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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살림‧농업살림‧생명살림/살림의 창

우리 보리 자급 사료화 사업으로 곡물자급률 향상에 한걸음 다가선다


조완형 한살림연합 전무이사


가뭄, 폭우, 폭염 등 이상기후로 국제 곡물 값이 치솟으면서 식량안보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옥수수, 밀 등 곡물 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선 국제 곡물 값 폭등은 곧 식량위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높은 곡물 해외의존도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료용을 제외한 곡물자급률이 약 51%지만 사료용을 포함하면 26% 수준으로 낮아진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연간 곡물 소비량 2000만 톤 중 74%를 수입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사료곡물이 3분의 2(1000만 톤)를 차지한다. 특히 해외의존율이 무려 99.2%에 달하는 옥수수는 수입량의 75%가 가축 사료로 사용된다. 이런 상황이라 국제 곡물가격 상승에 따른 영향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료곡물 문제에 대한 대책 없이는 식량 자급과 자치를 논하기 어렵다. 최대한 국내 사료곡물 생산을 늘려 사료곡물 수입을 줄이는 길만이 곡물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한살림의 상황은 어떨까? 한살림은 지난 26년간 생산자와 소비자가 손을 맞잡고 ‘국산’ 및 ‘유기농’ 먹을거리 자급 운동을 열심히 전개해 왔다. 그 결과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사회적 평판도 얻었다. 하지만 축산물은 한살림이 지향하는 바와 어울리지 않게 대부분 수입산 곡물사료에 의존해서 생산되고 있다. 국내 사료곡물 생산기반이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살림의 사료곡물 자급률은 그동안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4.8%에 불과하다. 조사료를 포함한 전체 사료 자급률은 17.4% 수준이고 한우(곡물사료 자급률 11.6%)를 제외한 돼지와 닭의 곡물사료 자급률은 0%에 가까운 실정이다. 한살림 농업정책의 7가지 기본방향 중에는 ‘식량자급기반의 확보를 도모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사료곡물의 사정은 이 정책방향과 크게 동떨어져 있다. 한살림은 이런 상황을 적극 개선하기 위해 생산자·소비자 조합원이 함께 하는 우리 보리 자급 사료화 사업을 시작한다. 이 사업은 우리 보리를 활용해 수입산 옥수수를 대체하고 사료곡물 자급력을 높여간다는 내용이다. 이를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지난 8월 6일(월) 한살림, 씨알살림축산(한살림 축산가공 생산지), 보리 생산자(전북 김제·완주·부안·군산), 축산 생산자(괴산 한살림축산생산자회) 등이 참여하는 우리보리살림협동조합 창립총회와 우리 보리 자급 사료화 특허기술 전수·활용에 관한 협약식이 있었다. 우리 보리 자급 사료화 특허기술은 보리의 소화율을 70%에서 90% 이상으로 향상시키는 방법과 보리의 뿌리가 나오지 않도록 억제하면서 발아시키는 방법이다.

그리고 우리 보리 자급 사료화 사업은 금년 정부의 보리 수매제 폐지로, 보리 생산기반이 더욱 빠르게 붕괴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우리 보리 살리기 운동’의 새로운 불씨를 지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다른 곡물과 마찬가지로 보리 재배 농가로 하여금 보리농사를 포기하도록 하는 정책을 펼쳐 왔다. 2003년부터 우리 정부는 군대급식에서 보리를 제외하는 등 보리 감산정책을 적극 시행하여 매년 10%씩 수매량을 줄여오다 올해부터 보리 수매제를 전면 폐지하고 말았다. 하지만 수입 옥수수에 얽힌 식량종속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대안이 될 수 있는 한반도 고유 곡물자원은, 보리밖에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식량종속 처지에서 벗어나 식량주권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보리를 살려내는 길 밖에 없다.

현재 우리 보리를 발아시켜 만든 사료를 기존 배합사료에 20% 혼합하여 돼지 사육에 적용하려 준비하고 있다. 올해 9월부터 해남과 괴산의 2농가를 대상으로 돼지 시험 사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아마 12월부터 우리 보리 자급 돼지고기를 한살림 가족분들에게 일부 선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 한우, 닭에도 시험 적용해볼 예정이다.

우리 보리 자급 사료화 사업은 올해 9월부터 내년 7월까지 시험사업을 거쳐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내년 사료용 우리 보리 생산계획량은 약 1,800톤(전국 보리생산량의 약 2%), 생산계획면적은 약 400헥타르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랫동안 수많은 난관 속에서도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제터먹이(식량) 생산을 포기하지 않는 제터지기 정신으로 살아 왔다. 이 일이야말로 이른바 식량주권, 생명주권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 보리 자급 사료화 사업을 통한 ‘우리 보리 살리기 운동’은 이 땅에서 유구한 세월에 거쳐 지탱해 온 제터먹이 살림과 제터지기 정신을 계승하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