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사랑 가득했던 생일상


안금모 한살림서울 조합원


내 고향은 부산이다. 바닷가라 해산물이 풍성하다.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해산물을 양껏 먹을 수는 없었지만 집 앞 시장에 가면 생선이 항상 즐비했다. 근처 어묵 공장에서 갓 나온 따끈따끈한 어묵도 생각난다.

그 시절, 생일날에는 그나마 맛있는 음식을 배 불리 먹을 수 있어 아이들은 생일을 무척 기다렸었다. 하지만 내 생일은 음력 8월 18일로 추석 쇠고 3일 뒤라 제대로 생일상을 받지 못 했다. 어린 맘에 추석 때 남은 음식으로 대충 내 생일을 축하해 주는 게 싫었다. 어느 날 엄마에게 푸념 섞인 말투로 ‘왜 내 생일은 추석 뒤야? 생일상도 제대로 못 얻어먹게….’이렇게 말 한 적이 있다. 엄마는 내 말이 맘에 걸리셨는지, 그 다음해부터인가 추석 장을 볼 때면 큰 조기를 한 마리 더 사서 따로 빼 놓았다. 그리고 내 생일에 미역국과 함께 조기를 쪄서 상을 차려주셨다.

먹성 좋은 7남매에 할머니까지 모시고 살던 우리 집은 먹을 게 풍족하지 못했다. 아무리 바닷가라 생선이 싸도 열 식구 입을 감당하기에 엄마는 늘 벅찼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섯 째인 나를 위해 큰 조기를 준비해주셨으니, 난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수수팥밥에 조기를 놓아 주시며 ‘우리 딸, 생일 제대로 못 챙겨 먹는다고 섭섭했지?’하고 말씀하시던 게 생각난다. 엄마는 곁에서 조기 살을 하나하나 발라주시며 어서 먹으라고 하시고는 조기 대가리를 씹어 드셨다. “엄마, 맛있는 살은 왜 안 먹고 왜 쓴 부위를 먹어?” 이렇게 물우면 “이 부분이 맛있는 부분이야” 대답하셨다. 나는 엄마의 그 말이 진심인 줄 알았다. 혼자서 야들야들한 조기 살을 맛있게 먹으며 엄마 입맛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다보니 귀한 생선을 구우면 내 입에 흰 살 넣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 입에 먼저 넣어 주고 나는 대가리 부분에 조금 붙은 살을 먹곤 한다. 그러다보면 그 옛날 내 생일상 앞에서 엄마가 생선 대가리를 드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 마음이 어땠을지 떠올리면 콧끝이 시큰해진다.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엄마가 차려주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수팥밥과 큰 조기가 놓여 있는 생일상이 잊히지 않는다. 7남매 중 다섯째였지만 나도 엄마에게 귀한 자식이었음을 느끼게 해 준, 엄마의 사랑 가득한 고마운 생일상.

 

 

Posted by 박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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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타게 기다린 ‘달지않은 곡물플레이크

 

유은선 한살림서울 조합원


처음 한살림에서 플레이크가 나왔을 때 식사대용으로 그만이기에 무척 기뻤다. 하지만
아쉽게도 설탕이 제법 포함되어 있어 우리 집에서는 이용하기 어려웠다. 아이들의 아토피가 설탕에도 반응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겉으로는 평범하게 보이지만 첫째 아이뿐만 아니라 둘째 아이까지 아토피성 피부염이 심해서 실제로는 무척 피곤한 생활을 하고 있다. 기분전환을 위해 맘 편히 외식을 할 수도 없고 치킨이나 피자를 시켜먹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며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면서 간식거리를 사먹으라 할 수도 없다.
자연스럽게 아이들 먹을거리는 엄마인 내 손을 거쳐야만 하는데, 아무리 여자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들 하지만 직장 다니며 가정을 돌보는 ‘직장맘’의 하루는 빠듯하기만 하다. 내 체력에도 한계가 있어 한창 먹을 나이인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간식을 제대로 준비해주지 못했는데 요즘은 얼마 전부터 공급되기 시작한 한살림 달지않은 곡물플레이크와 한살림 우유를 넉넉히 준비해 놓는 것으로 한시름 덜었다. 엄마 없는 집에 와서도 아이들이 아토피성 피부염 걱정 없이 질 좋은 간식을 챙겨먹을 수 있으니
참 다행이다.

우리 집처럼 설탕 없는 플레이크를 원하는 조합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개발했다는 달
지않은 곡물플레이크는 무농약 현미를 비롯한 국내산 곡식 4가지에 볶은소금 0.8%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소박하면서도 천연 재료들로 만들었기 때문에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에게도 안심하고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벽 운동을 위해 제일 먼저 집을 나서는 남편도 간단하게 우유에 한 그릇 말아먹고 나간다.

