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떡에 한살림 쌀조청~ 꿀보다 조청입니다^^


김국희 한살림대전 조합원


저는 가구 수가 총 20채도 안 되는 서해의 작은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 집은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4남매까지 모두 여덟 식구였습니다. 섬 주민들은 서너 가구를 빼곤 친인척이어서 다들 가깝게 지냈습니다. 저희 할머니만 해도 섬에서 태어나셨고 역시 같은 섬에서 나고 자라 앞집에서 살던 저희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오셨습니다. 뒷집이 할머니 친정이었고 아버지에게는 외갓집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집 저집 놀러 다니다 밥 때가 되면 그냥 수저 하나 더 놓고 한 끼 먹는 것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았고, 아무 집에서나 놀다 쓰러져 자면 부모님이 업어서 집에 데려오시곤 하셨지요.

 명절 때면 섬 주민들끼리 다 같이 돼지도 잡고 가래떡이며 인절미며 함께 만들어 나누어 먹었는데, 어린 제 눈에는 그 시절의 명절은 진짜 축제 그 자체였습니다. 평소에는 구경하기 힘든 음식들이 풍성했으며 어른들은 모여서 윷놀이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집집마다 돌며 세배하고 50원, 100원 세뱃돈 받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정말 소중한 추억입니다.

 명절 음식 중 제가 가장 좋아하던 것은 한과였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과를 만들 때 바르는 조청이었지요. 어릴 적 섬에서는 한과도 만들어 먹었는데, 이때 기름에 튀겨낸 찹쌀 반죽에 조청을 바르고 그 위에 튀긴 쌀이나, 깨 같은 것들을 묻혀 먹었습니다. 기름에 튀기면 눈처럼 일어나는 한과를 보는 것도 즐거운 구경거리였지만 조청을 만드느라 풍겨오는 달달한 냄새 또한 잊을 수가 없습니다. 금방 떡메를 치고 콩고물에 굴려 만든 인절미를 막 만들어낸 조청에 찍어먹던 그 맛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다 같이 음식을 해 먹으며 보내던 명절도 할머니세대 분들이 한 분 두 분 돌아가시고 나자 시들해졌습니다. 섬에 남은 주민 수가 자꾸 줄면서 예전의 그 명절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4남매는 할머니와 함께 고모가 살던 서울로 공부를 핑계 삼아 올라오게 되어 섬에는 방학에야 가끔 내려가게 되었지요. 세월이 흘러 할머니는 제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 쯤 돌아가시고 엄마까지 병으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나이를 먹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어린 시절 즐거웠던 추억들은 자꾸만 잊혀져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살림 매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조청덕분에 어릴 적 기억들이 갑자기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과연 어릴 적 먹던 그 맛이 날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눈에 들어온 이상 사지 않을 수가 없어서 일단 한 병을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맛이 없으면 멸치조림에 설탕 대신 넣어 먹자는 요량으로 말이지요.

 집에 오자마자 냉동실에 얼려놓았던 시루떡 한 덩이를 녹이고 조청을 넉넉히 덜어내어 따끈한 시루떡에 찍어 먹어 보았습니다. 이럴 수가! 어렸을 때 먹어보았던 바로 그 맛이 아니겠어요!!! 정말 몇 십 년 만에 할머니와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바로 그 맛을 다시 느껴 보았습니다. 한살림의 먹거리, 물품들 다 고마운 마음으로 구입해 사용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조청은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얼마 후 이사를 해서 이사떡을 들고 들르신 시부모님께도 따끈한 떡과 함께 드시도록 조청을 담아 드렸는데, 시어머님은 어디서 이런 제대로 된 조청을 구했냐고 하시며 감탄을 하셨습니다. 누군가 집에서 만들어 나누어준 것인 줄 아시고 더 구할 수 있겠냐고 하셔서 걱정하지 마시라고 얼마든지 구해드릴 수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맛나게 드시는 시부모님 모습에 제 마음까지 다 흐뭇해졌습니다.

 조만간 친정아버지를 만나러 갈 때 따뜻한 떡에 한살림 조청을 준비해 가려고 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오랜만에 그립고 즐거웠던 어릴 적 이야기를 실컷 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아버지 또한 저처럼 옛 추억에 젖지 않으실까 싶네요. 여러분들도 따뜻한 가래떡이나 인절미에 한살림 쌀조청 한번 찍어 드셔 보세요. 정말 꿀보다 조청입니다~     

Posted by 한살림연합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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