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1980년대 초반 사회변혁을 꿈꾸던 사회운동 진영을 중심으로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가 사회적인 화두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특히, 문화운동 진영에서 집중적으로 거론되었는데 과거 민중문화가 지향하던 대동(大同)의 공동체가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충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야기되던 공동체는 사실 사회주의의 다른 표현일 뿐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사회주의라는 단어 자체가 금기시되던 군사정권시절의 웃지 못 할 풍경이었지요.

 앞에서 이야기 한 대로 1970년대 에너지 파동과 환경생태 위기를 겪으면서 문명의 발달이 오히려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할 것이라는 예견과 자각이 서구에서 일어났습니다. 자본주의와 산업문명이 가져온 자연환경 파괴, 인간소외, 공동체 해체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이 퍼지면서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공동체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이와 비슷한 움직임이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 무렵 환경생태 문제가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논의되면서 유기농업운동, 귀농운동, 대안교육운동, 공동체운동, 생태마을, 생태공동체, 협동조합운동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새로운 공동체운동이 사회적 대안으로 부각된 것입니다.

 새로운 공동체운동은 1980년대 초반 사회주의의 다른 이름으로 쓰이던 공동체와는 그 성격과 내용이 전혀 다릅니다. 사회주의적 문제의식이 자본과 노동의 모순(자본에 의한 노동의 예속 등)을 중심에 놓고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만든 대동의 공동체를 말한 데에 반해 이 새로운 공동체는 생태계의 순환원리인 생산-유통-소비-폐기의 과정을 중심에 놓고 유기적인 순환을 완성하려는 과정으로서 운동을 설정하고 그 일이 완성된 모습을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새롭게 떠오르기 시작한 대안으로서의 공동체는 생명공동체 혹은 공생체(共生體)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이 새로운 공동체는 농업이 사회의 근간이 되고 거대자본이 일방적으로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적정 규모와 기술로 소비자와 소통하는 협의적 경제체계,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소비와 폐기물의 재활용을 통한 순환적인 물질 이동 체계를 완결시키는 것을 공동체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생각합니다.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소비자와 생산자가 서로 분리,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생산한 만큼 책임지고 소비하는 관계를 말하는 거지요. 가격도 서로 협의하고 서로의 형편을 헤아려 정하고 만드는 방식도 함께 결정해 생산과 소비 모든 부분에서 서로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합니다. 밭의 부산물이 가축의 사료가 되고 가축의 부산물이 흙으로 돌아가 채소를 키우는 쓰레기 없는 사회, 깨끗이 씻어 다시 쓰고 나누어 쓰는 자원 순환 사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소비가 미덕인 사회가 아니라 자발적인 가난을 통해 온 생명이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것입니다. 


글을 쓴 윤선주 이사는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활동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Posted by 한살림연합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