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선미
<인터스텔라>에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 우주로 떠난 농부가 나온다. 그는 지구에서 농부의 삶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 본래 자신의 직업이었던 우주비행사로 돌아간다.
지구에 남아 있는 최후의 작물은 옥수수였다. 호시탐탐 옥수수밭을 덮쳐오는 모래바람은 아이들의 숨구멍마저 틀어막고 있었다. 나는 스크린 속 광활한 옥수수밭의 녹색 물결을 보며 ‘저건 분명 GMO일 텐데’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해졌다. GMO 작물을 기르는 농부에게 미래가 있을 리 없다.
영화는 딜런 토마스의 시 구절 “빛이 사라져가는 것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라”를 여러 번 반복해 읊어준다. 우리가 진짜 분노하고 저항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나는 영화 속 옥수수밭을 보며 줄곧 딴생각을 했다. 옥수수는 GMO 농작물을 통해 식량을 장악하려는 자본의 상징이다. 상업적으로 재배되는 옥수수 대부분은 사료나 바이오에너지로 쓰인다. 쌀을 주식으로 삼던 사람들이 옥수수로 살 찌운 고기를 많이 먹게 된 것은 생태계에 커다란 불행이었다. GMO로 식량 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도 거짓이었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는 베고 죽는다’고 하지만 어떤 농부도 유전자조작 씨앗을 품고 꿈을 꾸지 않을 것이다. 이윤을 위해 설계된 씨앗 속에 처음부터 인류를 위한 ‘미래’는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우린 답을 찾을 거야, 늘 그랬듯이.”라며 시작했다. 하지만 인류를 모두 다른 행성으로 집단 이주시키는 것이 과연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지구는 우리가 마음껏 쓰고 버리고 떠날 수 있는 별이 아니다. 영화관을 나오며 다른 농부들이 떠올랐다. 최근 한살림이 펴낸 <살리는 사람, 농부>에 나오는 생산자들. 그중 우렁이농법을 처음 시작한 최재명 님은 제초제와 농약을 치지 않는 벼농사를 짓기까지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갖은 협박과 회유를 감수해야했다. 그야말로 ‘순순히 어둠을 받아들이지 않고’ 분노했던, 진짜 농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최재명 님이 생명농업에 매달린 것은 고추밭에서 농약을 치다 겨우 살아난 경험 때문이었다. 자기가 먼저 살기 위해 농약을 버렸지만, 결국은 논에서 벼와 함께 살아가는 뭇 생명을 살리고, 죽어가는 땅과 지하수를 되살리며 이웃의 밥상까지 ‘살리는 사람’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논에 사는 붕어, 미꾸라지, 새뱅이, 우렁이 같은 게 참 좋았어요.” 그가 멸종위기의 새뱅이를 살려낸 것도 누가 시켜서 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오직 생명에 대한 극한 사랑 때문이다.
쌀을 씻으며 그런 마음들을 떠올리면 경건해진다. 알알이 스며있는 농부의 사랑이 헛되지 않도록 정성껏 밥을 짓는 일도 성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갑을 열면 그와 같은 농부들이 내년에도, 후년에도 계속 자기 논에 모를 심을 수 있다. 우리별에서 올챙이, 우렁이, 미꾸라지, 새뱅이, 백로 등이 계속 살 수 있게 해준다. 결국 우리가 지불하는 쌀값은 농부의 생활을 책임지는 것뿐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줄 생명의 보험료다. 쌀 관세화 이후 우리 농업의 암울한 현실 앞에서는 더욱 절박한 선택이다.
유기농 쌀은 가격이 아니라 농부와 우리들 ‘사이’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인터스텔라’는 별과 별 사이를 뜻한다. 별에서 태어난 우리도 모두 하나의 작은 우주인데, 지금 우리들 별 사이는 얼마나 먼가.
글을 쓴 김선미 님은 올바른 먹을거리에 관한 이야기 <살림의 밥상>을 쓴 한살림 조합원입니다. 자연과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이야기들을 꾸준히 쓰고 있으며, 최근에는 <소로우의 탐하지 않는 삶>, <산이 아이들을 살린다>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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