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알에 담겨 있는 위대한 유산


문순요 한살림경기남부 조합원

 

저는 1950년대 말에 태어나 1965년 극심한 가뭄으로 굶주린 삶을 겪었습니다. 얼마나 굶주렸으면 점심 끼니 때, 밥 한 그릇에 물을 부어 끓인 밥으로 6~7명이 요기를 하곤 했지요.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끓여 먹는 밥이 왜 그리도 뜨거웠는지, 너무 뜨겁다며 짜증을 내곤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또, 고구마도 두어 개씩 쪄서 먹었습니다. 고구마를 먹을 때는 껍질을 벗겨 먹으면 아빠에게 혼이 나곤 했기 때문에, 아빠와 따로 먹을 때에만 껍질을 벗겨 먹었지요. 그때는 먹을 것이 워낙 귀했기에 고구마 껍질은 물론이며 고구마 줄기도 껍질을 벗기지 않고 먹었기 때문입니다. 고구마 줄기에 붙은 잎사귀도 떼어 내지 않고 전부 삶아서 된장에 조물조물 무쳐 먹었지요. 아침과 저녁에는 보리쌀에 고구마를 숭숭 썰어 넣고 밥을 지었습니다. 고구마 반에 보리쌀 반쯤으로 지은 고구마보리밥이었던 셈이지요. 흰 쌀밥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 비록 보리쌀일지라도 밥 한 알, 한 알은 굉장히 귀했습니다. 우린 그렇게 한 시절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저보다 더, 밥 한 알에 얽힌 뼈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솥에 담긴 밥을 퍼 먹고 누룽지가 나오면 물을 부어 끓여먹곤 합니다. 어떤 때는, 너무 오래 물을 부어 놓아 푹 퍼져서 못 먹게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에 너무 오래 잠겨 있어 흐물흐물하고 맛도 이상해 대개 버리고 마는데 엄마는 그 퍼져버린 심심한 누룽지까지도 다 드셨습니다. 6.25 전쟁 통에, 주변의 모든 먹을거리가 사라진 극도의 빈곤을 겪으셨고 심지어는 소금도 없을 정도로 굶주리는 세월을 사셨기 때문이지요.

  그런 엄마를 보고 자라서 그런지, 퍼져버린 누룽지를 볼 때마다 엄마의 위대한 유산이라 생각하고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떠올리며 저도 아주 잘 먹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엄마에게 받은 유산에, 한층 부가가치를 더했지요. 그 부가가치가 뭐냐고요? 그 퍼져버린 누룽지와 누룽지 국물까지 이용해 된장국을 끓이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국물의 담백함이 어우러져 아주 담담한 된장국이 탄생하게 됩니다. 퍼져버린 누룽지 덕분인지 속이 편안하고 소화도 잘 되고 그렇습니다. 앞으로, 누룽지가 퍼져서 못 먹게 된다면 버리지 말고 국물까지 넣어 된장국을 한 번 끓여보세요. 아마 제가 느꼈던 맛을 똑같이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이야 먹을거리가 흔해져 이런 이야기들은 진부한 그때 그 시절 이야기로 들릴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도 저는 누룽지 된장국을 먹을 때마다 엄마가 주신 위대한 유산,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배부르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에 숙연한 마음을 가집니다. 더불어 귀한 쌀을 길러주고 이렇게 편안하게 먹을 수 있게 해 주는 생산자 분들께도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Posted by 박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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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을 행복하게!! 자연그대로 화장품


이은주 한살림서울 조합원

 

과거에 내가 주로 사용하던 화장품은 고가에 이름만 들어도 알아주는 외국 브랜드였다. 브랜드에 대한 막연한 믿음 때문에 그랬는지 성분이나 쓰임새 등을 확인하는 일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화장품을 사용할 때, 전에 없던 뾰루지가 올라와도 심지어 피부가 더 호전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으레 무심히 지나치기까지 했다. 값비싼 고가화장품이기에 무작정 선호했을 뿐, 피부 성향에 따라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화장품에 대한 무심한 태도가 바뀐 건 불과 1년 전, ‘자연그대로’라는 한살림 화장품을 알게 된 후부터다.

