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병

도시는 놀라운 곳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쉴 틈이 없다. 그렇게 부지런을 떨 수 없다. 죽어라 몸 놀리고 머리를 쓴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 마련에 애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살아남는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스스로 텃밭 일구지 않아도, 실 잣지 않아도, 땅 고르고 집 짓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얼마나 오래 견딜까.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사람끼리만 도와서도 살 수 없다. 사람과 자연이 서로 돕지 않으면 살길이 없다. ‘목숨’은 목으로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일컫는 말이다. 나무들이 내쉬는 숨에 섞여 있는 산소를 들숨으로 받아들여 사람은 손발 놀리고 몸 놀리고 머리 쓸 힘을 얻는다. 어디 그뿐인가. 사람 손을 탄 낱알들은 다른 풀씨에 견주어 홀로 살기 힘들다. 제때 씨 뿌리고, 김 매주고, 거두어 주어야 살 수 있다. 그 씨앗 가운데 사람과 들쥐와 새들이 먹고살 것이 마련된다. 해마다 이듬해 뿌릴 씨앗은 따로 남겨 둔다. 한두 해만 묵혀두어도 제대로 싹이 안 트므로 해마다 다시 뿌려야 한다. 오죽하면 농사꾼은 굶어 죽어도 이듬해 뿌릴 씨앗만은 머리맡에 남기고 죽는다는 말이 생겨났겠는가. 

이렇게 서로 도와야 살아남는다는 자연의 이치를 도시 사람들이 알까? 알면서도 피붙이인 사람끼리도 너 살고 나 살자는 살림의 큰 뜻을 저버리고 너 죽고 나 살자는 쪽으로만 치달을 수 있을까? 더불어 함께 살길을 찾지 않으면 우리 모두 살아남을 길이 없다. 그런데도 머리 굴려 살 길만 찾는 도시내기들은 열심히 손발 놀리고 몸 놀리는 농사꾼을 허드렛일꾼처럼 본다. 초등에서 대학까지 교과 내용 가운데 몸 놀리고 손발 놀려 땀 흘려 일해서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할 힘을 길러 주는 내용도, 서로 도우면서 살 길을 열어 주는 내용도 없다. 미래 세대에게 사는 길을 열어 주는 교육이 아니라 죽음의 길로 몰아넣는 교육이다.

철없는 아이들에게 철들고 철나게 해서 스스로 일어나 제힘으로 살고 함께 도우면서 살 길로 이끄는 게 제대로 된 참교육인데,이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가장 큰 스승은 자연이다. 그리고 그 자연 속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한 철 한 철 접어들면서 철이 들고,한 철 한 철 나면서 철이 나는 농사꾼들이 선생이다.

농사꾼들이 제 대접을 못 받는 세상은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세상이다. 지난 50년 동안 이 나라는 농사꾼들에게 빼앗기만 했다. 부재지주를 키워 땅을 빼앗고, 땅심(땅의 힘)도 뺏고, 농사지을 젊은 일손도 빼앗아 갔다. 대대로 물려받은 건강한 농토는 제초제와 농약과 화학비료로 뒤범벅되어 몹쓸 땅이 되었고, 땅값은 다락 같이 뛰어, 농사짓고 싶은 젊은이가 있어도 귀농할 엄두를 낼 수 없게 되었다.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식량 자급이 안 되어 자립 경제가 물 건너가고, 그에 따라 국가는 허울만 독립국가일 뿐 알맹이는 식량 강국의 식민지가 되어 있는 이 죽음의 땅을 미래 세대에 유산으로 남길 것인가, 지금이라도 도시에서 종살이하는 젊은이들을 농촌으로 이끌어 떳떳이 제 앞가림하고 서로 도우면서 오순도순 살 길을 열어줄 것인가


글을 쓴 윤구병님은 전북 부안군 변산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철학자입니다. 생산 공동체이자 대안 교육을 실시하는 교육공동체인 변산공동체를 세웠으며, 한 그루의 나무로 만든 책을 읽고 자연을 사랑하고 나무를 사랑해서 열 그루의 나무를 심을 수 있는 마음을 갖게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책을 만드는 보리출판사 대표이기도 합니다. <잡초는 없다>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등의 산문집을 내었으며, <심심해서 그랬어> <우리 순이 어디가니> 등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쓰는 동화작가이기도 합니다

Posted by 한살림연합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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