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영화 <암살>에 출연했던 한 배우는 극중 인물의 역할을 위해 체중을 엄청나게 감량했다고 한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먹는 것을 참아야 했던 고통에 대해 말했고, 영화 제작이 끝난 후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에 대해 말했다. 그런데 그가 고백한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은 다소 의외였
다. 그는 흰 쌀밥이 가장 먹고 싶었고, 역시 흰 쌀밥을 먹었을 때 큰 기쁨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었을 때 내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지어 주시던 흰 쌀밥이 떠올랐다. 어머니께서 담아 주신 따뜻한 고봉밥은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었다. 달디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가족이 매 끼니마다 솥에 불을 때서 지어 먹던 흰 쌀밥은 우리 가족이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한 것이었다. 우리 가족은 쌀을
얻기까지의 모든 노동 과정에 협력했다.

아버지께서 볍씨를 고르던 것을 우리는 지켜보았고, 논에 물을 들여 못자리를 우리는 함께 만들었고, 아버지께서 써레질을 하시는 동안 우리는 모를 쪘다. 모내기를 위해 쪄서 묶은 모를 논 곳곳에 놓아 두었고, 우리는 함께 모내기를 했다. 모내기를 하면서 우리는 함께 들밥을 먹었고, 모가 잘 자라도록 피를 뽑았고, 농약을 쳤다. 그렇게 함께 노동을 하는 동안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왔다. 가을이 와서 벼를 무르익게 하는 동안 몇 차례 험악한 태풍도 와서 벼와 함께 자라나던 우리의 의지를 꺾어 놓았다. 그러나 우리는 쓰러진 벼와 함께 우리의 의지도 다시 바닥으로부터 일으켜 세웠다. 우리는 함께 벼를 베었으며, 타작을 했다. 벼 이삭이 혹시 더 떨어져 있지 않은지 살피기 위해 우리는 함께 벼 이삭줍기를 했다. 타작을 마치고 경운기에 수확한 벼를 싣고 오던 날의 벅찬 행복과 감동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께서 조리로 쌀을 일 때에는 사락사락 소리가 났다. 우물물로 물의 양을 맞추고 소나무 밑에서 긁어온 마른 솔잎으로 불을 때셨다. 밥이 다 되면 어머니께서는 가족들을 불렀다. 나는 어머니께서 가족들을 밥상 둘레로 불러들이는 그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소리라고 생각한다. 그 소리는 밝아오는 아침에, 어두워지는 저녁에 멀리멀리 나아갔다. 가족들은 집에서 바깥의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에 한 공기의 밥을 먹음으로써 낮 시간에 해야할 노동을 위한 힘을 얻었고, 바깥의 세상에서 집으로 돌아와선 한 공기의 밥을 먹음으로써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밥상 둘레에 함께 둘러앉은 가족의 풍경은 멀리서 보면 아마도 화환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한 공기의 밥을 받을 때마다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다. 볍씨가 한 톨의 쌀이 되기까지 수고로운 일을 한 모든 이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다. 우리 가족과 흙과 바람과 구름과 비에 감사한다. 실로 한 톨의 쌀은 우주의 협력적 노동이 만들어 낸 기적적인 결과물이다.

 

글을 쓴 문태준 님은 1970년 경북 김천에서 출생했습니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처서」 외 9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전통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이 시대 대표 시인으로 평가됩니다.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그늘의 발달』, 『먼 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등의 시집을 냈으며 소월시문학상, 서정시학작품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Posted by 한살림연합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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