  올해 대학생이 된 딸아이에게는 예전부터 아토피성 피부염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기초화장품에 무척 신경이 쓰였다. 기초화장품이 좋지 않으면 색소화장품을 사용할 때 피부트러블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름 천연제품이라는 고가의 화장품을 사용했지만 피부트러블은 없어지지 않았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던 차에 한살림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자연그대로를 접하게 되었다. 성분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눈에 들어오는 좋은 성분이 많았다.

  천연식물 16종의 추출물을 비롯해 콩 유래 레시틴을 사용한 다중층 천연 리포좀 공법의 고급 리포좀 스킨이라는 점과 천연 아로마 향을 사용했다는 점. 더욱 신뢰를 주었던 것은 인공 색소, 인공 향, 인공 계면활성제,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었다. 향기는 어찌 이리 은은한지, 화장품 향에 민감했던 나 또한 즐겨 쓰게 되었다. 가격 면에서도 과거 외국 브랜드 화장품을 쓸 때보다 몇 배 절감효과를 느낄 수 있었다. 자연그대로 화장품의 효과와 효능이 매우 뛰어나 우리 집에선 영구 소장가치가 있다고 할 정도이다.

  자연그대로 화장품을 사용하면서부터 내 피부가 덜 피로할 것 같은 느낌이 늘 샘솟는다. 남편 또한 자연의 벗 스킨로션과 함께 자연그대로 화장품을 주로 애용한다. 자연그대로 화장품은 이제 우리가족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생필품이 되었다. 여동생마저도 한살림 기초화장품과 색조화장품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이제는 내 친지 및 주변 이웃들에게 자연그대로 화장품을 아낌없이 추천 해드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감사하는 마음이 늘 충만해서인지 요즘, 난 행복하다. 자연그대로 화장품을 만났고 한살림 조합원이라는 내 명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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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휴지, 온 가족이 안심하고 씁니다


정슬아 한살림서울 조합원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나는 음식이나 건강에 별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특히 태열이 심했던 아이의 피부 상태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며 병원에서 독한 약을 처방해주던 시기, 원인이 될 만한 것들을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그동안 놓치고 지나쳤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먹을거리, 조리기구, 아이 옷, 아이와 닿는 모든 물건들.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의 몸을 구성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유수유를 하면서도 먹을거리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던 나는 당장 한살림에 가입했다. 그 뒤로 우리 가족의 생활은 크게 달라졌다. 그전에는 대형마트에 쌓여있는 다양한 물건들 앞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우왕좌왕했었는데, 한살림 매장을 이용하면서부터는 필요한 것만 적당하게 사서 쓰는 소비방식이 훨씬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기농산물과 친환경물품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면서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우리 몸에 유해한 성분은 없는지,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은 아닌지 꼼꼼하게 따져보는 습관도 생겼다. 생각이 바뀌자 생활 전반이 달라진 것이다.

  한살림으로 인해 알게 된 여러 물품 중에서 휴지류를 빼놓을 수 없다. 세겹둥근휴지, 사각휴지, 종이행주, 여행용화장지. 대형마트에서 구입했던 휴지는 향도 강하고 색소도 많이 첨가되어 있는데다 형광증백제의 유해성 때문에 구매하기가 꺼려졌는데 이제 그런 걱정을 내려놓아도 돼 기쁘게 이용하고 있다. 피부가 예민한 편이어서 일반 휴지가 닿으면 자극이 있었는데 한살림 휴지는 그렇지 않아 온 가족이 안심하고 쓸 수 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어디를 가든지 항상 한살림 휴지를 가지고 다닌다.

  무엇보다 우유팩을 재활용한 제품이라는 점이 참 좋다.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눈여겨보게 되면서, 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환경을 지키는 일이 아주 절실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살림 휴지는 인위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고 환경을 생각해 만들었다. 앞으로도 우리 가족의 청결을 책임지는 없어서는 안 될 물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우유팩 수거율이 그다지 높지 않아서 수입까지 해야 한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살림 조합원들은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고 재활용품 수거율도 높은 편이니, 각 가정에서 사용한 우유팩을 수거할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외에도 지금은 위생문제 때문에 회수하지 않고 있는 한살림 우유병도 재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보았으면 한다.

  나는 가급적 최소한의 생필품을 구입해서 낭비하지 않고 잘 쓰는 것이 삶을 쾌적하게 만드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소비가 일종의 미덕처럼 느껴지는 요즘 시대에, 물건에 둘러싸이지 않고 생활을 가볍게 유지하는 것이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활기차게 만드는 일은 아닐까. 물론 이런 생각은 한살림을 통해 유기농산물과 여러 물품들을 이용하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에 갖게 된 것이다. 한살림 덕택에 우리 가족은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해졌다.