이처럼 편리함과 영양, 안전성에서 탁월하여 우리 집 필수품이 된 달지않은 곡물플레이크는 놀랍게도 맛있기까지 하다. 아무리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 곡물의 구수함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다른 잡맛이 없고 깔끔하다. 물론 마트에 가면 다양하고 놀라운 맛을 내는 플레이크들도 있겠지만 아토피 때문에 한살림 식구가 된 지 10년 쯤 지나고 나니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이 가장 맛있다고 저절로 느끼게 되었다. 첨가물이 덜 들어간 먹을 거리가 우리 몸에도 더 자연스러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가족의 생활을 피곤하게 만든 아토피
성 피부염에게마저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아토피의 원인을 따져보는 과정을 통해 사람과 자연의 소중한 의미와 고마움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달지않은 곡물플레이크를 개발해 준 도울바이오푸드 생산자와 한살림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제 일상의 노고를 덜어주는 물품들이 속속 공급되고 있으니 이를 통해 얻게 된 여유로 움을 좋은 곳에 쓰면서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Posted by 박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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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점심

 

배동순 한살림강원영동 조합원 

 

그날도 아침부터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일기예보는 또 ‘폭설주의보’, 겨우내 엄청난 추위에 시달리고 눈 치우느라 온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 이전까지 아파트에서 따뜻하고 편리하게 살아왔던 우리는 거의 죽을 맛이었다.

2011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 남편과 나는 오랜 도시생활을 접고 ‘많이 놀고, 하고 싶은 공부도 실컷 하고, 일은 조금만 하며 가난하게 살되 시간은 많이 누리는 삶’을 위해 아무도 아는 이 없는 해발 800m 고지 강원도 산골로 이사를 왔다. 물 많고 봄이면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핀다는 계곡에 자리 잡은 마을 끝집이었다.

새로 이사한 집은 지하수를 식수로 쓰고 있었는데 펌프가 자주 고장 나고 소음, 녹물 때문에 마을 상수도와 연결해 쓰기로 했다. 하지만 마을 이장님의 비협조가 문제였다. 몇 번을 벼르다 찾아간 이장님 댁에서 ‘그분’을 처음 만났다. 이장님과의 이야기가 빙빙 겉돌면서 진도가 나가지 않자 자신을 새마을 지도자라고 소개한 그분이 나섰다. 낯선 곳에 뿌리 내리려면 여러모로 힘들 테니 이장님이 선처해 주라고 부탁도 대신 해주었다. 그리고는 우리집 위치를 물어보며 내일 들리겠다고 했는데 다음날 정말 찾아오셨다. 허술한 우리 살림살이를 보면서 “소꿉놀이도 아니고 아이고, 여가 한겨울 영하 30도 까지 내려가는데….” 하며 그는 혀를 찼다. 그는 자신도 귀촌 7년 차인데 처음 3년 동안은 이 동네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지 회의도 들었다며 진심으로 우리를 걱정 해주었다.

그 때부터 짬짬이 우리집에 다녀가기 시작하면서 시골에 살자면 웬만한 건 본인이 다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우리가 생각만 하며 엄두를 못 내던 창고 짓기를 이끌어 주었다. 자신의 전동공구를 가져오고, ‘큰 연장을 쓸 때는 무서워하면 오히려 다친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수고비를 드리려하자 ‘돈을 받으면 내 본심이 사라진다’며 극구 사양했다. 그 정성에 힘입어 우리는 겨울이 오기 전에 손수 지은 창고와 태양열난방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상수도도 손쉽게 연결했다.

그 무섭다는 겨울이 왔다. 수도꼭지를 조금 열어두고 얼지 않게 해야 하는데 나는 물을 그냥 흘리는 게 불편해 늘 수도꼭지를 잠갔고 남편은 열었다. 잠그고 열고를 반복하다 어느 날 수도가 얼어 버렸다. 식수와 바깥 화장실이 없던 우리는 물이 많이 필요했다. 남편은 망연자실했다. 여러 시간 눈을 파헤쳐 개울로 내려가는 계단을 만들었다. 그래도 바닥은 얼어붙어 미끄러웠다. 물 긷는 일이 허리디스크가 다 낫지 않았던 내겐 힘들었다. 그래서 아주 조금씩 떠왔다. 남편이 물 긷는 일도 조마조마하게 지켜봤다. 하루 최소사용량 물 70리터 채워 놓기, 마당 쓸기, 개울로 내려가는 계단 관리하기. 그 겨울 매일의 숙제였다. 그 때 읽고 있던 지허스님의 토굴수행기 《사벽의 대화》가 큰 힘이 되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지금 여기’에 살고자 했지만 봄은 참 먼 곳에 있었고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그즈음 그분이 전화로 점심 먹으러 오라고 불렀다. 아침부터 쏟아지던 눈을 뚫고 도착한 그 댁에 차려진 밥상. 지금도 생생하다. 구수한 청국장에 고추부각튀김, 산나물 장아찌와 부인이 직접 담근 명란젓, 아삭한 통무김치…. 매일 긴장의 연속이었고 식생활은 거의 연명 수준이던 내가 무장 해제되는 순간이었다. “야 임마 너 한 달은 굶은 사람 같다. 좀 천천히 먹어.” 말하는 그에게 나는 말 시키지 말라고 손을 내저으며 허겁지겁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 그 밥은 내 육신과 정신의 허기까지 다 메워주는 것 같았다.

