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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살림‧농업살림‧생명살림/살림의 창

제도보다 신뢰가 우선/ 한살림의한살림의 자주관리·자주인증 활동

 

배영태 한살림연합 상무

 

지난 10월 중순, 친환경농산물 민간인증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브로커 등이 짜고 엉터리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남발한 사건이 발생했다. 언론은 문제가 된 엉터리 인증뿐만 아니라 민간인증기관을 관리·감독하는 농림축산식품부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허술한 관리 실태도 비판했다. 이 사건은, 인증 받은 친환경농산물을 믿고 구매했던 소비자들의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시키기도 했다.

1997년 친환경농업육성법 시행과 함께 시작한 친환경농산물 인증은, 생산자 자율
적 표시를 거쳐 2001년부터 국가 인증으로 정착되었다. 법 시행에 따라 친환경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정부는 늘어난 인증업무를 민간인증기관으로 상당수 이양했다. 현재까지 76개의 민간인증기관이 양산되었는데 민간인증기관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이 부족해 이런 문제가 빚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살림은 친환경농산물 인증이 있기 전인 1986년부터 생명순환원리에 따라 충실하게 땅을 일궈온 생산자 회원과 이런 농부의 가치와 소중함을 아는 소비자 조합원이 연대해 생명의 먹을거리 나눔 운동을 전개해왔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도농교류에는 물품을 함께 생산하고 나눈다는 의미가 잘 담겨있다. 특히 도농교류에 참가한 조합원들은 생산자들을 직접 만나 자신이 먹는 먹을거리가 어떻게 길러지는지 확인하게 되고 이것은 국가인증제도보다 더 강력한 신뢰를 갖게 한다.

실제 2009년 아산과 당진지역의 한살림 쌀 8,000여 가마가 이 지역 전체의 농업용수 문제로 친환경인증을 받지 못할 상황에 처한 적이 있다. 다행히, 그 쌀들은 비록 정부 인증을 취득하지는 못했지만 한살림이 정한 기준대로 생산된 것이어서 조합원들은 이를 전량 소비해 주었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은 수차례 생산현장을 방문했고, 농민들과 대화하면서 생산과정을 스스로 확인했다. 또, 현장을 방문한 조합원들은 이웃 조합원에게 이런 내용들을 스스로 전파했다. 국가인증제도에만 기대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못했을 하나의 사건이었다.

최근 세계유기농업 진영은 국가인증제도가 대형 농기업과 농장의 편익에 맞춰져 있어 소농생산자에게 그다지 쓸모 있는 제도가 아니라는 지적과 함께 그 대안이 될 수 있는 인증체계에 주목하고 있다. 통칭 참여보증제도(participatory guarantee system, PGS)로 불리는 이 제도는 명칭이 말하듯 인증과정에 농민과 소비자의 직접 참여를 권장하고 요구한다. 한살림은 오래전부터 이와 유사한 형태로, 농민과 소비자가 상호 인정한 가치체계와 생산출하기준의 공유, 투명성과 공개성, 신뢰성에 근거하여 직거래
활동을 전개해왔다. 지난해부터는 자주관리점검활동과 자주인증활동이라는 보다 체계적이고 짜임새 있는 방식으로 국가인증제도를 보완하고 있다.

자주관리점검활동에 따르면 생산농가와 가공생산지가 생산물 출하 전에 자주관리점검표를 제출한다. 점검표는 국가가 정한 인증기준의 준수 여부는 물론이고 보다 엄격한 한살림의 생산출하기준에 맞게 생산물을 관리했는지를 체크하는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출하 전에 문제가 드러난 생산물에 대한 사전 조처가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공동체별로 일 년에 두 차례 전체 농가의 모든 필지를 둘러보고 혹여 발생할지 모르는 농약사고 등을 점검한다. 그리고 조합원들은 자주점검활동을 진행한다. 한살림물품을 이용하는 조합원 스스로 본인이 관심을 갖는 물품의 생산현장을 방문하여 생산과정을 확인하는 활동이다. 현장에서 보고 듣고 확인한 내용은 점검보고서로 제출하고 개선 요청 사항은 생산지로 전달되어 개선 방향이나 일정까지 협의하게 된다.

자주인증활동은 사과와 배, 복숭아의 저농약 과실류에 적용되는 인증으로 활동 양식에 따라 생산현장 점검이 이뤄지고 자주관리점검위원회 승인 과정을 거쳐 한살림 자주인증 마크를 달고 조합원 가정이나 매장으로 공급된다. 이 과정을 통해 국가인증기준보다 엄격한 한살림 저농약 기준의 준수 여부를 확인한다. 품목별로 제한된 농약방제 횟수를 준수하였는지, 금지농약이나 성장조절제가 사용된 것은 아닌지 등.

신뢰와 공개라는 대원칙 속에서 생산자 회원은 자신이 생산하는 먹을거리의 생산과정을 드러내고 소비자 조합원은 생산현장을 확인하고,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며 개선과제를 함께 도출해낸다. 생산하는 소비자, 공동생산자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탄생한다. 이것이야말로 시대정신이자 한살림의 가치가 실현되는 먹을거리 나눔 방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