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성각
온 세상에 텔레비전이 켜져 있다. 광고와 뉴스 외에도 엄청나게 자주 먹을거리 이야기, 건강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소문난 음식과 건강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세상에서 좋다는 것은 다 소개되고 있다. 요리사도 나오고 산나물에 미친 사람, 해조류에 미친 사람도 나오고, 마늘에, 콩에, 약초에, 참기름에, 식초에 미친 사람, 암에 걸렸는데 아직 안 죽은 사람들이 나온다. 병원에 있어야 할 의사들은 기다리고 있다가 전문가로서의 도장을 적시에 찍어 준다. 미안하지만, 한마디로 미친 사람들이다. 건강과 먹을거리에 대한 그들의 초조와 믿음과 각오는 천년
만년 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타오른다. 아무도 그 먹을거리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되고, 그것들이 자라는 대양과 산천이 얼마나 치명적으로 오염되어 있는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누구도 후쿠시마 이야기는커녕 이 나라의 핵발전소 이야기는 안 한다. 누구도 농약 이야기는 안 한다. 그래서 나는 그 프로그램이야말로 공상과학소설보다 더 비현실적인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며, 세상이 엉망진창이 되어도 나만은 좋은 것 악착같이 찾아 먹고 기필코 만세를 누리고야 말겠다는 그들의 푼수 없는 이기심에 혀를 차다가 나중에는 연민의 감정마저 인다.
지난해 내가 사는 시골 연구소에 농사짓겠다고 젊은 부부가 왔다. 40대 초반인 그들은 500평 지인의 땅에 거름을 하고 지난 6월 초에 서리태를 심었다. 콩에 할애한 면적은 350평가량, 나머지 땅에는 배추나 무, 깨를 심었다. 한해 내내 가물거나 큰비가 내리거나 등의 하늘의 일, 병충해 등의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노심초사하면서 갖은 애를 써서 시월 하순경 수확을 했다. 그리고 콩을 말렸다가 11월 초 탈곡을 했다. 얻은 콩의 총량은 102㎏. 우리 먹을 것과 최소한의 선물을 한 뒤에 판매할 양을 추려보니 86㎏. 지인들을 통해 판매는 한 달 만에 끝났다.
판매 수입은 125만 6천 원. 거기에서 포장비 발송비 빼고 나니 106만 원. 그것이 순수입일까? 아니다. 퇴비 만들기 비용, 트랙터나 관리기 대여비와 기름값, 예취기 수리비 등을 계산해서 순수 콩 수입만 헤집어보니, 56만 원 가량이 된다.
한 젊은이가 농사지을 수 있는 세 계절에 비지땀, 진땀을 흘려가면서 농사지어 얻은 수입이 56만 원이다. 그들이 탈곡을 마치고 정성스레 콩을 골라 포장지에 담고 저울에 콩을 달고 있을 때, 이 나라 어떤 사람들은 주식 차액으로 하룻밤에 물경 2~3조를 벌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이런 끔찍하고 아연실색할 시스템이 허용되고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지는 세상이 계속 유지되어야 할까, 유지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이 체제를 유지하려는 어떤 명분과 합리화로도 이런 시스템은 망측스러운 난센스다.
이런 나라에서 ‘한살림’의 위치는 어디쯤 자리 잡고 있을까? 한살림은 계속 우리 시대의 구명보트일 수 있을까? 며칠 전에 손바닥에 사마귀가 번져 율무를 구하러 한살림 매장에 들렀다. 매장 앞에 디자인이 예쁜 외제 소형차 한 대가 공회전하고 있었다. 육십 나이에도 순화시키지 못한 내 성정 때문에 매장 문을 열면서 한 마디를 내뱉었다. “공회전으로 대기는 오염시켜도 내 먹을 것은 한살림 것이라? 차를 공회전시키는 사람들에게는 물건 팔지 말아야 한살림 정신 지키는 것 아닙니까?”, 매장 활동가에게 말했지만 내 목소리는 매장 안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지 않았나 싶기는 하다.
글을 쓴 최성각님은 춘천 근처의 산골짜기에서 거위랑 버려진 고양이를 키우며 텃밭 정도 가꿉니다. 생태소설집 <쫓기는 새>, 산문집 <달려라 냇물아>, <날아라 새들아>, 생태(책)서평집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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