Posted by 박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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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의 알레르기를 낫게 해 준, 오미자음료

 

남경희 한살림성남용인 조합원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넘어가고 있다. 알레르기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따라다니는 사람이라면 이맘 때 몸살을 앓기 마련이다. 우리 집은 알레르기를 친구처럼 데리고 다니는 둘째아이 때문에 계절의 변화에 촉각을 세우며 예민해진다.

둘째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아토피 피부염이 생겼고 증상이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이런 상황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공포에 떨던 그 시절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아이는 가려움과 진물 때문에 수많은 밤을 지새워야 했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얻은 것 또한 많았음을 깨달았다. 아토피가 먹거리, 생활습관, 환경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당시 모유 수유를 하고 있던 나는 먼저 생활부터 철저하게 관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살림을 만나게 되었고 먹거리에 대한 중요성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둘째가 아니었다면 먹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할 때부터 한살림 물품들을 조심스럽게 살펴가며 하나씩 하나씩 접하게 되었는데 다행히 아이는 모든 음식을 아주 잘 먹어주었다. 건강한 음식을 먹어서 그런지 자라면서 아토피 피부염은 깨끗이 사라졌지만 알레르기 질환은 멈추지 않았다. 또한, 감기에 걸렸다하면 천식이 찾아와서 아이를 괴롭혔다.

기관지에 좋다는 배즙, 오미자음료, 도라지청을 가정상비약처럼 모셔두고 상시로 먹였다. 도라지청을 먹일 때는 너무 써서 조청을 타서 먹이기도 하고 오미자음료를 살짝 넣어 먹이기도 했다. 그중에서 아이가 가장 좋아해 자라는 동안 꾸준히 먹었던 것이 오미자음료이다. 다섯 가지 맛이 난다는 오미자는 맑은 날, 비오는 날 등 날씨에 따라, 찬물에 타거나 뜨거운 물에 탈 때마다 맛이 오묘하게 차이가 있었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타서 마시고, 더운 여름에는 물에 희석해서 얼렸다가 슬러시로 만들어 아이스크림 대용으로 먹이기도 했다. 오미자 슬러시에 시원한 한살림 수박을 썰어 넣어주면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먹곤 했다. 시중에서 파는 수박은 당도를 높이는 주사를 놓아 단맛이 강하지만 먹고 나면 갈증이 느껴진다. 하지만 한살림 수박은 자연스러운 단맛에 개운한 뒷맛이 일품이다. 아이가 그 맛을 느끼면서 자랄 수 있다는 것도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잔기침이 떨어지지 않을 때 오미자음료를 먹으면 효과가 있었다. 기관지에 오미자가 좋다는 것을 이 때문에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천식도 차츰 증상이 약해졌고 이제는 감기도 잘 안 걸리는 튼튼한 아이로 자랐다. 한살림의 모든 물품이 도움이 되었지만 그중에서도 한 가지를 꼽으라면 바로 오미자음료이다. 기관지가 약한 사람이라면 장기적으로 먹어보라고 적극 권하고 싶다.

아이는 알레르기가 음식첨가물에 민감한 것을 알아, 과자를 한 봉지 사도 제일 먼저 재료가 무엇인지 꼼꼼하게 살피고 가려서 먹을 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어느덧 자라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고 학교에서도 음식 안 가리고 골고루 밥 잘 먹는 아이, 몸에 해로운 첨가물이 어떤 것인지 가려가면서 먹을 줄 아는 현명한 아이가 되었다. 이렇게 우리아이가 한살림과 함께 뼛속까지 튼튼하게 성장한 것은 소중한 한살림 물품을 만나서이다. 그리고 생산자분들의 생명살림을 향한 정성이 모든 물품 하나하나에 다 깃들어있고 그것을 감사하게 먹을 줄 알고 나눌 줄 알게 된 것, 이 모두가 한살림 덕분이다. 

