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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지에서 온 소식/살리는 이

홀로 선 나무 아름드리 그늘을 만들다 <다자연식품> 윤은숙 생산자


홀로 선 나무 아름드리 그늘을 만들다


다자연식품 윤은숙 생산자


글‧사진 정미희 편집부

 

홀로서기를 강조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다. 제 손으로 심거나 거두지 않았는데도 매일 마주하는 밥상과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옷, 교통수단 등 우리가 누리는 수많은 것들을 돌이켜봐도 그렇다. 누군가의 노동이 반영된 수많은 사용가치들에 의존해 우리는 살아간다. 시장에서 교환되는 돈과 물품만으로는 서로 얽히고 의존해 있는 생명의 그물코를 설명하기 어렵다. 우리가 한살림을 하는 이유, 협동조합을 말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함께 모여 서로를, 지역을, 생명을 살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 동해바다가 넘실대는 강릉 주문진에 있는 다자연식품을 다녀왔다.

한살림강릉(현 한살림강원영동생협)은 1988년 강릉소비자협동조합으로 출발해 1991년 한살림의 회원조직이 되었다.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거의 없던 그 시기부터 지역에서 한살림을 꾸리면서 이들은 지역살림에도 관심을 두었다. 먼저 지역사회의 자원을 발굴하면서 건강한 물품을 생산하는 생산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1991년 무첨가제 젓갈을 ‘아침바다’에 위탁 생산한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새로운 생산지 개발에 힘썼다. 하지만 여러 가지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2004년 한살림에 가공식품을 내던 한 생산업체가 원산지 기준을 어긴 물품을 납품하는 사고가 생기면서 한살림에 면, 어묵, 만두 등의 공급이 중단되는 사태가 생겼다. 당시 한살림강릉의 임원들과 현재 한살림강원영동의 상무이사이기도 한 다자연식품의 김대진 대표는 강릉지역에 대체 생산지를 개발하겠노라 계획을 세웠다. 사회적기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한 때였지만, 생산자조직을 자활공동체로 하기로 하고 함께 일할 사람들은 강릉의 자활후견기관을 통해 모집했다. 그렇게 추천을 받은 세 명의 직원과 함께 한살림강릉, 한살림 생산자연합회, 강릉시 등의 지원을 받아 다자연식품을 세우고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윤은숙 생산자는 당시 창업 구성원 중 한 명이다. 그는 38살의 나이에 다자연식품에 입사해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집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데 전념하던 그녀는 남편이 근무 중 화상을 입어 당분간 일을 할 수 없게 된 형편이었다. 다자연이 그랬듯이 그녀도 아무런 기술이나 경험이 없었다. 일이 곧 배움이었고,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입사하자마자 발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일이 많고, 바빴다. 새로운 물품을 생산하기 위해, 더 맛있는 재료의 배합을 찾아내기 위해 누구의 일이랄 것 없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팔을 걷어붙였다. “그래도 그때가 제일 기억에 남고, 즐거웠던 것 같아요. 뭔가를 함께 성취해 나가는 과정이 정말 보람 있었죠.” 개발에 성공해 함께 손뼉 치며 기뻐했던 그 짜릿한 순간들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생산자들이 공급일을 맞추기 위해 새벽까지 일할 때면 한살림강릉의 실무자들이 공장에 나와 함께 일손을 보탠 적도 많았다. “그게 한살림 식구들의 좋은 점인 것 같아요. 그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어요.”

냉면에 이어 2005년 9월에는 만두 생산이 시작됐고, 2006년에는 초고추장과 양념고추장, 피자류 등을 만들어 공급했다. 좁은 공장 안에서 한살림에 필요한 물품을 계절과 물량에따라 번갈아가며 생산한 것이다. 이렇게 정신없이 달려오던 2007년, 자활공동체로 전환할 수 있는 요건이 충족되어 강릉시로부터 자립을 하게 되었다. 다자연식품은 자활공동체의 성공사례로는 강릉에서 유일하고, 나라 안에서도 모범사례로 꼽힌다. 다자연식품을 만들고 지켜봐 온 김대진 대표는 이것을 ‘생활자의 힘’ 덕분이라고 말한다. 총 직원 20명 중 여성생산자가 18명, 이들이 생활을 꾸려가기 위해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자활공동체의 성공률은 7% 정도라고 합니다. 근로의욕이 떨어지고, 조직의 자립이 어렵다는 것이 한 이유이지요. 하지만 우리에겐 윤은숙 생산자 같은 사람들이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그녀는 2010년 10월 다자연식품의 공장장이 되었다. 어려운 상황들을 꿋꿋이 견디고, 지혜롭게 헤쳐 나가며 일궈온 성과였다. “작년에 5년만에 부득이하게 만두 가격 인상을 실현시키면서 앞서서 나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느꼈어요. 이것이 책임자의 일이구나, 생각했죠. 어려움도 있지만 배우면서 일하는 즐거움도 있어요.” 그녀는 일을 할 때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소중한 그 일을 엄마의 마음으로 한 것이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한 힘일 것이다. 그는 얼마 전 생산자들과 함께 직접 매장을 찾아가 소비자 조합원들을 만났다. 다자연식품을 소개하고, 물품을 알리는 자리에서 그녀는 생산자들의 다른 이면을 보았다. “다자연식품에서 일하는 엄마들이 처음에는 그냥 돈을 벌기 위해 이곳에 왔어요.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어요. 소비자 조합원들께 설명하는 것을 들으니 일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커요. 내 아이가 먹을 것을 만드는 엄마의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 아주 자랑스러웠어요.” 그녀의 표정에 보람과 자부심이 가득하다.

현재 다자연식품은 한살림에 내는 만두류와 초고추장, 양념고추장, 불고기갈비양념 등을 생산하고 있다. 얼마전까지 생산하던 피자는 사회적기업인 행복한빵가게를 설립해 모두 양도하였다. “지역에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데 동참해 기쁘고, 자랑스러워요.” 고난을 뚫고 어렵게 뿌리를 내렸지만 어느덧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다른 이웃들에게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다자연식품 생산자들의 환한 미소가 눈부시게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