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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살림‧농업살림‧생명살림/살림의 마음

그냥 바라보기에 참 좋다 글 김영동 주말 아침 신문에 난 신간안내를 훑어보던 중 「심미주의 선언」이란 아주 작게 실린 책 제목 하나가 눈에 띠었다. 단 몇 줄의 짧은 소개였지만 저자는 ‘삶을 변형시키는 계기로서 심미주의’를 논하며, “각자의 심미적 경험이 시민화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밝혔다”고 했다. 전혀 새로운 주장은 아니지만, 실용적인 면보다 환경과 자연을 함께 생각하며 사물의 가치를 판단하는 한살림이야말로 그런 계기서 만든 모임 아니던가. 내가 아는 초기 한살림의 분위기는 심미적 경험의 의미를 충분히 깨닫고 있는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잠재적으로 미적 감수성이 남다른 이들이 모인 집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몸에 좋은 식품이나 농산물을 특별히 과학적인 지식이 있어서도 아니고, 감성적으로 알아보는 눈과 마음을 가졌던 사람들.. 더보기
희망을 지키는 선택, 살림의 편에 서다 글 강수돌 윤제균 감독의 영화 은 흥남부두에서 큰 배를 타고 부산으로 피난을 가는 덕수네 가족 이야기를 다룬다.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라, 실은 1950년대 한국전쟁 시기로부터 시작하여 1964년 처음 전개된 독일 파견 광부와` 간호사 이야기, 그리고 1970년대 베트남 전쟁과 1980년대의 남북 이산가족 찾기 캠페인 등 한국 현대사를 아우르는 가족사다. 이 영화에는 ‘삶’의 관점에서 몇몇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첫째, 1950년 12월 흥남부두(함경남도)에서 중공군의 폭격을 피해 철수하는 미국 유조선이 최종적으로 “무기를 버리고 사람을 태우라.”라는 장군(원래는 선장)의 명령에 따라 피난민을 태우는 장면이다. 선장 레너드 P. 라뤼는 유조선이라 사람을 태울 수 없었음에도 전쟁을 피해 영하 20도에도 바.. 더보기
'한살림'은 계속 우리의 구명보트일 수 있을 것인가 글 최성각 온 세상에 텔레비전이 켜져 있다. 광고와 뉴스 외에도 엄청나게 자주 먹을거리 이야기, 건강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소문난 음식과 건강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세상에서 좋다는 것은 다 소개되고 있다. 요리사도 나오고 산나물에 미친 사람, 해조류에 미친 사람도 나오고, 마늘에, 콩에, 약초에, 참기름에, 식초에 미친 사람, 암에 걸렸는데 아직 안 죽은 사람들이 나온다. 병원에 있어야 할 의사들은 기다리고 있다가 전문가로서의 도장을 적시에 찍어 준다. 미안하지만, 한마디로 미친 사람들이다. 건강과 먹을거리에 대한 그들의 초조와 믿음과 각오는 천년만년 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타오른다. 아무도 그 먹을거리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되고, 그것들이 자라는 대양과 산천이 얼마나 치명적으로 오염되어 있는.. 더보기
지구를 살리는 진짜 농부 글 김선미 에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 우주로 떠난 농부가 나온다. 그는 지구에서 농부의 삶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 본래 자신의 직업이었던 우주비행사로 돌아간다. 지구에 남아 있는 최후의 작물은 옥수수였다. 호시탐탐 옥수수밭을 덮쳐오는 모래바람은 아이들의 숨구멍마저 틀어막고 있었다. 나는 스크린 속 광활한 옥수수밭의 녹색 물결을 보며 ‘저건 분명 GMO일 텐데’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해졌다. GMO 작물을 기르는 농부에게 미래가 있을 리 없다. 영화는 딜런 토마스의 시 구절 “빛이 사라져가는 것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라”를 여러 번 반복해 읊어준다. 우리가 진짜 분노하고 저항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나는 영화 속 옥수수밭을 보며 줄곧 딴생각을 했다. 옥수수는 GMO 농작물을 통해 식량을 장악하려는 자본의.. 더보기
천벌 받을 짓 그만해라 글 임락경 어릴 적 부모님께 곡식을 소중히 하지 않고 함부로 하면 천벌 받는다는 말씀을 들으며 자라왔다. 지금도 허리를 꺾고 마당에 흩어진 곡식을 낱낱이 손으로 줍고 있는 어르신들을 볼 때면 성스럽게까지 느껴진다. 어릴 적에는 종일 다 주워 모아도 얼마 되지 않는데 왜들 저러실까 싶기도 했다. 내가 농사를 지어보니 고생해서 심은 모가 잘 자라 꽉찬 알곡으로 여무는 모습은 장성한 자식마냥 대견스럽기까지 하다.곡식은 곡식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주곡과 잡곡으로 분리했고, 주곡을 쌀로 삼고 살아왔다. 잡곡이 주곡인 나라도 있고, 우리나라도 지방에 따라 달랐다. 산간지역은 논이 적어 쌀이 귀했고, 제주도 역시 좁쌀이나 기장이 주식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강원도 역시 옥수수가 주곡이었다.나는 평야에서 자랐어도 집.. 더보기