퍼붓는 눈이 빠르게 쌓이고 있어서 가지고 간 술은 한 잔도 못 마시고 급하게 일어서야 했다. 눈발이 퍼붓고 있었지만 밥의 온기가 가득했던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오지 않을 것 같던 봄이 왔다. 산골에서 한 해를 살아낸 무렵 그분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아이처럼 엉엉 목 놓아 울었다. 그 분은 평소 즐겨가시던 계곡 작은 나무 아래 한 줌 재로 안장되었다. “이제 산이 되고 나무가 되셨을 선생님 편안하신지요? 그때 먹었던 따뜻한 밥이 제게 큰 힘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Posted by 박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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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이 아토피가 나았어요!

 

김보경 한살림청주 조합원

아이가 백일이 조금 안 되었을 때다. 멀쩡했던 아이 몸에 아토피가 심하게 올라왔다. 너무 간지러운지 아이는 수시로 긁어댔다. 자고 일어나면 아이가 입은 옷에도 이불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걱정이 돼 소아과에서 아토피 피부염 치료약을 처방 받았다. 조금 나아지나 싶더니만 원상태로 돌아왔다. 아는 분이 피부과로 가야 한다 해 피부과에서 진료를받았다. 역시 조금 낫는 가 싶더니만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 주위 사람들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 많은 의견을 주었다. 마음이 급했던 나는 이것저것 사용해 보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 더 나빠지기도 했다. 아토피에 도움을 준다는 식품류도 마찬가지였다. 속이 무척 상했다. 여러모로 애써서 간신히 아토피가 나아지는 거 같더니만 오히려 상태가 더 안 좋아진 것이다. 나는 나대로 스트레스 받고 아이는 아이대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나는 그때 모유수유 중이었다. 내가 뭘 먹느냐에 따라 아이의 아토피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고기는 물론이고 단백질이 많이 들어있는 먹을거리는 일체 먹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매일 ‘풀만 뜯어야’ 했다. 그러다보니 기운이 없고 아이 돌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러다간 내가 먼저 쓰러질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단백질 섭취를 위해 모유수유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한살림이라는 곳이 있으니 매장에 가 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전까지 나는 한살림이 뭔지 몰랐다. 그냥 보통 마트 같은 곳에서 유기농을 팔 듯, 그렇고 그런 유기농 매장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한살림에서 먹을거리를 사고 보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제 한살림을 애용한 지 두어 달 된 새내기 조합원이다. 한살림을진작 알았더라면 이렇게 아토피 피부염 때문에 아이를 고생시키지 않고 모유수유도 계속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안타깝다. 그래도 아이가 많이 좋아져서 참 다행이다. 이제 아토피 약은 끊은 상태고 한살림에서 구입한 고기와 채소들을 꾸준히 먹고 있다. 2주 정도 지나니 호전되는 게 보였고 한 달이 지나니 주변 사람들도 알아 볼 정도였다. 보는 사람들마다 ‘얼굴이 많이 좋아졌네’가 첫 인사가 되었다. 많은 분들이 아이의 아토피를 걱정해주셨는데,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상태가 나아지니 긁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요즘 나는 ‘오늘은 어떤 걸 먹어볼까’ 이런 상상으로 즐겁게 한살림 매장에 간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한살림에 있는 물품들 대부분이 유기농에다 믿을 수있는 생산자가 있어 아이도 나도 더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Posted by 박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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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마음 달래준 밥상의 기억

 

정수정 한살림고양파주 조합원

 

 

