공부장을 맡고 있었던 김용옥 생산자(현 솔뫼영농조합 영농부장)는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처럼 누가 와도 과정만 충실히 지키면 솔뫼의 장맛을 낼 수 있을 정도로 공정이 표준화 되었다고 했다. 인고의 과정을 거쳐 엿기름과 고추장의 맛을 인정받았고, 4년 전부터는 메주를 빚어 한살림에 내기 시작했다.


고추장, 엿기름, 그리고 메주까지 그 과정을 늘 함께 한 김철규 생산자는 새로운 가공품을 생산하는 것을 모험에 비유했다. “솔뫼영농조합에도 <정글의 법칙> 병만족의 김병만 씨처럼 타고난 사람들이 있어요. 문제에 부딪치면 처음인데도 능숙하게 해요. 메주를 쑤는 게 밥을 잘 짓는 것과 똑같더라고요. 밥을 고슬고슬하게 잘 짓는 사람이 메주도 잘 쒀요.” 콩을 삶을 때 넣는 물의 양, 불 조절, 삶는 시간…. 어느 것 하나 처음부터 알았던 것은 없었다. 그저 몸으로 부딪쳐 알아낸 소중한 지혜들이 지금의 메주를 만들어 냈다. 한살림 메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렇다. 한살림에서 수매한 유기농 콩을 잘 씻어 솥단지에 담가놓고 콩 삶기를 반나절, 뜸들이는 과정까지 거쳐 콩이 다 삶아지면 분쇄기로 부순 뒤, 메주틀에 넣고 모양을 만든다. 모양을 굳히기 위해 공장 안 건조기에서 하루 정도 건조시킨 뒤 볏짚이 깔린 발효실에서 5일 동안 메주를 띄운다. 이 때 메주는 볏짚이 깔린 따뜻한 방바닥의 훈훈한 온기 속에서 볏짚이나 공기로부터 여러 가지 미생물을 받아들이며 발효 과정을 거친다. 발효실에는 계속 선풍기와 환풍기를 돌려 신선한 공기를 공급한다. 이런 환경에서 메주 안에 착생된 미생물이 콩의 성분을 분해하며 고유한 맛과 향을 내게 된다. 이후 소비자 조합원 댁에 가기 전까지 약 한 달 반가량 건조실에서 건조 과정을 거친다. 메주 건조실은 지난 가을 황토벽돌로 내장을 하고 솔뫼영농조합 생산자들이 원목 등을 이용해 건조용 선반을 만들었다. 속리산과 대아산 등이 둘러선 청정지역 솔뫼에 생각이 올 곧은 이들이 정성을 다해 빚고 띄워 황토방에서 건조 숙성시킨 메주가 어떤 맛을 빚어낼지 충분히 상상이 되는 대목이다. 올해는 이렇게 1,500말의 메주를 쑤었다.

그러나 그 동안 어려운 일도 많이 겪었다. 메주로 장 담그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일부 조합원들로부터 더러 메주에는 당연히 들어있는 곰팡이 등을 불평하는 항의를 듣는 경우가 있다. “농사만 짓던 사람이 소비자 조합원들에게 안 좋은 반응을 들었을 때는 마음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것도 다 메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건강한 제조방식으로 전통의 맛을 내는 것이 솔뫼영농조합의 목표지요. 소비자 조합원들이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저희 메주를 즐겁게 드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장의 재료는 사람이 준비하지만 장맛을 완성하는 것은 햇빛, 공기, 물, 미생물이라고 한다. 농사처럼, 결과는 자연이 맡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장 담그는 것이 한 해 집안 농사라는 옛말은 틀린 것이 없다. 잘 띄운 한살림 메주로 그 농사는 이미 절반은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