Posted by 박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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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기관지 주치의, 배농축액과 도라지청

 


박진양 한살림원주 조합원

 

‘엄마, 부인, 딸, 주부….’ 저는 행복한 호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 마음을 꽉 채워주는 따뜻하고 자랑스러운 호칭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한살림 조합원’입니다. 주부가 되어 살림을 하고 아기를 키우다보니 자연스럽게 ‘친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주변사람들에게 정보를 얻어 한살림을 접한 지는 1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 매장에 들어서 구경을 하던 날, 단순히 싼 것만 좋아하는 짠순이 주부였기에 ‘마트보다 좀 비싸네….’ 라는 생각에 그나마 저렴한 물건들만 장바구니에 담기 시작했죠. 하지만 5분도 지나지 않아 생각이 바뀝니다. “어라, 싱싱해 보이는 게 마트보다 더 싸네?” 제철에 나는 채소들 중에는 시중에 파는 마트 채소류보다 가격이 저렴한 것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트에 진열된 상품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난 품질, 가까운 생산지, 높은 신선도와 더불어 생산자분들의 따스한 손길까지 함께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한살림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또 하나 한살림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18개월 된 우리 아들, 한살림 먹을거리만 밥상에 올랐다하면 얼마나 맛있게 먹어주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우리보다 예민한 입맛 탓에 먹을거리에 담긴 신선한 공기까지 느끼기 때문에 그러겠죠?

 아, 그리고 우리 아들은 물론 우리 가족 모두가 사랑하는 먹을거리를 추천해드립니다. 환절기나 감기를 앓을 때. 우리 가족이 끌어안고 사는 우리집 기관지 주치의, 바로 배농축액과 도라지청입니다. 기침에 도라지와 배가 좋은 거 아시죠? 한살림 배농축액과 도라지청의 효과는 이루 말로 다 못합니다.

 젖을 끊고 난 뒤 감기에 자주 걸리던 우리 아들, 그럴 때마다 병원 약에만 의지하자니 과연 이게 아이에게 최선일까?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결국 배와 도라지를 끓여 먹여보니 증상이 좋아지기는 했으나, 몇 번 끓여먹고 나면 맛이 없어지고 버리게 되어 많이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끓여먹는 것을 포기하고 곰곰이 생각하다 한살림에는 이 문제를 해결해 줄 무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매장으로 향했습니다. 매장 활동가분들께 도움을 받아 이리저리 찾아보니 배농축액과 도라지청이 나란히 눈에 띄더라고요. 냉큼 집어 들고 집에 와서 한 숟갈씩 떠먹어 봅니다. “아….” 저절로 눈이 감기더군요. 도라지청은 정말 제대로 농축된 진하고 깊은 맛이었습니다. 생도라지보다 먹기도 편하고요. 배농축액은 제수용 배를 달인 것은 저리가라 할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 맛인지 드셔보신 분들은 아시죠?

 저처럼 아기 키우는 어머님들~! 병원 가시기 전에, 아니면 병원 약을 너무 오래 먹였다 싶을 때, 우리집 기관지 의사 도라지청과 배농축액을 데워 먹여보세요! 분명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한 달에 한두 번 꼭 병원 약을 먹어야 했던 우리 아들, 여전히 감기에 걸리기도 하지만 한살림 배농축액과 도라지청을 먹고 나서는 전보다 증상이 훨씬 덜하고 매번 목감기 열감기로 고생했던 것이 이제는 콧물만 약간 흘리다 끝이 납니다. 생각해보면 모두 고마운 생산자분들 덕분이지요.

 지금도 우리집 냉장고에는 고마운 두 물품이 고이 모셔져 있습니다. 기관지 약하신 분들, 한살림 배농축액과 도라지청으로 병원비도 줄이고 건강해지세요!

Posted by 박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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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도시락

