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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살림‧농업살림‧생명살림/살림의 마음

희망을 지키는 선택, 살림의 편에 서다


 강수돌


제균 감독의 영화 <국제시장>은 흥남부두에서 큰 배를 타고 부산으로 피난을 가는 덕수네 가족 이야기를 다룬다.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라, 실은 1950년대 한국전쟁 시기로부터 시작하여 1964년 처음 전개된 독일 파견 광부와` 간호사 이야기, 그리고 1970년대 베트남 전쟁과 1980년대의 남북 이산가족 찾기 캠페인 등 한국 현대사를 아우르는 가족사다.

이 영화에는 의 관점에서 몇몇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첫째, 195012월 흥남부두(함경남도)에서 중공군의 폭격을 피해 철수하는 미국 유조선이 최종적으로 무기를 버리고 사람을 태우라.”라는 장군(원래는 선장)의 명령에 따라 피난민을 태우는 장면이다. 선장 레너드 P. 라뤼는 유조선이라 사람을 태울 수 없었음에도 전쟁을 피해 영하 20도에도 바다로 물밀듯 몰려드는 사람들을 못 본 척 할 수가 없어 무려 14,000명의 피난민을 태운다. 누울 자리도 없어 대부분 선 채로 또, 굶주린 채 꼬박 4일간 운항해 거제에 도착했을 때 희생자가 한 명도 없었던 것은 물론 배 안에서 5명의 아기도 탄생했다. ‘기적이었다. 20144, 480여 명의 승객

을 태우고 인천에서 제주로 가던 세월호 선장이 가만 있으라.”라고 명령한 뒤 자기 먼저 탈출한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된다. 빅토리호가 살림의 배라면, 세월호는 죽임의 배다.

둘째, 부산으로 피난을 와서 고모 가게에 얹혀 살던 덕수가 청년이 된 뒤에 동생 결혼 자금과 학비 마련을 위해 독일 광부로 간 장면이다. 1964년 독일 뒤스부르크 인근 함보른 탄광에 최초의 한국 광부들이 투입되었는데, 탄광 내부가 붕괴되는 사고가 났다. 독일 관리자들과 경찰들은 광부들을 철수시킨 뒤 미처 나오지 못한 덕수와 달구에 대해서는 더 이상 구조를 하지 않겠다며 포기하려 한다. 이 때, 간호사로 파견되어 덕수와 사랑에 빠진 영자와 다른 한국 광부들이 독일 관리자와 경찰들의 제지를 뚫고 곡괭이를 든 채 탄광으로 내려간다. 자신이 위험에 처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오로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랑하는 이를 살리기 위해 수백미터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서도 드러나듯, 사랑의 힘은 살림의 힘이지만 자본의 힘은 죽임의 힘이다.

셋째, 비교적 짧게 나온 장면이지만, 시장통 한 켠 가게 앞에서 한 이주 노동자 남성이 다른 이주 노동자 여성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사랑의 대화를 나눈다. 이를 본 젊은 한국 청소년들이 괄시하고 무시하자, 노인인 덕수가 버럭 화를 낸다. 자신과 아내도 독일에서 이주 노동자로 살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덕수의 시선이 살림의 눈이라면 청년의 시선은 죽임의 눈이다.

감독은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 본 적 없는아버지 세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한다. 나도 영화 보는 내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애국가와 태극기 앞에 일제히 자동인형처럼 일어서서 가슴에 손을 올리는 두 장면에서는 눈물이 아니라 분노가 치밀었다. 아마도 이것은 국가가 예나 지금이나 사람과 생명을 살리는 일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오히려 자본과 권력을 살리는 일에 몰두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 모두가 생산, 분배, 소비, 일상 등 삶속에서 마주치는 모든 순간에 죽임이 아니라 살림의 편에 서는 것, 바로 이것이 세상과 우리 자신을 살리는 일이요, 또 이것이 곧 한살림운동이 가진 본연의 의미라 본다.


글을 쓴 강수돌 교수는 1997년부터 고려대에서 돈의 경영이 아니라 삶의 경영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개인적 출세보다는 사회적 행복이 중요하다는 믿음으로 기업의 노사관계, 공공부문 노사관계, 이주노동자의 삶과 운동, 일중독, 중독 조직 문제 등을 연구합니다. 20055월부터 20106월까지 조치원 신안1리 마을 이장을 하며 주민들과 함께 고층아파트 건설 반대 운동을 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