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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

소식지 553호 _ 얌전한 모양새에 맛 또한 귀하구나 얌전한 모양새에 맛 또한 귀하구나 임자수탕 요리 채송미 한살림요리학교 강사, 사진 김재이 임자수탕은 궁중의 보신 냉국으로 깻국탕 또는 백마자탕이라고도 불립니다. 보통의 냉국처럼 냉수를 기본 국물로 하지 않고, 닭국물과 깨, 잣 등 고소하면서도 지방이 풍부한 재료를 국물로 써서 여름철 영양을 보충하기에 안성맞춤이지요. 손이 제법 가는 요리지만, 국물 한 숟갈을 떠먹는 순간 혀부터 시작해 온몸이 알아챕니다. 순간의 시원함을 안기며 혀끝에서만 노는 음식이 아니라 정성이 듬뿍 들어간 몸에 좋은 음식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참깨와 잣이 닭국물과 어우러져 은은한 고소함이 입안에 감돌고, 부드러운 닭고기를 소면에 얹어 먹으면 씹을수록 담백한 것이 참 얌전합니다. 그 모양새만큼이나 맛도 참 귀한 음식입니다. 한 그릇 비.. 더보기
소식지 552호 _ 내년에도 마늘농사 지을 수 있으려나 내년에도 마늘농사 지을 수 있으려나 연이는 비와 안개 때문에 한숨 깊은 전남 해남 참솔공동체 정재열. 남순옥 생산자 “봄 안개는 죽안개”라고 한다. 가을 안개를 ”쌀안개”나 “천 석을 올리는 안개”라 부르는 것에 비해 너무 박한가 싶다가도 봄 안개가 얼마나 농사를 ‘죽 쑤게’ 하는지 들으면 마땅하다 싶다. 벼가 여무는 가을날의 안개는 따스한 온도를 유지하게 해 풍년이 들게 돕지만, 봄 안개는 볕이 식물에게 가는 길을 막고 숨구멍을 틀어막아 생장을 방해하고 병해를 입히고 그 습한 기운으로 병을 키운다. 마늘은 특히나 거의 다 키웠을 때쯤인 생장후기에 습한 기후에 노출되면 갈색 잎마름병에 걸리기 십상이라는데 전남 해남에는 지난 4월 한달동안 열여섯 날이나 비가 내렸다. 안개 낀 날도 계속되었다. 한참 푸르고.. 더보기
내가 먹는 음식이 바로 나를 말해 줍니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삶의 전환점을 맞았다. 아이와 함께 어디서 어떻게 어떤 먹을거리로 살아갈까에 대해 더 구체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분명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지금처럼 물건과 음식이 넘쳐나는 풍족한 삶은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같이 교사로 일하던 남편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둘 다 사직서를 내고 남편은 친환경 농사, 나는 자식농사를 짓기로 했다. 지금 합 천 가회에 들어와 7년째 겨울을 맞고 있다. 요즘 세상에 부부교사 직업을 그만두고 농사를 짓는다 하면 십중팔구 특이한 사람 취급을 한다. 그러나 학교를 그만두고 ‘살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학교에서 만난 많은 아이들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에 대해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이 무엇을 먹는지를 지켜보라는 말.. 더보기
김장하는 날 올해 김장 준비를 마쳤다. 마늘과 파, 갓, 무는 과수원에 딸린 텃밭에서 나왔고 고추는 이웃들이 조금씩 나누어준 것만 해도 남을 정도였다. 새우젓과 양파 정도만 오일장에서 사왔다. 올해 처음으로 실패한 게 어이없게도 배추다. 해마다 별 신경 쓰지 않아도 실하게 포기를 안던 배추 농사를 초장부터 망쳤던 것이다. 말복 지나 배추 모종을 구해 심어놓고 과수원 일에 매달리느라 눈길을 주지 않았더니 어느 틈에 벌레가 창궐하여 속대만 남기고 모두 뜯어먹은 게 아닌가. 백 포기 넘게 심은 게 겨우 스무 포기 정도 남았을까, 그나마 속이 차지 않아 진즉에 겉절이로, 된장국으로 사라진 바 되었다. 다행히 마을에는 유기농으로 배추농사를 짓는 집이 있어 그 집에서 오십 포기를 사왔다. 그렇지 않아도 싼데 이웃이라고 거의 거.. 더보기
농사는 나라 살림의 근간이다 나는 힘든 일을 마치고 밥을 먹을 때 고영민 시인의 시 을 떠올린다. “추운 겨울 어느 날 /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 사람들이 앉아 /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 밥이 나오자 / 누가 먼저랄 것 없이 /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 공손히 / 손부터 올려놓았다” 고영민, 시, , 전문 또, 나는 생일이거나 기제사가 있는 특별한 날 밥을 먹을 때, 동학에서 나오는 “밥이 하늘이다”라는 말을 떠올리기도 한다. 사람의 한평생이 ‘밥’과 연관되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숟가락을 엎어놓으면 그 형상이 무덤 같다. 생사의 거리가 이만큼 가깝고 멀다. 숟가락을 엎는 날 죽음이 마중 오리라. 밥사발을 엎어놓으면 이것 역시 그 형상이 무덤을 닮았다. 죽음이란 밥사발을 엎어놓는다는 뜻이리라. 옛말에 ‘얼굴 반찬’.. 더보기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산골 마을 들녘에 벼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다음 달이면 맛있는 햅쌀이 밥상에 오를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우리나라는 세계 7∼8위권의 무역 규모와 세계 13~14위권의 국민총생산 규모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국민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세계 최하위권에 있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15년 5월 17일 내놓은 ‘2015년 신입사원 채용실태’를 보면, 대졸자들의 취업 경쟁률이 평균 32.3대 1에 이른다고 합니다. 100명이 지원했을 때 3명만이 뽑혔다는 얘기입니다. 더구나 ‘2014년 농고·농대 졸업생 진학 현황’에 따르면 농고 졸업생 100명 가운데 1명, 농대 졸업생 가운데 7명만이 졸업한 뒤에 영농에 종사한다고 합니다. 이런 현실이니 어찌 들녘에 벼가 익어간다고 마냥 마.. 더보기
