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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지에서 온 소식/살리는 이

정덕한 바우보리연구소 소장

정덕한 바우보리연구소 소장

다행히 희망이 있다. 이미 30여 년 전, 식량자원을 지키기 위해 보리를 연구한 정덕한 바우보리연구소 소장 때문이다. 전라남도 영광에 있는 바우보리연구소에서 만난 그는 발아보리 작업 과정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칠순이넘는 나이에도 그는 가족과 멀리 떨어져 연구소에서 생활하며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우리 민족과 문화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건 아니지만 젊은 시절부터 우리말과 글, 역사에 대해 연구해온 재야학자이기도 하다. 1980년대, 그는 우연히 국내에서 사료로 사용하기 위해 옥수수를 수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사시 옥수수 수입이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될까? ‘식량자급’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그때부터 국산 보리로 수입 옥수수사료를 대체하기 위한 그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당시 보리는 옥수수에 비해 체내흡수율이 떨어져 사료로 적합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따라서 보리의 체내흡수율을 높이는 문제가 핵심이었다. 보리 씨눈에는 효소가 집중돼 있다. 보리를 발아시키면 씨눈의 효소가 퍼지고 활성화 되는데 활성화 된 효소는 고분자 상태인 보리의 영양분을 저분자화 시킨다. 저분자 상태의 영양분은 고분자 상태일 때보다 소화 흡수가 잘 되기에 자연스럽게 보리의 체내흡수율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실제 실험결과 보리의 체내 흡수율은 63~74%에서 발아보리가 되면 93~94%로 높아진다고 한다. 이 기술로 정덕한 소장은 특허를 받았다. 단국대학교 산학협력단 연구를 통해 발아보리 사료의 효과도 확인했지만 발아보리 사료를 현실화시키기엔 어려움이 컸다. 함께 하자는 이가 없진 않았지만 믿고 함께 할 만한 이들은 드물었다.

 

칠순이 넘는 나이지만 발아보리화 과정에 직접 참여할 정도로 젊은이 못지 않은 힘이 느껴진다.

그러던 중 2009년 우연히 한살림을 만났다. 그때부터 잡곡류인 발아쌀보리를 한살림에 공급하기 시작했고, 식량문제에 대한 고민이 같았기에 자연스럽게 발아보리 사료화를 함께 추진하게 되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돼지는 주변 환경에 굉장히 민감한 동물이어서 사료 변경에 대한 돼지 생산자들의 두려움이 컸고 보리 사용에 따른 가격 상승이라는 현실적인 제약도 있었다. 이런 어려움을 한살림과 함께 극복하고 2013년 1월, 수입 옥수수를 전량 제외하고 우리보리 20%와 국산 쌀겨 10%를 먹여 키운 우리보리살림돼지가 공급됐다.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인 듯 조합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이렇게 우리보리살림돼지를 공급함에 따라 2013년 한 해, 700톤의 보리가 자라는 50만 평의 보리밭을 살릴 수 있다.
“발아보리 연구가 30년 걸렸으니 발아보리 사료 대중화는 30년 걸리겠지요?” 정덕한 소장은 담담하게 말한다. 발아보리 사료화는 안정된 식량자급이라는 먼 길을 향해 내딛은 작은 한 걸음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올해 첫 발을 내딛은 우리보리살림돼지에 많은 이들이 희망을 걸고 있다. 국산 보리에 새 생명을 불어 넣은 그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