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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살림‧농업살림‧생명살림/살림의 마음

그냥 바라보기에 참 좋다

김영동


주말 아침 신문에 난 신간안내를 훑어보던 중 심미주의 선언이란 아주 작게 실린 책 제목 하나가 눈에 띠었다. 단 몇 줄의 짧은 소개였지만 저자는 삶을 변형시키는 계기로서 심미주의를 논하며, “각자의 심미적 경험이 시민화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밝혔다고 했다. 전혀 새로운 주장은 아니지만, 실용적인 면보다 환경과 자연을 함께 생각하며 사물의 가치를 판단하는 한살림이야말로 그런 계기서 만든 모임 아니던가.

내가 아는 초기 한살림의 분위기는 심미적 경험의 의미를 충분히 깨닫고 있는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잠재적으로 미적 감수성이 남다른 이들이 모인 집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몸에 좋은 식품이나 농산물을 특별히 과학적인 지식이 있어서도 아니고, 감성적으로 알아보는 눈과 마음을 가졌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심성과 그걸 직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이 한살림을 찾아올 리 없다고 믿게 했다. 미를 느낀다는 것은 배움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없고 오직 감성의 영역에 속한 것이라고 한다. 학식이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타고난 것도 아니며 경험에 의해 길러지거나 자연스럽게 함양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학교에서 미학수업을 들을 때 이야기다. 하늘의 구름을 보고 농부는 농사에 유익한 비를 생각하고 기상학자는 일기를 예측하려 하지만 시인이나 예술가는 무심하게 형상을 관조하는데 미란 후자의 경우에 발생하는 것이라 했다. 아마도 칸트가 말한 미의 무목적성(정확하게는 목적 없는 합목적성)’을 쉽게 설명하려던 것이었겠지만 왜 농부라고 구름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겠는가.

언젠가 녹색평론에서 읽은 잊히지 않는 대목이 있다. 비 갠 뒤 물기에 젖은 앞산을 쳐다보던 농부가 혼잣말로 참 좋다고 했다 한다. 옆에 있던 이가 무엇이 좋으냐고 물었더니 그냥 좋지 않으냐는 대답이 돌아왔단다. 농부들도 강은 무엇을 주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저 바라보기에 아름답다고 느낀다. 갯벌의 경제성은 공업용지보다 못하더라도 오히려 더 중요하고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움이 거기 있기에 지키려 한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해 놓고 보기에 좋았더라고 한 것처럼 그분의 형상을 타고난 우리 모두에게 그런 마음이 있는 것은 당연할 텐데 새만금과 4대강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음이 분명하다.

한살림은 심미적 농사꾼과 단순소비자가 아닌 아름다움을 음미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이룬 집단이라 믿고 싶다. 인간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데는 꼭 윤리만이 아니라 미를 통해서라야 덕성을 기를 수 있다는 주장은 이미 독일철학자 실러가 그의 교육론에서도 역설한 바 있지만, 한살림이야말로 물품 자체에 그런 의미의 뜻을 담아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이 생명의 무자비한 파괴와 약탈에 결코 가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글을 쓴 김영동 한살림대구 이사장은 1990년 한살림대구 창립 때부터 조합원으로 함께 해오다가 2014년 이사장으로 선임되었습니다.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강의와 평론활동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광복60주년 기념전 책임큐레이터(2005), 대구 근대미술전 책임큐레이터(2009) 등으로 활동했으며 저서로는 근대의 아틀리에}(한티재, 2011)가 있습니다.