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미자 한살림성남용인 조합원
제게 한살림은 참 오래된 인연입니다. 매주 한살림 물품이 공급되는 날이면 계란 몇 알, 식빵 한 봉지, 두부 몇 모 이렇게 주문한 사람의 몫을 거실 바닥에 펼쳐놓고 나눠서 이웃에게 배달하던 올케언니의 모습이 함께 떠오릅니다. 80년대 한살림 초기의 모습이지요. 그 당시 저는, 오빠네 집에서 살면서 매주 거실에 물품을 늘어놓고 이웃에게 나눠주는 올케언니의 열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힘든 일은 도맡아서 한다고 핀잔이나 주던 대학생이었습니다. 조합원들이 돌아가면서 물품을 주문하고, 물품 받는 일을 해야 했지만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라 올케 언니가 거의 도맡아했지요. 저는 올케언니와 함께 물품 배달꾼이 되어 5층짜리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곤 했습니다.
그때 올케언니가 해준 현미밥을 처음으로 먹었고, 낯설었던 친환경 먹을거리에 대해 들으며 몇 년을 보낸 뒤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혼집이 안산이라 올케언니에게서 먹을거리를 갖다먹을 수도,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도 없어 한살림과의 인연은 이어 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혼하는 제게 올케언니가 챙겨준 한살림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순면행주세트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첫아이가 태어났을 무렵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자주 보지 못하는 올케언니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순면행주세트는 사진처럼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올케언니가 챙겨준 물건이 행주 한 장만은 아니었는데, 사용하지 않아 빛바랜 행주를 꺼내 볼 때마다, 올케언니의 한살림에 대한 열정과 가족들과 투덕거리던 일들이 생각납니다. 어느 날 갑자기 흰 쌀밥이 사라진 식탁에서 조카들이 투정부리던 일, 조카가 과자가 너무 먹고 싶어서 몰래 사먹고 나머지를 1층 우체통에 챙겨두었다 들켜서 혼난 일, 너무 거칠어 맛이 없었던 우리밀 식빵을 처음으로 한입 베어 물던 순간…. 지금은 다양하고 먹기 좋은 물품이 많아졌지만 초창기 한살림은 물품 수도 부족하고, 시중에서 접하던 맛들이 아니어서 늘 한살림 밥상은 맛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친동생처럼 따뜻하게 대해주며 7년이란 세월을 함께 보낸 올케언니는 늘 고마운 추억입니다.
저는 이리저리 미루다가, 결혼한 지 20년이 넘어서야 한살림의 조합원이 되었답니다. 얼마 전 매장에서 순면행주를 보았습니다. 올케언니를 만난 것 마냥 기뻤습니다. 얼마 전, 올케언니가 한국에 온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몇 년 만에 보는 올케언니에게 한살림 얘기를 해 줄 생각을 하니 괜히 설렙니다. 남들에게는 큰 일이 아니겠지만, 올케언니와 함께 한 한살림과의 인연들에 대해서도, 친정아버지가 아무 말도 못하고 거친 현미밥을 맛있다며 먹었다는 얘기도 웃으면서 실토해야겠네요. 이제 번듯하게 차려진 한살림 매장도 구경 시켜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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