밥 한 그릇

나름 학문에 큰 뜻을 품고 일찌감치 지방 소도시로 떠난 유학생활, 고등학교 3년 질풍노도의
시간을 나는 무허가 상가주택의 맨 끄트머리 구석진 방에서 고스란히 앓으며 보냈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된통 걸리던 감기몸살, 어느 날 혼자서 끙끙거리는 모습을 보고 간 고향 친구 지연이가 집에 가서 그 이야길 꺼냈나 봅니다. 지연이 엄마가 전화를 걸어오셨지요.
“수정아, 뭐 먹고 싶은 거 없니? 아줌마가 해가지고 갈게.”
그때의 나직하고 따듯한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제대로 밥알을 삼키지도 못하고 있던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김치찌개요” 대답했습니다. 그날 저녁 지연이 엄마는 하얀 쌀밥에 김치찌개를 끓여 직접 내 방으로 오셨고, 엉망으로 널브러져 있던 옷가지며 책까지 말끔히 치워주고 가셨습니다. 김치찌개와 밥을 우걱우걱 퍼먹으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감기가 말끔히 나아버린 것은 말할 나위 없었지요.

 

밥 두 그릇

그저 젊음이 버거워 마냥 방황하던 이십대 중반의 초여름, 아침 일찍 일어나 무조건 집을 나섰어요.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친구 순영이의 첫 발령지였던 경기도 이천의 한 중학교 이름뿐. 휴대전화도 없이 어렴풋한 기억을 애써 떠올리며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해 버스를 두어 번 갈아타고 겨우 학교를 찾아낸 시간은 그림자가 한가롭게 누운 늦은 오후였어요.
교실 창문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마침 수업 중이던 친구를 찾아냈고, 담벼락 아래 장미꽃 덩굴을 구경하며 친구의 퇴근시간을 기다렸지요. 그날 우린 시골의 허름한 술집에서 맥주를 실컷 마시고도 모자라 친구의 자취방에 누워 밤새 이야기를 했답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떠 보니 친구는 벌써 출근을 한 후였어요.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리니 머리맡에 놓여있는 작은 밥상과 양말 두 켤레, 그 위에 곱게 접힌 종이 한 장이 눈에 띕니다.
‘수정아, 밥 꼭 챙겨먹고 가. 국은 부엌 가스레인지 위에 있으니 데워서 먹고, 양말은 둘 중에서 맘에 드는 걸로 골라 신고 가.’
속 쓰린 아침 친구의 집에서 혼자 먹는 밥이 어찌 그리 달았을까요. 나는 편지와 양말 두 켤레를 번갈아 쳐다보며 자꾸만 웃음이 나왔습니다.


밥 세 그릇

결혼을 하고, 밥을 얻어먹는 일보다 밥을 차려 가족을 먹여야 하는 날들이 많아질 즈음 문
득 지쳐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주한 일상 속에 나 자신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듯한 허망함에 시달릴 즈음, 내게 한살림을 알게 해 준 한 선배가 있습니다. 10년 전 직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 가정과 일터를 오가느라 분주한 선배의 모습은 한없이 커 보이긴 했지만 그만큼 숨 가쁘게 느껴지지도 했습니다.
“수정 씨, 집으로 밥 한 번 먹으러 와.” 입버릇처럼 하던 선배의 말이 그제야 떠올랐어요.
처음 찾아간 선배의 집에서 그가 손수 준비한 따듯한 밥상에 마주앉았지요. 작은 무쇠가마솥에 갓 지은 잡곡밥, 된장으로 조물조물 무쳐낸 나물, 말갛게 끓인 다시마 북엇국, 대낮의 막걸리 한 잔까지. 투박한 질그릇에 담긴 점심 밥상은 고향집 엄마의 향기와 다르지 않았어요. 그 후로 지친 마음을 둘 데 없어 심란할 때면 슬그머니 선배의 밥상을 찾는 염치없는 후배가 되어버렸지요.


이제, 마음이 힘든 누군가를 위해 내가 손수 밥상을 준비할 때가 된 것 같네요. 내가 차린
작은 밥상도 누군가의 지친 마음을 쉬어갈 수 있게 해준다면 한없이 기쁘겠어요!

 

 

 


Posted by 박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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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감기 꼼짝마! 한살림 쌍화차

 

조연현 한살림서울 조합원


나는 어려서부터 몸살감기에 잘 걸렸다. 체력이 약하고 몸이 마른 편이어서 감기에 걸리면 항상 몸살과 오한이 심하게 왔고 걸어 다니기도 힘들 정도로 온 몸이 쑤시고 아팠다. 이런 몸살감기에 대처하는 나만의 처방은 쌍화탕 마시기와 땀 빼며 잠 자기였다. 따뜻한 음식을 먹고 따뜻한 물과 쌍화탕을 마신 다음, 뜨거운 방에서 옷을 두껍게 껴입고 밤새 땀을 흘리
며 잤다. 그렇게 몸에서 땀을 흠뻑 빼고 나면 몸속의 찬 기운이 다 빠져나와 몸살감기가 낫곤 했다.

