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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살림‧농업살림‧생명살림/살림의 창

종잡을 수 없는 날씨는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




글 정현숙 전북 정읍 한밝음공동체 생산자


몇 해 전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교수는 우리나라 곳곳에 콩농사가 안 된다고 걱정을 했다. 주로 산간지역을 중심으로 해충피해가 심해 콩 수확이 줄었다는 얘기였다. 그랬다. 우리도 조금씩 심는 콩에 쭉정이와 벌레가 많아 통 농사짓는 재미가 적더니 작년에는 급기야 전국적으로 콩수확이 급감해 관행농 콩도 농협수매가가 kg당 6천원을 넘었고 그나마 곳곳에서 콩을 찾는 사람들이 다급하게 전화를 해댔다.

  양봉을 하는 우리 동네 아저씨는 평생 벌만 키워왔는데 우리가 이 동네 온 이래로 꿀로 벌이가 괜찮았다는 해를 별로 보지 못했다. 남쪽에서 벌과 함께 겨울을 보내고 아카시아를 따라 강원도까지 이동하면서 꿀을 따는데 언제부턴가 아카시아가 전국적으로 한꺼번에 피다시피 해서 채밀기간이 짧아졌고, 열심히 관리를 해도 겨울이 지나고 나면 벌이 왕창 죽어 나가거나 세가 약해서 봄마다 큰돈을 들여 새로 벌을 사야만 했다. 그 무렵부터 쏟아지는 비도 한 몫을 했다. 2, 3년 전부터 나는 그분께 올해는 어때요? 라고 묻는 인사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 벌들이 사라졌다. 해마다 봄이면 우리 집에도 여왕벌을 따라온 벌 무리가 몇 무더기씩 날아들곤 했는데 올해는 거짓말같이 벌을 볼 수가 없었다. 말벌이나 호박벌또는 벌 같지도 않는 몇 종류들이 날아다니기는 해도 토종벌과 양봉은 올 한해를 통 털어 얼마 전 딱 한 마리를 봤을 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벌을 데리고 전국을 누빈 이웃 아저씨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토종벌은 98% 정도가 죽었고 이는 거의 멸종으로 봐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지구 곳곳의 폭우와 가뭄, 폭설, 지진, 허리케인, 폭염, 혹한 등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영화 ‘2012’를 보았고, 소설 〈더 로드The Road〉, 〈아포칼립스 2012〉와 〈대변혁〉, 마야력이 끝나는 2012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예측해놓은 책들을 읽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더 일어날 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과학과 종교, 환경, 기후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으로 진지하게 검토한 그 모든 예측과 결과들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어슴푸레 다가오는 한 가지 진실은 결국 그 모든 열쇠를 우리 인간이 쥐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 자신과 지구의 다른 생명들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우리 자신과 지구의 모든 존재들의 운명에 대해 얼마만큼의 자비와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얼마만큼 그것을 책임지려 하는가, 모든 존재에 마음을 열고 자신의 영혼을 얼마만큼이나 확장시키고자 노력하는가.


  우리가 이 땅에 애정이 있다면 그렇게 강과 산과 땅을 마구 파헤치고 농약과 비료를 함부로 뿌려댈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먹는 밥과 마시는 물의 소중함을 알고 고마워한다면 그렇게 맛에 집착하면서 온갖 첨가물을 넣을 수도, 쓰레기통에 그렇게 많은 음식물을 버릴 수도 없을 것이다. 조금 더우면 에어컨을 켜야 하고 조금 추우면 난방을 해야 하는 우리가 어떻게 원전사고와 단전사고를 원망하기만 할 수 있을 것인가? 예측할 수 없는 이 재난의 시기에 우리는 삶의 근본과 마음가짐의 향방을 다시금 잘 살펴볼 수밖에. 그래서 올 가을 나의 화두는 쌀 한 톨, 물 한 방울이 온 우주임을,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가 다 사랑임을 뼈에 사무치도록느껴 보자는 것이다.     


      




글 정현숙
전북 정읍 한밝음공동체 생산자

전북 정읍에서 이범영 생산자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자립하는 삶을 꿈꾸고 실천하고 있다. 지역의 뜻있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2003년도에 한살림전북을 창립했고, 2009년까지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 자연건강산촌유학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