한애선 한살림여주이천광주 조합원


지금은 초등학교라 불리는 어린 시절의 국민학교는, 한 반에 70명이 모여 있어 콩나물 시루 같았다. 학생 수에 비해 교실이 턱없이 부족해 오전반과 오후반도 있었고 학교 앞에서 파는 군것질거리는 떡볶이가 고작이었으며, 비릿한 냄새가 나던 비닐 포장의 서울우유 급식이 가장 호사스런 간식일 정도로 뭐든 물자가 풍족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무상급식으로 잘살건 못살건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친구들과 따뜻한 점심을 함께 할 수 있지만, 그 때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던 때라 집안 형편이 도시락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던 나와 남동생도 도시락을 싸보려고 부엌에서 애만 쓰다가 빈손으로 학교를 간 적이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나는 점심시간에 반 친구들의 밥 먹는 모습을 보며 애써 태연한 척 하고 있었는데, 마침 한 친구가 아버지가 오셨다고 나가보라고 했다. ‘바쁘신 아버지가 무슨 일로 오셨을까?’ 운동장에 쭈뼛거리며 나가보니 운동장 저 멀리에서 아버지가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도시락 두 개를 들고서...      
 아버지 손에 들려있는 도시락은 당시 유행하던 직사각형의 걸쇠가 있는 검은 보온 도시락이었다. 손짓하며 기다리고 서 계시는 아버지한테 가서 도시락을 받아들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되돌아가시던 아버지의 등을 한참 바라보다가, 남동생에게 도시락 하나를 전해주고 내 도시락을 열어보았다. 
 밥을 짓자마자 가지고 오셨기 때문인지 하얀 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시금치나물과 어묵볶음도 있었다. ‘아침에 먼저 나가셨던 아버지가 언제 집에 가셔서 밥을 하셨을까? 시금치와 어묵은 언제 사서 반찬을 만들어 오셨을까?’ 
 맛있다거나, 따뜻한 밥을 먹는다는 기쁨보다는 그 도시락을 전해 주고 서둘러 가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영화가 끝난 스크린의 잔영처럼 남아 미세한 여러 감정들로 마음이 먹먹했다. 아버지의 점심 도시락을 받던 그 날, 그 기억이 내가 아버지를 추억하는 가장 좋아하는 기억 중에 하나이다.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 탓에 패스트푸드를 빨리 접하고 인스턴트식품을 많이 먹다보니 내 건강도 좋지 않았지만, 결혼하고 낳은 아이들의 건강에도 문제가 있었다. 다행히 한살림 덕분에 무농약 양육, 전환기 양육, 유기농 양육으로 서서히 바꿔가고 아이들이 건강해지니 우리를 위해 헌신하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 어린 나이에 홀로 월남하여 집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기댈 곳 없는 서울살이를 하게 되셨던 아버지는 이북출신답게 동치미를 유난히 시원하게 잘 담그셨다. 환갑을 병원에서 맞으시고 그 길로 떠나신 아버지. 힘들 때마다 지탱해주시고 우리에게 당신 삶을 온전히 내어준 아버지의 밥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Posted by 박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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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떡에 한살림 쌀조청~ 꿀보다 조청입니다^^


김국희 한살림대전 조합원


저는 가구 수가 총 20채도 안 되는 서해의 작은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 집은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4남매까지 모두 여덟 식구였습니다. 섬 주민들은 서너 가구를 빼곤 친인척이어서 다들 가깝게 지냈습니다. 저희 할머니만 해도 섬에서 태어나셨고 역시 같은 섬에서 나고 자라 앞집에서 살던 저희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오셨습니다. 뒷집이 할머니 친정이었고 아버지에게는 외갓집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집 저집 놀러 다니다 밥 때가 되면 그냥 수저 하나 더 놓고 한 끼 먹는 것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았고, 아무 집에서나 놀다 쓰러져 자면 부모님이 업어서 집에 데려오시곤 하셨지요.

 명절 때면 섬 주민들끼리 다 같이 돼지도 잡고 가래떡이며 인절미며 함께 만들어 나누어 먹었는데, 어린 제 눈에는 그 시절의 명절은 진짜 축제 그 자체였습니다. 평소에는 구경하기 힘든 음식들이 풍성했으며 어른들은 모여서 윷놀이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집집마다 돌며 세배하고 50원, 100원 세뱃돈 받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정말 소중한 추억입니다.