이때 마셨던 쌍화탕은 약국과 슈퍼마켓 등에서 판매하는 시중의 쌍화탕이었다. 쌍화탕을 마시지 않는 것보다는 마시는 것이 감기에 훨씬 도움이 됐고, 감기에 걸렸을 때뿐 아니라 감기에 걸릴 기미가 있을 때 마셔도 효과가 있었다. 20대까지만 해도 이렇게 하면 감기가 나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같은 방법으로는 효과가 별로 없어 몸살감기로 고생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한살림 조합원이 되어 여러 물품을 이용하던 중 한살림 쌍화차를 알게 되었다. 몸살감기에 잘 걸리는 내게는 필수품이었기에 반가운 마음에 주문을 했다. 처음 한살림 쌍화차를 마시며 들었던 느낌은 매우 강렬했다. 시중 쌍화탕보다 훨씬 진하고, 단맛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때서야 시중 쌍화탕의 성분을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시중 제품에는
어두운 색을 내기 위한 캐러멜 색소도 들어가 있었고 설탕 성분도 많았다. 몸에 안 좋은 화학첨가물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몸에 좋다고 먹었던 것이 실제로는 독으로도 작용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반면 한살림 쌍화차는 화학첨가물 없이 약재만으로 자연스러운 색과 맛을 냈기 때문에 몸에 훨씬 좋은 효과가 있었다. 감기 기운이 막 일어날 때 한살림 쌍화차를 마시고 자고, 그 다음날 한두 번 더 마셔주면 감기에 거의 걸리지 않았다. 환절기마다 심한 몸살감기를 앓았던 내가, 한살림 쌍화차를 마시기 시작한 이후로는 몸살감기에 한 번도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코감기는 한 번 걸린 적이 있는데, 몸살 없는 감기를 앓았기 때문에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다. 이제는 첨가물 없는 한살림 쌍화차에 익숙해져서 약재 자체에서 나는 자연스런 단맛을 느끼게 되었고 시중 쌍화탕은 너무 달고 묽어서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살림 쌍화차는 나의 고질적인 몸살감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었다. 감기에 걸릴까 노심초사하면서 여러 가지 활동을 맘껏 하지 못하고 위축돼 있었던 마음도 활기차게 해주었다. 감기로 인해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는 일도 거의 없게 해 준 정말 고마운 물품이다. 다시 말해 단순히 감기에 걸리지 않게 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생활을 활력 있고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해준, 삶의 태도를 바꾸는 데 있어 하나의 계기가 되기도 한 은인 같은 물품이다. 내가 실감나게 효과를 체험하고 있기에, 나와 비슷한 체질의 친구들에게 한살림 쌍화차를 적극 추천하고 있다. 지금 같은 좋은 성분의 쌍화차가 계속 공급되길 바랄 뿐이다.

 

 

Posted by 박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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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한 번도 안 써본 것?

 

조슬기 한살림서울 조합원

 

“슬기, 면생리대 한 번도 안 써봤어? 되게 좋은데!” ‘사직동 그 가게(티베트 난민과 연대하는 작은 카페)’ 친구와 함께 좁은 부엌에서 일할 때는 요즘 사는 이야기부터 먹을 것과 건강에 대한 이야기까지 수다가 가득하다. ‘나는 왜 면생리대를 안 써봤지?’ 생각하니 신기한 일이다. 대학교 때 녹색살림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친구는 없었지만 여성주의 활동을 함께 하는 친구는 많았다. ‘대안생리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알록달록 오색빛깔 천들은 늘 주위에 있었다. 친구들은 생리대가 부끄러운 게 아니니 일부러 남학생이 있는 곳, 사람이 많은 곳 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리대 키트를 꺼내놓고 바느질을 했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의 세미나를 하고 그런 책을 읽고 그런 글을 썼으면서 왜 면생리대는 한 번도 안 썼담?

무언가를 시도해보지 않았다면 두 가지 이유일 것이다. 너무 하기 어려운 일이거나, 필요를 못 느끼는 일이거나. “면생리대 한 번 쓰면 다시 비닐생리대 쓰고 싶지 않을 걸.” “그래? 그 정도야?” 초경 이후 슈퍼에서 파는 ‘일반생리대’만을 써본 나는 그게 불편한 줄 몰랐다. 월경 때 아랫도리가 덥고 답답하고 냄새도 나는 걸 생리대 탓이라 생각 못하고 월경 탓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가 아니라 한다. “나도 그런 줄 알았어!” 사직동 그 가게에서 면생리대 워크숍을 한 적도 있단다. 강사는 젊은 분이었는데 그분은 태어나 한 번도 비닐생리대를 써본 적이 없고. 초경 때 할머니가 면생리대를 건네주셨단다. 태어나서 한 번도 면생리대 써본 적 없는 나와 반대인 그 분, 재미있기도 했지만 나와 같이 살아 온 사람들이 많겠다 싶어 생각이 깊어졌다. 뭐가 더 유별난 일인지, 뭐가 더 자연스럽지 않은 일인지, 내 평범한 친구들은 고기 먹지 않는 내가 신기하다지만 ‘평범’과 ‘정상’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지.

