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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살림‧농업살림‧생명살림/살림의 창

애그플레이션 시대, 협동과 공생의 길을 위한 우리 사회의 과제




허헌중 한살림연합 감사 / (주)우리밀 대표


최근 미국·유럽·러시아 등 세계적 곡창지대의 대가뭄으로 ‘애그플레이션’우려가 커지고 있다. 농업을 뜻하는 ‘애그리컬처(agriculture)’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한 신조어 애그플레이션은 곡물가격 상승에 의한 물가상승 현상을 가리킨다. 세계식량기구(FAO)는 지난 2007~2008년 애그플레이션 당시의 세계 식량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폭염, 폭우, 가뭄의 기후변화는 공급측면의 식량위기를 불러온다. 여기에는 주요곡물 교역량의 60% 안팎을 좌우하는 카길 등 곡물메이저와 국제투기자본의 탐욕도 한 몫 한다. 수요측면은 더 심각하다. 중국 등 신흥국의 사료수요 급증에다 세계인구 급증, 그리고 현행 에너지 소비구조를 유지한 채 곡물을 바이오연료로 사용하는 미국의 에너지정책 등은 식량위기를 구조적 문제로 만들고 있다. 식량을 둘러싼 각국의 총성 없는 전쟁! 2008년 애그플레이션 당시 앞 다투어 수출을 규제한 곡물수출국들, 식량문제로 폭발한 중동·아프리카의 ‘자스민혁명’은 그 시작일 뿐이다.

그러면 우리는? 생산과잉이라며 돈을 더 줄 테니 논에 다른 작물 심으라고 소동을 벌였던 현 정부의 성적표는 지난해 3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쌀 자급률 83%,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곡물자급률 22.6%! 바람 앞의 등불 신세이다. 애그플레이션 위기 앞에 돈 있다고 마음 놓고 식량을 수입할 수 있는 미래는 없다. 먹거리·생태환경·에너지자원의 복합위기 시대에 그런 미래는 결코 없다는 것이 2008년 애그플레이션에서 증명되었다.

이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무엇보다 자급력을 최대한 키우고 이를 담당할 농민을 보호 육성하는 것이다. 농지 169만ha 가운데 겨우 9%만 이모작하는 역대 최저치 경지이용률을 200%까지 높이겠다는 정책의지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농사짓는 농민에 대한 직불제를 대폭 확대하고 주요곡물에 대해서는 국가수매제, 가격안정제를 실시해 기초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 등을 기반으로, 절대다수 중소농의 생산의욕을 높이고 협동화, 신규귀농 활성화를 위해 예산을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도 마지노선이라고 인정해온 농지 165만ha가 무너지지 않도록 불가피한 상황 외에는 농지전용을 금지하고 농지를 확대시킬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전체 농지의 50%가량이 소작농지·부재지주인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농사짓는 농민이 농지를 가지고 기름진 옥토를 만들어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방향으로 곡물 자급력을 최대한 키워 놓아야만 해외 곡물의 안정적인 수입선 확보도 가능할 것이다. 스스로 자급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마련돼 있어야 만일의 비상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 한살림에서 실천하고 있는 계약생산·책임소비의 공동구매, 협의가격제와 생산안정기금, 다양한 도농간 공생교류, 공동출자·영농자금 지원 등의 공동생산활동, 최근에 벌이고 있는 사료자급화를 위한 우리보리살리기운동 등은 먹거리·농업의 위기 시대에 도시·농촌이 함께 대응하는 먹거리 자급·자치 운동으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애그플레이션 시대, 우리에게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 사회는 협동과 연대를 통해 공생할 것인가, 인간수탈·자연수탈로 지속불가능해질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물론 한살림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위기의 시대에 지속가능한 공생사회가 어떻게 가능한지, 한살림은 그 답을 찾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한살림의 노력에 더욱 기대를 걸고 있다. 





글을 쓴 허헌중님은 기독교농민회, 전농, 농어촌사회연구소, 지역재단 등에서 농민운동을 지원하는 일을 해왔으며 지금은 (주)우리밀 대표로 일하면서 한살림연합 감사를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