 명절 음식 중 제가 가장 좋아하던 것은 한과였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과를 만들 때 바르는 조청이었지요. 어릴 적 섬에서는 한과도 만들어 먹었는데, 이때 기름에 튀겨낸 찹쌀 반죽에 조청을 바르고 그 위에 튀긴 쌀이나, 깨 같은 것들을 묻혀 먹었습니다. 기름에 튀기면 눈처럼 일어나는 한과를 보는 것도 즐거운 구경거리였지만 조청을 만드느라 풍겨오는 달달한 냄새 또한 잊을 수가 없습니다. 금방 떡메를 치고 콩고물에 굴려 만든 인절미를 막 만들어낸 조청에 찍어먹던 그 맛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다 같이 음식을 해 먹으며 보내던 명절도 할머니세대 분들이 한 분 두 분 돌아가시고 나자 시들해졌습니다. 섬에 남은 주민 수가 자꾸 줄면서 예전의 그 명절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4남매는 할머니와 함께 고모가 살던 서울로 공부를 핑계 삼아 올라오게 되어 섬에는 방학에야 가끔 내려가게 되었지요. 세월이 흘러 할머니는 제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 쯤 돌아가시고 엄마까지 병으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나이를 먹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어린 시절 즐거웠던 추억들은 자꾸만 잊혀져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살림 매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조청덕분에 어릴 적 기억들이 갑자기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과연 어릴 적 먹던 그 맛이 날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눈에 들어온 이상 사지 않을 수가 없어서 일단 한 병을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맛이 없으면 멸치조림에 설탕 대신 넣어 먹자는 요량으로 말이지요.

 집에 오자마자 냉동실에 얼려놓았던 시루떡 한 덩이를 녹이고 조청을 넉넉히 덜어내어 따끈한 시루떡에 찍어 먹어 보았습니다. 이럴 수가! 어렸을 때 먹어보았던 바로 그 맛이 아니겠어요!!! 정말 몇 십 년 만에 할머니와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바로 그 맛을 다시 느껴 보았습니다. 한살림의 먹거리, 물품들 다 고마운 마음으로 구입해 사용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조청은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얼마 후 이사를 해서 이사떡을 들고 들르신 시부모님께도 따끈한 떡과 함께 드시도록 조청을 담아 드렸는데, 시어머님은 어디서 이런 제대로 된 조청을 구했냐고 하시며 감탄을 하셨습니다. 누군가 집에서 만들어 나누어준 것인 줄 아시고 더 구할 수 있겠냐고 하셔서 걱정하지 마시라고 얼마든지 구해드릴 수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맛나게 드시는 시부모님 모습에 제 마음까지 다 흐뭇해졌습니다.

 조만간 친정아버지를 만나러 갈 때 따뜻한 떡에 한살림 조청을 준비해 가려고 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오랜만에 그립고 즐거웠던 어릴 적 이야기를 실컷 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아버지 또한 저처럼 옛 추억에 젖지 않으실까 싶네요. 여러분들도 따뜻한 가래떡이나 인절미에 한살림 쌀조청 한번 찍어 드셔 보세요. 정말 꿀보다 조청입니다~     

Posted by 박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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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 가득한 밥상차림!


·그림 박소영 한살림여주이천광주 조합원




참으로 오랜만의 한상차림이다. 이렇게 한살림 먹을거리로 밥상을 차리기는… 한살림 조합원으로 가입한 것은 2004년, 결혼을 하여 첫 아이를 가지고 얼치기 신혼살림을 꾸려가던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한살림을 가입한 것은 딱히 특별한 동기가 있었다기보다 단순히 ‘내 아이에게는 좋은 것만 먹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혼과 함께 시작한 남편의 사업이 힘들어지고 이에 따라 생활의 여유가 없어지면서 자연스레 한살림과 멀어지게 되었다. 그때는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유기농’딱지가 붙은 것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죄스럽다고 느껴졌다.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생활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마침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는 언니도 한살림을 애용하고 있어 최근 다시 한살림 장보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공급 받은 한살림 먹을거리들을 보니 음식을 만들고픈 의욕이 샘솟았다. 한살림과 멀어져 있는 사이, 결혼 8년차 주부로서 나의 ‘내공‘도 조금 쌓였고 복잡하진 않지만 이런 저런 반찬들을 만들어 한 상 내놓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고 할까? 싱싱한 쌈채소, 연근, 어묵, 미역줄기, 시금치, 콩나물, 감자, 유정란… 이 녀석들로 저녁밥상을 차리며 남편과 아이들의 반응이 참 궁금했다.

그렇게 부지런히 밥상을 차려놓으니 다양한 반찬에(평소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못하고 살았던지라) 반가워하는 남편과 엄마가 직접 만들어 준 반찬이라고 “엄마, 맛있어!”를 연발하며 이것저것 잘 먹어주는 아이들을 보니 고마운 마음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생산지에서부터 정성으로 키워져 내 식탁까지 공급된 먹을거리들, 거기다 가족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반찬을 만든 내 마음까지 더해져서 참으로 푸짐하고 행복한 저녁식사였다.