어머니의 고봉밥 최근 개봉한 영화 에 출연했던 한 배우는 극중 인물의 역할을 위해 체중을 엄청나게 감량했다고 한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먹는 것을 참아야 했던 고통에 대해 말했고, 영화 제작이 끝난 후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에 대해 말했다. 그런데 그가 고백한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은 다소 의외였 다. 그는 흰 쌀밥이 가장 먹고 싶었고, 역시 흰 쌀밥을 먹었을 때 큰 기쁨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었을 때 내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지어 주시던 흰 쌀밥이 떠올랐다. 어머니께서 담아 주신 따뜻한 고봉밥은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었다. 달디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가족이 매 끼니마다 솥에 불을 때서 지어 먹던 흰 쌀밥은 우리 가족이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한 것이었다. 우리 가족은 쌀을 얻기까지의 모.. 더보기
사람과 마음이 머무는 집을 짓다 5년 전, 협동조합 활동가인 지인이 전해 준 협동조합이 그려내는 사람 중심의 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 후 협동조합에 대한 국내외 자료를 읽고 조합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전공영역인 주택산업 분야에 협동조합을 도입하고 싶어졌다. 2011년 9월 지인들과 ‘주택건설협동조합 포럼’을 만들어 전문가와 소비자가 모여 주택협동조합과 관련된 학습과 연구를 진행하면서 향후 주택협동조합의 방향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러한 학습과 연구를 바탕으로 2013년 6월 4일, 주택 소비자들이 모여 우리나라 최초의 주택소비자협동조합인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이하 하우징쿱)을 설립하게 되었다. 하우징쿱은 ‘주택을 필요로 하는 소비자들이 자주적인 협동조합 활동을 통하여 양질의 주택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마련하는.. 더보기
당신이 지난 겨울 먹었던 포도의 비밀 지난 2월 설 명절 동안 대형마트에서 판매된 포도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칠레산이 아니라 100% 페루산이었다. 2년 전부터 페루산 포도가 미국산(9~12월)과 칠레산(3~6월)의 중간을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작년 말 이라는 방송을 통해 만났던 머나먼 남미의 페루. 그런데 요즘은 포도를 통해 페루를 가까이 마주할 수 있다. 그럼 페루에서 포도가 재배되는 곳은 어디일까. 지난 1월 페루의 포도농장을 다녀 왔다. 페루의 포도산지는 2천 년 전 사람들이 사막 위에 그린 것으로 알려진 나스카 라인 부근의 사막지대인 이카(Ica) 지역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건조하다고 알려진 페루와 칠레 북부의 해안사막지대. 황량한 모랫빛 산들 사이에 거대한 포도농장이 자리하고 있다. 칠레의 과일 산업자본이 들어와 페루 사.. 더보기
무위당* 그리고 새로운 한살림 30년 하얀 아카시아 꽃이 휘날리며 떨어질 때면 무위당 선생이 생각난다. 매년 5월 셋째 주말이면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그의 묘소에 모여 아카시아 그늘 아래서 밥 한 그릇 모셔 들고 선생의 말씀을 되새기며 우리의 갈 길을 되돌아보곤 한다. 몇 년 전 이현주 목사님께 글씨를 받으려고 뵌 적이 있다. 그때는 전국을 쏘다니며 무위당 전시회를 개최하며 일을 펼치고 다닐 때였다. 열심히 일에는 몰두하고 있었지만 늘 마음에 걸렸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선생의 유훈인 “내 이름으로 아무 일도 하지 마라”는 말씀이었다. 혹시 내가 하는 일이 선생의 유훈을 어기고 선생을 팔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은근히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목사님께 고민을 말씀드렸더니 웃으면서 한 말씀 해주셨다. “걱정 마시게, 선생님 말씀은 억지로 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