중학교 때 유명한 미국 브랜드 생리대 회사에서 판촉활동으로 성교육 강사를 보낸 적이 있다. 여중생들에게 전교 방송 스피커로 설파한 그 성교육이 엉터리임을 두말할 것 없지만 - 그는 입담 좋은 영업사원이었으리라, 재미는 있었다 - 우리에게 큰 상흔(?)을 입힌 말은 이거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생리대를 갈아야 해요!” 하루 한 번 샤워를 하는 게 상식이듯, 어 원래 그런 건가보다 우리는 믿었다. 그러지 않는 자신이 더러운 마냥. 생리 양, 생리 때 느끼는 예민함과 통증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우리는 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저 비밀스럽게 생리대를 사고, 장롱 속에 보관하고, 가끔 못 챙겼을 때는 입술을 오므리고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너 생리대 있어?” 묻는 법만 배웠을 뿐. 현대에서 그저 ‘생리대’라 부르는 기성품 비닐생리대가 여자 몸 가장 예민한 곳에 얼마나 나쁜 유해물질을 흩뿌려대는 것인지 담론을 대놓고 하기 어려웠으리라.

친구의 생활밀착형 면생리대 찬양이 끝나고 나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걸 쓰면 생리통도, 냄새도 사라진다고? 월경하는 게 전혀 싫은 일이 아니라고? 다 피부가 숨을 못 쉬게 하는 비닐생리대 탓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고?’ 그날부터 눈을 크게 뜨고 면생리대 파는 가게가 없나 둘러봤다. 이럴 수가. 동대문에서 천을 끊으면 쉬운 일이겠지만 멀리 일부러 가지 않고 왔다 갔다하는 내 생활동선 안에서 찾으려 하니 없었다. 슈퍼에도 소품 가게에도 있을 리가 없었다.

무독성 제품이나 유기농산물에 큰 관심이 없던 새언니가 자꾸 주위에서 한살림 이야기를 듣더니 조합원이 되었다. 같이 사는 나도 조합원 가족으로 한살림 길음매장에 들른 어느 날, ‘앗, 있다 있어!’ 내 집 반경 25km내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못 찾았던 그 귀한 물건이 여기 툭 놓여있던 것이다. 그것도 친구에게 들었듯 ‘무형광·무표백 순면, 기저귀처럼 접어쓰는 천, 이름도 예쁜 달맞이’ 딱 그게 있었다. ‘그래, 한살림에서는 몸에 좋은 것, 그러면서 쓰기 편한 것을 만드는구나. 오랫동안 이 살림을 꾸려왔으니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겠지’ 한살림에 대한 첫 감동.



Posted by 박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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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우리밀 사랑꾼 우리가족

 

구남기 한살림경남 조합원

 

우리 식구는 음식에 유달리 예민한 편입니다. 원래 연약한 체질이던 저와 저를 닮은 아들은 첨가물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나 수입식품을 먹으면 소화를 잘 못 시키고 가끔 두드러기나 아토피처럼 피부 발진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남편은 그나마 나아 웬만한 음식은 잘 먹지만 외식을 하거나 수입밀가루 같이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 더부룩해하고 힘들어했습니다.