생각해보면 생활에 여유가 없다고 한살림을 멀리한 그 동안은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몇 번 한살림 마을모임에 나간 적이 있었지만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아 그만두기도 했었다. 힘들었던 그 시간 동안 두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며 작은 것에서 행복을 발견하려 애쓰고 살아온 나 자신이 안쓰럽고 한편으로 대견한 마음도 든다. 지금껏 두 아이들의 아빠로, 나의 남편으로, 우뚝 서서 언제나 노력하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남편도 무척 고맙다. 그리고 바깥에서 먹던 자극적인 먹을거리에 길들여졌으리라 생각했던 아이들이 ‘심심한’ 내 반찬을 맛있다며 너무 잘 먹어주는 모습도 얼마나 예쁘던지… 한살림을 다시 시작하며 내 마음이 처음과는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예전에는 유기농, 무농약 딱지에 집착하며 ‘내 아이의 입에 나쁜 것은 넣지 않겠다’는 단순하고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기까지 한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두 아이들을 키우며 다음 세대의 주인인 아이들을 위해 정말 우리 어른들이 지키고 물려줘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흙을 살리고 생명이 넘치는 땅을 위해 땀 흘리는 농민들을 돕는 길이 곧 나와 내 가족들, 나아가 모두가 사는 길임을 느낀다.

느긋한 성격 탓에 매주 월요일 주문 마감시간이 코앞에 닥쳐서야 늘 급하게 주문을 한다. 주문을 하며 “이건 우리 아들 좋아 하는 것, 또 요건 우리 딸내미 좋아하는 것, 그리고 이 재료는 어떻게 요리하면 맛있을까?”하고 고민하는 시간은 마트에서 즉흥적으로 장보면서는 맛볼 수 없는 커다란 즐거움이다. 이제 나와 우리 아이들은 매주 목요일 날 오시는 한살림 공급 실무자 아저씨를 즐겁게 기다린다. 앞으로도 한살림으로 우리 가족의 식탁이 언제나 즐겁고 행복할 수 있길 바라며

Posted by 박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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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유산, 한살림 고추장


조윤영 한살림서울 조합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하고 귀한 딸에게 무엇을 물려줄지 생각해 보셨나요? 저희 엄마는 저에게 한살림 고추장을 물려주셨습니다. 엄마는 어릴 적부터 고추장을 무척 좋아하셔서 특별한 반찬 없이도 고추장 하나만으로 따스한 밥에 싹싹 비벼 잘 드셨습니다. 매 끼니 고추장을 늘 애용하신 엄마를 닮아서인지, 저도 고추장을 참 좋아합니다.

엄마가 결혼을 한 후, 외할머니는 연세가 많아져 힘이 부치시기 전까지 정성이 가득 담긴 손수 만든 고추장을 엄마에게 계속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외할머니의 고추장을 먹고 자랐기에, 고추장 앞에 언제나 자동으로 외할머니를 붙여 ‘외할머니 고추장’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릇을 가지고 장독대에 가서 단지 안에 담겨있는 곱디고운 향과 빛깔의 외할머니 고추장을 정성스럽게 다독여 퍼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어느 날 엄마는 제가 결혼을 하면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했던 것처럼 고추장을 만들어 줄 수 없을 것이라며 미안해 하셨습니다. 오랜 암투병으로 인해 집안일이 많이 버거우셨던 탓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곧 방긋 웃으시며 한살림 고추장이 있으니까 괜찮아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제가 12살 때부터 엄마는 암 투병을 시작하셨는데 건강을 위해, 그리고 가까운 먹을거리의 의미를 실천하기 위해 한살림만 오래도록 이용하셨습니다. 우리가족에게 한살림은 무척 소중한 곳으로, 엄마의 건강에 도움을 주고 우리 가족의 밥상도 책임져 주었습니다.

엄마는 언제나 생산자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을거리와 생활용품들을 대하라고 교육하셨고 엄마처럼 결혼을 해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는 저 역시, 우리 집 먹을거리는 생수를 제외하곤 대부분 한살림 물품을 공급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 한살림 고추장은 언제나 냉장고 한 켠에 빨간 빛깔을 뽐내며 외할머니 고추장을 대신해 예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엄마는 제가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투병 생활을 다시 시작하셨고 3개월도 안되어 하늘나라로 가셨기에 다른 주부들처럼 결혼 후 친정 엄마가 싸주시는 음식을 받아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중하고 고귀한 많은 유산을 저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그 수많은 유산 중 하나가 한살림입니다. 엄마는 저에게 한살림을 이용하며 건강한 음식을 만들고 소박하지만 멋진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는 생활을 몸소 보여주셨고, 그런 생활이 몸에 배고 저절로 습득되도록 해주셨습니다..

