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언제나 그 시대를 잘 알려주는 말이 있다. 요즈음 소통과 화해 혹은 용서와 배려에 관한 말이 많이 오가지만 한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주 했던 말 중에 ‘밥’이 있었다. 우연히 마주친 이웃에게는 반드시 밥은 먹었는지 안부를 물었고, 직장에 나가는 새내기에게는 최소한 밥값은 하라고도 했다. ‘열 사람의 한술 밥으로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다’는 말로 밥이란 서로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 것이라고 공동체 교육도 했다. 낮에 각자의 일터로 흩어졌던 가족의 모든 이야기가 밥상머리에서 알려졌으며 집안의 중요한 일이 이야기되는 곳도 함께 밥을 먹는 밥상이었다.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 밥 먹는 것을 봐야 어머니들은 안심했고 아랫목에서 따듯하게 모셔놓았던 밥그릇을 앞에 놓아야 비로소 집에 왔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친구끼리 나이를 따질 때도 먹은 밥그릇 수를 이야기 했고 누군가의 죽음을 밥숟가락을 놓았다고도 했다. 지금보다 훨씬 살림살이가 어려웠던 때도 낯선 나그네나 걸인, 우체부나 행상을 위해 조금 넉넉하게 밥을 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늘 찬밥을 먹어야 했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누구나 하루 세끼 밥을 먹어야 살 수 있으니 누가 됐든 때가 돼서 집에 온 사람은 잡아끌어 같이 밥을 먹여 보내야 마음이 후련했다. 그때는 밥의 동의어가 생명, 목숨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세월호를 겪은 후 사회 일각에서 일어나는 여러 움직임 가운데 다른 무엇보다 사람을 우선 생각하자는 기운이 일고 있다. 물질문명의 발전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인명을 경시한 데서 비롯한 사건임을 자각하고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 사람을 귀중하게 여기자는 것이다. 어쩌면 어렵고 추상적인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밥이 삶의 중심이던 때로 돌아가자고 말해도 될 것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밥은 먹고 다니는지, 무슨 밥을 누구와 어떻게 먹고 있는지, 뭇 생명의 희생과 농부의 정성으로 차린 밥상을 받을 만한 일을 하는지 등에 관심을 두고 돌아보자고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람이 얼마나 부자고 권력을 쥐었는지 무슨 사치품을 입고 갖고 다니는지에 마음이 가는 대신 어떤 밥을 먹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살피고 나누면 좋겠다.

요즈음 쌀이 밥상에서 누리던 절대적인 우위가 흔들리고 있다. 우리의 쌀소비량은 계속 줄어 1970년대 1인당 1년에 136kg을 먹었는데 2013년에는 67kg으로 줄었다. 식량 자급률 또한 1970년 80.5%에서 2013년 23.1%, 쌀자급률은 93.1%에서 89.2%로 줄었다.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주식이자 중요한 영양공급원인 쌀 소비가 줄어들면서 매년 논 면적도 줄고 농사를 포기하는 일도 늘어간다. 게다가 정부는 내년에 쌀 시장을 개방을 하겠다고 한다. 관세를 높게 매겨 수입 쌀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겠다고는 하지만 몇 년 안에 관세가 무너져 외국산 쌀이 무제한 들어올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결국, 우리 쌀과 농업을 지키는 확실한 길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쌀은 농부의 땀과 정성에 우주 만물이 협동해 우리 앞에 온다. 우리 농업이 계속 겨레의 식량 창고로 남아 우리 아이들도 우리와 같은 밥상을 차릴 수 있도록 지금 여기서 마음을 모아야 한다. 농부와 밥 짓는 이가 서로를 고마워하며 희망으로 여기고 살려야 한다. 그래야 어릴 적 엄마의 손맛이 여전히 우리를 위로하는 것처럼 훗날 우리 아이들도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안전하고 따듯한 밥상을 차릴 수 있다.


글을 쓴 윤선주 이사는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활동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과 나누고 있습니다

Posted by 한살림연합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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