저는 결혼하고 아들을 낳아 키우면서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습니다. 몸을 회복하려고 건강 서적을 보며 식품에 대해 공부를 하고 되도록 우리 농산물이나 유기농 식품을 가족에게 먹여야 겠다 싶어 주변에 있는 유기농 매장을 알아보고 인터넷을 뒤지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유기농 매장은 수입농산물을 취급하지만 원칙적으로 취급하지 않는 곳은 유일하게 한살림뿐이었습니다(국내산이 거의 없는 명태는 예외). 그 무렵에는 집 가까이에 한살림매장이 없어 가끔 인터넷주문을 이용했습니다. 그러다 창원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삿짐을 풀고 집 근처에 한살림매장이 있는지부터 확인하였습니다. 반갑게도 우리 아파트 상가 안에 이름만 들어도 친근한 한살림매장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상가 지하에 큰 마트가 있었지만 우리 가족은 한살림매장으로 장을 보러 갔습니다. 그곳에 우리 세 가족이 먹을 만한 양식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지요. 가격이 시중보다 비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계획적으로 장을 보고 낭비없이 먹다보면 훨씬 더 절약도 되고 경제적일뿐 아니라 마트에 파는 유기농 제품들이 한살림 물품보다 훨씬 비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세 식구는 한살림의 다양한 물품을 애용합니다. 특히 본래 간에 좋은 음식이었다고 책에서 읽은 국수, 빵, 만두 등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을 무척 좋아해 매장에 들를 때마다 사오곤 합니다. 건강에 문제가 없을 때는 아무 베이커리에 들러 빵을 두 손에 가득 안고 와 먹곤 했지만 건강이 나빠진 이후로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특히 표백제와 각종 첨가물이 들어간 수입 밀가루 빵은 즉석 빵이라도 소화가 안 될 뿐 아니라 간에 좋기는커녕 오히려 힘들어 지게하고, 하루 종일 몸도 찌뿌듯해 기분이 나빠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우리밀로 빵 굽는 곳을 찾아 가기도 하였고,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 어렵게 우리밀 빵을 사 오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한살림을 이용한 뒤로 우리 세 식구는 웃으면서 편하게 밀가루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밀을 사용한 만두, 라면, 빵 등 각종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김치만두, 물만두 등 한살림만두는 남편과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고, 가끔 끓여먹는 쌀라면과 감자라면은 주말 별식이 되었습니다. 시중 라면들은 먹고 나면 하루 종일 끙끙 앓게 되는데, 한살림라면은 맛있고 소화도 잘 되면서 자극적이지 않아 아들이 무척 좋아합니다. 또한, 우리밀빵은 먹어보면 놀랄 정도로 맛이 좋고 담백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소화가 정말 잘 돼 ‘이게 진정한 빵이구나’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식품을 볼 때 늘 성분표부터 확인하는데 우리밀빵은 얼마나 고심하고 빵을 만들었는지 깊은 울림이 느껴졌습니다. 밀에 함유된 글루텐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유산균이나 발효종을 넣은 빵을 보고 무척 감동하고 감사했습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아들은 이제 “엄마, 한살림에서 빵 사왔어?”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한살림매장을 이용하면서 세 식구 건강도 챙기고 우리 농축수산물까지 살리니 일석이조입니다. 앞으로도 우리가족은 우리밀 사랑에 빠져 있을 것이고 평생 쭉 한살림과의 인연을 이어갈 것입니다. 우리가족은 행복한 우리밀 사랑꾼입니다.

Posted by 박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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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속 달래준 콩나물 국밥


이은희 한살림서울 조합원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메일을 여러 번 수정하고도 쉽사리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다시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사직서를 제출했다. 시계는 어느새 새벽 다섯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배가 고팠다. 따뜻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밤새 영업을 한다는 콩나물국밥집이 떠올랐다. 출근하려면 늘 7시에는 집을 나서야 했다. 그러려면 아침마다 서둘러야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아직 어둑어둑했다. 하지만 지금 나가지 않으면 시간이 빠듯할 터였다. 나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모자와 열쇠도 챙겼다. 밖은 조금 무서울 정도로 어두웠고 새벽바람이 제법 쌀쌀했다. 나는 반쯤만 올렸던 겉옷의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걸음도 빨라졌다. 부지런히 걸은 덕분에 금세 골목을 빠져 나와 도로 가에 이르렀다. 불빛이 한두 개씩 보이고 사람들도 눈에 띠기 시작했다. 도로를 따라 콩나물국밥집이 있는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겉보기와 다르게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차림표를 힐끗 보았다. 주인은 혼자 왔냐고 물었을 뿐, 더 기다리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메뉴라고는 국밥과 모주뿐이었다.

처음 콩나물국밥을 먹어본 것은 전주에서였다. 차를 얻어 타다가 계획에도 없던 전주에 들리게 되었다. 전주에 마땅히 아는 식당도 없었고 그나마 가는 곳마다 문이 닫혀있거나 썰렁했다. 처음에는 관광책자에 나온 유명하다는 비빔밥집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그런 집들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고 직원들은 무심했다. 혼자 앉아있기 멋쩍어 그대로 나왔다. 안 그래도 배고프고 힘들었던 터라 기분이 울적했다. 나는 다시 전주 거리를 헤매다가 충동적으로 콩나물국밥집에 들어갔다. 아마 관광책자 어디쯤에서 비빔밥과 나란히 소개된 전주의 콩나물국밥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넓은 가게 안은 비빔밥집과 마찬가지로 사람들로 빼곡히 차있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시끄럽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어리벙벙하게 서 있다가 빈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묻지도 않고 음식이 차려졌다. 반찬 몇 개와 김 한 봉지, 콩나물국밥 그리고 반숙된 달걀이 담긴 스테인리스 밥그릇이었다. 나는 더 당혹스러워졌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음식을 내온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처음 먹어보나 봐?” 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머니는 웃으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김을 찢었다. 자잘하게 찢은 김을 달걀이 담긴 그릇에 담고 국물도 몇 수저 떠 넣었다. 그리고는 착착 비벼 내게 건넸다. 노른자가 덜 익어 국물이 노랬다. 그릇을 받아 들면서도 이걸 먹어야 할지 난감했다. 친절하게 설명해준 아주머니가 보고 있는데 안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애써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그런데 웬걸, 너무 맛있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아주머니를 보았다. 아주머니는 거 봐, 맛있지? 하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리고 맛있게 먹으라며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나는 순식간에 국물도 남기지 않고 한 그릇 비워냈다. 정말 맛있었다. 낯선 도시를 헤매던 수고를 충분히 보상받은 것 같았다.

