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세뇌brain-washing보다 세위stomach-washing가 더 어렵다고 한다. 태교를 처음 과학적으로 규명한 구 소련의 유전과학자 루이센코는 ‘후천성 획득 형질’의 법칙에 따라 사람들은 어릴 때 즐겨 먹던 음식료의 맛에 길들여져 나이가 들어서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익숙해진 입맛 정도가 아니라 우리민족의 역사와 줄곧 함께해온 쌀밥, 된장, 고추장, 김치 등은 단순히 먹을거리를 넘어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원형질 같은 것이다. 그런데 다음 세대들이 우리들처럼 마음껏 우리의 고유의 음식을 먹고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조짐들이 한둘이 아니다.

지난 해 우리 국민들은 쌀을 평균 69.8kg씩 소비했다고 한다. 1984년 130.1kg로부터 꾸준히 줄어왔고 2011년 71.2kg에서 1년 만에 1.6kg 감소했다. 도시화와 식습관이 서구화된 때문이다. 도시 가구들은 하루 세 끼를 다 챙기는 경우가 적어졌고 그나마도 쌀밥이 아니라 빵, 라면, 피자 등 패스트푸드를 먹는 일이 많다. 반면 상대적으로 식생활 패턴의 변화가 적은 농촌의 주민들은 2012년 1인당 쌀을 111.2kg 소비했다.

쌀 소비가 줄었는데도 그동안 남아돈다던 쌀이 이제는 자급도 어려워졌다. 2011년에는 쌀을 83%밖에 자급하지 못했다. 그나마 쌀을 자급해온 덕에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이 25%내외를 유지해왔는데 이제 이마저도 위태로워졌다. 해마다 논 밭 2만 정보(여의도 면적의 6~70배)가 사라지고 있는 탓이 가장 크다. 2011년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2.6%, 쌀을 제외하면 3.7%에 지나지 않는다. 기후변화 영향도 있지만 논과 쌀농사를 지키겠다는 정책의지가 결여된 탓이 가장 크다. 최근 들어 중앙부처, 지자체 할 것 없이 농지에 대한 용도변경을 쉽게 허락해 지난 10년 동안 20만 정보가 감소했다. 식량 생산량이 줄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는 말로만 2020년까지 곡물자급률 32%를 달성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175만 정보의 농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2011년 현재 농지는 169만 정보밖에 남지 않았다. 말과 현실이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쌀이 더 부족해지면 수입을 해오기도 어렵다.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로 식량생산량이 감소한 데다 쌀은 전체 생산량의 10% 남짓만이 국제시장에서 거래된다. 1980년 전두환 정권 초기에 흉작이 들어 캘리포니아 쌀을 사오려고 했을 때, 3년간 구입하겠다는 보장을 하고 구걸하듯 현금으로 구매한 경험이 있다. 쌀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중국, 일본 및 동남아 사람들에게도 주식이다. 2008년 국제곡물가격 파동이 일자 베트남과 태국이 쌀 수출을 중단한 것처럼 부족해질수록 사오기 힘들 게 분명하다. 주곡만이라도 자급기반을 확보하는 일이 급선무다.

아무리 쌀농사가 중요하다고 해도 농민들은 실질소득이 낮으면 다른 농사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쌀값이 오를 조짐이 보이면 값싼 수입쌀을 풀어서 가격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2010년에는 ‘논 소득기반 다양화 사업’이라 하여 쌀 대신 다른 작물을 생산하라고 부추기기도 했다. 지난 7년간 쌀값은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이러다보니 단기간에 한 톨이라도 더 거두려고 농민들은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하는 관행농업에 매달리게 되고, 논에 관상수를 심거나 비닐하우스농사를 짓는다. 쌀의 재배 면적을 유지하고 쌀농사를 지속하면 직불금을 지급하는 ‘쌀소득 직불금’제도를 강화하고 여기에 ‘친환경농업 직불제’를 더하면 쌀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뿐 아니라 관행 쌀농사를 유기농으로 전환시키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또한 쌀 소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양한 조리법을 개발하고 풀뿌리 운동처럼 건강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아침밥 먹기 운동부터 시작해야 한다. 쌀이 콜레스테롤의 함량이 적은 이상적인 식품이며 아침밥을 먹으면 두뇌가 활성화 되고 폭식을 막아 비만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학생과 군인들에게 친환경급식을 확대하고 점심 저녁을 밖에서 먹는 일이 대부분인데 여기에 국적불명의 쌀이 쓰이지 않도록 사회전반으로 친환경 급식을 확대해야 한다.

쌀은 환경생태적으로도 여름철이 고온다습한 우리나라의 홍수방지와 생태계 유지를 위해 가장 알맞은 작목이다. 쌀농사가 무너지면 IMF구제금융사태 때 사료곡물을 수입하지 못해 닭, 돼지를 굶겨 버리던 것처럼 상상하기도 끔찍한 재앙이 닥칠 수 있다. 국민의 건강생명권과 후손들의 생존권을 위해서 정부와 민간이 함께 노력해 쌀을 지켜야 한다.




글쓴이 김성훈 님은 농림부장관을 지냈고 상지대학교 총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한국내셔날트러스트 운동본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UN/FAO 아시아 태평양 지역 경제책임자 및 아태농업금융기구 사무총장을 역임했습니다. 「더 먹고 싶을 때 그만 두거라」, 「자원·환경경제학」외 다수의저서와 논문이 있습니다.


Posted by 한살림연합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