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옻칠 숨결을 불어넣어 만든 생활용품
한살림 옻칠생활용품을 생산하는 정선공방
정리 편집부



물이 자주 닿으면 상하기 쉽고, 벌레가 먹기도 쉬운 나무. 하
지만 그 나무를 잘 손질하고 여러 번에 걸쳐 옻칠을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가볍고 쓰임이 많은 실용적인 그릇과 도구가 된다. 상처가 나지 않도록, 씻을 때 부드러운 천으로 닦아주면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다.은은한 빛깔과 나무의 결이 살아있는 옻칠그릇은 자연을 닮았다.

한살림의 여러 조합원들이 사랑하는 옻칠생활용품은 중요무형문화재 10호 나전장 이형만 선생에게서 기술을 전수받은 가족들이 운영하는 원주의 정선공방에서 만들고 있다.

이형만 선생은 중학교 시절, 나전칠기로 유명한 고향 통영의 기술원양성소(오늘날의 공예학교에 해당)에 입학하여 스승 김봉룡 선생을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나전칠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옻생산지로 유명한 원주에 스승이 공방을 열게 되자 이형만 선생도 원주로 오게 되었고, 이곳에서 장일순 선생과의 인연도 시작된다. 장일순 선생의 수묵화를 복사해 나전으로 만든 것을 인사동에 전시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이 사회적으로 큰 호응을 얻은 것이 무명이나 다름없던 이형만 선생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였다. 기술적 스승이 김봉룡 선생이라면 평생의 정신적 스승은 장일순 선생으로, 이형만 선생이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고 장일순 선생을 뵈러 갔을 때 ‘나서지 마라. 나서면 꺾인다’라고 하신 그 말씀을 평생 기억하며 절제하는 마음을 가져왔다고 한다.                   

한살림의 옻칠생활용품을 생산하는 정선공방의 문정선, 이미숙 두 생산자도 여러 공예대전에서 수상을 하며 솜씨를 인정받은 실력파이다. 문정선씨는 이형만 선생의 부인, 이미숙씨는 여동생으로 오랜 기간, 장인정신을 오롯이 담은 작품 활동에만 몰두하는 선생의 작업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곁에서 익혀온 기술로 옻칠생활용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옻칠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고 있으며, 틈틈이 만든 작품을 공모전에 내놓았는데 여러 번의 수상을 했던 것이다.

정선공방에서 사용하는 원주옻이 생산되는 원주지역은

질 좋은 수액을 가진 옻나무가 자라기에 딱 알맞다고 한다. 그래서 원주에서 생산되는 옻은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며 원주가 옻칠로 유명해지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원주 옻은 워낙 생산량이 적고 값이 비싸 어쩔 수 없이 원주옻과 질이 좋은 중국산 옻을 까다롭게 골라 함께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어렵게 얻은 귀한 옻이라도 장인의 손길을 만나야만 옻칠생활용품으로 만들어진다. 나무로 만들 형태를 미리 깍아 놓은 ‘백골’에 정제된 옻을 칠하고 말리고 사포로 다듬고 다시 칠하고 다듬는 수 십, 수 백 번의 손길, 오랜 기다림을 거쳐야만 비로소 완성되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면 우리는 제대로 된 값어치를 치르고 옻칠의 아름다움과 쓸모를 누리는 걸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원주에서 옻을 채취하는 기능인도 이제 몇 사람 없다고 한다. 어렵게 채취한 옻으로 쓸모 있는 도구를 만드는 장인도 마찬가지. 자연에서 온 재료에 수십 번 사람의 손길이 더해져야만 탄생하는 귀한 옻칠제품. 생활에 풍요로움을 더해주는 우리의 전통문화 옻칠을 지켜내기 위해선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생활공간에 하나 둘 옻칠제품을 늘려가 보는 것이 하나의 방편이 될 수도 있겠다.
Posted by 한살림연합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