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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발자취/자연에서 온 귀한 것

도리깨질로 타작하고 키질로 까부르며 정성 다한 우리 팥


도리깨로 타작하고 키질로 까부르며 정성 다한 우리 팥


글‧사진 문재형 편집부

 

 

동짓날 팥죽과 고사상 시루떡

팥은 한국·일본·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널리 재배되어왔고 함경북도 회령군 오동의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될 정도로 오랫동안 재배해온 작물이기도 하다. 거친 토양에서도 잘 자라고 이른 봄에 심지 않아도 돼 농가에서 별다른 부담 없이 재배해왔다. 주로 여러 잡곡과 섞어 밥을 지어 먹었으며 각기병의 치료제로 쓰이기도 했다.

예부터 팥의 붉은 빛은 귀신을 쫓는다 해서 우리 민족의 풍습에서는 주술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특별한 날에는 액을 막기 위해 팥이 듬뿍 들어간 고사떡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었고 밤이 가장 길어 음기가 강한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 대문이나 담벼락에 뿌리기도 했다. 새로 이사 온 이웃이 시루떡을 돌리며 인사 하는 모습은 요즘도 종종 볼 수 있다.

시중에서 국산 팥을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게 되었다. 현재 팥의 재배면적은 2011년 3,650ha로 1990년 21,687ha이던 것에 비해 1/7 수준으로 떨어졌다. 자급률은 2009년 기준으로 19.9%에 불과하다. 2009년 이후로는 팥을 다른 잡곡들과 뭉뚱그려 놓아, 정부통계에 팥 자급률은 따로 등장하지 않고 있다. 재배면적도 수확량도 얼마 되지 않으니 통계관리를 하지 않는 게 아닐까 싶다.

팥도 다른 잡곡들과 마찬가지로 값싼 외국 농산물 때문에 들이는 품에 비해 제 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량으로 재배하는 벼처럼 기계화도 이뤄지지 않아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하는 등 농사에 힘이 부치기 때문에 포기하는 농가가 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생산자들이 고령화되고 있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한살림은 우선 국산잡곡을 살아남게 하는 게 급선무라 여겨 친환경재배뿐만 아니라 국산 잡곡도 함께 취급하고 있다. 팥도 마찬가지다.

 

파종부터 갈무리까지 일일이 손으로

한살림에서 취급하는 팥에는 팥죽을 쑤어 먹기 좋은 팥(붉은팥), 소화가 더 잘되고 겉껍질에 영양분이 풍부하며 연중 공급되고 있는 검은팥, 생산량이 적어 상시 공급이 어렵지만 하얀 시루떡의 재료로 쓰이고 껍질이 잘 벗겨지는 흰팥이 있다. 재배농가는 주로 충북 괴산과 강원도 홍천에 있으며, 대개는 고령화된 생산자들이 갖은 노력을 다하며 어렵게 팥 농사를 짓고 있다.

팥 농사는 땅이 녹기 시작하는 3월부터 시작된다. 지력을 높이고 땅을 기름지게 하기 위해 잘 발효시킨 가축 배설물과 깨의 찌꺼기인 유박을 밭에 뿌려둔다. 파종은 5~6월 사이에 한다. 지난해 갈무리해둔 자가 채종 팥을 호미로 땅을 파서 2~3알씩 40cm 간격으로 심는다. 모종보다 씨로 심는 것이 더 잘 자라기 때문에 이렇게 한다고 한다. 성장이 너무 더딜 경우에는 웃거름을 주기도 한다. 10월 중순 쯤 수확하는데, 이때까지 잡초를 하나하나 손으로 뽑는 고된 작업이 이어진다. 노린재 피해가 있긴 하지만 다행히 병충해가 심한 작물은 아니다.

수확과정을 보면 팥 농사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팥이 익으면 일일이 낫으로 베어 밭에 눕혀 놓는다. 일주일가량 햇빛과 바람으로 팥을 말린 뒤 도리깨질을 하는데 힘차게 도리깨를 내려치면 팥꼬투리에서 알곡이 떨어진다. 어지럽게 섞여있는 부산물과 알갱이를 분리하기 위해서는 키질이 필요하다. 수천 년 이어진 그 방식 그대로다. 키질을 한 번 할 때마다 꼬투리와 쭉정이 등은 날려가고 키 안에는 팥 알갱이만 남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모아진 팥 알갱이를 선별해야 한다. 공급하기에는 너무 못나거나 덜 여문 것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골라내는 마무리 작업을 한다. 어디 하나 사람 품이 들어가지 않는 게 없다. 기계화가 되지 않아 거의 100% 수작업을 하는 수밖에 없다.

“30년 동안 이렇게 해 왔는걸요.”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강원도 홍천 유치리공동체 신정식 생산자는 밝게 웃으며 답한다.

 

환절기에는 쉬이 지치고 피로감을 느끼기 쉽다. 팥에는 우리 몸에 기운을 나게 하는 비타민 B군이 풍부하니 팥밥을 해 먹으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팥밥 한 술을 뜨다보면 팥 한 알 한 알에 담겨있는 생산자들의 손길과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중국에서 수입한 팥에 밀려나고 있는 국산 팥이지만 어렵게 보존하고 있는 한살림농부들의 수고가 더없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