자연의 선물들이 가득한 한살림을 언제나 만날 수 있어서 더욱 감사하고 항상 뜻 깊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한살림. 오늘은 특별히 엄마가 그리울 때 생각나는 고추장 현미 떡볶이를 만들어야겠습니다.

Posted by 박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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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허약했던 남동생의 건강을 위해 한살림

과인연을맺은우리엄마는20년이넘게한살림을애 용하고 계신 열혈 팬이시다. 동생으로 인해 한살림 이용 을시작했지만우리식구들은다들보통사람들에비 해 몸이 예민한 편이다. 특히 엄마는 선천적으로 모든 장기들의 기능이 떨어져 더욱 예민하시다. 그래서 다른 것도 물론 조심하시지만 음식에 관해서는 더욱 신경을 쓰셨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왜 그렇게 예민해? 대 충 살아, 그러니까 더 아프지.” 이런 식으로 엄마를 구 박했는데,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건강한 편이 아니지만, 이 정도 유지하고 살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엄마가 노력 한 덕이니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형제는나를포함하여4살,2살,6살터울로모두 4남매인데, 엄마는 한창 클 나이에 폭풍 식욕을 자랑하 던 아이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한살림으로 키우셨다. 그 당시만 해도 한살림 물품 값이 꽤 비쌌었는데, 우리 는 한살림만 고집하는 엄마에게 언제나 불만이었다. 다 른 엄마처럼 시장에 가서 채소 하나 사 먹이는 법이 없 었고, 그 흔한 소시지 한번 해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시장의채소와소시지를먹는다해서당장죽는것은 아니지만, 몸이예민한나는몸에독이쌓이는것을바 로바로느낄수있다.그결과조미료가들어간음식을 먹으면 언제나 탈이 나고, 유기농이 아닌 채소를 먹거나 시중의 달걀을 먹으면(난 달걀에 특히 약하다) 편도가 붓고 머리가 아프다. 한번은 남편과 연애 할 때, 집에 김 밥싸는재료가모자라마트에서장을봐서만든적이 있다. ‘내 몸이 특이하긴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직 접 만들어 먹었는데도 몸이 나빠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혼하고엄마가처음챙겨주신것이직접담근장과 한살림 물품 두 박스였다. 각종 나물부터 시작해 채소까 지 이것저것 넣어주시며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이 제엄마없으니까네몸은네가챙겨야한다고”고말씀 하셨다.너무너무고마운엄마...이런엄마와나를보 며 남편은 우리 모녀가 유별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 기야 음식 신경 안 쓰고 살았던 남자들이 여자를 쉽게 이해하는 것은 어려울 테니, 그런 행동들이 반갑지 않은 게 당연하다. 하지만 결혼하고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내 남편이 바뀌었다. 이제는 먼저 한살림 매장에 가자고 도하고,물품주문할때는안됐냐며나를자꾸귀찮게 한다. 매장에 가면 나를 팽개치고 혼자 이것저것 구경하 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웃음을 짓게 된다.

엄마가 평생 가족에게 하신 것처럼 난 지금 사랑하는 내 남편, 내 딸의 먹을거리를 엄마만큼, 아마도 엄마보 다더챙기고있다.배운게도둑질이라고엄마에게고 마움을 느낀다. 재밌는 건 나보다 늦게 결혼한 여동생도 나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처녀 때 엄마의 한살림 무한사 랑을 가장 반대하고 구박했던 동생이 나와 똑같은 길을 걷고있는것을보면,습관이무섭다는말처럼평생엄 마를보고자라며우리도모르게그길을가고있는것 같다.

한결같이 자식들을 위해 고생하신 너무나 고마운 엄마,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오랜 세월을 같이 해주고 엄마처 럼한결같이그자리에있어준한살림.지금까지그랬 듯이나머지인생도함께해주길바라는내게정말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들이다.


글 이현승 한살림서울 조합원

Posted by 박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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