제 앞가림 할 힘을 길러주는 스승 글 윤구병 도시는 놀라운 곳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쉴 틈이 없다. 그렇게 부지런을 떨 수 없다. 죽어라 몸 놀리고 머리를 쓴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 마련에 애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살아남는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스스로 텃밭 일구지 않아도, 실 잣지 않아도, 땅 고르고 집 짓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얼마나 오래 견딜까.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사람끼리만 도와서도 살 수 없다. 사람과 자연이 서로 돕지 않으면 살길이 없다. ‘목숨’은 목으로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일컫는 말이다. 나무들이 내쉬는 숨에 섞여 있는 산소를 들숨으로 받아들여 사람은 손발 놀리고 몸 놀리고 머리 쓸 힘을 얻는다. 어디 그뿐인가. 사람 손을 탄 낱알들은 .. 더보기
밥이 힘쓰지 사람이 힘쓰는 줄 알아? 글 한창훈 ‘내 어렸을 때 아이들은 모두 결핍 덩어리들이었다. 빼빼 마른 데다 비리비리했다. 툭 하면 뾰두라지가 나고 버짐이 피었으며 기계충을 앓았다. 그때 주로 먹은 것이 보리나 조, 수수, 고구마, 돼지감자 같은 거였다. 지금은 모두 건강식으로 구분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렇게들 아프고 볼품없었다. 이 애들이 딱 한 번 좋아지는데 바로 추수 이후다. 쌀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사흘만 쌀밥을 먹으면 살이 붙어 얼굴 때깔이 달라지고 이런저런 잡병이 없어졌다. 그래서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쌀밥을 최고로 친다…’ 오래전 소설가 남정현 선생께서 강연 때 하신 말씀이다. 결핍의 대명사였던 거친 곡식들이 갑자기 건강식품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만난 음식의 풍요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 .. 더보기
밥의 안부를 묻다 글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언제나 그 시대를 잘 알려주는 말이 있다. 요즈음 소통과 화해 혹은 용서와 배려에 관한 말이 많이 오가지만 한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주 했던 말 중에 ‘밥’이 있었다. 우연히 마주친 이웃에게는 반드시 밥은 먹었는지 안부를 물었고, 직장에 나가는 새내기에게는 최소한 밥값은 하라고도 했다. ‘열 사람의 한술 밥으로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다’는 말로 밥이란 서로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 것이라고 공동체 교육도 했다. 낮에 각자의 일터로 흩어졌던 가족의 모든 이야기가 밥상머리에서 알려졌으며 집안의 중요한 일이 이야기되는 곳도 함께 밥을 먹는 밥상이었다.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 밥 먹는 것을 봐야 어머니들은 안심했고 아랫목에서 따듯하게 모셔놓았던 밥그릇을 앞에 놓아야 비로소 집에 왔다.. 더보기
와서 밥 먹어요! 글 공선옥 이 세상에서 듣기 좋은 말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밥 먹자’라는 말을 꼽겠다. 언젠가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 시인을 만나러 시인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섬진강 옆 작은 학교에 간 적이 있었다. 시인은 그때 나를 처음 보는데도 대뜸 그러는 것이었다. “선옥아, 밥 묵자. 짐치에다가잉?” 짐치는 김치의 전라도 말이다. 내 속에서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 속의 아이고 소리는 그러니까 오래 긴장하고 오래 서러웠던 마음이 한순간에 푸욱 풀어지는 소리다. 눈물이 설컹 나는 소리다. 그렇게나 따숩고 그렇게나 인정스런 말을 아직도 하고 사는 사람이 있구나, 싶은 감동에 절로 “아이고오, 오빠아” 해지던 것이었다.이 세상 엄마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밥 먹자’ 다. 나 또한 그렇다. 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