기대와 추억이 뒤섞여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음식이 나왔다. 동네에서 유명한 집이라던 콩나물국밥집은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금 아쉬웠다. 전주에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 때문에 서울에 돌아와서 몇 번 더 콩나물국밥을 먹어봤지만 도통 그 때 그 맛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추억이야 말로 가장 훌륭한 양념이 아닐까 싶다. 나를 위로하던 따뜻한 국밥 한 그릇. 오늘따라 그립다.


Posted by 박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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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를 지켜주는 물살림 샴푸, 린스, 물비누

 

장소영 한살림청주 조합원

 

우리 가족들은 모두 학교나 회사에 다니느라 매일 외출을 합니다. 도시에 살기에 공장이나 자동차 매연 등 오염 물질에 노출되는 일이 많아 집에 돌아오면 신경 써서 온몸 구석구석을 씻지요. 그런데 피부가 민감해지는 환절기나 건조한 겨울철에는 피부가 따갑고 피부 결이 갈라지는 증상이 생기곤 합니다. 이번 겨울에도 어김없이 집안 식구 모두 피부건조증으로 몸에 하얀 각질이 일어나고 심지어 두피에도 하얀 부스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별다른 해결책은 없고 일시적으로나마 피부를 진정시키기 위해 가족들은 온 몸에 로션을 덕지덕지 발랐습니다.

대체 왜 그런 것인지 원인을 알아보니 씻을 때 사용해온 시중의 샴푸와 비누에 함유된 화학물질 때문이었습니다. 이 화학물질들은 몸에 해롭기도 하고 피부 침투력이 커 민감한 피부 점막을 파괴한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피부 속 수분이 빠져나가 피부가 건조해지고 주름이 생겨 노화도 쉽게 진행 된다고 합니다.

저는 3년 전부터 보습력이 뛰어나고 피부자극이 없는 한살림 화장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 혼자만 사용했지만 시중의 화장품을 사용하다 피부 트러블을 경험한 가족들도 제 화장대에 놓인 한살림 화장품을 바르기 시작했지요. 이렇게 화장품은 가족들 모두 한살림 물품을 이용했지만 샴푸, 린스 등은 시중의 제품을 사용해온 게 문제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거품이 많이 나는 게 익숙해, 천연 재료로 만들어 거품이 적게 나는 한살림 물품으로 씻을 때면 왠지 덜 개운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선뜻 이용하지 못했는데 이번 겨울은 특히 피부가 건조해 과감하게 ‘물살림’ 샴푸와 린스, 물비누를 공급 받아 쓰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거품이 많이 나지 않아 못 미더워하는 눈치였지만 사용하면 할수록 자극적이지 않고 보습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가족들 모두 한살림 화장품을 사용해온 것처럼 물살림 물비누와 샴프, 린스를 좋아하게 되었지요.

샴푸나 물비누의 중요 성분은 계면활성제인데요, 가족들과 천연계면활성제와 합성계면활성제를 비교한 방송을 본 일이 있었습니다. 방송에서는 두 개의 금붕어 어항을 준비해 한 곳에는 천연계면활성제를 넣고 또, 한 곳에는 합성계면활성제를 넣어 비교를 했는데요. 합성계면활성제를 넣은 어항의 금붕어는 3분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가족들은 이를 보며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던 것들이 인체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크게는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가격이 조금 비싸다거나 평소 익숙하던 맛과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처음에는 가족들이 한살림 물품을 낯설어 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 스스로 한살림 물품을 통해 피부트러블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경험을 하면서 지금은 한살림에서 추구하는 목적과 가치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당장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이번 계기를 통해 가족들이 한살림과 조금 더 친밀해져 기쁩니다. 앞으로도 집안 구석구석에 한살림 물품들이 놓여있기를 소망합니다.

Posted by 박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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